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0

       “어으어어어!!”

       

         

       얼굴 가죽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른다. 하지만 벨레드는 얼굴을 부여잡을 틈도 없었다.

         

       살아야 한다. 살려면 굴러야 한다. 뛰거나 날거나 뭐 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저 발길질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다. 하여 벨레드는 정말 이를 악물고 구르고 또 굴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것조차 자신의 회피 기동이 아니라 저쪽이 원하는 유인책임을.

       

         

       “허억!”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 벨레드를 반긴 건 말 그대로 ‘반갈죽’ 을 당한 두 악마.

       한쪽은 재생과 회복의 스페셜리스트요, 다른 한쪽은 흡수의 대가이건만. 뭐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해버렸다.

         

       

       “하겐티! 하르파스! 이, 일어나라! 일어나!”

       

         

       몸이 두 조각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붙여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혹은 자신의 힘이라도 좀 나누어주면 이걸 먹고서 부활이라도 하지 않을까.

       다급한 나머지 현실 가능성은 전부 잊은 채, 벨레드는 네 개가 된 두 악마를 꺼내려 했다.

       

          

       “끄으으으!!”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보아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세게 박아둔 건지! 원래부터 박혀있던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커헉! 허억!”

       

         

       안 된다. 불가능이다. 이건, 못 뽑는다. 제 힘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뭐 이딴 상황이 있나 싶은데 정말로 있어서 더더욱 두렵고 무섭다. 공포스럽다.

       악마가 무섭다는 게 참 웃긴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이건, 이건 악몽이야. 빌어먹을.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그래. 이건 전부….’

       

         

       꿈. 일 리가 있나. 문을 넘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파 죽겠는데.

       하하하. 하하하하. 벨레드가 어이가 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무렵. 그의 뒤에서 데우스가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휘적거리는 것이 어디 마실이라도 나온 모양새다. 실상은 꽤나 치열한 전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거기서 더더욱 공포감이, 그리고 생존본능이 인 벨레드는 다급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거, 거래하도록 하자! 여명! 나, 나팔!”

        “….”

        “이 몸이 아는 걸 다 불겠다! 전부 다 말이야!”

        “….”

       

         

       묵묵부답.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벨레드는 그게 죽음이 제 아가리를 쩍, 하고 벌리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이 몸이! 내가!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벨레드! 지옥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악마다! 그만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소리이기도 하지!”

       “….”

       “무엇을 원하지? 정보? 협조? 그, 그도 아니면 길잡이? 뭐든 말해라! 할 수 있어! 다 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대답이 날아올 것 같지는 않다. ‘응. 떠들어라. 나는 들을 생각 없어.’ 라고 상대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내, 내게도 자간과 같은 기회를 주기를 청한다! 그것이….”

        “아아. 이건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겠네.”

         

       

       오해는 빨리 빨리 풀고 가야지. 그런 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잖아.

       데우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 악마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수정해주었다.

         

       

       “그 자간이라는 악마 친구.”

        “그래! 자간!”

        “그 친구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오히려 아주 멋지게 퇴장했지.”

       

         

       첫 번째 보스 치곤 그래도 나름 ‘보스답게’ 갔다. 추잡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비겁한 수를 쓰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과 정면으로 부딪쳤고 승패가 갈리자 깔끔하게 승복하고서 그대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와중에 자신의 부끄러운 소개조차 멋지다고 해주지 않았나.

         

       그 멋진 모습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아무리 적이라도 애먼 쪽이 배신자로 오해 받는 건 정정해줘야지. 그걸 어떻게 참아.

         

       

       “아, 아니. 그러면… 네, 네놈은 대체 어떻게 이리 자세히 아는 거지…?”

         

       

       내가 그거까지 자세히 말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데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그리곤 연신 살려달라는 벨레드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는 안 돼. 보스 많이 살리면 나중에 골치 아프기도 하거니와 황궁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살려주면 내 사회적 인식은 어쩌라고.”

         

       

       그러니까 우리 아름다운 이별을 가지자. 걱정할 건 없어. 금방 끝나.

       벨레드의 머리를 쓰다듬던 데우스는 제 손을 거두고선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

       

         

       *

         

       

       같은 시각. 제국 어딘가.

         

       

       “…음.”

       

         

       멍하니 자리에 대자로 뻗어있던 아스타로트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긁적이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직 밥 시간 아닙니다.”

       

         

       옆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 중이던 남자가 혀를 찬다.

       

         

       “그거 아니거든.”

        “배가 고파서 일어나신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면 아스타로트 님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데요.”

       “누구를 무슨 돼지 새끼로 아나. 나 식탐 아니다?”

        “그렇긴 하죠. 그러면 뭡니까?”

         

       

       잠깐 이게 맞나, 하고 침음을 흘리던 아스타로트가 결국 입을 연다.

       

         

       “벨레드 놈의 기운이 사라졌는데.”

       “벌써요?”

        “어. 문 열고 등장한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사라졌어.”

