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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등까지 내려오는 탐스러운 금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눈꼬리가 치솟은 여우상의 요염한 눈매. 그 안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보는 이들의 시선을 깊숙한 곳까지 빨아들인다.

         

       별다른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음에도 이쪽을 유혹하는 것만 같아 가슴이 요동친다.

         

       일러스트로 그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일러스트가 실물을 못 따라가긴 처음이네.’

         

       그림 작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요염한 분위기며 몸짓이나 말투는 일러스트로 담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을 뿐.

         

       ‘이거 진짜 서큐버스 아냐?’

         

       살면서 이런 분위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우진도 딱 한 번밖에 겪어보지 못했다.

         

       판타지 세계에서 마주쳤던 마왕군의 간부, 서큐버스 퀸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남심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게 어쩌면 그녀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몸은 괜찮나요?”

       “어, 괜찮아.”

       “다행이에요. 정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하하, 그래?”

         

       의외였다.

         

       남궁수에게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죽음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을 텐데.

         

       ‘그래도 정은 남아있다 이건가.’

         

       백우진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지난 시간동안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헌신적이라 할만 했다.

         

       가문에서도 반쯤 포기하고, 학관에서는 면룡이라는 웃지 못할 별호로 불리고 있을 때, 땅에 처박힌 고개를 들어 올려준 건 언제나 그녀였다.

         

       ‘정신이 혼미하네.’

         

       이 몸뚱어리엔 죽은 ‘백우진’이 이승을 떠날 때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겨준 감정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다.

         

       수많은 감정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유화연.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틋함, 분노, 원망, 감사, 미안함, 의아함 등. 한 사람에게 동시에 품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시시각각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애틋했다가 지금은 괜히 화가 나려고 한다.

         

       ‘당분간은 가까이 하면 안 되겠어.’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는 건 딱 질색이다. 그것이 죽은 자의 것이라면 더더욱.

         

       ‘두 번은 안 당하지.’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기에 더더욱 겪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유화연도 자신과 멀어지려 할 테니, 감정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미안하지만 가봐야겠어.”

       “아…, 어디 가시는 길이셨나요?”

       “본관 회의실. 부관주님이 부르셔서. 얘기는 다음에 시간되면 천천히 하자고.”

       “아, 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백우진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나쳐갔다.

         

         

       * * *

         

         

       “뭐지…?”

         

       멀어져가는 백우진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의아함이 서려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대화였다.

         

       그가 최하급 임무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만남을 피해왔으니 거의 두 달 만일까.

         

       “그런데….”

         

       분명 오랜만의 대화인데, 백우진에게선 어떤 달가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화연이 바라보는 백우진은 강아지 같은 남자다. 멀리서 제 주인을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달려오듯, 그 또한 자신을 보면 어린애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달음에 달려온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한 번도 웃지 않았어.”

         

       언제나 자신을 보면 환하게 웃으며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던 그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몇 번이고 엄마, 엄마 부르며 애정을 갈구하듯, 말할 때마다 몇 번이나 붙이던 ‘연 매’라는 호칭도.

         

       “한 번도 쓰지 않았어….”

         

       혼란스러웠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람이 바뀐 걸까 아니면, 혹시 남궁수와 자신의 일을 알게 된 건 아닐까.

         

       온갖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

         

       그러다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나도 참….”

         

       멀어지기를 바랐던 쪽은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그가 자신을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연 매라고 불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잡해진 감정을 느끼며 쓰게 웃었다.

         

       “이기적인 년이네.”

         

         

       * * *

         

         

       본관 3층 회의실.

         

       수많은 교수들의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선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다양한 감정들이 뒤엉켜있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근처에 있는 교수들이 코를 킁킁거렸다. 풀내음 섞인 술 냄새가 백우진에게서 풍겨왔다.

         

       “아니, 자네 술 마셨나?”

         

       교수 중 한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묻자,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당당한 말투에 교수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부관주님이 부르셨는데 술을 마시고 왔단 말인가?”

         

       노기를 띤 음성.

         

       웃기지도 않는 이유로 화를 내고 있다. 그 스스로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다만 상대방의 기를 죽이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

         

       백우진은 어렵지 않게 눈앞의 교수가 누구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한비열.’

