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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천이 스치는 소리가 귀에 스며들었다.

       

       백화점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떠드는 소리에 묻혀야 하는데.

       

       ···그런데도, 쓸데없이 좋은 청각과 능력 탓에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상한 소리는 아니다.

       

       그저 천과 천이 스치는 소리. 그뿐.

       

       하지만, 그 천이 스치는 소리 탓일까? 상상력을 자극당하고 있었다.

       

       

       “무슨 수영복인지는···.”

       

       “너한테 미리 말해주면 반응이 어색할 것 같으니까 말 안할건데?”

       

       “그래도 꼭 칭찬은 해줘야 하는 거 알죠?”

       

       

       약간의 힌트라도 기대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을 원하는 두 명 탓에 어떤 수영복인지 호기심만이 증폭되었을 뿐.

       

       이제와서 확인하지 않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경영 수영복일까? 아르테는 평소에도 레오타드를 입잖아. 속옷 대용으로 레오타드를 입는 아르테로서는 그게 편하겠지.

       

       아니야, 오히려 그 갭을 노려 비키니일지도 몰라.

       

       하지만 아르테가 직접 들고 갔을 텐데. 아멜리아나 도로시라면 몰라도, 아르테는 그런 걸 직접 노릴 것 같지는 않아.

       

       어떻게든 평소와 비슷한 느낌의 경영 수영복 쪽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미 머릿속 상상력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저 탈의실 안에서, 아르테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모습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생각을 멈추고 싶었지만 전혀 멈춰지지 않았다.

       

       예전에 느꼈던 그 부드러운 감촉, 향기··· 으아아악!

       

       

       “너 뭐해?”

       

       “···내버려 둬.”

       

       

       자괴감에 벽에 머리를 박아댔다.

       

       지인을 향해 이런 변태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좋아, 진정하는 거야. 유시우.

       

       사람들은 평소 즐겨 입는 옷을 고르기 마련.

       

       레오타드 입은 모습은 실컷 봤으니 데미지는 적어.

       

       그러니 문제없을···.

       

       

       “어때요?”

       

       “와, 예쁘다!”

       

       

       벽에 머리를 박고 잠깐 열을 식히는 사이에 아르테가 탈의실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예쁘다며 잔뜩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 아하하···. 제, 제가 예쁘기는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진짜 예쁜데? 평소랑은 색다른 느낌이라 좋다.”

       

       “그, 그런가요···.”

       

       “음, 역시 내 안목은 옳았어.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이미지를 다르게 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달라 보인다니까?”

       

       

       ···이미지가 달라져?

       

       그 순간 깨달았다. 아르테가 평소처럼 레오타드처럼 입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유시우? 너도 뭐라고 좀 해봐. 부끄러운 건 알겠지만.”

       

       “아, 알았다고···.”

       

       

       아멜리아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야, 야?!”

       

       

       머리에 열이 올랐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레오타드처럼 노출이 적고, 몇 번 보았던 거라면 어느 정도 내성이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테는 어째서인지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파레오를 두르고, 하얀색 크롭티를 입은 채로.

       

       몸을 가리는 옷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선정적이었다.

       

       가리고 있어야 할 검은색 비키니를 하나도 가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봐서는 안 될 걸 몰래 보고 있는 배덕감 같은 게 들어서 더는 볼 수 없었다.

       

       

       “그, 그···. 예쁘네, 아르테···.”

       

       “고마워요.”

       

       

       입에서 흘러나온 칭찬은,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을정도로 힘이 없었다.

       

       내가 듣는 칭찬이라면 빈말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었다.

       

       계속 보고 있다가 헛소리를 내뱉을 것만 같아서, 최대한으로 자제한 결과.

       

       그녀를 직시할 수 없었지만, 아르테가 웃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럼, 월요일에 보자!”

       

       “다음에 봬요!”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차 안에서 손을 흔들기에 같이 흔들어주었다.

