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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이틀 전 이세린은 기묘한 느낌에 자다가 눈을 떴다. 그 느낌은 온몸의 솜털이 이질적인 무언가를 감지하고 솟구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본능과 관련된 기관이 위협을 감지하고 깨어난 것도 같았으며, 방문을 닫고 잤음에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산들바람에 느끼는 기묘한 위화감과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때 이세린은 눈을 번쩍 뜨며 침대에서 내려왔고, 악마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 뭔가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

         

       붉은 낙타의 형상을 한 악마는 그대로 그녀를 태우고 소리 없이 움직였다. 사막의 모래를 사뿐히 밟는 것처럼 악마의 발굽은 땅에 푹푹 박히면서도 그 어떤 흔적도, 소리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도달한 곳은….

         

       [ 이곳은 벌레를 그렇게 좋아하는 네 오빠가 머무는 방이 아니더냐? ]

       ‘그렇게 말하지 마…. 이상하잖아….’

         

       그녀의 오빠이자, 혈연이 없음에도 특별한 사정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으로 지내는 기이한 관계의 남자. 박진성의 방문 앞이었다.

         

       [ 그렇다면 어찌 말해야 할까. 네 언니처럼 말해야 하느냐? 네 언니라면 그래. 비혈연 호적리스 동거메이트, 정도로 표현했을 것 같기는 하구나. ]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하잖아….’

         

       악마와 이세린은 하나도 긴장하지 않은 채 문 앞에서 서로 투덕거렸다. 낙타는 은발굽을 바닥 면에 깊이 박은 채로 귀까지 찢어져라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이세린을 놀려댔고, 이세린은 그 짓궂은 장난에 슬쩍 눈을 흘기면서도 악마의 말을 다 받아주었다.

         

       [ 하하하, 네 언니가 했던 말을 그대로 했는데 나에게만 투정이구나. ]

       ‘언니 아니야. 동생이야….’

       [ 먼저 세상에 발을 디뎠으니 언니가 아니더냐? ]

       ‘내가 뱃속에서 양보해서 그래. 언니의 아량으로….’

       [ 하하, 어찌 쌍둥이라는 족속들은 이리도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구나. 악마고 인간이고 쌍둥이만 되면 서로 자기가 첫째라 그러니…. 내가 아는 타천사 녀석도 자기 형보다 윗줄에 서려고 안간힘을 쓰더구나. ]

         

       낙타는 소리 없이 웃으며 발을 들어 문고리를 가리켰다.

         

       [ 자, 나의 계약자야. 과거를 투시해 기어코 태어난 선후(先後)를 알고자 했던 귀여운 나의 계약자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너에게 여기 눈앞에 비밀이 있노라. ]

       ‘구,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어….’

       [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본디 인간이 귀여운 것은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호기심에 이곳저곳 찔러보는 모습 때문이 아니더냐. 나 역시 비밀을 찾는 것이 취미이니만큼 그러한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노라. ]

       ‘으, 응. 사람은 다 비밀이 있으면 알고 싶어해…이건 정상인거야…’

         

       꿀꺽.

         

       이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그, 그래도…. 오빠 비밀을 보는 건 좀, 좀 망설여지는데….’

         

       그녀가 아무리 호기심이 넘치고 궁금한 것은 반드시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한 사이였던 진성의 방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은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가족끼리 방을 보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생판 남을 관음하는 것은 범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같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가 지나면 독립해서 만날 일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러했다.

         

       [ 그러니 지금 보아야 한다. 무슨 의식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지금 안 보고 넘어간다면….]

       ‘아, 앞으로…. 언제, 언제 볼지 모른다?’

       [ 그러하다. 앞으로 의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나중에 우연히 또 기회가 찾아온다 하여도 다른 의식일 가능성이 크고, 거기에 만약 네 오빠가 주술사로서의 실력을 확 끌어올려 누군가 훔쳐보는 것에 대해 대비를 할 수도 있지. ]

       ‘하, 하지만….’

       [ 거기에 독립하면 더 그러하다. 네 오빠가 이제 남남이 되었는데 이 저택에 와서 굳이 의식을 치르겠느냐? 필시 자기가 마련한 집에서 의식을 치를 터인데, 그것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

         

       결국, 이세린은 악마의 속삭임을 이기지 못했다.

       아니, 아예 이길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을 집어 던져버리고 호기심에 몸을 맡긴 채 문을 살짝 열었다.

         

       몸을 숨기는 악마의 권능으로 문은 아무 소리 없이 열렸고, 간신히 방 안의 풍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틈새가 벌어지자 이세린과 악마는 눈을 가져다 대고 방 안을 살펴보았다.

         

       ‘윽!’

         

       그런데 훔쳐보려고 얼굴을 가져다 댄 순간 이세린은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흘릴 뻔했다.

         

       ‘이게 무슨 냄새야?’

         

       고기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태우는 냄새 같기도 했다. 거기에 오랫동안 부패한 고기의 향기도 났고, 시큼한 향기와 하수구에서 퍼 올린 오물 같은 냄새도 났다. 그야말로 코안의 점막을 바늘과 칼로 난도질을 하는 듯한 강렬한 냄새였다.

         

       [ 허어, 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이런 냄새가 나는고? 맥각균에 취한 마녀가 끓이는 가마솥보다도 끔찍한 냄새가 나는구나. ]

       ‘내, 냄새가 너무 심해. 그런데…. 이런 냄새가 왜 밖에는 안 났지?’

