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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제국의 수도에는 ‘노란 담벽 너머’라고 부르는 장소가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빈민굴이었다.

       

       수도에 살지만 수도의 번영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 팔이 잘린 장애인, 태생이 비루한 천민, 일을 소개받을 수 없는 죄인, 한 끼 먹을 재산조차 없는 빈민들이 그곳에 뭉쳐산다.

       

       그러한 빈민굴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다.

       

       빈민굴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수도의 번영이 너무 찬란했다. 가장 위대한 도시에 빈민굴 같은 ‘오물’이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수도의 시민들은 그곳을 그저 ‘노란 담벽 너머’라고 부르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는 했다. 가깝기에 더욱 선명한, 그러나 언제나 곁에 있었기에 누구도 굳이 자세히 살피려하지 않는 그림자같은 장소.

       

       이름을 붙일 수 없기에 그저 ‘노란 담벽 너머’라고만 부르는 장소다.

       

       

       “바오로 수도사제님. 오늘도 ‘담벽 너머’로 가십니까?”

       “아, 형제님. 경비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배급할 음식을 들고 급식소로 가는 길입니다.”

       

       “사제님이야말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 게으른 치들이 사제님을 해하지 않아야할 텐데… 괜찮으시다면 병사를 한 명 붙여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저도 제 한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담벽 너머의 사람들은 구빈원에서조차 버려진 사람들이다. 정확히는, 구빈원의 종교적 원칙으로 인해 수혜를 입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구빈원은 가난한 이들에게 일을 가르치고, 일을 배우는 동안 먹여살리고,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장소다.

       

       하지만 빈민굴의 사람들은 ‘일’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일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이곳 ‘담벽 너머’에서 생활한다.

       

       구빈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교회와 제국이 협력해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전부다. 이들은 급식소에서 식량을 배급받는 대신, ‘담벽 안쪽’을 감히 침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국의 ‘담벽 안쪽’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된다.

       

       위대한 제국의 시민들은 ‘빈민도 없고 범죄도 없는’ 이상적인 도시에서 살아간다. 심지어는 장애인이나 범죄자마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제국의 수도는 분명 ‘이상적인’ 장소였다.

       

       제국의 하민들은 공장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맥주와 잡지와 싸움을 즐기며 순박한 행복 속에서 살아간다.

       

       제국의 수인들은 여러 부분에서 차별을 받지만 그들 수인들만의 사회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부유함을 명예로 삼는다.

       

       제국의 귀족들은 의회에서 교양없이 치고박고 싸우다가도 사교계에서는 가식과 고풍스러운 예절 따위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젠체한다.

       

       제국의 사제들은 보육원과 교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복된 말씀을 나눈다.

       

       각자의 슬픔과 불행과 고난이 있지만.

       

       제국은 그러한 슬픔조차도 이상적인 사회였다.

       

       

       “그래도 거리를 걸으실 때는 너무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닐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예. 그러면, 수고하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하지만.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에서 조금만 옆으로 자리를 옮겨보면.

       

       

       “수도 사제인 바오로입니다. 무료 급식소에서 사용할 식량을 가지고 왔습니다.”

       “…문 앞에 두고가세요.”

       

       “문 앞에 둔다면 누군가 가져가지 않겠습니까?”

       “급식소의 식량을 훔치려는 몰상식한 녀석이 있다면, 어차피 이곳에서 오래 못 살 겁니다. 두고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무기력한 사람들이 그림자 아래에서 충혈된 눈을 번뜩이는 비참하고 비루한 사회가 존재한다.

       

       바오로 수도사제는 이곳의 공기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찾아온 장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어쩌면 사제로서 느끼는 어떠한 종교적 거부감─, 역겨움과 혐오일지도 몰랐다.

       

       마약 중독자, 걸인, 무기력하고 신앙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쓰레기같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거리에 널부러진 쓰레기보다 더 흔하게 존재했다.

       

       .

       .

       .

       

       “수도사제님, 돌아오셨습니까?”

       “예, 형제님. 제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수도회에 새로운 책들이 들어왔습니다. 호메로스 가경자님의 신작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사실, 교황청의 사제들과는 달리, 수도사제인 바오로는 ‘호메로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존경하기는 한다.