       

       

       말이 됩니까? 다른 이도 아니고 그 벨레드인데? 위엄 돋는 척 하다가도 수틀리면 약삭빠르게 본인 살 길 강구하는 그런 악마가?

         

       

       “하겐티랑 하르파스의 기운이 사라졌다고 한 게 30분도 채 안 되었습니다.”

       “그랬지.”

        “한데 이번에는 벨레드까지 그렇게 되었다고요.”

        “그러네.”

         

       

       잠깐 멍하니 아스타로트를 바라보던 남자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이런데도 그 인간. 아니, 그 괴물이랑 싸우실 생각입니까?”

        “….”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조심스러운데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죽고 싶어서 환장하셨습니까?”

        “말조심해.”

       “아니, 조심하라고 하기엔 너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이건 진짜 아니라고요.”

         

       

       나름 정하고 정한 악마 측 인선을 그 괴물은 웃으면서 다 때려 부쉈다.

       덕분에 모았던 에너지는 죄다 허공에 흩뿌려진 셈이 되었고 이 세상으로 건너온다는 계획은 말 그대로 완벽하게 개박살이 나버렸다.

       이제 다시 이전처럼 짐승들을 보내야 할 텐데, 그 인간이 있는 이곳에 그게 가능은 할까?

         

       악마들도 이제 끝났네. 남자가 그리 중얼거리는데 정작 아스타로트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히히! 웃으면서 여기저기 굳어있던 몸을 풀어주고 있다.

       

         

       “난 더 재미있는 거 같은데?”

        “혹시 어제 드신 밥에 마약이라도 섞어 드신 겁니까?”

       “네가 한 요리인데 그걸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제가 정상인 걸 보니 요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소리인데.”

       

         

       후우, 한숨을 내뱉은 남자는 마지막으로 제 주인을 말려보기로 했다.

         

       그 괴물. 그 남자가 그래도 신용은 있어서. 자신이 내민 조건을 통해 어떻게 살려주긴 했지만. 이후로 우리가 그 어떤 말썽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은 악마다. 이 세상을 수십 년 전부터 침략한 주구들의 주인이다.

         

       반응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다. 또 무슨 꿍꿍이냐며 경계하고 죽이려 해도 무죄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다고 생각할시, 이번에는 꼼짝없이 죽고 말 게 확실하다.

       

         

       “알아. 그래서 나도 이제까지 고민 좀 더 해본 거잖아.”

       “고민을 했으면 답도 있겠죠. 그래서 나온 결론이 뭡니까?”

       

         

       사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남자는 진작 알고 있다. 아스타로트의 일부이기에.

       다만 한 번 더 묻는 것은 정말로 혹시나, 그녀의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까 싶어서.

       

         

       “하겐티도 쓰러트리고 하르파스도 제압하고. 이제는 벨레드까지. 이게 가능한 일이야? 응? 단기간 내에 이런 위용을 보였던 건 내 기억 상으로 왕밖에 없어.”

       “자간을 빼먹으셨습니다.”

        “아. 맞아. 걔도 있었지. 아무튼.”

       

         

       히히히. 아스타로트는 누워있던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서 말을 이었다.

       

         

       “가자.”

        “갑자기 어디로요.”

       “어디긴. 하등생물… 아니지. 이 단어도 이제 쓰지 말자. 인간? 그래. 인간들이 그 뭐냐. 이능력? 그걸 다루기 위해 만들었다는 장소. 그 남자도 거기 있다며.”

       “제가 알아본 바로 요람이라고 합니다.”

         

       

       요람? 그래. 요람. 음. 네이밍 센스가 좀 구리네. 인간들이 미적 감각이 없어.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아스타로트는 ‘그래. 바로 거기.’ 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제 나는 돌아가도 좋은 꼴 못보고. 내가 그러면 너도 마찬가지지. 거기에 정보를 분 건 너이기도 하니까 우리 둘 다 그냥 좆된 거나 다름이 없어.”

       “…할 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여기서 살 길 강구해야지. 그리고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길은 우리가 악마라는 사실을 십분 활용하는 거고 말이야.”

         

       

       남자가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아스타로트를 바라본다.

       

         

       “악마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거지. 아주 상세하게.”

        “아주 제대로 배신이군요.”

        “배신이 아니라 배 갈아타는 거라고 하자. 이미 우리 배는 침몰 직전이고, 여기 배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물을 데리고 있고. 그리고 솔직히 이거 너 때문이잖아?”

         

       

       할 말이 없었던 터라 남자는 마음대로 하라며 본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어째 이럴 것 같아서 요람으로 향하는 길은 전부 파악해둔 후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이면 좀 그런데요.”

        “뭐가?”

        “단순히 악마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아스타로트 님의 효용성을 입증하기가 힘들 겁니다. 다른 게 더 필요해요.”

       “다른 거? 뭐가 있는데. 말해봐!”

       

         

       혼자서 고민해볼 생각은 없군요. 남자는 한숨을 내뱉고선 제 의견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지옥으로 향하는 길잡이라든가.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든가 말이다.  

       

       

       

    다음화 보기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