       [ …흠. ]

         

       악취에 괴로워하며 코를 부여잡은 이세린은 투덜투덜 불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악마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살짝 사나워진 눈매로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은 무언가를 태웠는지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사방에 퍼져 코앞조차 살펴볼 수 없을 정도였고, 안에서 팔을 휘젓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진성이 아닐까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바닥에 놓인 촛불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방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휘젓는 팔은 촉수처럼 연기 속을 맴돌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 그림자의 뱀, 그림자의 뱀이 보이는구나. ]

         

       악마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투시의 권능을 일으켜 자신과 이세린의 눈에 씌웠다.

         

       ‘어?’

         

       그리고 투시의 권능이 사용되는 순간, 이세린은 놀라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저, 저게 다 뭐야?’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단상.

       잔뜩 썩어 악취마저 풍기지 않을까 싶은 썩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것의 위에는 부엽토가 카펫처럼 깔렸고, 그 위에는 마치 제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얼기설기 만들어진 찰흙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쩍쩍 갈라져서 당장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찰흙 그릇의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역겨움을 불러일으켰다.

         

       ‘머리…. 머리가 있어.’

         

       머리.

       온갖 생물들의 머리가 그곳에 있었다.

         

       뱀의 머리.

       생선의 머리.

       산처럼 쌓인 벌레의 머리.

       비쩍 말라 죽은 지 한참은 되어 보이는 고라니의 머리까지.

         

       온갖 머리들이 단상 위에 올라가 진성을 향해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있었다.

         

       “-보라, 생을 마감해 업에 파묻혀버린 가련한 것들아. 여기 안과 밖이 뒤집혀 자아가 한없이 무거워졌으니, 그대들이 맡고 있던 생명의 길을 따르라. 살아생전 너희의 생에 붙었던 흔적이 바로 너희가 향할 길이니, 이곳으로 와 그것을 따라 자아를 추구하라.”

         

       수많은 머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진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기(鬼氣)가 서려 있다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진성은 한 손에는 작은 원통을 쥐고 흔들었고, 반대편 손에는 검지 손톱 크기의 방울을 쥐고 흔들었다.

         

       딸-랑.

         

       [ 감염 주술(Contagios Magic)?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원시적인….]

         

       악마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딸-랑.

         

       “오라, 생명을 따라 굴속으로 오라. 안식을 취하라. 벌레는 날개가 돋지 않아도 날 수 있고, 뱀은 용이 되지 않아도 돋아나리라. 다리가 없어도 땅을 박차며 물이 없어도 허공을 헤엄칠 수 있으리라. 오라, 향의 바다를 건너 연기의 날개옷을 두르고 이곳으로 오라.”

         

       진성의 의식은 이윽고 막바지로 치달았다.

       초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단상으로 이동했고, 진짜로 선녀가 날개옷을 두르듯 찰흙 그릇에 놓인 머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머리는 누군가 손으로 쥐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으로 붕 뜨기 시작했고, 하나의 개체라도 된 것인지 동시에 고개를 원통을 향해 돌리더니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투-웅

       투—웅

         

       마치 손으로 집어 던져 원통에 공을 집어넣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수많은 머리는 원통을 채우기 시작했다. 뱀의 머리, 벌레의 머리, 뱀의 머리, 벌레의 머리, 생선의 머리….

         

       이윽고 고라니의 머리 차례가 되었을 때, 고라니의 뼛조각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벌레떼라도 되는 것처럼 맹렬히 날갯짓하며 원통을 완전히 꽉 채워버렸다.

         

       탁.

         

       원통이 저절로 뚜껑을 닫고, 원통의 표면에 눈 모양의 푸르스름한 형상이 떠오르자 진성은 미소를 지었다.

         

       파스스스….

         

       그리고 의식이 끝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방 안의 촛불이 일제히 꺼지며 연기를 뿜는 것을 멈췄고, 방 안을 가득 메웠던 연기는 진성의 코와 입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단상은 마치 여름철 강한 햇살에 얼음이 녹아내리듯 거뭇한 액체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방의 벽면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방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다.

         

       “후-우.”

         

       작은 한숨.

       만족스러운 미소.

         

       진성은 방의 중앙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 물러나자. ]

       ‘으, 응?’

       [ 주술이 끝났으니 자칫 잘못하면 들킬 수도 있을 터. ]

       ‘으응.’

       [ 흐음, 주술이라 하기에 이 반도 인간들이 하는 제사를 생각했더니 참으로 원시적인 형태였도다…. 이것을 무슨 주술이라 불러야 하는고…. 호기심이 솟는구나….]

         

       이세린과 악마는 살짝 열렸던 문을 다시 닫고 소리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나의 계약자야,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잠들어야 하노라. ]

       ‘응…. 이왕 이 시간까지 깬 거, 그냥 조금만 더 있다가 자면 안 돼?’

       [ 아니 되노라. 성장기에 제대로 잠을 안 자면 제대로 크지를 못하노라. 무릇 성장이라는 것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인간의 아름다움이 꽃핀다 할 수 있으니, 어서 잠을 청해야 할 것이다. ]

       ‘알았어….’

         

       악마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세린을 재우기 위해 닦달했고, 이세린이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그제야 눈을 떼고 창가로 향했다.

         

       [ 흐음, 참으로 기묘한 주술이었다. 이 반도의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내 고향의 것도 아니니….]

         

       낙타의 형상을 한 악마는 혀를 내밀어 코를 날름 핥으며 그 의식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그러다가 악마의 머릿속에 갑자기, 정말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연기가 뱀처럼 움직이던 그때.

       수많은 머리가 하늘을 날고 통으로 파고들던 바로 그 순간.

         

       진성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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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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