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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시엔.”

        “으, 응?”

        “그래서 너도 그 부관리자에 지원하게?”

        “나!? 다, 당연하지!”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던 시엔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슬쩍 클락을 곁눈질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위치노트에 시선을 고정한 그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주변의 시선에 무관심한 것도 그대로였다.

       

        5년 전, 두 사람이 입탑한 해인 170기는 흔히 말하는 황금 기수였다.

        제국 각지의 유수한 귀족들과 마도 명가들의 자제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와중 평민 출신은 단둘 뿐이었다.

        시엔은 정보부 소속의 마법사로 일하던 먼 친척의 추천으로 마탑에 들어왔다.

        이렇게 극명하게 서로의 길이 나뉠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당시엔 신분이 맞는 그에게 정신적으로 꽤나 의지했었다.

       

        “지금 정보부에서 나만큼 갤러리에 익숙한 사람은 없으니까! 젊은 사람들 문화라서 상사들은 잘 모르거든.”

        “정말?”

        “응. 충분히 뽑힐 자신 있어. 그, 글도 생각보다 진짜 많이 썼거든?”

        “어디 봐봐.”

       

        그래서였을까. 그가 흥미를 보이자 다소 들뜬 마음으로 위치노트를 넘겼다.

        아주 잠깐이지만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는다. 수습생 시절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리감.

        어쩐지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

        ID : 수련이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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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13

       

        작성 게시글 목록 : 

        [오늘도 운동 완료!]

        [대련에서 창보다 검이 무조건 우월한 이유]

        [기숙사 사감은 안 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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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랑 카페 가다가 예쁜 고양이 만났어요!]

       

        (고양이 안은 채 찍은 사진)

       

        귀엽지 않나요? 손도 할 줄 알아요!

       

        [추천 28 / 비추천 8]

       

        — 아 씨발 인싸냄새!

        — 어디서 초면에 존댓말이야 뒤질려고

        — 완장!!! 완장 어딨어!!!!

        — 털바퀴 치워라

        — 그거 다 세균 덩어린데 만지고 손은 씻음?

        — 다들 왤캐 화났슴 ㅋㅋㅋㅋ

        — 여기 이런 거 올리는 데 아니에요…….

        — ㅗㅜㅑㅗㅜㅑ

        — 누나의 고양이가 되고 싶다…….

        — 사진 백 장만 더 찍어주세요! 제발요 부탁드려요!!

        — 와 게시글 하나에 댓글이 몇 개냐 ㅋㅋㅋㅋ

         ㄴ 욕 박는거랑 반대로 추천은 계속 올라감 ㅋㅋ

         ㄴ 그야…… 예쁘니까

         ㄴ 하관만 봐도 빼박임

        ====

       

        “……넌 갤질 하지 마라.”

        “왜?”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사진도 올리지 말고.”

        “얼굴은 안 올렸거든? 그리고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전지(全知)를 발판삼아 전능(全能)을 추구한다.

        재능 하나로 정보부의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자신이 수습생 따위의 조언에 귀 기울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위치노트를 빼앗은 시엔은 샐쭉한 표정으로 클락을 노려보며 말했다.

       

        “고작 1층에서 몇 년째 빌빌대는 너랑 다르게 난 마탑에 들어와서 지금껏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어.”

        “실패하면?”

        “뭐?”

       

        그러나 정작 검은 앞머리 너머로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시엔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이번에 내가 다음 층으로 올라가고, 네가 부관리자가 못 되면 어쩔 거냐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수습생 시절.

        매일 옆자리에서 위치노트만 보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나 대련을 신청했을 때 처음 마주쳤던 눈빛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

       

        12시 정각에 시작된 원탁회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사감실로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즉시 침대에 몸을 날렸다.

       

        평소였다면 시간을 많이 빼앗겨 언짢았을 테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갤러리에 잠입하려는 정보부의 계획과 더불어 정전 사태에 대한 치안부의 대응까지 확인했으니까.

        오랜만에 시엔을 만나 그녀와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를 한 것은 덤이었다.

       

        ‘마, 만일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네가 날 원하는 만큼 두들겨 패던가……!’

        ‘내가 널 왜 때려. 그냥 진 쪽이 아무거나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해.’

        ‘진짜……? 뭐든지!? 저, 절대로 무르기 없기다?’

        ‘그러든가.’

       

        내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원칙은 기본적으로 방임주의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으며 이 작은 공간에 애정을 가질 자격이 주어진다.

        가끔 무의미한 도배를 하거나 눈살 찌푸려지는 게시물을 올리는 녀석들은 차단하지만 어지간하면 영구 벤 까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엔은 태생적으로 현재 갤러리의 문화와 맞지 않는 성향이다.

        인싸인데다 인기도 많고 현실에서 모두에게 사랑 받는다는 뜻이다. 

        갤러리에 안 어울릴 뿐더러 역으로 그녀에게 나쁜 영향이 갈 테니 기왕이면 그만두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내기를 제안한 것이었다.

       

        비록 5년째 1층에 묶여 있지만 탑을 올라갈 생각은 줄곧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지부진했다만 얼마 전 나를 조교로 임명한 비나 덕에 방법을 찾아냈다.

        보이지 않는 빛, 아니 다크모드.

