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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마탑에도 시험은 있다.

        매 학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추어 교수들이 낸 갖가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학점은 곧 학파 내에서의 평가나 학회의 추천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시련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도 점수가 낮으면 받을 수 없었기에 마법사들은 매 시험에 열정적으로 임해야 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이 맘때는 1년 중 갤러리의 접속률이 가장 폭주하는 시기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험기간이 되자 갤러리에는 공부하다 미쳐버린 마법사들의 글들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

        [아 공부 때문에 갤질이 안 된다]

       

        시험 기간만이라도 공부 좀 줄여야겠네

       

        — 네?

        — ㅋㅋㅋㅋㅋㅋㅋ

        — ㄹㅇ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갤질하냐

        — 아 이론이 내 머릿속에 안 들어온다고 ㅋㅋㅋ

        ====

        ====

        [시험을 쳐야 한다는 건 사실 고정관념이 아닐까?]

       

        시험 대신 교수님을 치는 건 어때?

        강의실에 있는 모두가 힘을 합치면 교수 하나 정도는 때려눕힐 수 있을 거 같은데

       

        — 그거 좋은데?

        — 당장 레이드 조직함

        — 작년에도 그 지랄 했다가 무더기로 F 맞음

        — 난 그래서 잽싸게 교수랑 딜해서 중간에 배신하기로 함

        — 성공하면 혁명이거든요~

         ㄴ 실패하면?

         ㄴ 실패하면…… 니 학파 선배들한테 물어봐라

         ㄴ 대학원이지 뭐 ㅋㅋㅋㅋ

        ====

        ====

        [씨팔 시험장까지 랜덤으로 배정하지 말라고!!!!!]

       

        나 악의의 층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이 이상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마……!

       

        — 느리구나…… 강의실에 도착하는 것조차…….

        — 응 난 이미 출석 미달로 학고야

        — 차원 유리의 원리와 이해 과목? 그거 ㅋㄹㅇ 교수 토꼈다는데 아직도 하고 있었음?

         ㄴ 수업은 계속 함, 근데 비대면임

         ㄴ 비대면인데 강의실은 왜 찾아?

         ㄴ 교수 본인만 비대면임 별장에서 요양 중이라 학생들은 다 나와서 수정구 보고 수업 듣는다

         ㄴ 그럼 게 왜 비대면이야 ㅅㅂ ㅋㅋㅋㅋ

        ====

        ====

        [아오, 시험기간이라고 평소에 갤질 하지도 않던 새끼들이 존나 시끄럽게 구네]

       

        나는 평소 갤 살리려고 재미없는 떡밥에도 글 싸면서 글리젠 시켜주고

       

        테라포밍 당한 게시판 한 번씩 돌면서 꿀벌단이나 킹룡단, 초전도치단끼리 이간질시키고

       

        주딱 욕하는 새끼들 아이디 몰래 캡쳐해놨다가 저격도 한 번씩 해주고

       

        완장들 기강 느슨해진다 싶으면 새벽에 분탕계로 전술핵까지 달리는데

       

        미҉친҉새҉끼҉들҉이҉ ҉원҉래҉ ҉갤질도҉ ҉안했으҉면҉서҉ ҉존҉나҉시҉끄҉럽҉네҉

       

        — ㄷㄷ

        — 넘모 무서워요…….

        — 넌 제발 현실 좀 살아라

        — 얼마 전에 파딱 하나 죽인 게 너지?

        — 이런 악귀들과 평소에도 동고동락하는 주딱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

         ㄴ 주딱은 이미 자기도 즐기는 경지임

         ㄴ ㄹㅇ 요즘 좀 잠잠한데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 지 모름

        ====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시험을 위해 아둥바둥 하는 기간이지만 내게는 딱히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미 5년치의 이론 수업 학점을 확보해 두었을 뿐더러 여차하면 생활부장에게 잘 빌붙어 시련의 출입 정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몇몇 교수들의 부탁을 받아 시험을 감독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시험기간에 고통받는 마법사들을 구경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반면 마리엘은 올해 막 입탑한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었기에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매번 돌돌 말아놓던 머리카락도 머리띠와 슈슈로 적당히 틀어묶은 채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침대에 누워 발끝으로 옆구리를 쿡 찌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얇은 내의 너머로 도드라진 가슴과 등받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잘록한 허리가 예술적인 곡선을 자아낸다.

