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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집 지킴이 및 가족 돌보미 용 드로이드, 케어봇 시리즈는 엑사테크에서 기초 설계도를 제공하고 파라다이스에서 생산 라인을 정비하여 판매하는 일종의 합작 상품이었다.

         

         섬세한 구분동작이 가능한 인체공학적 관절.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고회로.

         알맞은 관리와 손길이 더해진다면 세대가 바뀌어도 함께할 수 있는 내구성까지.

         

         직접 구경갔을 때도 봤고 가끔 무작위로 수신되는 웹 광고에 표기되던 케어봇 상품 설명이다.

         

         일단 홍보문구는 꽤 그럴싸하다.

         

         여기가 뭐 완전히 멸망한 세계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직장을 가진 채 일평생 도시안에서 살아갈 계획이라면. 임플란트에 과투자하는 것보다 귀찮은 일도 대신해주고… 적적한 살림살이도 메꿔줄 케어봇은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원래부터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가족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수준으로 책정된 가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런 식으로 단번에 모아버릴 줄은 몰랐는데….”

         

         악의적 취향의 결과물인 배배 꼬인 파라다이스 타워를 빠져나온 나는 곧장 로봇 매장으로 향했다.

         

         방금 막 본거지를 빠져나온 데다, 기업 돈까지 한 뭉치 삼킨 만큼.

         미행 같은 게 따라붙을 가능성을 간과한 건 아니지만… 붙으면 좀 어떤가? 내가 뭐 도박장에 달려가는 것도 아니요, 어디 차명계좌로 숨기고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물론, 한번에 탕진한다는 의미에서는 어찌 보면 도박과 일맥상통하기도 하고.

         마땅한 거주지도 없는 주제에, 목숨값이라며 다짜고짜 케어봇부터 구매하는 결정을 기이하게 여긴 아론이 추궁을 할 수야 있겠으나… 나는 더없이 당당하다. 음.

         

         그에 맞춰 발길도 가볍게 사뿐한 걸음걸이로 각종 가게가 늘어선 거리를 활보한다.

         

         이런 이른 시간부터 매장이 문을 열었을까 하는 고민은 필요 없었다.

         불야성이 당연한 시대여도, 안에 살아가는 사회원들을 구분한다면 자연스레 낮에 활동하는 사람과 밤에 활동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지겠지만.

         

         사회의 근간인 사업-비즈니스-는 단 한순간도 쉬어서는 안됐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곧 연도가 바뀌는구나?”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에 현수막처럼 내걸린 문구를 곱씹다가 눈치챘다.

         

         ‘2196년도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풍요로운 해가 되시길!’ 이라는 파라다이스 사의 옥외 광고였는데, 숫자가 너무 무지막지해서 왜 새삼스럽게 근로의욕을 자극하려 드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1년.”

         

         입안에서 나지막하게 굴려보자 공연히 가슴이 옥죄여 들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갈 시간.

         거창한 계획을 준비하고자 했다면 일찍이 네오 헤이븐에 자리를 잡았을 터이지만… 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내기엔 너무 귀중한 공백기.

         

         …뭐, 2197년이 된다고 갑자기 세상이 불바다로 변하는 난장판이 일어나거나 천지가 개벽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계기가 될 큼직큼직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수면 밑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뿐.

         

         그리고 자잘한 변화나 차이점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절대 밟아선 안 되는 특대 지뢰들을 피해갈 자신감이…… 자신감이…?

         

         “어라…….”

         

         삐끗! 하고. 한차례 어긋난 발을 다시 바로잡았다.

         

         정착지에 좀 머무르면 갱단에게 마을 전체가 습격받질 않나. 돈이나 좀 벌어볼까 하면 난데없는 테러에 휘말리는 걸로도 모자라 메가 코프에게 주목 당하지 않나.

         

         심지어 히로인님 좀 도와줘 보겠다고 나름대로 노력했더니, 대놓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었다.

         

         그나마 최악으로 끝난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맨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섣부른 행동을 해서 일어난 일은 없다고 믿었으나. 문득 의심이 들었다.

         …아닌가? 충분한 고민과 다각도로 고찰하려는 노오오오력이 부족했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두는 각자의 삶의 주연이라지만, 내가 무슨 파란을 몰고 다니는 체질도 아닐진대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 생각하고 함부로 고른 선택들에 문제가 있는 게 맞겠지.

