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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6살 주서연의 일상은 바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쭉쭉 체조를 한번 조져준 뒤에 유치원으로 향한다.

       정신연령이 족히 스물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몇 시간.

       

       그리고 유치원이 끝나면 곧바로 촬영장으로 향했다.

       

       “컷컷컷! 이야, 이거 이야기는 들었는데…… 서연 양, 진짜 대박이네.”

       “아니에요. 전부 다른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렇죠.”

       

       이번 CF 연출을 맡은 김 감독의 말에 서연은 얌전히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런 모습에 촬영장에 웃음꽃이 피었다.

       

       “햐, 어떻게 우리 애랑 저렇게 다르지? 여섯 살도 다 같은 여섯 살이 아닌가 봅니다.”

       “아이가 정말 어른스럽네요. 서연이 어머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지나가는 스태프들마다 수아에게 부럽다는 듯 말했다.

       이번에 찍은 광고도, 두유 광고 못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서연이가 정말 천재인가 봐.’

       

       어렸을 때부터 손 한 번 타지 않은 딸이었다.

       많이 울지도 않고, 혼자서 알아서 잘하는 덕에 수아의 육아는 너무너무 쉬운 편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수아는 서연과 함께 광고를 찍은 여배우를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단한 커리어는 없지만 배우로서 경력이 스무 해가 넘은, 중년의 베테랑 배우였다.

       

       “아! 김미연 배우님. 저희 서연이를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서연이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야 편했죠.”

       

       멀지 않은 곳에서 꾸벅꾸벅 배꼽인사를 하는 서연을 보며 김미연이 말했다.

       

       “다만…….”

       “다만?”

       “조금 위화감이 있어요.”

       

       김미연은 서연을 보았다.

       메소드 연기,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느낌이 달랐다.

       

       ‘오히려, 반대 아닌가?’

       

       그녀는 도리어, 서연의 연기는 학습한 감정을 보기 좋게 내뱉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미연은 경험이 많은 배우다.

       메소드 연기를 장기로 삼는 거물 배우들과도 촬영한 경험이 많았고,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알았다.

       

       ‘내가 너무 민감한지도 몰라. 아직 아이인데 감정을 학습해서 연기를 하는 건 말도 안 돼.’

       

       그건 한두 해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 년.

       연기가 일상이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서연은 아직 여섯 살인 아이다.

       그러니 태어난 순간부터 연기를 했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

       

       “어머님.”

       “네?”

       “서연이가 애가 참 굳세어 보이지만, 저런 애일수록 약한 면이 있어요.”

       

       미연이 보기에 수아는 아직 젊은 엄마였다.

       마흔이 넘은 미연은 그녀보다 어머니로서 선배였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런 미연의 말에, 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의 약한 부분?’

       

       그런 게 있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경험에 나오는 충고이니 새겨들었다.

       

       ‘생각해보니 배우들은 스트레스 관리도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했지.’

       

       확실히 미연의 말처럼 미리미리 검진을 받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이번 촬영도 보람찼군.’

       

       서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돈도 차곡차곡 모이고, 연기 연습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소소하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젠 조금 재밌는 부분이었다.

       

       ‘이 맛에 방송을 하는구나.’

       

       자신의 행동에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돌아오는 인터넷 방송은, 버튜버 스트리밍은 얼마나 즐거울지 벌써부터 설레었다.

       

       “이 아빠보다 더 열심히 사는구나.”

       

       집으로 돌아온 서연을 보며, 주영빈이 말했다.

       어찌 된 게 회사에서 퇴근한 영빈보다 서연이 더 늦게 집에 돌아왔다.

       

       “참 엄마한테 말을 들었냐?”

       “네?”

       “서연이에게 드라마 제의가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드라마?

       순간 서연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드, 드라마요? 제가요?”

       “듣기론 조민태 감독님의 추천이었다고 하던데…….”

       

       그런 영빈의 말에, 서연은 그제야 대충 내막을 짐작했다.

       

       ‘조방우 감독이 힘을 썼구나.’

       

       조민태의 아버지, 조방우 감독.

       나름 한국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감독 중 하나였다.

       지금은.

       

       천만 영화를 찍지 못했을 뿐, 성공한 영화는 몇이나 있었고 ‘절대 실패는 하지 않는 감독’이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딱 7년 후까지.’

       

       이후 조방우는 4년 간 다섯 작품의 영화를 맡고.

       전부 끔찍하게 말아먹게 된다.

       

       특히,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가 결정타였다.

       수백 억대 투자자금을 말 그대로 증발시켜버린 조방우 감독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돌려 말하면, 지금이 가장 힘이 있을 때니까.’

       

       CF나 찍으러 다니던 아역을 드라마 오디션에 넣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혹시, 어디 드라마인지 들으셨어요?”

       “듣기론 아마…… KMB의 드라마라고 들었는데. 아마 사극이라고 했을걸?”

       “사극……에 KMB요?”

       “어, 맞아. 서연이는 뭔가 들은 거 있니?”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영빈의 태도에 서연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이 시기에 오디션, 거기에 KMB에 사극이라면.’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태양을 숨긴 달.’

       

       가상 사극으로 최고 시청률 40프로를 넘긴 드라마다.

