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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수련해온 것이지?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이미 명상을 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미 수백 번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황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마치 지쳐버렸다는 것처럼, 힘 빠진 목소리.

        

       하지만 검성이 보는 지금 황녀의 신체 상태는 처음 산에 올라왔던 시기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이미 내공을 가다듬었으니까.

        

       “처음 이 산을 올랐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올랐습니다. 그리고 처음 당신에게 명상을 배웠을 때는 그저 문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고 배웠던 시간을 되돌리며 감을 잡았습니다.”

        

       “음?”

        

       기묘한 인상의 황녀였지만, 지금 이 소녀가 하는 말은 그 모든 분위기 중에서도 가장 기묘했다.

        

       “감을 잡은 뒤에는, 산 아래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니, 선생님께 말을 걸기 전부터.”

        

       “호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제니퍼나 검성이나, 소녀의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창밖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다시 산을 오르고, 명상을 배우고, 더 나은 상태로 몸을 만들어내고. 되돌아가면 몸은 원래의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이미 배웠던 기억과 감각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렇군.”

        

       이야기를 듣던 프레데릭은 껄껄 웃었다.

        

       “그랬던 거였어.”

        

       “스승님은 저 이야기를 믿습니까?”

        

       “너는 믿지 않느냐? 네 표정만 보면 오히려 이야기를 들었기에 납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만.”

        

       무엇보다, 제니퍼의 얼굴도 웃고 있었다.

        

       “시간을 돌린다는 소리인가?”

        

       마치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듯, 검성은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물으며 의자를 뺐다. 황녀와 제자에게 드디어 자리를 권하고, 자기도 지저분한 식탁의 한 면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렇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이견이 있다만.”

        

       검성이 웃으며 말하는 것을 보고, 황녀는 자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으며 물었다.

        

       “이견 말씀이십니까?”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하는 황녀에게, 프레데릭은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예지라고.”

        

       “예지라고 하기에는…… 제가 원하는 순간에 시간을 돌리게 됩니다만.”

        

       “바꿔 말하자면 보고 싶은 곳까지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미래를 알지 못했을 때의 미래를.”

        

       “…….”

        

       황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내가 이런 소리를 한다고 해봐야, 직접 겪어보는 자네의 생각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겠지.”

        

       드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니퍼가 의자에 앉는 소리였다.

        

       “이것 참, 귀한 손님을 두고 차 한잔 내어주지 못한 것이 아쉽군. 미안허이. 마침 차가 떨어져서.”

        

       “아닙니다.”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군.”

        

       “그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시간을 돌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는 없는 법이지.”

        

       “……알이었던 때를 기억하는 개구리라면 어떻겠습니까?”

        

       “누구나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에 남는 추억은 몇 개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 약해서, 어떤 계기만으로도 부서지기 마련이지. 당장 기억에 관여할 수 있는 마법만 해도 열 손가락에 다 찰 정도로 꼽아볼 수도 있네.”

        

       “…….”

        

       잠깐 생각에 빠진 황녀를, 프레데릭은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번 기억도 되돌릴 셈인가? 원하는 것은 다 얻었으니.”

        

       “…….”

        

       황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불편한 것 같은 표정. 하긴, 수백 번 얼굴을 보았다고 하니 나름대로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표정이로군. 평소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는데.”

        

       제니퍼가 재미있다는 듯 말하는 것을 듣고, 프레데릭은 이 소녀가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거래는 어떻게 되는가?”

        

       프레데릭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거래가 아예 없었던 것이 되면 우리에게 갚을 것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건에 대해서는 제 나름대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관점이군.”

        

       제니퍼가 끼어들었다.

        

       “애초에 보상받을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보상받는다니, 우리가 너무 이득 보는 일이 아닌가?”

        

       “……제가 얻은 것이 있으니…….”

        

       “너무 체면치레할 필요는 없다.”

        

       프레데릭은 웃으며 말했다.

        

       70년 조금 넘는 인생 중 이런 기연을 보게 되다니, 아까 황녀가 거래 대상으로 걸었던 그 조건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시간을 돌리며 무엇이든 습득할 수 있는 이를 보았는데, 그깟 칼잡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무런 재능도 없이, 그저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도하며 시간을 맴돌더라도 반드시 얻고야 마는 이상한 인간을 보았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보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 보상을 하고 싶다면, 내가 죽기 전 한 번은 나를 찾아오너라. 그리고 그때는 내가 너의 정체를 맞춰보마.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수께끼는 출제자가 지나치게 힌트를 주면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니까.”

        

       “…….”

        

       “우리에게 빚진 것이 있다고 해서 시간을 돌리지 않을 필요는 없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나아가라. 그러기 위해서 수백 번을 되돌려 가며 내 아래에서 수련했던 것이 아니냐?”

        

       재능이 없는 이를 제자로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의 아래를 떠나곤 했다. 재능이 없다는 것에 절망해서. 혹은 귀찮고 힘든 수련에 질려서.

        

       하지만 이 소녀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고 추정할 수는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 능력을 ‘노력하는데’ 쓰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당장 경마장에 가서 역전승할 말의 마권을 잔뜩 사다가 재산을 불려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맞추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째서?