       

       점점 시야에서 벗어나다가,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된 차에 흔들던 손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하아···.”

       

       

       그와 동시에 옆에서 들려온 한숨 소리.

       

       유시우, 그가 내 옆에 있었다.

       

       

       “한숨을 쉴 정도로 재미가 없었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쇼핑을 이렇게 오래 한 적은 없어서. 조금 지치더라.”

       

       

       그의 말에 싱긋 웃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이유라서.

       

       

       “저도 그래요. 이렇게 오래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돌아다닌 건 처음이에요.”

       

       “···그래?”

       

       “네에.”

       

       

       예전에는 대충 눈에 보이는 걸 집거나, 아니면 편한 걸 위주로 골랐으니까.

       

       그래서일까? 반쯤 아멜리아와 도로시에게 끌려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건 시우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나처럼 한숨을 내쉬었던 거겠지.

       

       

       “···그래도, 좋은 경험을 하시지 않았나요?”

       

       “응?”

       

       “제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수영복, 보고 싶지 않냐고. 어땠나요? 예뻤죠?”

       

       

       수영복만 산 건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곳밖에 없겠지.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신나서 수영복을 이것저것 갈아입는 모습이 마치 패션쇼를 방불케 했었다.

       

       덕분에 나도 눈 호강했다. 역시 히로인들이라 그런가, 모델 해도 되겠다 싶더라.

       

       

       “···응, 예쁘더라.”

       

       “다행이네요!”

       

       

       나? 나는 딱히 갈아입은 거 없었는데. 굳이 거기 끼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두 명도 처음에는 열심히 권유하다가, 내가 관심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갔다.

       

       처음 갈아입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이상한 걸 입은 이후에는 도저히 무언가 입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어차피 목적은 히로인들 수영복 패션쇼니까 성공했잖아?

       

       굳이 내가 입을 필요는 없지.

       

       역시 주인공이라 그런가? 일단 다 예쁘다고 해주더라.

       

       아멜리아와 도로시에게 관심이 쏠렸을 텐데, 나한테도 일단 칭찬은 해줬으니까.

       

       내가 상처받지 않게끔 배려해주는 점이 주인공다웠다.

       

       역시 착해.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라서?

       

       잘 모르겠다. 이유는 어찌 되었건, 나는 그를 보호해야만 했다.

       

       그러니 여기서는 잠깐 헤어지자.

       

       

       “아, 저는 여기서 이만···.”

       

       “···응? 갈림길은 더 걸어야 하는데?”

       

       “그건 아니지만, 잠시 볼일이 있는 걸 깜빡해서요!”

       

       “알았어. 다음에 봐.”

       

       

       유시우에게는 볼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잠깐 왔던 길로 돌아가 가만히 서 있었다.

       

       원래라면 같이 집으로 돌아가며 밀착 감시를 할 예정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생겨서 말이야.

       

       잠깐 골목길에서 대기를 하고 있자, 여자 한 명이 황급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다급하게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 같은 발걸음.

       

       ···조심성이 없네.

       

       반장갑 하나를 사용해 이 수상한 여자의 온몸을 구속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을 둘둘 말듯,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꺄악?!”

       

       “말해. 누구야? 어디서 왔어? 목적은?”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이 여자, 아까부터 계속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백화점에서부터.

       

       백화점 안에서는 조금 신경 쓰이더라도 놔뒀는데, 택시까지 타며 쫓아오는 걸 보고 확신했다.

       

       이 여자, 뭔가 있어.

       

       이유는 뭐지? 누구를 뒤쫓고 있었던 걸까? 나? 아니면 유시우?

       

       내가 목적일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내가 이곳에 있는데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을까? 그럴 리 없지.

       

       목적은 유시우다. 확실해.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설마, 작가님이 설정하지 않은 부분에서 생겨난 빌런 조직이 유시우를 노리고 있는 걸까?

