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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왓슨이 만든 물리력을 가진 연막이 흐릿해질 때쯤 이변이 일어났다.

    그 변화는 왓슨이 시작이었다.

    [‘눈’이 왔어.]

    [‘눈’이 무슨 일이지?]

    [나, ‘눈’이 싫어. 무서워.]

    왓슨은 몇 가지 문구를 뱉더니, 스스로 불이 꺼져버렸다.

    찰박찰박.

    조그맣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

    그리고 어둠을 꿰뚫는 황금색 안광이 보였다.

    공터 깊숙한 곳, 어둠 속에서 수많은 황금색 안광이 빛났다.

    회색 사신이 바닥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황금 사신들을 잔뜩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회색 사신은 무심한 표정으로 공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현재 공터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소장과 연구원들을 향한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소장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한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연구원들은 시간을 끌어라!”

    황금 사신이 사나운 표정으로 달려드는 것과 소장이 연구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연구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소장은 의뢰인의 남동생 쪽으로 다급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서둘러서 달려가는 소장의 손에서 익숙한 오브젝트가 눈에 띄었다.

    지팡이!

    소장은 내가 줬던 지팡이로 의뢰인의 남동생과 함께 도망칠 생각으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후배 1호를 보고 손짓했다.

    “빨리 가서 막아!”

    후배 1호는 그 모습을 보더니, 망치를 고쳐 쥐고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전력으로 달리는 후배는 엄청난 속도로 소장을 추적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멀어! 

    “하하하!”

    소장은 자신을 노리는 황금 사신과 후배 1호를 보면서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곤 남동생의 몸에 손을 대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땅에 내리쳤다.

    ***

    유령 고양이가 울부짖던 공터에 도착했다.

    보이는 것은 소장과 연구원들.

    그리고 탐정 일행들과 유령 고양이.

    오랜만에 본 소장은 아주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인간에 대한 악의.

    인간을 위한 연구를 하던 오브젝트 아니었나?

    소장이 가지고 있던 언제나 여유롭던 분위기도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저 정도면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황금 사신이 달려들자, 소장은 어디론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눈에 익은 오브젝트가 보였다.

    탐정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

    아마 저게 순간이동을 하게 해주는 오브젝트였던가?

    나는 지팡이를 보는 순간, 유령화로 소장을 향해 돌진했다.

    저런 해로운 오브젝트가 도망가는 걸 방치할 수는 없지.

    “하하하!”

    그리고 통쾌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치는 소장의 오른손을 잘라버렸다.

    “으아아아아악!”

    오른손을 감싸 안으며 뒤로 물러서는 연구소장의 파괴 조건을 확인했다.

    [염원을 이룬다.]

    또 너무 어려운 조건이네.

    그래도 무시하기엔 인간에게 너무 해로운 오브젝트일 것 같은데.

    내가 고민하던 사이, 숨을 몰아쉬며 도망치는 소장을 황금 사신들이 무자비하게 뚫고 지나갔다.

    대구경 소총에 맞은 것처럼 온몸에 구멍이 뚫린 소장은 그대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 나는 인류를 위해!”

    인류에 대한 악의밖에 없는 오브젝트면서 인류를 위한다니 웃기는 이야기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장을 황금 사신들이 빙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부활해도 내가 죽이겠다!’라는 의사 표명으로 보였다.

    하긴 인류 애호가 심한 황금 사신에게는 소장은 철천지원수처럼 느껴지겠지.

    ***

    소장은 죽어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오브젝트 2점.

    기묘하게 빛나는 구체와 내가 준 지팡이.

    소장은 다른 오브젝트도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여기에는 없었다.

    회색 사신은 소장이 남긴 오브젝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지팡이를 허리춤에 걸어두고, 기묘한 구체의 능력을 외눈 안경으로 확인했다.

    [주변 인간을 치유한다.]

    너무 대단한 능력의 오브젝트였다.

    치유 능력이라니, 인간에게 너무 유익해 보여서 부작용이 걱정될 정도였다.

    연구원들과 황금 사신의 싸움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싸움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일방적인 유린.

    전투가 끝나자, 공터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던 황금 사신들도 어느새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남아있는 황금 사신 중 일부는 의뢰인의 남동생의 몸 위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처음 봤다는 표정으로 펑펑 울고 있는 황금 사신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안심한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도 회색 사신의 도움을 받아버렸군.

    이 정도면 사실 회색 사신이 아니라 회색 수호신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는 행운의 여신인 것이 분명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나의 여신님.