       사실 멜로 드라마에 가까운 사극이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올해 예술대상은 죄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이 쓸어갔을 정도다.

       

       ‘거기에, 내가요?’

       

       낙하산도 정도가 있지.

       KMB의 드라마 오디션이면 제대로 연기를 배운 아카데미 소속 아역이나, 각 엔터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죄다 지원할 거다.

       

       저렴한 광고 CF를 꼴랑 두 개 찍은 아역은 지원조차 못한다.

       

       “뭐, 너무 기대는 할 필요 없어. 아마 출연해도 단역 정도 아니겠니?”

       “그으렇겠죠?”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사실 이런 대형 사극에는 엑스트라로 얼굴이라도 비치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서연은 알고 있었다.

       엑스트라 배우면, 굳이 ‘오디션’까지 해서 뽑을 필요가 없다는걸.

       

       ‘아마, 조민태 감독이 말한 오디션은…….’

       

       연화공주, 이혜월.

       

       즉, 태양을 숨긴 달의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일 것이다.

       

       ***

       

       “야, 너. 무슨 생각해.”

       

       고개를 들면 이지연이 뚱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치원 입학식 날부터 졸졸 쫓아다니더니, 이제는 거의 나를 감시하는 수준이었다.

       

       “어린 너와 달리 나는 고민할 게 많아.”

       “우리 동갑인데, 너 바보니?”

       

       나는 짧게 혀를 찼다.

       감정적인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지연은 성격도 있고 매우 똘똘했다.

       당장 말하는 것만 봐도 이게 여섯 살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기분이 이런 건가.’

       

       아무튼 이지연은 귀찮다.

       귀여운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애가 거머리 같은 기질이 있어서 떼어놓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번 찍은 놈은 죽을 때까지 패는 스타일이었다.

       그놈의 두유 광고가 뭐라고, 광고 하나 찍을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조잘거리며 떠들었다.

       

       “그보다 주서연, 너 이거나 좀 따봐.”

       

       이지연은 내게 두 개의 유리병을 내밀었다.

       오렌지 주스 병이다.

       아마 혼자 낑낑거리며 따다가 나를 찾은 모양이다.

       

       “왜 두 개야?”

       “하나는 네 거잖아. 보면 몰라?”

       

       음, 뭐 이지연은 성가시지만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차에 오렌지 주스를 가져오다니, 이 기특한 녀석.

       

       “자.”

       

       퐁, 소리와 함께 오렌지 병이 간단히 열렸다.

       이지연은 그걸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뭔데 힘이 그렇게 쎄? 이거 선생님도 못 땄는데.”

       “그래?”

       

       이미 선생님에게도 시켜보고 온 건가.

       보통은 친구가 안 되면 선생님을 찾지 않나?

       

       ‘힘이 쎈가?’

       

       생각해보면 힘의 기준을 남성일 때.

       그것도 성인 남성일 때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이상한 걸 못 느꼈다.

       전생에 내가 했던 일들을, 서연의 몸으로 했을 때 못 했던 게 있나?

       

       키가 작거나, 팔다리가 짧아서 생긴 문제 말고.

       

       ‘그러네. 왜 이렇게 쎄대.’

       

       6살 아이의 근력이 전생의 내 근력과 같다고?

       이대로 성장하면 슈퍼 솔저라도 되는 거 아냐?

       

       눈도 가끔 빨개지고, 아주 두려울 정도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나 때리면 안 된다?”

       “내가 널 왜 때리니.”

       

       이지연은 그런 내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끔 자신이 틱틱 거리니 홧김에 한 대 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싸움이란, 의외로 쉽게 일어나는 법이니.

       

       “너, 그거 알아?”

       

       잠시 후,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신 지연은 입을 열었다.

       

       “뭐가.”

       “이번에 KMB에서 오디션 한데. 나는 못나가는데, 소속사 언니 오빠들이 나가.”

       

       언니 오빠?

       

       ‘남자 주인공 아역 오디션도 같이 보나 보네.’

       

       예상치 못한 정보였다.

       

       “주서연.”

       “응.”

       “너 거기 나가?”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되나.

       

       “나가.”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내가 뽑히는 날엔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물론 절대 뽑힐 리가 없다는 건 안다.

       거기에 출연하는 아역들이 얼마나 쟁쟁한 줄 알면, 내가 뽑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흐응, 그래?”

       

       이지연의 성격상 빼액 소리라도 지르나 싶었는데, 의외로 무난한 반응이었다.

       

       “뭐야, 그게 다야?”

       “그럼. 뭘 어떡해. 나는 못 나가는데.”

       

       이지연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찌릿 노려봤다.

       

       “두고 봐. 나중엔 나도 금방 그런 거 나갈 거야. 이번에도 언니 오빠들 때문에 못 나간 것뿐이거든?”

       

       애가 참 당차긴 하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뜻이 높다고 해야 할지.

       생각해보면 얘는 전생에 어떻게 됐지?

       

       ‘두유 광고 이후론 애초에 딱히 뭔가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이지연은 이미 광고를 하나 더 찍었다.

       내게는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아이였다.

       

       “나도 다음에 드라마 주인공 할 거야.”

       “그러세요.”

       

       나는 지연이의 말에 답한 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마 나로선 굉장히 드문 웃음이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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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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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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