       

       교회의 영원한 숙원이었던 ‘보편적인 아동 복지’를 이룩해낸 사람, 나아가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들을 위하여 자선하도록 만들어낸 ‘기적’을 허락 받은 성인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청빈과 성실을 미덕으로 삼는 수도자로서….

       

       호메로스의 ‘나누는 미덕’이라는 것은 역시 너무 과하게 느껴졌다. 가난하고 나태한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구호를 보장한다면 저들이 어떻게 구원을 찾을 수 있겠는가.

       

       물론 사제인 자신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인색한 율법학자들과 다를 게 없다면서 비난받을 테고, 나아가 파문까지도 당할 수 있겠으나─.

       

       역시.

       

       좋게 보기는 힘들었다.

       

       

       “이 또한 생각으로 죄를 짓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수도사제 바오로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었다.

       

       기적을 내려받은 ‘가경자’ 호메로스를 공경하는 사제로서의 자아와, 복지 재단을 운영하는 ‘자선사업가’ 호메로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수도자로서의 자아다.

       

       두 자아 사이에서 고뇌하던 바오로 수도사제는 사역자가 가져온 책의 겉표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 책에서는 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결국, 두 자아 모두 ‘작가’ 호메로스를 사랑했다.

       

       만약 호메로스가 후에 성인으로 추대된다면 문학의 수호성인이 될 테지. 개인적인 호오나 성향과는 상관 없이,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깊은 철학과 사유가 담긴 명작들이었다.

       

       또한 언제나 사색에서 답을 구하는 수도자에게 문학이란 시간을 소비하기에 썩 괜찮은 취미였다.

       

       그러므로 바오로 수도사제는 그러한 고뇌의 합의점을 찾아, 답답한 고민은 그만하고 호메로스의 신작이나 읽기로 결정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분량이 많아서 좋네…. 앞으로 며칠 정도는 휴식 시간이 허전하지 않겠어.”

       

       .

       .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전형적인… 러시아 문학적인 소설이었다.

       

       이러한 표현이 위대한 대문호의 위대한 역작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다시 말하겠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러시아 문학’ 그 자체였다. 수많은 소설가들이 목표로 삼는 ‘완벽한 소설’의 이상적인 도달점 중 하나이자, 사람의 비루함과 이상을 온전히 담아낸 역작이었다.

       

       

       “이번 작품은 조금… 혼란한 느낌입니다.”

       “그래? 어떤 점에서?”

       

       “죄에 대한 소설인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살인과 자살이라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가 나오지만… 또한 희망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음,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련님께서 ‘낭만주의’라고 부르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하드보일드’라고 하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하고는 조금 다르군요.”

       “그렇지!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다고한들, 그 상황을 겪고있는 사람에게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이니까. 그래서 더 소중한 삶이고.”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서 사형수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 있었다.

       

       극단적인 상황, 극단적인 범죄, 극단적인 환경.

       

       사람을 음울한 악의로 몰고가는 그러한 환경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죄수’들의 선량함과 평범함에 대해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선과 악이 어째서 함께 공존하는지, 나라의 법과 사람의 도덕이 어째서 모순되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인간사의 비루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해야할 ‘사랑’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신의 사랑 말이다.

       

       사실, 도스토옙스키가 신의 사랑에 경도된 이유는 조금 단순한데,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독서가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성경 읽다가 사형 직전 갑작스럽게 사면되어 풀려난 것을 ‘신의 기적’이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지극히 러시아 문학적인 소설이었으며, 러시아 문학 그 자체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이야말로 러시아의 모순 그 자체였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는 그러한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이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삶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삶의 의미보다도, 삶 그 자체를 더 사랑해야한다고?”]

       [“반드시.”]

       

       .

       .

       .

       

       [“나는 사람을 믿어. 형을 믿듯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2]

    #####

    ‘마르크스레닌’님! 가장 먼저 정답 맞히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HD페가수스님, 녹차가좋아요님, 그외 정답 맞히신 모든 분들 또한 축하드립니다! 생각보다 문장만 보고서 곧바로 답을 떠올리신 분들이 굉장히 많네요. 분량이 분량인만큼 은근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다들 주인공 수준의 기억력을 가지고 계신 게 분명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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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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