         

         앞으로는 발밑을 더욱 주의 깊게 살피며 나아가도록 하자.

         

         별다른 접객원도, 이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자동안내음성조차 없는 입구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섰다.

         

         기계적인 멋에 대한 열망은 여전한, 호화찬란한 일선 전시대들을 지나쳐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비주류 드로이드 코너로.

         

         주변에 있는 일부 모델들은 주인을 찾은 건지 전시 순서를 바꾼 건지는 몰라도 기초적인 뼈대만 덩그러니 있는 그 케어봇은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드디어 네오 헤이븐으로 떠나는 출발선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장애물은 오직 하나. 무사히 깡통이 깨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먼저 구매를 확정 짓고 담당자에게 설치를 요구해야 하는데….

         

         “…저기요?”

         

         조용히 중얼거려봐도 스산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전에야 구경하는 손님이 많은 데다가 낼 크레딧도 없는 형편이었기에 직원이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는데, 어째 방문객이라고는 나 혼자인데도 이렇게 삭막할까.

         

         딱히 목돈을 쓸 예정이라고 졸부처럼 대접받고 싶은 게 아니라, 망할 상품을 사게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산대도 따로 없고, 직원도 없다면. 하다못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 가게인지 안내라도 써 놓던가…!

         

         – 잔액이 부족합니다. –

         

         “…엥?”

         

         혹시 내가 좀 작아서 안 보이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까치발을 들고 아무나 부르고자 손을 크게 휘저어보는데 돌연 이상한 기계음이 재생되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간혹 충전을 잊으면 내려지는 무자비하고 심히 부끄러운 선고.

         그게 왜 여기서 튀어나왔나. 진열장을 살펴보니, 가격이 명시된 부분 밑에 자그마한 실선이 있었다.

         

         그래, 손목에 심어진 바코드를 가져다 대면 정확하게 인식될 것 같은… 그 계산대에 있는 붉은 선이.

         

         “정말… 치사하다… 치사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블랙 마켓 계좌로 옮겨 놨던 보상금과 별도로 모으던 크레딧을 재빨리 지갑으로 몰아넣고. 카드를 긁듯이 손목을 움직였다.

         

         – 엑사테크 코퍼레이션 직속 판매장, 하베스트 플래닛 1호점 이용에 감사드립니다! 커스터마이징 및 제품 수령을 도와드릴 매니저분이 고객님의 위치로 향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성의를 다해 모시겠습니다! –

         

         깔끔하게 차감되는 1억 크레딧. 그리고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간신히 손님 반열에 오르게 된 나는, 드디어 이 골 때리는 무인 영업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저희 엑사테크 매장에의 방문과 제품 구매에 감사드립니다! 자, 어서…! 이리로 오시지요, 손님!”

         

         “…예.”

         

         기계공학의 대가이자 마에스트로, 엑사테크.

         분명… 업무 도중 재해나 사고로 인해 신체결손이 발생할 경우, 당사자의 동의 하에 시험적인 대체 시술을 무상으로 베풀어 충성심을 끌어 올린다는 기묘한 설정이 있긴 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엑사테크의 고위직은 단백질보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부위가 훨씬 더 많았고.

         그럼 이 사람은 무슨 유탄에라도 피격당한 걸까…?

         

         “매장 내부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견본품이고, 실제 판매되는 제품은 여기서 세부적인 옵션 상담을 거치면서 실시간으로 조립되는 과정을 지켜보실 수 있습니다!”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가 긴장을 풀어준다.

         

         “개인적으로 반드시 대체하고 싶은 부품을 가져왔는데. 이것도 혹시….”

         

         “얼마든지 맞춤 제작 가능하십니다!”

         

         좁은 틈새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매니저가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꼭 철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 얼굴과 검푸른 메탈릭 의수가 인상적인 그를 따라 내부 상담실로 들어섰다.

         

         구조만 보면 상담실이라기보단 첩보 영화에 나오는 취조 관찰실에 더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큼지막한 창문 너머에는 조금 전에 결제한 케어봇 몸체가 열개도 넘는 기계 팔에 둘러 쌓인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출력을 결정하는 변압기 부분부터 보시겠습니까? 혹은 설치하실 인격을 먼저 고르시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역시 인상을 결정하는 외부장갑부터? 취향껏 고르셔도 되고, 이대로 가져가셔도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이미 값을 지불하셨으니 말이죠.”

