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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청이 생각했다.

         

       이제 눈치 안 봐도 된다!

       왜냐면 나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마신교는 청의 눈치를 너무 얕봤다.

         

       분명 복신적이 필요한 일이 있다.

       불어서 잠금해제라는 미개한 중원치고 대단히 신기한 기능 때문에 청을 대체할 인원도 없다.

       그러니 내가 불어주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싫다고 하면?

       그럼 수십년 기다리시라고 하지 뭐.

         

       그러니 청은 그냥 시원하게 개기기로 했다.

         

       그 지존 호소인이란 놈처럼 팔과 입만 멀쩡하면 된다 그 지랄만 안 하면 된다.

       뭐, 손이랑 입은 필요하니까 뭐 다리나 눈은 없어도 상관이 없어?

         

       그러면 앞으로는 차라리 죽을 거라고 난리를 칠 생각이었다.

         

       게다가 다리도 순조롭게 재활이 되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걸어다니는 것으로도 잘했다 박수를 칠 기세가 아니던가.

         

       그러니 시간 끌면서 때를 노리면 된다.

       청의 계획이었다.

       청이 괜히 심심해서 악인의 대가리를 깨부순 것이 아니었다.

       이래도 되나 안 되나 반응은 어떠려나 살살 간을 한 번 본 것이다.

       나름 큰 결단이었다.

         

       혹여 잘못돼서 고문이라도 하면 어떡해?

       눈물콧물 질질 뽑아 엉엉 울어주고, 피리로 108곡 연속으로 불어줄 자신이 있는 청이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생각보다 내가 더 간절하구나.

       그럼 더 개겨야겠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흑살마장은 같은 장법인데도 여래신장과는 또 달랐다.

       장타라 불리는 손바닥 후려치기를 중점으로 하는 무공이었던 것이다.

         

       장점이라면 그 뛰어난 손맛이었다.

       두개골을 산산조각내는 그 촉감이란!

         

       단점이라면 새까만 손이 좀 징그럽다는 건데.

       까매도 너무 까맣다.

       갈색이나 회색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순도가 십 할에 가까운 검정이었으니까.

         

       청이 이제 경지가 더 올라 손등까지 내려온 새까만 피부를 바라보았다.

         

       “후우…….”

         

       청이 숨을 내쉬자, 검정이 스륵 피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소수마공의 특징에 팔꿈치 아래의 도검불침이 있었다.

       깨끗한 피부와 길쭉하고 늘씬한 손의 모양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작용에 불과했다.

         

       그리고 흑살마장을 쓰려면 단단한 도검불침의 만능팔, 소수 상태를 깨고 사기를 모아 흑장을 일으켜야 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소수마공이 혈도의 정방향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흑살마장을 쓰려면 혈도를 뒤틀어야 했다.

       그것도 멀쩡한 진기를 사기로 뒤틀어 보내기까지 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던 것!

         

       청이 마교 놈들에게 손의 색을 응원봉 휘두르듯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손이 이래서 도망을 안 친다고 여기니까.

         

       어째 비열한 쪽으로만 머리가 핑핑 돌았다.

       천살성의 특징이거나 청이 원래 그렇게 되어먹은 인간이었거나.

         

       어쨌거나, 필사적인 집중력으로 흑살마장을 유지하다 보니 괜히 성취만 쭉쭉 늘었다.

       청의 흑살마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였다.

         

         

         

       어쨌거나 시간은 쭉쭉 흘렀다.

       아마 두 달쯤 된 것 같은데.

         

       심심하다!

         

       그동안 살수를 꽤 많이 죽였다.

       그래서 청의 주변으로 접근하는 놈이 없었다.

         

       사실, 신교 외당의 비밀작전부서인 비작부는 신교의 충성스러운 이들만을 모아놓은 정신적 정예들이었다.

         

       평화로운 중원에 살면서도 신교에 계속 충성하기란 보통의 정신 무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원의 대한 끝없는 증오로 무장한 이 살수들은 정보 수집을 주 업무로, 인신매매와 강도 살인을 부업으로 하여 신교에 적지 않은 자금을 조달하는 귀한 인재들이었다.

         

       즉, 청의 패악질로 죽어가기엔 많이 귀했다.

       그래서 아예 접근 금지를 내린 것이다.

         

       지승주 그 꼬맹이도 청을 슬슬 피해다녔다.