        

       뭔가, 한가지 목적이 있는 자.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소녀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리라.

        

       그리고 검성 프레데릭은 자신이 원하는 것, 그 단 하나를 향해서 나아가는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프레데릭은 제니퍼도 혐오하여 방 안에 들여놓지 않았을 테니까.

        

       “그것이 최종적인 조건이십니까?”

        

       “그래.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아래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텼으면 너도 나의 제자다. 어디 가더라도 당당하게 생각해라. 검성이 받아준 제자는 그렇게 많지 않으니. 하긴,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는 곳이긴 하다만.”

        

       프레데릭이 껄껄 웃는 것을, 황녀 실비아 팬그리폰은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그렇기에 프레데릭은 더 유쾌했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웃던 프레데릭은 이 소녀의 기억 속에 남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 이 소녀가 자신을 스승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꼭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그리고 검성과 황녀의, 다소 훈훈한 대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니퍼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나와의 거래 조건을 행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실리주의자라서.”

        

       “…….”

        

       황녀는 그런 자기 선생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뭐, 네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만.”

        

       “그렇다면 이번에 내려가면서 제가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을 알려주십시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흠.”

        

       제니퍼는 굳이 그렇게 말하는 황녀를 재미있다는 듯 보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마. 지금 당장 시간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내게도 즐거운 일일 테니까.”

        

       “…….”

        

       황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만약 앞에 찻잔이라도 있었다면 말없이 그 잔을 홀짝였을 거라고 프레데릭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황녀에게 무척 어울렸으리라.

        

       *

        

       ‘조건’의 일부를 이행하기 위해서 두 제자가 산에서 내려가고, 프레데릭은 고요한 오두막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볼 일이 있다면 들어오시게.”

        

       “…….”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이었다.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군. 젊은 것이.”

        

       쯧쯧, 혀를 차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청년은 그대로 검성이 앉아있는 테이블까지 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미안하지만 차는 없네.”

        

       “그런 귀족적인 취미는 없수다.”

        

       “그거 다행이군.”

        

       검성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황녀가 말한 그 검사로구만? 나와 호각일 수도 있다는.”

        

       과연,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프레데릭은 그를 훑어보았다.

        

       단순히 재능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청년의 수준은 검성보다 한 수 위일 수도 있었다. 7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검성보다도 더.

        

       “훌륭하군. 나와 검을 맞대볼 생각은 없는가?”

        

       “……어차피 맞대봐야 조만간 시간이 돌아갈 예정 아임까?”

        

       그 말에 프레데릭은 웃음을 터뜨렸다.

        

       “눈속임 마술의 시시한 비밀을 알아버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군. 왜, 신기하던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허탈한가?”

        

       “…….”

        

       마치 토라진 것 같은 표정의 청년을 두고,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벽난로 앞까지 가, 그 위에 걸려있는 검들을 하나하나 내려 허리춤에 차기 시작했다.

        

       “거 어차피—”

        

       “이보게, 청년.”

        

       검성이 단단한 목소리로 껄렁한 투덜거림을 자르며 말했다.

        

       “우리의 세상이 끝나고 새로 짜여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몇 시간 정도는 남았을 거라고 생각허이.”

        

       “…….”

        

       “내일 세상이 끝나도 살아있는 자는 살아가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기억하고, 생각하며, 우리가 존재했던 이 순간이 여기에 있다면,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네. 설령 저 위에 있는 여신이라고 하더라도.”

        

       검성은 카타나의 손잡이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시간을 돌리고, 스스로 기억을 잊는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그저 결과일 뿐. 결과가 원인을 어떻게 없앨 수 있겠는가? 시간이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 소녀에게는 그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터인데.”

        

       프레데릭은 입가에 대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리는 꼿꼿했고, 발은 단단하게 땅을 밀어내며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은 그야말로 검성.

        

       조금 전의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은 없었다.

        

       “그러니, 청년. 남은 시간 동안 나와 일 합을 겨뤄보지 않겠는가?”

        

       입을 살짝 벌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붉은 머리의 청년은, 이내 하하, 하고 짧게 웃었다.

        

       “오래 살아서 그런가, 좋은 소리를 하네, 영감.”

        

       그 얼굴에는 이미 허탈함 따위는 지워져 있었다.

        

       “좋아, 남은 시간 동안 한번 신나게 날뛰어 보자고.”

        

       가히 차기 검성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당당한 태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쓰다보니 넘쳐서 한 화 더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홀수에 불편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Soyeowun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을 보면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더라도 칭찬은 커녕 끝까지 읽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군대에서 혼자 노트에 끄적이는 글을 보여달라고 엄청나게 때를 쓰는 동기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정작 보고 난 뒤에 비웃음만 당했고, 자대에 가서도 몇 번이나 보여달라고 했던 선임은 저의 글을 보고 차마 못썼다고는 못하고 여기저기 지적 정도만 했었습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낫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제가 저의 글을 보고 잘썼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저의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감각이 언제나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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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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