         

         “읏?!”

         

         장황한 설명과 함께, 얼굴 쪽으로 불쑥 내밀어진 부품 카탈로그에 침음성을 토했다.

         

         화면안에만 수십종류에 달하는 옵션, 게다가 그런 페이지가 수 천개.

         얼핏 봐도 남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로망들이 시야를 어지럽혔으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겨우 천만 크레딧 정도의 여유금으로 이것저것 추가하기도 무리가 있었으나… 더 신경을 긁은 건 ‘취향’이라는 단어.

         

         법적으로는 그저 소유물 취급일지 몰라도, 나는 편리한 하인이나 얻자고 이런 수고를 들이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게 맞으니까, 그리고 맡겨진 심장을 걸고 약속했으니까.

         

         …딸깍!

         

         먼지 한 톨 안 묻게, 어디 잘못 긁히지 않도록. 부드러운 헝겊으로 둘러싼 연산장치가 오랜만에 밝은 조명아래 그 형체를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통조림에서 꺼내든 깡통의 영혼을 매니저에게 내밀었다.

         가능하다면 모르는 이의 손에 잠시라도 맡기고 싶지 않았지만… 비전문가가 의욕만 앞세워 되는대로 시도하기엔 실패했을 때 잃게 될 비용이 너무 컸다.

         

         “인격 설치는 필요 없어. 먼저… 이걸로 중앙 연산 장치를 바꿔서 전원부터 켜줘. 옵션 같은 건 본인보고 직접 결정하라고 하면 되니까.”

         

         행여나 변고가 생기거나, 안에 들은 데이터를 확인하고 싶은 욕심에 빼돌리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이었다.

         

         그런데 내 무시무시한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니저는 넘겨받은 부품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탄식과 함께 냉정하게 현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런…! 손님, 실수하셨군요. 간간이 예전에 사용하시던 로봇의 인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으셔서 연산장치를 소중히 가져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별도의 백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일부 휘발성 기억이나 데이터가 불완전하게 보존됐을 가능성이 있답니다?”

         

         “무… 뭐?!”

         

         완벽하게 인공지능을 이식하고 싶다면 무조건 작동하는 상태에서 새 기기로 전송해야 한다는, 메카닉의 전문 지식을 풀어 설명해 주는 그에게 무심코 되물었다.

         

         실수…? 내 실수? 아니, 그때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걸 변명할 대상이 이미 영영 사라져버렸다면 어떡하지? 그대로 내 이기심이 불러온 결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지요. 중요한 내용은 저급한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휘발성 메모리로 분류하는 경우는 드무니.”

         

         멍한 기색의 이쪽을 배려했는지 그가 요청된 서비스를 시행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도, 데이터라는 건 전력이 차단된 기억 장치안에 길게 방치되면 손상되는 물건.

         

         한시라도 빨리 재작동을 시도하는 게 그를 위한 길이리라.

         

         위이잉…!!

         

         격렬한 구동음이 울리고 기계 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부품을 갈아 끼우는 광경이었지만 내 눈에는 뇌수술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공기계 상태인 케어봇의 머리가 개방되고 깡통의 연산 장치로 교체, 접합되는 데는 허망하리만치 짧은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

         – ……. –

         

         얇은 유리만을 사이에 두고, 안광이 들어온 케어봇을 직시했다.

         내가 못나서 전처럼 스캐너를 세 개씩 달아줄 여유는 없었지만, 눈동자가 한 개밖에 없으니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기는 쉬웠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다.

         

         안내받은 주의사항 때문에 두려운 상상이 치솟아,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까지 침묵하고 싶은 기분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이 바보의 전원이 다시 켜지면 물어볼 첫 질문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너, 이제는 진짜 이름을 들려줘.”

         

         그렇게 간절함을 담은 부탁에.

         

         – 명령, 받았습니다. –

         

         무기질적이고 단조로운 케어봇 음성이 되돌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운명보다 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운명을 짊어질 수 있는 용기이다.

    지각…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일일연재만 어찌저찌 빠듯하게 이어나가고 있네요…. 흑흑.

    햐얌 님의 관대한 30코인 후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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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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