    그리고 그 여신을 향해서 후배 1호가 달려들었다.

    “와, 사신아!”

    후배 1호는 소장이 쓰러진 게 확인되자, 그대로 회색 사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꼭 껴안고는 볼을 비비며 친밀함을 표현했다.

    “오랜만이네!”

    후배는 전보다 더한 기세로 회색 사신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무섭지도 않은 건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나도 꺼려지는데 말이다.

    막말로 회색 사신이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사람 머리를 그대로 터트려 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의뢰인은 남동생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회색 사신과 그 아종 황금 사신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역시 저렇게 무서워하는 게 정상이란 말이지.

    그럼, 후배 2호는? 

    “와, 와와, 와! 말랑해! 쪼그매!”

    후배 2호는 황금 사신 두 마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쪽도 정상이 아니군.

    나는 두통을 달랠 겸,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

    해로운 소장과 연구원들은 모두 황금 사신에게 당해서 구멍 뚫린 도넛이 되었다.

    그래도 파괴 조건을 채우진 않아서 조만간 부활하겠지.

    하지만 지금 황금 사신의 분위기를 보면 부활하자마자 죽여버릴 기세였다.

    “와, 사신아! 오랜만이네!”

    후배는 소장이 사라지기 무섭게,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구하러 와서 고마워!”

    달라붙은 후배는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뺨을 비비고, 10년은 못 만난 것처럼 애정 표현을 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소장이랑 싸우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후배는 쉬지 않고 계속 나에게 앵기고 있었는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좀 그만 좀 하라고 볼을 주물거리는 손을 살짝 깨물자, 오히려 더 좋아했다.

    “헉, 사신이가 날 깨물었어!”

    왜, 더 좋아하는 거지?

    나는 유령화로 후배를 떨쳐낸 뒤, 여기까지 오게 된 원인을 찾았다.

    애옹.

    목이 잔뜩 쉰 유령 고양이가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른 건지 목이 쉬어있어서 조금 웃겼다.

    ‘재밌었다고? 위험했던 거 아니었어?’

    내 품에 안긴 고양이는 가슴을 펴고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뭐?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고? 그냥 내가 심심할 것 같아서 불렀다고?’

    평소의 허세 가득한 유령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이번 모험에서 겪은 일들을 마구 떠들기 시작했다.

    심연에서 올라온 지옥 불의 유적지와 불을 토하는 악마 개구리 그리고 그 개구리들의 두목인 집채만 한 거대한 개구리.

    고양이가 이야기 각색을 얼마나 잘하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아는 내가 들어도 전혀 색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그래, 그래. 대단하네.’

    나는 그런 고양이를 품에 안고 마구 쓰다듬어 줬다.

    귀여운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으니, 나에게 꽂히는 후배의 시선이 따가웠다.

    너무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어서, 후배의 손을 잡고 바닥에 앉도록 이끌었다.

    그리곤 그 후배의 품 안에 털썩하고 주저앉고 후배의 손을 들어서 내 머리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부러우면 후배도 나를 쓰다듬으면 되는데 말이야.

    푹신한 후배 몸에 몸을 기대면서 쓰다듬을 만끽 했다.

    이상하게 내 머리를 쓱쓱 문지르는 후배의 숨소리가 거친 것 같은데 괜찮은 거겠지?

    ***

    늦은 밤, 세희 연구소.

    나는 휴게실에서 사신이의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중앙 연구소 사태 이후, 격리실에서 잠든 사신이.> 

    <노란 탐정이 찾아온 날 보안 카메라에 찍힌 사신이.>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있는 황금 사신이.>

    <피아노 치는 파란 도마뱀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들어 올려 피아노 치는 걸 방해하는 사신이.>

    <3발 자전거를 즐겁게 타고 있는 사신이.>

    <해골 거미를 격리한 격리실 유리에 볼을 밀어붙인 채, 정신없이 구경하는 사신이.>

    그 밖의 보안 카메라에서 캡처한 사진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사진은 역시 이거다.

    피아노 치는 파란 도마뱀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들어 올려 피아노 치는 걸 방해하는 사신이 찍힌 사진.

    세희 언니가 나에게 보내준 사진인데, 사신이의 귀여움이 두 배로 표현된 사진이었다.

    힝.

    여러 가지 사신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진짜 사신이가 보고 싶어졌다.

    황금 사신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원본 사신이가 보고 싶다.

    “늦네에….”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일은 사신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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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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