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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프레이, 엘랑카야 산맥에는 금안족들만 아는 나라가 있어.

         

       입학시험 때 너한테만 한 번 말해줬는데. 기억하고 있어?

         

         

        **

         

         

        밤공기에선 알코올 맛이 났다.

         

        불야성을 이루는 야시장. 흑사병이 창궐했던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던 시장가에 활력이 돌아왔다. 1학기의 끝을 알리는 축제가 틸레트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6월 중순. 슬슬 여름이 찾아올 시기였지만 밤 공기는 선선하기 그지없었다.

         

        땅은 적당히 말라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하다. 까만 도화지 위에 하이얀 점처럼 콕콕 박혀 있는 변광성들이 이 거리에 하이라이트를 더한다.

         

        그래.

         

        거사를 도모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밤이다.

         

        느긋한 보폭으로 시장가를 가로질렀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취기가 올라왔다.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많은 학생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야, 이쪽이야 이쪽!”

         

        그중엔 잘 아는 친구들도 보인다. 그래, 술자리에 저 꼬맹이가 빠지면 섭하지. 나는 프레이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500cc짜리 맥주나 한 잔 주문했다.

         

        시원하고 상큼한 보리주의 맛.

         

        술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잘 마시지도 못했지만, 이것만큼은 예외다. 고기를 안주 삼아 넘기는 맥주에선 달착지근한 맛이 감돌았다.

         

        양 볼이 점점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알코올 약한 건 옛날 몸이나 지금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딸꾹거리기 시작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채 나를 흘겨보고 있는 빙의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좋아. 패는 전부 모였다.

         

        “그나저나 다들 방학엔 뭐 하고 지낼거야?”

         

        나는 친구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당연 본가로 내려가야지. 여기 숙박비가 얼마나 비싼데!”

        “나도. 가서 부모님 일도 좀 도와드리려고.”

         

        지방에 본가를 둔 학생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긴, 계절학기라도 듣지 않는 이상 학교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면 너는? 고향에 안 내려가?”

        “내려가고 싶긴 한데.”

        “에테르는 집이 어딘데?”

         

        생각해보니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원래 에테르에게 부모나 형제자매라는 게 있었을까? 만약에 있다고 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데.

         

        “금안족이잖아. 제국 출신은 아니겠지.”

        “그럼 호르데처럼 유학파?”

        “…어떻게 보면 그렇겠지?”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거니까.

         

        “어떤 나라에서 자랐어? 카우렐리아? 아니면 수인들이 사는 곳?”

        “금안족이니까 엘랑카야 산맥에서 살았겠지. 그러고 보니 거기도 나라가 있었던가?”

         

        친구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랑카야 산맥은 제국과 수인들의 나라, 그리고 마수들의 거주지를 한데 아우르는 커다란 지형이었기에 어디서 살았느냐에 따라 국적이 달라질 수 있었다.

         

        만약 수인들이 관리하는 지대에 살았더라면 원래의 에테르는 수인 연방의 국민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반대로 마수들이 설치는 무인 지대에 있었다면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것이겠고.

         

        “제국 아니면 어떤 나라야?”

        “역시 수인국인가?”

        “카우렐리아일 수도 있어.”

        “엘랑카야 산맥에 우리는 모르는 도시국가가 있다던지!”

        “고대 폴리스처럼 말이야?”

         

        다들 취기가 오른 모양인지 스스럼없이 내 출신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슬슬 때가 됐다. 나는 술만 퍼마시고 있던 프레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으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낸 프레이. 그녀가 눈을 꿈뻑거리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냐. 꼬맹이는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며 술잔에서 입을 뗐다.

         

        “대한민국.”

         

        단 네 음절.

         

        친구들의 시선이 프레이에게로 꽂혔다. 꼬맹이는 목울대를 움직이며 남은 술을 끝장냈다.

         

        “대한… 뭐?”

        “에테르가 옛날에 나한테만 얘기해줬어. 자긴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프레이가 내 원래 국적을 알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입학시험 때 무심코 말했으니까.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지금 보면 좋은 포석이 되었다. 나는 프레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옆 테이블을 곁눈질했다.

         

        멀쩡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버멜이 켁켁거리며 가슴팍을 두들겼다. 제 친구들은 빙의자가 폭탄주를 잘못 삼킨 줄 알고 깔깔거리는 중이었다. 

         

        “금안족들이 세운 나라야?”

        “그런가 봐!”

         

        친구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딱히 더 꺼낼 말도 없었는지라 주제는 물 흐르듯 다른 쪽으로 넘어갔다. 여자애들이 주로 모인 테이블이다 보니 연애나 미용과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친구 맞장구를 쳐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이미 자정은 지나갔고, 이젠 새벽이라고 해도 될 만큼 늦은 시간대였다.

         

        간만에 과음해서 그런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나마 주량을 알아서 필름이 끊기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하나둘씩 맛이 가고 있었다.

         

        “우욱.”

         

        머리는 어찌저찌 버틸 만한데, 몸을 가누기가 힘든 상태. 