        평소처럼 요상한 스타일이 아닌 가볍게 웨이브 진 채 흘러내린 머릿결이 더해지니 새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각도였다.

       

        “나중에 놀아줄 테니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것이에요 관리인.” 

        “수련의 층에서는 그렇게 놀고 먹더니 이제 와서 웬 공부에요?”

        “한 과목이라도 낮은 점수가 나오면 홀크로프트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기에 절대 방심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리고 저는 다른 일도 병행하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꽤나 빠듯했던 것이에요.”

        “갤러리 관리요?”

       

        이미 그녀의 책상 한쪽에는 위치노트가 놓여 있었다.

        열심히 펜을 놀리다 신문고에 알림이 도착하면 곧바로 분탕을 차단하고 다시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

        바쁜 와중에도 파딱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려는 자세가 참 갸륵하다.

        나도 그녀를 돕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하나 열기로 했다.

       

        ====

        관리자

        [공지. 시험 기간 동안 포인트 추가 증정 안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유저분들을 위해 마지막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획득한 모든 포인트가 3배로 정산될 예정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니 모두 많이많이 갤질해주세요

       

        — 주딱 왔다!!

        — 감다살이네 진짜 ㅋㅋㅋ

        — 이게 진짜 광기지 ㅋㅋㅋㅋ

        — 주딱!!! 내 인생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 프리나나 : 포인트 3배? 바로 간다

         ㄴ 이번에야말로 야스버튼 누르려고?

        ====

       

        포인트를 세 배로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갑자기 글 리젠이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더불어 마리엘에게 들어오는 신고량도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마리엘은 마나까지 끌어올리며 고개를 마구 좌우로 돌렸다.

        화려한 금발머리가 나풀거리며 좋은 향기가 콧가를 스쳤다.

       

        “으읏! 갑자기!? 괘, 괜찮은 것이어요, 이런 방해 따위 조금도 저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못할…….”

       

        호오, 아직 버티는가.

        그럼 이건 어떻지?

       

        ====

        관리자

        [포인트 상점 시즌 2를 개최합니다]

       

        게시판 신설 요청이 많아 우선적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원하시는 게시판과 포인트를 가지고 파딱에게 문의해주세요

       

        (게시판 대문 사진도 첨부 요망)

       

        — 미끈매끈파충류협회 : ㄱㄷ

        — 유정무정란조류협회 : ㄱㄷ

        — 멋진갈기조랑말협회 : ㄱㄷ

        — 셋 다 무서워요…….

        — 당분간 게시판은 얼씬거리지 말아야겠다

        ====

       

        “아아아악!! 이 악질! 악질적인 인가아아안!!!”

       

        게시판 중에서는 사상적으로 불온하거나 마탑에 위험을 가져올만 한 것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운영할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풀어버린 것이었다.

        넘쳐나는 업무량에 마리엘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침몰해 버렸다.

       

        이걸로 기어코 끌어내렸군.

       

        “복수, 복수하는 것이에요…… 이젠 더 이상 못 참아, 반드시, 흐윽, 후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에요……!”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나는 관리자 계정으로 끝도 없이 날아오는 마리엘의 분노 어린 메시지를 깔끔히 무시했다.

        이런 엄살을 받아줘서는 강한 완장으로 키울 수 없다.

        요양 중인 살살이를 제외한 다른 파딱들은 시험 기간에도 불만 한 마디 안 내뱉고 갤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가.

       

        저 놈들 수준이라면 보나마나 일찌감치 시험 따위 던져버린 거겠지.

        마리엘도 동지가 되어 기쁠 따름이었다.

       

        ‘정말로 엄살부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게시글과 추천수, 그리고 새 게시판 개설을 문의하는 글의 추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올해가 처음이라 모르겠지만 이전까지의 시험기간에 비하면 증가폭이 현저히 적은 수준이었다.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비중을 고려했을 때, 조금 과장 보태면 갤러리 전체 유저는 감소했다고 봐도 좋은 정도.

       

        올해 신입생들이 유독 성적에 진심인가?

        만약 그렇다면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비나의 극마법 시험을 감독하러 가야 하니까.

