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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온몸에서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

       이렇게까지 수련에 집중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키엘은 감회가 새로워짐을 느꼈다.

       

       그는 제국 제일검이었지만, 아직 성장할 여지가 충분한 기사였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심마가 되어 그의 마음을 갉아먹었던 탓에, 성장이 정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지에 대한 공포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 오라버니…….

       – 힐데 님. 가주님의 수련을 방해하시면 안됩니다.

       

       힐데가 폐관 비동 앞을 서성인 것도 벌써 며칠 째였다. 키엘이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것도, 힐데가 가주 대리 역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고로 힐데는 자신에게 한마디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 네가 누군데?

       

       키엘이 폐관까지 해가며 수련하는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올리비아.

       

       그녀의 기억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리고,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번뇌를 지우기 위해.

       키엘은 새삼 올리비아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감했다.

       

       -키엘 공작 전하!

       

       키엘의 대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누군가 비동을 가로막은 바위 너머에서 미친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가문의 가신들은 자신을 ‘전하’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주님’이라고 부르지.

       

       고로 저건 황제가 보낸 사신일 것이 분명했다.

       

       “키엘 공작 전……어, 어어어!”

       

       쩌어어어억.

       

       비동을 틀어막던 바위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그 깔끔한 단면에, 사신이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키엘은 눈을 부릅뜬 사신을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황제 폐하께서 보냈느냐?”

       “그, 그렇습니다. 속히 입궁하시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키엘은 대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예전 같았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방해라고 여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황제에게 진 빚이 있었다.

       

       ‘그 년’에게서 지켜내지 못한 빚.

       

       “마차는 대기시켜 두었는가?”

       “예, 예.”

       “그럼 잠시 기다려라.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

       

       품행을 단정하게 하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가, 가주님!”

       “시종장. 빠르게 목욕물을 준비해다오. 폐하를 알현할 때 쓸 옷도.”

       “알겠습니다!”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침묵에 잠겨있던 저택이 북적거렸다. 

       

       “오라버니! 벌써 끝나신거에요?”

       “아니. 입궁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힐데의 갈색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바로 입궁하신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그, 으음…….”

       

       힐데는 키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황제고 뭐고 수련을 최우선으로 삼던 키엘이 무려 폐관 수련을 그만두고 나온 상황이니 놀랄 만도 했다.

       

       “가주님, 준비되었습니다.”

       “알겠다. 다녀오마.”

       

       키엘은 빠르게 목욕을 마친 후, 곧장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준비된 옷은 품위 넘치는 정복이었다.

       

       “다른 것은 없나?”

       “……왜요? 맘에 안 드세요?”

       

       맘에 안 들리가.

       키엘이 마음을 연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힐데였다.

       그리고 이건 힐데가 선물해준 옷이었다. 

       다만…….

       

       ‘……이 옷이었지.’

       

       이대로 황궁에 가면 차갑게 얼어붙은 힐데의 얼굴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점잖아 보이는 것으로 다오. 아무래도 예사 일로 부르신건 아닌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니 투정부릴 수도 없는 힐데였다.

       

       키엘을 태운 마차는 곧바로 황궁으로 이동했다. 반대편 좌석에 앉은 사신이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 키엘 공작 전하를 호출하신 이유는, 동부 연합과의 협상 때문입니다.”

       

       들은 바가 있었다.

       협상단의 대표로 적탑주가 선정됐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마법사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느니, 기사들이 승리했다느니, 별 같잖은 소리를 쏟아내는 탓에 곧바로 신경을 끄긴 했지만.

       

       그런 의미 없는 힘싸움을, 키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기사였지만, 기사 파벌에 속해있지 않았다.

       

       “협상에 문제가 생겼나?”

       “……예.”

       

       곤란해 보이는 게, 이후로는 황제에게 직접 들으라는 모양이었다.

       

       ‘……정말 달라졌군.’

       

       전생에서는 동부 연합과의 협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연합이 순순히 이익을 포기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전생과 달라진 것.

       이번 생의 자신은 드래곤을 사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생의 멜리나는, 이성을 잃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고로 제국은 드래곤 슬레이어도, 수백 년간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대마법사도 없다.

       

       그것이 동부 연합으로 하여금 ‘도망’이 아닌 ‘협상’이라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나비효과.’

       

       언뜻 사소해보이는 두 요소가, 미래를 이렇게도 크게 뒤바꿔버렸다.

       

       키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올리비아.

       

       전생의 그녀는, 천재였다.

