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

       아나이스가 경악한 건 물론이고, 피에르도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새까만 정장에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와 눈부신 금발.

       달빛에 비친 그의 외모는 기묘한 마력을 뿜어댔다.

       긴박한 상황에 맞지 않는 여유로운 미소는 그러한 분위기에 힘을 더해주었다.

         

       아나이스는 마치 그에게 사로잡힌 것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산소결핍의 고통 때문에 환상을 보는 것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그녀.

         

       그러나 지금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남자가 저기에 있어.

       네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 남자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울지 마.

       벌써 울지 마.

       아무것도 증명된 게 없어.

         

       기대하지마.

       사람에게 기대하지마.

         

       봤잖아?

       가장 믿었던 사람이 어떻게 돌변했는지.

         

       삼촌이야.

       널 친딸처럼 아끼던 그 피에르 삼촌.

         

       그런 삼촌이 널 죽이려고 했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왜 나를 배신한 거예요, 삼촌?

       왜 날 죽이려 하는 거예요?

         

       혹시 처음부터 모든 게 가짜였나요.

       애초에 가족이라 생각한 적도 없었나요.

         

       저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를 이용할 생각뿐이지.

         

       봐!

       웃고 있잖아.

         

       네가 이렇게 아픈데 저 사람은 웃고 있어.

       네가 고통받는 게 좋은 거야.

         

       마구 뒤엉킨 상념 속에서 아나이스의 의식은 몽롱해져 갔다.

         

       “다, 당신은 누구길래……윽!”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피에르는 탁자에 걸려서는 발을 멈추었다.

         

       ‘내가 기백에서 밀리다니?’

         

       피에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저 남자에게서 무언가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남자는 아나이스의 상태를 한 번 훑고는 피에르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아까 잠시 뵀었지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떠돌이 곡예단의 단장이죠.”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과하게 활기찬 목소리.

       마치 밤 산책을 하다 정원에서 마주친 것 같다.

         

       한순간 긴장감이 확 식으면서, 피에르는 몸에서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뭐지? 이 상황은? 뭘 알고 온 건가?

       잠깐 떠돌이 곡예단이라면…….

         

       “낮에 감옥에 갇혔다는 그……?”

       “아, 탈옥했지요.”

         

       원더스타인은 뭘 그럴 것 묻느냐는 사람처럼 뻔뻔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피에르는 더 놀랐다.

         

       “당신이 자작님의 목숨을 노린다는 정보가 있어서요. 기계를 망가뜨려 사고사로 위장하려 했지요?”

         

       태연하게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는 원더스타인.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더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에르는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황이 위협적으로 변한 것이 그를 오히려 냉정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오면서 몸에 밴 반사신경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재빨리 상대의 요모조모를 살폈다.

         

       떠돌이 곡예단 마술사.

         

       아나이스와의 언쟁도 다 연기였을까?

         

       아니, 그건 아니다.

       그녀도 지금 놀란 눈치다.

       무엇보다 집사나 다른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점? 천리안? 예지?

         

       마술사라면 그럴 수 있었다.

       예술가나 곡예사 중에는 ‘인스피라’니 뭐니 이상한 힘을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니까.

         

       그러나 그래 봤자다.

       상황은 내 편이다.

         

       “그렇군.”

       

       피에르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틀었다.

         

       손이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상대가 못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랬어.”

         

       주머니 속에는 얼마 전에 산 무기가 있었다.

       묵직한 금속이 손에 잡혔다.

         

       델로스 공화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리볼버, 콜바이퍼 S32.

         

       만일을 대비해서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총이었다.

       갑옷을 두른 기사나, 보호막을 펼친 마법사를 상대로 피해를 주긴 힘든 물건이다.

       그러나 기습용으로는 충분했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마술사의 조수일까?

       10대 중반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소녀가 아나이스에게 다가갔다.

         

       딸과 비슷한 나이의 소녀.

         

       아주 잠시지만 망설였다.

       그러나 그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피에르는 리볼버를 뽑아 들고 소리쳤다.

         

       “경비벼어어엉!”

         

       어떻게든 아나이스를 죽이기만 하면 됐다.

         

       사인은 사고사에서 강도살인으로 바뀌겠지만!

         

       그렇다. 이 뻔뻔한 사기꾼들은 자작을 속이려고 했던 것까지 모자라 탈옥을 했다.

       그리고 자작의 방에 침입하여, 자작을 위협하고 금품도 훔치려고 했다.

       그 와중에 조카를 보호하려던 자신을 공격해 총을 빼앗고는 조카를 죽인 것이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올 병사들.

       다급히 그들을 부르는 외침은 자신의 무죄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다.

         

       급조했지만 충분히 먹히는 시나리오였다.

         

       원래 계획보다 나은 면도 있었다.

       암흑가의 기술자들은 절대 흔적이 남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피에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뒷공작을 하겠지만, 만약에라도, 아나이스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님이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무 문제 없었다.

       모든 죄는 이들이 뒤집어써 줄 것이다.

         

       아, 물론 저들이 주장할 수 있겠지.