       

        “전 이만 일이 있어서 나갑니다.”

        “훌쩍, 위로조차 해주지 않는 건가요. 제가 이 방을 눈물바다로 만들면 치우는 건 관리인 몫인 것이에요.”

        “이유를 알아야 위로를 해주든 말든…… 뭐 끌어안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줘요?”

       

        얼음 정수기 높이를 올려놓은 날 아침, 펑펑 울어재끼던 아녜스를 달랜 방법이었다.

        물론 마리엘이 승낙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한 제안이었다.

        평소 자기가 공들여 세팅한 머리카락으로 스프링 놀이를 할 때면 학을 떼며 싫어했으니까.

       

        “…….”

        “왜 그래요……?”

       

        그런데 그녀는 가볍게 던진 말에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것이었다.

        기사단이 다녀간 이후로 이렇게 서먹해지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했다.

        보통 둘 중 하나가 상대방을 먼저 발로 차 버리거나 위치노트로 시선을 돌리면 이 숨막히는 대치상태가 끝났는데…….

       

        끄덕.

       

        마리엘이 머리를 살짝 기울이자 비단같은 금발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예상보다 엡실론 관에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

       

        “사감, 왜 이제야 오나요. 벌써 시험은 시작했어요.”

        “죄송합니다. 일이 좀 있어서.”

       

        비나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최근 극채색 업무를 맡게 되며 서류 작업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의장이란 자리는 이래저래 결제할 사안이 많거니와 클로에까지 휴가를 내며 업무량이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피로한 듯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내 가슴께에 고정되었다.

       

        “옷에 뭐가 묻었어요.”

        “네?”

        “머리카락인가요?”

        “아뇨, 그냥 먼지입니다. 제가 털게요.”

       

        나는 마리엘의 금발 몇 가닥을 떼어낸 후 강의실로 들어갔다.

        시험을 치르는 수습생들의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가 가득했다. 

        서술형이 주류인 단순한 지필평가.

        본래 비나가 고안하던 시험은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 메테오를 가장 훌륭하게 막은 한 명만 A를 주는 것이었지만 기어코 뜯어말리는데 성공한 결과였다.

       

        ‘메테오가 왜 얼음마법인지 논하라는 배점 90점짜리 마지막 문제만큼은 빼지 못했지만.’

       

        컨닝하는 녀석들이 없나 살펴보던 도중 비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손에는 위치노트를 잔뜩 들고 있었다.

        보나마나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괄 수거한 물건이겠지.

        그것을 주인들에게 돌려줄 생각 따위 없어 보이는 그녀는 부계정으로 갤러리를 보다가 돌연 내게 말을 걸었다.

       

        “사감사감.”

        “네, 비나비나님.”

        “무슨 무례한 말버릇인가요.”

        “……비나 님. 뭐 시키실 거라도?”

        “혹시 시험기간 이후에 학회에 나갈 계획이 있나요?”

       

        학회는 학기가 끝나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외부 인사들과의 교류였다.

        주로 반년 동안의 연구 성과나 발명품 등을 시연해 황실로부터 지원금을 타는 게 목적이다.

        그 외에도 학술지의 등재나 관련 사업 확장, 명예와 작위까지 여러 이권이 오갔지만 해주학파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제국 유수의 마법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범죄자 배출 프로세스 같은 걸 만들어 발표할 수는 없으니까.

       

        “없습니다. 전혀요.”

        “다행이네요.”

       

        그 한 마디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번 학회에 참석할 예정인데 조수가 필요해요.”

        “이미 정하셨겠죠. 예의상 묻는 건데, 대체 뭘 발표하실 생각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전 일전에 가문이 제게 내린 근신처분에 지대한 불만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문 내에서 저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해요.”

        “비나님의 인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가 없을 것 같은…….”

        “얼마 전 제가 만든 발명품인데, 사감도 보면 깜짝 놀랄 거에요.”

       

        노트를 잔뜩 껴안은 비나가 아공간에서 주섬주섬 꺼내든 것은 내게는 아주 익숙한 물건.

       

        “얼음마법이 담긴 ‘트라팔가 호수 산 청정 얼음물’이에요.”

       

        사제폭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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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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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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