        갤러리에 새롭게 추가된 기능으로 1층 전체에 불을 꺼 버리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비석에 이름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마족의 침공이라 생각한다면 분명 대광장에도 대피령이 내려질 테니까.’

       

        허나 이렇게 되면 진짜로 부관리자를 뽑긴 해야했다.

        기숙사 사감과 강의 조교를 하는 와중에 탑을 오르며 갤러리까지 관리하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오늘은 중간에 시엔의 방해를 받느라 잠시 위치노트를 껐었는데, 그 사이 나를 찾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

        [최근에 주딱 갤 관리 좀 대충하는 거 같지 않음?]

       

        예전엔 혐짤이나 야짤 같은 거 올라오면 1초만에 짤렸는데 요즘은 걍 방치하네

        이거 직무유기거든요

       

        — 좀 텀이 길긴 해

        — 학회 때문에 바쁜가 보지

        — 시작의 층에 정전 났다던데 그거 때문에 내려왔을 수도?

        — 꼬우면…… 아시죠?

        ====

        ====

        [호출버튼 ㄱ?]

       

        색깔이랑 냄새, 위험도 별로 13개 정도 준비되어 있음

       

        — 아 씨발 또야?

        — 냄새는 뭔데 ㅅㅂ

        — 갤러리에 대체 언제부터 그런 버튼이 있었냐고 ㅋㅋㅋㅋ

        — 드가자~

        ====

        ====

        [응 아니야 나는 우리 주딱 믿어]

       

        주딱은 다크모드 만들어줬어 주딱은 차단도 글삭도 열심히 해줬어 주딱은 하루 종일 우리 곁에 있어줬어 주딱은 사실 인싸라 급한 약속 같은 거 없었어

       

        주딱은 중요한 회의 같은 거 안 갔어 주딱 옆자리엔 미모의 동기 같은 거 없었어 의도적으로 옆에 앉은 것도 아니었어과거에몰래짝사랑했던대상도아니었어지금도내기에서이기면같이파티짜서탑올라가자고말할생각도없어어어ㅓㅓㅓㅓ

       

        — 어어 얘 흑화한다

        — 점성학파인가 보네 이 새끼들은 매번 마법 쓰다 고장나냐

         ㄴ 주딱에 대한 정보는 천칭에 안 올리는 게 좋음 잘못하면 마력회로 타버림

         ㄴ ㄹㅇ? 무섭네

        ====

       

        확실히 조치가 필요하겠군.

        대체 다른 파딱들은 뭐 하고 있던 거야.

       

        나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침대에 누운 채 그대로 위치노트를 켰다.

        그리고 ‘관리자 전용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관리자

        [가능하면 올해 인원 확충을 따로 진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작년에도 별문제가 없었던 만큼 1년만 더 고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관리자들은 각자 접속 가능한 시간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

       

        늦은 새벽임에도 곧바로 댓글이 다다닥 달렸다.

        그러나 기대에 부풀어 내용을 확인한 나는 이내 혀를 차며 끌끌거렸다.

       

        ====

        — 벽력뇌제霹靂雷帝 : 랜덤

        — 당신께 축복을 : 랜덤이요~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

        ====

       

        셋 중 둘이나 정해진 시간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건 사실상 갤러리를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처럼 서류전형, 인적성검사, 면접까지 봐 가며 공들여 뽑은 부품들이었는데 이렇게나 빠르게 망가지다니. 

        심히 실망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

        — 관리자 :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갤러리에 접속할 시간 자체를 확보 못 하는 게 말이 됨?

        — 벽력뇌제霹靂雷帝 : 미안하다. 117층 공략에 애를 먹고 있어서 도저히 여유가 없을 것 같다

        — 당신께 축복을 : 저도 죄송해요 ㅠ.ㅠ 교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태양의 적 때문에 교국이 비상이어서 제가 꼭 필요하대요 ( ˃ ⌑ ˂ഃ )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

        ====

       

        얼씨구, 누가 날고 기는 악귀들 아니랄까 봐 태연하게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까지.

        나도 입으로는 팔현자 중 최고참이고 해주학파가 마탑 제일의 인기 학파이며 그 창시자는 175cm가 넘는 글래머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나 현실은 정 반대가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남은 한 녀석과 어떻게든 갤러리를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컨셉이 지나치지만 지금껏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으니까.

       

        ====

        — 관리자 : 부엉아 그냥 우리끼리 잘해보자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

        — 관리자 : 애초에 저런 애들 믿는 게 아니었어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

        — 관리자 : 너랑 나랑 딱 12시간씩 맡아서 관리하면 되겠다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부엉

        — 관리자 : 솔직히 나도 밤이 더 여유롭긴 한데 네가 야행성인 것 같으니까 낮 시간을 맡을게. 너도 자는 것보다 밤새 갤질하는 게 더 좋지?

        — 부엉부엉부엉이 : 랜덤

        ====

       

        “허.”

       

        컨셉은 깨졌고, 녀석은 자유를 찾아 날아갔다.

        이제 내게 남은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기숙사 사감 일을 줄일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내 공백을 메꿔줄 믿을 만한 새로운 파딱을 모집하거나.

        혹은…….

       

        똑똑똑!!

       

        ‘수도관이 얼었어요!! 관리인! 관리인 지금 자리에 있나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하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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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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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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