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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저희 사용인들이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결국 저택 뒤쪽을 향해 달려간 경호원을 뒤로하고, 소희 아버지의 차를 저택 부지 안에 적당히 세워둔 뒤, 나는 소희의 가족을 모두 데리고 저택 식당으로 안내했다. 양혜인이 없어서 그런지, 따로 안내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도 있다.

       

       이렇게 보니 예전에 들은 공산주의 농담이 생각난다.

       

       땅을 파는 사람, 나무를 넣는 사람, 땅을 묻는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무를 넣는 사람이 아파서 빠지면 남은 두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일을 시킨다. 그러면 두 사람은 돈을 받은 만큼 일을 더 해서, 결과적으로 나무는 그곳에 심어지게 된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받는 돈이 똑같기에, 그날은 땅을 파고 묻는, 아무 의미 없는 일만 반복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게 진짜 농담으로 퍼진 말인지, 아니면 그때 그 시절의 체제 경쟁의 흔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다 잘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빠진다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일을 시키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며칠 굴려보고 나무 넣던 사람이 필요 없다면서 잘라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지금 상황을 보면, 딱히 돈을 더 준다고 더 일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일하면서 받는 돈에 적응하는 법이다. 별다른 성취감도 없는 한가한 일을 돈 수억 원을 주고 시켜버리면, 나중에 그 한가한 시간에 추가업무를 배정받을 때, 그 일하던 사람은 ‘어, 이거 돈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는 사람 생각이 어쨌건 받는 사람은 원래 일하던 것에 맞춰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 돈의 크기가 굳이 수억 원이 아니더라도, 원래 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생각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 법이다. 최저시급 주는 편의점 점주도 아르바이트생한테 ‘이 정도는 해야지!’하고 주문하고, 알바생은 알바생대로 ‘아니, 이 돈 받고?’라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고, 누가 말했더라.

       

       아무튼, 나는 소희와 나의 사이에 그런 간극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구가 아닌가. 물론 나는 소희에게 처음 접근할 때 히로인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접근하긴 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서로 간의 예의를 확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이해하려는 노력만 보이면 상대도 나름대로 맞춰주는 법이다.

       

       “어, 아니, 나는 괜찮아? 요?”

       

       아무래도 내가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은 못 한 것인지, 소희의 아버지는 나에게 반말도 아니고 존댓말도 아닌 대답을 했다.

       

       그 옆자리에서는 리틀 소희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녀가 함께 놀러 나갔던 모양이다. 소희는 오전에 나를 만나러 와서 함께 가지는 못했고.

       

       소희처럼 염색하지는 않아 머리카락은 까만색이었지만, 얼굴은 똑 닮았다. 분명히 자라면 소희 판박이가 될 것이다. 다만 내가 아직 이름을 듣지는 못했으니, 일단 내 마음속에서 얘는 리틀 소희였다.

       

       “어…… 그러니까…….”

       

       소희의 아버지는 뭔가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혹시, 다른 가족은…… 없나, 요?”

       

       “그냥 말씀 편하게 하세요. 소희랑 친구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다음, 조금 민망했는지 크흠 하고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아, 그럼…… 그러니까, 그……”

       

       “예사라라고 합니다.”

       

       내가 뒤늦은 자기소개를 하자, 소희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 그래, 사라야. 혹시 가족은 안 계시니? 그, 오빠라던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어, 아뇨, 저는 외동딸인데요.”

       

       정말 혹시라도, 만에 하나, ‘if you wish’ 특유의 막장 드라마같은 설정이 있어서 사실 숨겨진 동생이나 이복형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나도 모른다. 아마 없겠지. 아무리 막장 드라마 설정이라도 그대로 따라가지만은 않을 거다. 일단은 미연시였으니까.

       

       “그, 그래?”

       

       외동딸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놀라웠는지, 소희의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아니, 어쩌면 놀랄 일일지도 모른다. 이 저택에서 지내는 사람은 나 말고는 전부 사용인뿐이다. 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은 최나경 하나뿐이었고.

       

       가족 하나가 아니라 몇 세대가 세 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크기의 저택에 나 혼자 살고 있다고 하면 엄청나게 이상하게 들리겠지. 최소한 가족과 같이 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그게 진짜냐는 듯, 소희 아버지의 눈이 소희를 향한다.

       

       “아!”

       

       소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그렇게 탄성을 지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더니, 얼른 손목을 잡았다.

       

       “아빠, 잠깐 얘기 좀 해.”

       

       “어, 딸?”

       

       일단 손을 잡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상황 자체에 조금 당황한 듯 그렇게 되묻는 자신의 아버지를, 소희는 얼른 끌고 나갔다.

