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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아카데미생들의 굼뜬 동작과 절반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장애물들, 그리고 입으로 쏘는 빈 활. 

       

       누군가 열정적으로 빨리 가려고 하면 조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제지한다. 다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통제탑 위에서 그것들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확실히 평화시대는 평화시대구나. 마왕군이 활개치던 10년 전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륙 전체를 뒤흔들던 원흉이 사라졌고 4년간의 전쟁에서 너무도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아직까지는’ 서로 해묵은 감정을 미뤄두고 전후복구에 힘쓰고 있다.

       

       이런 상황인 데다 교장마저 안전제일 보신주의에 찌들어 있으니 뭐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있나.

       

       “여기 아카데미에도 마법사가 있지?”

       “있기는 합니다만…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마법사를 불러 와. 지금부터 여기는 내가 직접 통제한다.”

       

       훈련장에 도착한 마법사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지시하자 종합전투훈련교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건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 이 수준으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아? 다 개죽음이야.”

       “하지만 이미 교장님께서 직접 안전성 평가를 통해….”

       “그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런 방식으로 훈련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누가 보면 열의와 사명감에 가득한 수석교수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내 모든 관심사는 오직 키르린 교장이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저 따위 비루먹은 수준의 애들을 그대로 실전에 내보내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을 것. 칼을 갈고 있던 2황녀는 그것을 빌미로 키르린을 쫓아내고 나를 거기 앉히려 들 것이다. 내가 안 된다면 라이너스라도 다시 끌고 올 것이고.

       

       나와 라이너스가 모두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키르린이 계속 교장을 해야만 하고 키르린이 계속 교장을 하려면 아카데미생들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려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키르린은 행여나 안전사고가 터져서 모가지 날아갈 게 무서워서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는 게 문제. 사실은 그게 진짜 자기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짓인 줄도 모르고. 

       

       그러니 수석교수인 내가 나서야지.

       

       “그러니까, 아카데미생들의 후미에 공격마법을 아슬아슬하게 쏘라는 그 말씀이시죠?”

       

       내 지시를 들은 마법사가 눈을 빛내며 입술을 싸악 핥았다. 지금 아카데미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이렇다 할 마법을 쓴 적이 없어 간만에 잔뜩 달아오른 모양이다.

       

       그렇게 마법사가 공격마법을 시전해 첫 번째 폭발이 터졌을 때 슬렁슬렁 뛰던 아카데미생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서 뒤를 돌아봤다.

       

       “뭐하고 있어?! 거기 그대로 서있으면 통구이가 된다고!”

       

       두 번째 폭발에 몇 명이 넘어지자 그제서야 아카데미생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공격마법이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펑펑 터지는 훈련장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좀 모양새가 나오네. 이 정도는 되어야 제국 간첩학교라 할 수 있지.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때 훈련장 입구 쪽에서 키르린 교장이 비명을 지르며 이쪽으로 맹렬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 교장님. 오셨습니까.”    “지금 뭐하는 거야?!”

       

       다크엘프답게 단 한번의 도약으로 통제탑 위까지 튀어오른 키르린 교장이 내 멱살을 움켜 잡으려고 했다.

       

       슬쩍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하자 교장은 다시 한번 내게 달려 들었고 그것마저 피하자 교장은 결국 내 멱살을 흔드는 것을 포기하고 소리쳤다.

       

       “애들 죽이려고 작정했어!?”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건데요.”

       “공격마법을 쏘는 게 죽이는 게 아니면 뭔데!!”

       “지금 상태로 애들 졸업하면 교장님 모가지 날아가요.”

       

       흥분해서 막 소매 속에서 비수를 뽑아들던 키르린 교장의 손이 멈췄다.

       

       “뭐…? 내 모가지가…?”

       “아카데미에서 교육한 애들이 엉망이면 그게 누구 탓인가요? 교장 탓이죠?”

       “그, 그건….”

       “지금 황성에서 당신 해고할 건수만 찾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을 테고요?”

       “읏….”

       

       역시 알고 있는지 키르린은 비수를 거두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런 교장에게 웃으며 손가락을 펴 보였다.

       

       “사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교육훈련을 대폭 축소한다. 그렇게 되어 아카데미생의 수준이 떨어진다. 그런 신입요원을 받은 여러 부서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2황녀님께서 즐거워 하신다. 교장님은 숲으로 돌아간다.”

       “아, 안 돼…!”

       “자기 자리 보전하려고 하는 행동들이 결국 스스로의 목을 옥죄는 올가미가 되는 겁니다. 이해하셨어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교장은 두려운 눈으로 마법 포연이 터지고 있는 훈련장을 쳐다봤다.

       

       마왕군에게 붙었다가 다시 한번 변절한 다크엘프 일족. 그 일족을 대표해 문명사회에 나와 있으니 부담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겠나.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든 저러든 이미 아카데미의 실상을 목격한 이상 내 최신목표는 저 교장이 황성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키르린은 자리 보전해서 좋고 황녀는 질 좋은 졸업생들 받아서 좋고 라이너스는 맘 놓고 육아해서 좋고 나는 교장으로 차출될 없으니 좋고 모든 게 최고야.