         

       그나마 그 녀석 긁는 맛으로 살았는데.

       슬슬 재미도 없고. 그냥 죽여야겠다.

       쪼그마한 게 벌써 악업만 잔뜩 쌓아서는.

         

       청이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마차의 문이 예의도 없이 발칵 열렸다.

         

       가죽 아래에 살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해골 같은 빼빼 마른 늙은이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청을 내려다보았다.

         

       “아. 밥 시간이에요?”

         

       청이 얌전히 팔을 뻗었다.

       늙은이가 툴툴거리며 청을 안아들었다.

         

       “후레자식 같은 년. 세상 천지 도리가 반대로 돌아가는군. 염왕도 깜짝 놀라서 지옥 순회를 보낼 년 같으니.”

         

       “그러게, 누가 다리 병신을 만들어가지고요.”

         

       청은 노인네의 수발을 받았다.

       수발을 드는 것이 아니다.

       수발을 받았다.

         

       도리가 반대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 소리였다.

         

       이 빼빼 마른 늙은이가 자전마군 최리옹이라 하는 대마두라나 어쨌다나.

       툭 치면 억 하고 죽을 것 같은 노인네 주제에 화경에 든 고수기도 했다.

       대마두라고 불릴 만큼의 악업은 덤이었다.

         

       청의 호송 행렬에 겸사겸사 신교로 복귀하는 고수들이 합류하더니, 이젠 초절정 고수가 넷에 화경이 한 명이다.

       절정 고수는 아주 바글바글했다.

         

       겨우 밖에 있다 돌아가는 고수의 숫자였다.

         

       청은 천마신교라는 집단을 너무 얕봤다.

       중원 정복을 노리는 천마신교는 능력도 없이 입만 산 집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다리는 그저께쯤 전부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그간 부린 꾀병의 경지가 이미 하늘에 닿았다고 할 수준이었다.

       이제 좀 도망칠 만 하지 않나 싶더니 고수가 드글드글해져서 계속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리옹이라니.

       계속 생각하는 건데, 쫌 멋있지 않나?

         

       “천하의 살인귀가 다리라도 병신짝이니 다행이지. 지존께서 아주 혜안을 보이셨어.”

         

       “다리가 아프니까 패악질을 부린다고 생각을 하셔야죠. 멀쩡했으면 승질도 안 부렸어.”

         

       “싸가지도 없는 게 되바라지기만 한 년 같으니. 복신적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똥물에 튀겨 죽였을 년이다. 아주.”

         

       “어허. 밥 먹으러 가는데 더럽게. 할아버지 입조심 좀 하시죠? 흙탕물도 있고 기름도 있는데 왜 굳이 똥물이야.”

         

       최리옹이 퀭한 눈으로 청을 노려보았다.

         

       “어허. 눈깔 그렇게 뜨지 좀 마요. 정들겠어.”

         

       최리옹의 안광이 더욱 흉흉해졌다.

         

       화경쯤 되면 눈깔도 장난이 아니다.

       부담스러워진 청이 딴청을 부렸다.

         

       “……살점을 몽땅 발라놓을 년 같으니.”

         

       뼈와 살을 분리하겠다는 소리였다.

       조금 쫄은 청이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탁 트인 초원에 거대한 천막이 여럿 들어선 풍경이 보였다.

       이제 청이 알던 중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개중 큰 천막으로 들어가자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과 우글우글한 악인들의 환장할 교집합이 펼쳐졌다.

         

       “자전마군 어르신 오셨습니까?”

         

       신교의 악인들이 최리옹에게 인사를 날렸다.

         

       청이 지켜본 결과, 신교의 악인들이 오히려 더 예의가 깍듯한 면모가 있었다.

         

       그 이유도 안다.

         

       저번에 술 처먹고 진상을 부리던 놈의 대가리가 박살이 나는 광경을 봤거든.

       이 동네에서는 예의가 없으면 목숨도 없어지다보니 다들 예의가 발랐다.

         

       “어르신, 그 미친 년은 그냥 머리채나 잡고 질질 끌면 되실 것을, 굳이 그렇게 애지중지.”

         

       마인 하나가 아부를 떨다 곧장 입을 다물고 눈을 깔았다.

       최리옹의 전신에서 줄기줄기 뻗어나가는 보랏빛 벼락 줄기들 때문이었다.

