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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기였어. 내가 어떤 놈인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리가 없지. 그런데 녀석이 내 손을 꼭 잡고 해맑게 웃어주더군. 그때, 아기의 미소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나? 이 아이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고. 이 아이 앞에서 부끄럼 없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그런 마음이 가슴에서 끓어올랐어. 나 같은 인간이 그러리라고는 평생 상상도 못 했었는데……. 하하, 그렇게 미친 싸움닭은 그날로 세상에서 사라졌다네.”

         

       미노바는 그런 넋두리 비슷한 것을 몇 차례 더 늘어놓았다.

       거침없이 세상을 쏘다니던 야생의 투계가 어떻게 날개를 접고 우리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남을 괴롭히는 데 쓰던 부리와 발톱을 어떻게 꺾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사정에 대한 것이었다.

         

       ‘미노바는 갈 곳 없는 원한을 풀기 위해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이 어찌나 생략된 게 많은 설명인가.

       트릴 트릴로 제작진의 무심함에 혀를 내둘렀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이렇게 속사정을 드러내도 됩니까? 따님에게도 안 밝힌 이야기라면서요. 혹시 제가 이걸로 약점이라도 잡으면 어쩌려고요?”

         

       그때, 호탕하게만 보였던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따뜻한 눈빛도 포식자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야, 이 씹……. 너……호, 혹시……루엘로에게 말할 거냐?”

         

       그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과 으르렁거림이 동시에 섞여 나왔다.

       뒷골목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사람이 내뿜을 수 있는 살벌한 빛이 그의 눈동자에 번뜩였다.

         

       나는 속으로 찔끔 놀라 얼어붙었으나, 웃는 남자 덕분에 겉모습은 태연할 수 있었다.

       나는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후후, 그럴 리가요. 아무에게도 말 안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 말인데요. 루엘로 양의 병을 치료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내 말에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태도는 부탁하러 온 사람이 취할 게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딸 때문에 누그러졌다고 해도 그 성질머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미친 싸움닭이 그날로 세상에서 사라졌긴 개뿔이.

         

       그는 모히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 미안하네……. 나, 나도 모르게 옛날 버릇이 튀어나오고 말았군…….”

       “괜찮습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조금 감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네 재주만 대단한 줄 알았건만, 배짱도 대단하군. 내가 투기를 내뿜으면 다들 놀라서 얼어붙는데…….”

       “닭 흉내를 내고 다니는 사람이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나의 농담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볏을 흔들었다.

         

       “끙. 이 복장은 말이지…….”

         

       그때였다. 루엘로의 고함이 들린 것은.

       

       “하, 하지 마세요!”

         

       미노바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방금 그가 보여주었던 험악한 싸움닭의 얼굴을 한 채.

         

       나도 울음이 나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고 울고 있는 아이.

       우리 단원 세 사람은 그녀를 둘러싸고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엘로가 입은 동물 잠옷은 평범한 파자마가 아니었다.

       풍성한 노란색 털에, 다리에는 닭발 형태의 신발이, 팔에는 날개 장식이 있었고, 머리에는 병아리의 머리를 본뜬 후드를 푹 눌러 쓸 수 있게 되어있었다.

         

       잠옷이라기보다 탈 인형에 가까운 옷이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때, 그녀를 병아리 인형이라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병아리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후드가 벗겨져 있었다.

         

       “보지 마세요!”

         

       루엘로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후드 아래 숨겨져 있던 그녀의 머리가 드러났다.

       여기저기서 그녀를 두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노바에게 듣기로 그녀는 4살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마치 신생아나 노인의 것처럼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그것도 남자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인데…….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우우.” 하고 신음을 흘렸다.

         

       저것도 병의 증상 중 하나일까?

         

       “루, 루엘로…….”

         

       엘라는 그녀의 옆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의 손에는 루엘로가 쓰고 있던 병아리 머리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장난인지 호기심인지 그녀가 루엘로의 후드를 벗기고 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가 숨기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낸 꼴이 된 것이고.

         

       “미, 미안해. 난 그런 줄 모르고…….”

         

       엘라가 재빨리 병아리 탈을 루엘로의 머리에 다시 씌웠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울먹이는 그녀를 품에 안고 토닥여 주었다.

         

       미노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딸이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니라서 안심한 듯했다.

         

       “연금술 길드에서 만든 ‘은하수’라는 약 때문에 저렇다네. ‘저주 역병’ 치료제로 개발된 것인데 종양 억제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용 중이지. 하지만 보다시피……부작용이 심하네. 속이 메스껍고 때로는 피를 토하기도 하지. 머리가 빠지는 것 정도는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 물론 아이는 머리카락을 제일 안타까워하지만…….”

         

       그는 한바탕 울어서 기운이 쭉 빠진 루엘로를 품에 안아 들었다.

       그녀는 몸이 약해서 그런지 이 정도에도 금방 지쳐 잠이 들려 했다.

         

       “루엘로……아까는 언니가 미안했어.”

         

       엘라의 사과에 루엘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도 미안해요……. 놀라서 소리 지르고 말았어요…….”

         

       루엘로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 나중에 길들이기 재주 또 보여줄 거죠?”

         

       대답은 엘라보다 그녀가 기르는 동물들이 먼저 했다.

       찍순이가 주인의 어깨에 올라 앞발로 엄지를 척 내밀었고, 구돌이는 주인의 모자 위에 앉아 두 날개로 V자를 그려 보였다.

         

       가끔 보면 저것들 정말 동물이 맞는 건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엘라는 둘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보지 않아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얘들도 좋다고 하네.”