         

        나는 옆자리에서 남은 맥주를 가져온다는 명목 하에 버멜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더 세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도 얘는 눈치를 빠릿하게 못 차리는 모양이다. 결국 내가 표정을 구겨주고 나서야 놈이 일어났다.

         

        “…나 바깥 공기 좀 쐬고 올게.”

        “나도.”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척 팔을 휘적거리며 버멜의 등을 떠밀었다. 알코올로 물들어버린 양쪽 테이블에서 각기 다른 탄성이 터져나왔다. 나는 잡념을 지우며 빙의자를 다시 한 번 밖으로 내쫓듯이 밀어냈다.

         

        그렇게 나와 버멜은 으슥한 골목에서 맞담을 폈다. 씁쓸한 향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까보다 바깥 공기가 더 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

        “입 심심하지 않냐?”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벽에 기댔다. 그러고는 걸쳐 입고 있었던 로브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은박 포장지에 쌓인 알사탕 두 개가 딸려나왔다.

         

        “뭐 먹을래?”

         

        하나는 빨간색 사탕이었고, 다른 하나는 푸른 빛이 감도는 사탕이었다.

         

        “…….”

         

        버멜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딸기맛이 날 것 같은 사탕을 가져갔다.

         

        “나 먼저 들어가 있을게.”

         

        여기서부터 다른 의미로 고비가 될 수 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한 회로를 돌리고 있던 여자애들이 날 보자마자 휘파람을 불어대며 안 그래도 붉게 달아올라 있던 자기들 얼굴을 더욱 더 붉혔다.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

        “너희 썸 탄다는 얘기 있던데 사실이야?”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끊어질 듯 저려오는 측두부를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부럽다! 나도 저런 남자 만나고 싶은데!”

        “엘프는 엘프끼리 결혼해야지, 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또 시작된 연애 이야기. 할리갈리 일반물리학 책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나에게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얘네들은 술기운에 불이 붙은 모양인지 본격적으로 날 이야기의 안주로 삼기 시작했다.

         

        나는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걸 염두에 둔 채로 반론했다.

         

        “대체 누가 그러는데? 나랑 쟤가 뭐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다고.”

        “어머, 시치미 뗄 셈이야? 요새 걔랑 이런저런 일이 있었잖아?”

         

        뭘.

         

        “교내에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것도 모르니? 요새 쉬는 시간마다 붙어 있었잖아!”

        “개서리야.”

        “아하하! 얘 혀 풀어졌어!”

        “야, 너도 철벽 치지 말고 적당할 때 받아들여. 한 2주 전부턴 쟤 흘끔흘끔 쳐다보고 그랬잖아?”

         

        아니, 표정 변화를 읽는 건 수시로 했던 일인데. 

         

        “그리고 너, 결정적으로 이사장님께 상 받고 나서 복도 걷는데 착 달라붙었다며?”

         

        이야, 그걸 누가 또 봤네.

         

        “적당히 거리유지 했는데 뭔 소리야아.”

        “그거 가까이 붙어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는 말이잖아!”

         

        꺄꺄거리며 박수 치는 소리에 고막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들의 반응에 동조하지 않은 건 프레이나 로테 정도 뿐이었다. 로테는 교내에서 연애 금지라며 학생회 임원이나 할 법한 말을 하며 나를 일갈했고, 프레이는 알코올이 끝내 혈뇌장벽을 침투해버린 모양인지 반쯤 풀어진 눈으로 술을 홀짝거렸다.

         

        “와, 이거 로맨스 소설감으로 딱 아니야? 잘생긴 엘프 수석 입학생과, 성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금안족 차석! 문예부에서 조만간 대작 하나 나오겠는데?”

         

        계속되는 오해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고의 시간을 거치자 버멜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적당한 텀을 두고 술기운을 빼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구둣발이 지면과 맞닿아 사박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는 아까 마력초를 피우던 골목 입구로 들어가 땅바닥을 확인했다.

         

        [내일]

         

        [동아리]

         

        품에서 마력초 하나를 꺼내 꼬나물고는 불을 당겼다. 눈앞에서 희멀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툭툭, 하고 재를 떨어내면서 하늘 위 별무리를 감상했다. 나는 허공을 향해 옅은 미소를 띄웠다. 별을 보며 멍때리고 있던 사이 마력초를 다 태워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꽁초 불길이 아예 사그러지도록 발로 쓱쓱 문질렀다. 재만 남은 마력초와 함께 흙바닥에 그려졌던 한글도 형체를 잃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2차 갈 사라아아암!”

        “…이게 2차가 아니었다고?”

        “나 토할 것 같아…….”

         

        언제 계산했는지 밖으로 나오는 친구들. 나는 버멜에게 주고 남은 푸른 색 사탕을 입에 털어넣으며 로테와 프레이가 있는 대열에 합류했다.

         

        해장국 한 술 뜨고 싶어지는 새벽이었다.

       

       

       **

       

       

       ─ SYSTEM : 현재 세계가 멸망할 확률은 55퍼센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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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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