       자전마공 특유의 자전기다.

         

       덕분에 괜히 청만 몇 줄기 얻어맞았다.

         

       식탁까지 배송된 청이 삶의 유일한 낙인 미식을 부렸다.

       한참 탐욕으로 양 볼 미어터지도록 우겨넣고 있는데, 식탁 반대편에 누군가 뒤늦게 자리를 잡았다.

         

       “으, 꼬믕이.”

         

       청이 불룩한 양볼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얼굴 보이면 슬그머니 피해다니더니만, 오늘 마음을 먹었더니 웬일로 눈앞에 떡 나타났다.

         

       지금은 고수들 많아서 참겠는데,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청의 미소가 스산했다.

         

       지승주가 인사도 없이 곧장 입을 열었다.

         

       “일전에.”

         

       “머?”

         

       “일전에 강자존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청이 씹던 음식을 꿀꺽 삼켰다.

         

       “뭐야. 지금까지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오래 생각했습니다만, 소저가 한 짓은 그저 살업이지, 강자존이 아닙니다.”

         

       “그래? 왜? 내가 신교도가 아니라서? 너네는 되고 난 안 되니까?”

         

       “아닙니다. 강자가 약자의 목숨을 취할 때는, 그게 꼭 필요한 일이여야 합니다. 최소한 높은 경지를 위한 자양분이 되어, 의미 있는 죽음이어야 합니다.”

         

       머리깨나 굴린 모양이지만.

         

       상대는 과거 문풍당당 생산직 근로자였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생산직의 어려운 자리를 쟁취한 자수성가의 거인!

       인문학 전공자가 기초생활수급자 아니면 시간제 단기 계약직으로 겨우 목숨이나 연명하는 냉혹한 사회가 아니던가.

       가히 신화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청이었다.

         

       “약육강식 자연계의 선택이시다? 배가 부른 맹수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먹이 사슬로 증명되는 자연적 순환?”

         

       “……!”

         

       지승주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청은 그냥 관심을 끊었다.

       개소리하는 놈에게 굳이 진지하게 대꾸해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웃기는 소리다.

       심심해서 사냥을 하는 맹수가 얼마나 많은가.

       멀리 안 가도 골목골목 털바퀴들 노는 꼴만 봐도 알 수 있는 걸.

         

       “그런데.”

         

       지승주가 말을 붙였다.

       청이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나 하고 쳐다보니 지승주는 표정도 없는 주제에 어쩐지 의기양양한 기색이었다.

         

       뭐야.

       말상대 좀 안해줬다고 지가 이겼다던가.

       뭐 그딴 생각을 하고 있나?

         

       그럼 언쟁의 궁극적 최종 오의, 말꼬리 잡아 인신공격을 보여줘야겠는데.

       청이 언쟁의 금지된 비술을 한 발 장전했다.

       그때였다.

         

       “그 손 말입니다.”

         

       “어?”

         

       “저번엔 분명히 팔목 위로 이 할 부근을 좀 넘어서까지 검은 색이었는데 말입니다.”

         

       청이 당황했다.

         

       사실 흑살마장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유지하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식사 중에는 그 흑수가 점점 줄어드시더군요?”

         

       밥 먹을 때는 아무래도 좀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는 없다.

       애초에, 밥 좀 편하게 먹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하하. 우리 꼬맹이가 눈이 삐어서 잘못 본 게 아닐까?”

         

       “흑장, 숨기실 수 있으시지 않습니까?”

         

       어미에 물음표가 붙었으나 실상 이미 확신하고 하는 통보다.

       발뺌해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치 빠른 꼬맹이. 진작 없애버릴걸.

         

       이제 와 죽일 마음을 먹기는 했어도, 그간의 잡졸들처럼 막 죽일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이 자식, 이래뵈도 이 쟁쟁한 고수들이 설설 기는 높은 분이었던 것이다.

         

       “들켰네?”

         

       순전히 자기가 부주의했던 주제에 ‘들켰네?’ 이지랄이었다.

         

       청의 손이 다시 희게 변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

       원래 검어서 추하던 것이 변하고 나니 새삼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인의 손이었다.

         

       지승주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모처럼 없던 표정을 깨고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그리고 건너건너 앉아있던 흑살마군이 놀란 기침으로 씹던 고기를 모조리 전방에 힘찬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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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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