       

       분명 식당의 크기가 꽤 되는데도 엄청 빠른 속도로 나가는 것을 보면 소희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

       

       입을 헤 벌리고 그 뒤를 쳐다보다가,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바로 조금 전까지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있던 리틀 소희가 있었다.

       

       그사이에 잠이 완전히 깬 것인지, 식탁 위로 겨우 올라온 얼굴의 눈은 몹시 똘망똘망하게 빛났다.

       

       문제는 그 똘망똘망한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

       

       아, 나, 애들이랑 대화해 본 적 없는데.

       

       등줄기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

       

       소희는 저택 안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아빠를 끌고 왔다.

       

       “……아까 했던 말 있잖아.”

       

       그리고 그러고도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주변에서 누가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싶었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밝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알았다가는 건너건너 사라의 귀로 들어갈지도 몰랐으니까.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자기 나름대로 연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소희였다. 고백을 남의 입으로 간접적으로 듣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고백하더라도 분명하게, 자기 입으로, 단둘이 있는 곳에서 하고 싶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물론 오늘 카페에서도 양혜인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고. 유하늘이나 이수아야 소희가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비밀을 지키겠지만, 양혜인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상황상 밝히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밝히기는 했지만, 비밀이라는 것을 따로 말해주지 않으면 사라한테 떠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 딸, 그것 때문에 말인데…… 혹시 네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맞아.”

       

       소희는 확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좋아하는 애. 걔야. 바로 조금 전까지 식당에서 마주 앉아있던 애.”

       

       “허…….”

       

       소희의 아버지가 탄식했다.

       

       아니, 그가 딱히 동성연애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피가 섞인 손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딸의 행복을 막을 정도로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달라서 머리가 상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까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아이는, 여러모로 참 ‘아가씨’다웠다. 세간에서 속된 말로 사용되는 아가씨 말고, 부잣집 아가씨라는 의미에서의 아가씨. 얌전하고, 교양있어 보이고, 예의 바르고…… 아무튼, 오늘 ‘일을 치르겠다’라고 말했던 것과 이미지가 영 맞지 않았다.

       

       아, 물론 사람 이미지야 그 사람 본성과 반대인 경우를 몇 번이고 봐왔으니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자기 딸에게 이런 소리를 하기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첫인상으로만 보자면 그쪽이 먼저 덮치는 것 보다는 딸이 먼저 덮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애가…… 좀, 이런저런 상황이라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

       

       “…….”

       

       소희의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여기 자리가 조금 빈다고 하길래. 내가 여기서 함께 머물면서 일하고 싶은데…….”

       

       “아, 그래…….”

       

       그는 이야기를 듣고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이유가 전부 오해 때문이었다. 일을 치른다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같은 걸 말하는 것이리라.

       

       학교 끝나고 몇 시간이라도 옆에 머물며 돕고 싶은 생각이리라. 그만큼 저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솔직히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했다.

       

       물론 결혼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먼 이야기다. 사실 첫사랑 정도는 누구와 해도 상관은 없다. 물론 자신의 딸이 반한 상대와 하루아침에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반대했지만, 상대가 상식인이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그 상대가 평소에 상상해 본 이상의 존재라서 문제였지.

       

       일단 연애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그보다—

       

       “……그런데, 그 비는 일이 무슨 일이길래?”

       

       “아, 그거.”

       

       그의 질문에, 소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걔 전속 메이드.”

       

       “……뭐?”

       

       *

       

       대화를 마치고, 소희와 그녀의 아버지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소희는 조금 후련한 표정이었고, 반면에 그녀의 아버지는 조금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둘은, 식당으로 들어오려다 멈칫했다.

       

       “진짜 말랑말랑하다~”

       

       “흐힛, 그, 그혀니……?”

       

       소희의 여동생이, 사라의 볼을 즐겁다는 듯 쪼물딱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사라의 무릎에, 사라를 마주 보고 앉아있는 상태로.

       

       물론 한쪽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보일 수는 있는 광경이었지만.

       

       그 아이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둔 사라는,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쩔 줄 모르는 듯 쩔쩔매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소, 소리야!”

       

       소희는 화들짝 놀라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여동생은 여전히 사라의 얼굴을 조물조물하면서 고개만 돌려 자신의 언니를 보았다.

       

       “아, 언니! 이거 봐! 사라 볼 진짜 말랑말랑해!”

       

       확실히 그 작은 손에 잡힌 볼살은 말랑말랑해 보이긴 했다.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고 싶은 만큼.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소희는 얼른 뛰어가서, 소리의 허리를 휙 낚아챘다. 소리의 몸이 달랑 들렸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소리는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하여, 그날 신소희의 동생 신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십 대의 얼굴을 쪼물딱거린 최초의 어린이가 되었다.

       

       물론 소희는 그것보다 더한 것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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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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