       “헤헤, 그럼 나중에 봐요……. 안녕, 얘들아…….”

         

       그렇게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루엘로.

       미노바는 그런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딸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일세. 이 아이가 없다면 이 세상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네.”

         

       그는 마지막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뭐든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겠다.

       무슨 대가든 치를 테니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겠지.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행사가 끝나고 하죠.”

       “알겠네.”

         

       자신들의 자리로 떠나는 미노바와 루엘로.

         

       엘라는 둘의 등 뒤를 멍하니 바라보며 루엘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손수건을 꽉 쥐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내가 예전에 자작의 저택에서 주워준 그 물건이었다.

         

       “좋네. 가족이라는 건…….”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서글픈 감정.

       나는 그녀의 심정이 지금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나도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녀가 서커스 학교에서 자랐던 것처럼.

         

       내가 있던 보육원 친구들도 원장 놈이 미쳐 날뛰면서 대부분 죽고 말았다.

       그녀가 원더스타인에게 친구들 대부분을 잃은 것처럼.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잃어버린 외톨이 신세.

       그녀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던지려다 중간에 멈칫했다.

       내가 누군지 자각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보육원에서 살아남은 그 소년이 아니었다.

         

       나는 원더스타인.

       그녀의 원수였다.

         

       내가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지독한 가식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짓는 것 외에는.

         

       “뭘 봐?”

         

       엘라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며 나를 흘겨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손수건을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었구나 해서요. 호텔에서 매일 선물로 고급 손수건을 한 장씩 가져가라고 두잖아요?”

         

       엘라는 손에 쥔 손수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툭 내뱉었다.

         

       “엄마 유품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물건이라고 해서 대충 그렇지 않을까 했다.

         

       “모친을 본 기억이 있나요?”

       “아니. 사부님이 그랬어. 죽어가던 여자가 이 손수건과 함께 나를 사부님에게 맡겼다고.”

         

       엘라는 갑자기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이해했다.

       나는 원더스타인이었으니까.

       이런 얘기를 나눌 대상이 아니었다.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배정된 자리로 가 앉았다.

         

         

       ***

         

         

       예선전 행사는 개막식 때보다 좀 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음악도, 스포트라이트도, 쇼도 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경영자 브왈레가 무대 위에 섰다.

       그는 경험 많은 사회자답게 능숙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러분은 공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

       참가자들은 잠시 당황하는 듯했으나 금방 각자가 생각한 답을 하나씩 토해냈다.

         

       아카데미의 발표회나 기업의 임원 회의와 달리 눈치 보거나 머뭇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이었다.

       주목받는 데 익숙하고, 주목받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던졌다.

         

       연기력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본을 꼽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각자가 지닌 특기와 재주가,

       누군가는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브왈레는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말한 것들.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그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며 이빨을 씩 드러내며 웃었다.

         

       “바로 돈이라고.”

         

       대회 참가자들 사이로 허탈한 한숨과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중요하지. 돈.

       돈 없으면 어떻게 공연하나.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여기는 대회잖아. 돈에 자유롭게 기량을 펼쳐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왜 경영자가 사회를 맡지? 나는 총감독 마로이네 님이 오실 줄 알았어.

         

       사람들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브왈레는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을 예술가라 생각하는 이들은 항상 이랬다.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돈 얘기를 노골적으로 꺼내면 대뜸 화부터 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철부지들.

         

       그래도 각 테이블당 적어도 한 명씩은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건 마음에 들었다.

       굳이 명찰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각 서커스단의 단장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래도 ‘경영’이라는 것으로 매일 골머리 썩을 테니까.

         

       ‘호오, 저쪽은 나이가 어린 데도 이해를 하는군.’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의 어린 부단장.

         

       자기네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로이네 영감이 탐내는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도.

       설마 경영도 이해하고 있을 줄이야.

         

       “흠흠, 돈이라고 말하니 조금 천박하게 들리십니까? 그럼 흥행이라고 말해볼까요?”

         

       소란이 조금 가라앉았다.

        브왈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말하는 흥행이란 단순히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참가자들 각자의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과 음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는 말입니다. 술장사하는 놈입니다. 후후, 괜찮습니다. 틀린 말도 아닌데. 사실 우리 극장의 수익 대부분은 관람료가 아니라 마실 것에서 나오죠. 입장료는 그냥 유지비를 간신히 건지는 정도입니다. 입장권 따위는 가끔은 무료로 뿌릴 때도 있어요.”

         

       입장권 무료.

       수익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서.

         

       원더스타인과 엘라는 동시에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예전에 울펜슈타인 백작을 구경하러 온 것도 무료입장권에 낚여서가 아니었던가?

       무료라고 좋다고 들어왔는데, 막상 매점에서 바가지를 썼었다.

         

       “Free to Enter, Pay to Enjoy.”

         

       브왈레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입장료가 무료인 상태에서 얼마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두 팔을 쫙 펼쳤다.

       그의 뒤로 천장에서부터 기다란 두루마리가 바닥까지 펼쳐지며 방금 그가 던진 표제가 드러났다.

         

       <Free to Enter, Pay to Enjoy>

         

        두구두구 탓!

       그는 개막식에서 보였던 재빠른 발놀림으로 흥분한 망아지처럼 무대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리곤 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외쳤다.

         

       “그것이 이번 시험의 과제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귀염둥이한방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전혀 뒤늦은 게 아닙니다! 결말 지점에서 봤을 때,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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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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