       

       

       # # # # #

       

       

       하루종일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 제국 특수임무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통상의 아카데미들이 그러하듯 여러 과목들이 혼재된 고등이론교육. 즉 이론학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깐 내가 참관했던 것 같은 전투학과. 침투, 암살, 납치, 테러, 게릴라전 등등.

       

       여기서 이론학과의 경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쪽에도 나와 똑같은 위치의 이론수석교수가 있는 데다 교수들은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실내에서 하다 보니 키르린 교장도 딱히 개입하지 않고 있고.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소장의 보신주의로 발생한 실전감각 제로의 하나마나한 훈련들. 즉 내가 지휘해야 하는 전투학과의 교육훈련.

       

       대부분의 현장실습은 이론수업으로 대체되고 있고 기껏 야외에서 하더라도 아주 조금의 부상 위험이라도 있는 것들은 모조리 축소 및 제외. 거의 소풍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 내가 주로 관여해야 할 분야도 이쪽일 것 같은데. 어차피 이론교육 쪽은 아는 것이 없고 황성과 라이너스가 나를 여기 보낸 것도 다 실전경험을 활용하라는 의도였으니까.

       

       그럼 먼저 그 이상한 ‘안전성 평가’인가 뭔가하는 것부터 뜯어 고치자. 그것외에도 이것저것 전투학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었다.

       

       보고서 결재를 받으려고 교장실로 가자 행정실장이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젓는다.

       

       “관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전투수석교수님.”

       “뭐가요?”

       “아마 전투학과의 과목들을 실전적으로 하시겠다는 내용이지요? 그거 하다가 전임교수님이 도망가신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행정실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투학과에서 하려는 건 뭐든 반려하시니 제대로 일이 될 리가 있나요. 뭐, 정 들어가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집무실에 들어가 키르린을 상대로 보고서를 설명했다. 설명을 듣는 내내 키르린의 얼굴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건 안 돼! 그러다 정말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거지?”

       “문제 없습니다. 여기에 의무소가 있지 않나요?”

       “있기는 한데….”

       “그럼 됐습니다. 안전성 평가 항목은 절반으로 줄이고 애들 실전적으로 굴리도록 하죠.”

       “그런데 정말로 다치면 곤란하다고.”

       “안 곤란하다니까요. 아니, 잠깐만….”

       

       키르린의 눈빛을 본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아카데미생 중에 귀족가 자제라거나 그런 애들이 있는 겁니까?”

       

       키르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그대로 갑니다. 끌려온 것도 아니고 무슨.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고 하세요.”

       “그런 말은 절대 못 해!”

       “괜찮다니까요. 귀족이고 나발이고 여기서는 똑같은 아카데미생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해 하는 키르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만약에 교육 빡세게 했다고 외부에서 지랄하면 다 제가 했다고 하십시오. 이거로 교장님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에?”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에…?”

       

       키르린이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검붉히며 화를 냈다.

       

       “누가 들으면 그게 무서워서 소극적으로 했다고 오해할 거 아니야!”

       “그게 사실이잖습니까? 새삼스럽게 무슨.”

       “그럼 여기 놔두고 갈 테니까 결재 빨리 해주세요. 안 해주면 제가 직접 교장이 되어 결재….”

       “꺼져! 당장 놓고 꺼져버려!”

       

       낄낄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서류들 좀 치우면서 하세요. 이게 다 뭡니까?”

       

       책상에 잔뜩 쌓인 것들을 가리키자 키르린이 피로감 짙은 한숨을 쉬었다.

       

       “치워도 계속 생기는 걸 어떡하라고….”

       “하하.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수고하세요!”

       

       

       # # # # #

       

       

       “이런 미친 인간!”

       

       키르린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던졌다. 디안이 집무실을 나선 지 한참이 지났지만 키르린은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디안이 올린 전투학과 개선에 관한 보고서의 내용들이 거슬렸기 때문이 아니다. 아까 디안이 한 말 때문이었다.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으아아악!!”

       

       “왜 그러세요, 교장님?!”

       

       키르린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자 문이 열리며 행정실장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가서 일해.”

       

       행정실장이 나가자 키르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흑발을 흩날렸다.

       

       그러나 봄바람은 키르린의 마음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날뛰게 만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키르린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써 거친 말을 내뱉으며 소매 속에서 비수를 뽑아 들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비수의 날을 만지자 비로소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

       

       키르린은 평생을 다크엘프들의 숲에서 살아왔다.

       

       다크엘프는 다른 종족에 비해 차갑고 냉소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랑의 밀어나 따뜻한 스킨쉽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될 행위들.

       

       키르린 역시 다크엘프였고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정감 어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에게서는 매번 일족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압박까지.

       

       그런 키르린에게 디안의 지켜주겠다는 말은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건 마치….

       

       “정신 차려, 병신아!”

       

       비수를 불끈 쥔 키르린이 소리쳤다.

       

       아까의 그 발언은 아무 사심도 없는, 순전히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뜻의 상투적인 표현이잖아. 멍청하게 들뜨지 말라고!

       

       자신의 볼을 사정없이 때린 키르린은 성큼성큼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인상을 쓰며 볼을 감쌌다.

       

       “아… 아프네….”

       

       그러며 디안이 올린 보고서의 결재란에 사인을 휘갈겼다.

       

       마치 사형동의서처럼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 디안이라는 인간에게는 뭔가가 있다.

       

       어쩌면 이 인간이 나를 살려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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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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