       내가 아나이스를 죽이려 했다고.

         

       하지만 명백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탈옥한 떠돌이 마술사와 전대 자작의 의동생.

       이 저택 사람들이 둘 중 어느 쪽의 증언을 더 믿어줄까?

         

       피에르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탕탕탕-!

         

       피에르는 한 방 쏘고 상대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사격 훈련을 도와준 교관도 말했다.

         

       항상 2방 쏘라고.

         

       그는 좀 더 신중했다.

       장전된 6발의 탄환을 모두 발사했다.

         

       이 총은 일단 쏜 다음 저 마술사의 발치에 던져야 했다.

       적어도 자신이 쥐고 있으면 안 됐다.

         

       그런데 혹시라도 놈이 그걸로 자신을 쏘기라도 하면 안 될 것 아닌가?

       총은 비워둬야 했다.

       

       뜻밖의 상황에서도 재빠르게 대책을 세우고 행동에 옮기는 그의 기민함은 상인 특유의 노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6발의 탄환을 모두 발사하는 판단은 상인 특유의 꼼꼼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한 가지 예측 못 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낱 떠돌이 마술사가……

         

       퍼벅- 퍼버벅-

         

       “후후, 이거 좀 아프군요…….”

         

       설마 아나이스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지리라고는……!!

         

       “……괜찮으십니까?”

         

       총알을 여섯 방이나 맞고서도 미소짓는 사내.

         

       아나이스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저 거리의 협잡꾼으로 생각했던 남자가……

       능글맞은 사기꾼으로 생각했던 남자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총알을 모두 맨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아……. 피가…….’

         

       남자의 셔츠 곳곳에 붉은 피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터져 나온 피와 부서진 살점이 그의 양복과 바닥을 적셨다.

         

       무려 6발의 총알이다.

       설사 기사라 할지라도 맨몸으로 맞고 멀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방어구도 갖추지 않은 채로 뛰어들었다.

       망설임 없이.

         

       왜?

         

       나는 그에게 결코 호감 살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빈정대고, 무시하고, 변태라고 매도하고, 감옥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는 몸을 던져 자신을 구했다.

         

       총알은 빠르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에게 점수를 따보려는 얄팍한 의도 따위가 개입될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의도가 있고 있다 해도 누가 총알을 맨몸으로 대신 맞겠는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자작님…….”

         

       그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하게 흔들리면서도 아나이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행이군요. 무사하셔서…….”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것이 억지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창백해지는 안색과 붉게 물들어가는 셔츠 자락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었다.

         

       바보다.

       남을 위해 목숨을 내버리는 행동도……

       남을 위해 자신의 아픔을 참고 미소짓는 행동도……

         

       바보 같았다.

         

       바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버지가 누누이 말씀하셨잖아.

       상업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나온 거라고.

       세상이 이타심이 가득했다면, 상업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야.

         

       그래?

       그럼 그거네.

       저 사람에게 있어서 네가 남이 아닌 거지.

         

       ……뭐?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를 봐.

       나를 보라고!

       몸에는 금속관이 꽂혀 있고,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니고, 골골거리는 몸에……

       누가 나 같은 여자를 진심으로…….

         

       아하하!

         

       왜 웃는데?

         

       네 말이 맞아.

       별로지.

       그런 여자랑 사랑을 나눌 수 없지.

         

       ……맞아.

         

       그런데 말이야.

       그 남자가 너에게 뭘 해주려고 했더라?

         

       ……아.

       아아.

         

       아나이스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으아악!”

       “잘했어, 찍순아!”

         

       피에르가 어디서 튀어나온 쥐에게 손가락을 물려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아나이스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삼촌조차 지금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미소, 그의 목소리, 그의 떨림, 그의 피 냄새.

         

       그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왜 그러셨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거의 멈춰가는 호흡.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웃음이 나왔다.

         

       그녀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기뻐서 웃음이 나왔다.

         

       비록 폐가 작동을 멈추면서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하.’

         

       이건 분명 웃음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적어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자의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아하하.’

         

       너무 기뻐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도 사랑을……누군가로부터……진심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평생 그럴 일이 없다고 여겼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가족으로서의 사랑도 부정당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에 와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사랑은 다가온 것이다.

         

       ‘알고 있었어……. 나 사실 알고 있었어…….’

         

       왜 그를 본 순간부터 신경이 곤두섰는지.

         

       왜 그의 말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왜 그가 자신의 세계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 조각과도 같은 얼굴에,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그 즐거운 미소에.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렇게나 독한 말을 퍼부었던 것도,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자신이 바라던 것과 다른 것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왜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그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기쁨도 느꼈다.

         

       두 감정이 뒤섞이며 눈물로 맺혀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마워요…….’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이제 하나밖에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를 바라보고 미소 짓는 자신을……

       너무 못된 여자라도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마음이 통한 것일까?

         

       그 역시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허락 맡을 시간도 없군요.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어?

       그가 무슨 소릴…….

         

       “자작님! 괜찮으십니까!”

         

       집사와 병사들이 방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원더스타인은…….

         

       자작의 옷을 찢고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각 ON !!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