         

       종남파의 2대 제자이자 1학년 기초 검술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

         

       화산파와 뜨거운 라이벌 관계인 종남파는 예전부터 그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는 섬서백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한비열은 그러한 구도를 이곳 학관에까지 끌고 와 백우진을 일방적으로 싫어했다.

         

       ‘여러모로 수모를 겪었어.’

         

       첫 수업부터 지금까지 그는 백우진을 교보재로 삼아 수업을 진행해왔다.

         

       시범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검을 휘둘러 교묘한 곳에 멍 자국을 만들고, 흙바닥을 구르게 하여 다른 생도들로 하여금 반면교사로 삼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백우진에 대한 다른 생도들의 인식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어딜 가나 있지.’

         

       저열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이들은 판타지에도, 지구에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상대를 얕잡아보는 경향이 너무나도 강해 자신이 역공을 맞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점.

         

       “부관주님이 부르시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만.”

       “뭐, 뭐라?”

         

       그로 인해 조금만 신경을 긁어줘도 앞뒤 가리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낸다는 점이다.

         

       “죽다 살아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말에 술 조금 마신 것이 죄가 되는 겁니까?”

       “이, 이놈이 어디서 말대꾸를…!”

         

       논리적인 이유라곤 1도 없이 화를 냈으니 마땅히 받아칠 방도가 없다. 그러니 더 눈깔에 힘을 주고 더 큰 화를 내는 것 말고는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이다.

         

       허나, 이곳은 그리 큰 화를 내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다. 그보다 높은 직급을 가진 이들이 수도 없이 많기에.

         

       “그쯤하게.”

       “부, 부관주님.”

         

       짜게 식어 있는 부관주의 얼굴을 본 한비열은 그제야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주말에 쉬고 있는 백우진 생도를 급하게 호출한 건 이쪽일세. 그가 술을 마셨다 하여 문제될 일은 아니라고 보네만.”

       “죄, 죄송합니다.”

       “사과 또한 내가 받을 건 아닌 것 같군.”

         

       한비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건수 하나 잡았다는 생각에 앞뒤 분간 못하고 화부터 낸 것이 잘못이었다.

         

       ‘젠장.’

         

       하는 수 없이 지금은 숙여야 할 때다. 실세나 다름없는 부관주에게 찍혔다간 교수 생활이 얼마나 험난해질지 가늠할 수도 없으니.

         

       “미…, 미안하네. 내 잠시 추태를 보이고 말았어.”

         

       백우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큿….”

         

       한비열은 분을 삭이며 고개를 떨궜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관주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가 줄줄이 엮어 잡아온 산적들에 대한 처우를 얘기해주기 위함일세.”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주된 골자는 삼류도 채 되지 않는 그들의 모자란 실력과 최하급 임무 실패와 그로 인한 조사대 및 탐색대 파견으로 인한 손실 등을 계산해보았을 때, 임무 수행 점수를 부여하기엔 모자라다는 것.

         

       거기까지 들은 백우진이 눈에 띄게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나마 희망적인 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그중 일류급 산적이 하나 껴있어 그 공로는 인정하기로 했네.”

       “그럼…?”

       “자네에게 4점의 임무 수행 점수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럼 6점만 더 채우면 되는 건가?’

         

       하급 임무라면 세 번, 중급 임무라면 두 번만 나가면 충족할 수 있는 점수였다.

         

       “감사함다!”

         

       백우진이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자 부관주는 기묘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수많은 교수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음에도 조금의 어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대담하군.’

         

       고수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기운을 갈무리해도 특유의 기세를 주변으로 뿌리기 마련이다. 즉, 수많은 고수들이 모여 있는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백우진은 어느 정도 부담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보통 이런 이들의 결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앞뒤 분간 못하고 날뛰다 단명하거나, 무수한 시련을 밟고 넘어서서 대성하거나.

         

       ‘보고서와는 완전 딴판이야.’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람들은 지금껏 몇 번이고 보았다.

         

       백우진 또한 그런 부류일 테지.

         

       ‘궁금하군.’

         

       부관주는 지금껏 받아온 백우진에 대한 보고서에 적힌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가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바스러질지, 아니면 화려하게 만개하여 눈부시게 빛나게 될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원래 계획은 토요일, 일요일에 각각 한 편씩 연재하는 거였습니다만,,,

    집안에 코로나 관련 작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ㅠ

    연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평일내로 더 많이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댓글 부탁드립니다,,,헤헤,,,

    마지막까지 평온한 주말 되십시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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