       한낱 인간을 부르기에 과분한 칭호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키엘이 보기에 올리비아는 전지(全知)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올리비아가 회귀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건 가능성에 불과하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

       

       지금처럼 사소한 나비효과에도 세상이 이렇게 쉽게 변하는데, 어떻게 회귀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알겠는가.

       

       수백 번, 수천 번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는데, 문득 우스워졌다.

       

       “도착했습니다. 공작 전하. 폐하께서는 화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

       

       키엘은 잠시 북부 방향을 쳐다보다가 망설임 없이 화원으로 향했다.

       

       아직 때가 아니다.

       아직은.

       

       “부르셨습니까. 전하.”

       “키엘 공작. 한 번 읽어보시오.”

       

       황제가 건넨 종이에는 투박한 공용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술쟁이들과는 협상을 할 수 없다.]

       

       마법사도 아닌, 마술쟁이라.

       

       키엘이 알기로, 마법사들을 저렇게 부를 수 있는 인간은 한 명 뿐이었다.

       

       “미카벨의 야만인이 간덩이가 부은 모양이오.”

       

       황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부로 가줘야겠소.”

       

       

       

       *****

       

       

       

       올리비아는 기절한 리브가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낡은 의자보다야, 조금 더럽더라도 안전한 바닥에 놓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우.”

       

       리브가를 성공적으로 제압했다는 알림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올리비아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만났던 회귀자 중에 가장 제압하기 쉬웠다.

       

       물론 지금처럼 쉽게 제압이 가능했던건, 어디까지나 리브가가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믿음에 기반한다. 올리비아는 고해성사를 통해 리브가의 믿음을 착실히 흔들었다.

       

       그렇게 흔들린 리브가가 성창을 놓칠 기색을 보이자, 곧바로 전류를 쏘아보내 기절시킨 것이다.

       

       어딘가 한 군데씩 나사가 빠진 회귀자들 사이에서, 몇 안되는 정상인이 바로 리브가였다. 

       

       오죽했으면 유저들이 리브가를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렀을까.

       

       물론 이 착한 리브가조차도 상종하지 않는 부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악마였다.

       

       악마. 

       

       스토리 중후반부터 등장하는 고위 몬스터.

       

       간교한 혀로 순수한 인간들을 꾀어내는 것은 물론이오, 인간들 사이에 숨어 온갖 역병을 퍼뜨리고 다니는 세계의 암적인 존재.

       

       그동안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 악마가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게임의 난이도는 수직 상승한다.

       

       믿었던 동료가 등을 찌르고, 영주들은 영지민들을 악마에게 제물로 바친다.

       

       오죽하면 빛의 교단 내에서도 타락자가 나타날 정도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지, 치가 떨려.’

       

       올리비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됐고, 지금부터는 리브가의 기억을 어떻게 덮어씌울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리브가는 호감도를 아주 쉽게 올릴 수 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억을 덮어씌우는 것까지 쉽다는 말은 아니다.

       

       바로 ‘거짓 간파’ 스킬 때문이다.

       

       거짓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성녀의 고유 스킬.

       저 스킬 하나 때문에 리브가의 기억을 덮어씌우는 난이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어쩌면 멜리나 그 이상으로 말이다.

       

       말을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그 즉시 거짓을 간파당하고 성국 바깥으로 쫓겨날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망하지.’

       

       미안하다고 도게자를 박으면 어떻게 접근 금지령까지는 풀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올리비아의 몸에 기생한 영혼’ 취급을 받게 되리라.

       

       ‘……어쩌면 강제로 성불 당할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단서 3개를 획득하여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일단 보상부터 확인하고 생각하자.’

       

       무슨 보상이 나오느냐에 따라, 단서 속에서의 행동 양식이 달라질테니 말이다.

       

       [단서 3개 획득 보상.]

       [앞으로 기억 한 번당 최대 5회까지 ‘관전’상태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 관전 상태는 원할 때 해제할 수 있습니다.

       

       ……전혀 예상 못했던 게 나왔다.

       

       관전상태라고 함은, 먼젓번 스킵했을 때의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원할 때 해제할 수 있다는 말은, 빙의 상태와 관전 상태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억당 5번 한정이기는 하지만.

       

       ‘기억 속에 열 번 들어간다 치면 최대 50번까지 관전할 수 있다는 말인데……이게 쓸 데가 있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피할 때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사용했다간 리브가가 금세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잠시만.’

       

       위화감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올리비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거, 가능성 있다.’

       

       올리비아는 곧바로 리브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단서#3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제국력 993년 1월의 기억]

       

       이번에는 역할을 바꾼다.

       

       그동안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가해자 행세를 할 생각이다.

       

       대놓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샤를정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푸른 물결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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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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