       

       위험해서? 아니면 회유하려고?

       

       어느 쪽이든 용납할 수 없어.

       

       절대로.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 살, 살려주세요! 비, 빌런이에요! 빌런!”

       

       “입 닫아, 인형. 여기에는 너를 구해주러 올 사람 따위 없으니까.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그 목을 잘라주지.”

       

       “히, 히익···.”

       

       

       정확히는 모른다. 이곳에 정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하지만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당장 알아내야 하는 건, 이 여자가 왜 유시우의 뒤를 쫓고 있었는지. 그거다.

       

       그 외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묶은 실을 살짝 조여 상처를 내주었더니 내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걸까?

       

       그녀가 협조적으로 변했다.

       

       

       “왜 쫓아왔지?”

       

       “그, 그게···.”

       

       “···.”

       

       “꺄악! 마, 말할게요···! 머, 멋있어서! 멋있어서 그랬어요···!”

       

       

       멋있어서?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빌런 조직 같은 곳의 암호일까?

       

       자세히 이야기하라는 의미로 묶어둔 실을 조금 더 세게 조였다.

       

       

       “으, 윽···! 배, 백화점에서···! 그 남자분에게 첫, 첫눈에 반했어요···! 미안해요! 다, 다시는 안 건드릴게요!”

       

       “첫눈에 반했다?”

       

       “네, 네! 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과연.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두려워하는 표정, 초인보다 훨씬 쉽게 파고드는 실.

       

       초인이 아니야.

       

       그렇다면, 이 여자는 정말로 유시우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이곳까지 왔다는 걸까.

       

       ···그러니까, 스토킹을 하고 있었다. 이거지?

       

       

       “용서 못 해.”

       

       “히, 히익···!”

       

       “어딜, 발에 챌 정도로 흔한 인형 따위가···!”

       

       

       엑스트라조차 아니다.

       

       그저 배경에 불과할 뿐인 존재가, 감히 세상에 단둘밖에 없는 존재를 노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너 같은 년이 건드릴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네, 네! 다시는 넘보지 않을게요! 제, 제발 살려주세요!”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히로인도 아닌, 엑스트라 주제에!”

       

       

       인형 주제에.

       

       엑스트라 주제에.

       

       감히 인간을 넘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로시와 아멜리아는 용납할 수 있다. 나중에 추가될지도 모르는 새 히로인까지도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딴 녀석이 유시우에게 다가오는 건 용납하지 못해.

       

       어떻게 하지? 어떻게 처리하지?

       

       ···그래, 아주 좋은 방법이 있잖아.

       

       실을 끊어버리자.

       

       

       “그만하시죠, 아르테 님.”

       

       “···아, 수사관님.”

       

       “저 여자가 범죄자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만, 이곳은 위험합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주려던 찰나, 하율이 나를 제지했다.

       

       ···아.

       

       그렇지. 여기는 위험하구나.

       

       유시우의 집 주변이라는 것 외에는 내가 잘 모르는 위치다. CCTV가 어디 있는지 파악도 하지 않은 상태야.

       

       작가님에게 부탁해서 어떻게든 수습 할 수 있기야 할 테지만, 일이 귀찮아진다.

       

       즐거운 방학이다. 유시우의 집 주변에서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그의 기분이 나빠질 게 분명했다.

       

       

       “이번 한 번뿐이야, 인형. 운이 좋았네.”

       

       “사, 살려···. 살려주세요···.”

       

       “···다음에도 저 사람에게 다가오려고 한다면, 그때는 정말 죽을 생각으로 오는 게 좋을 거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유시우를 쫓아다니던 스토커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를 넘본 녀석이 사지 멀쩡히 살아나가야 한다니.

       

       

       “고마워요, 수사관님.”

       

       “별말씀을.”

       

       

       실을 풀자마자 황급히 도망가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인형이,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이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된 스토커가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 같은 녀석이 넘볼 사람이 아니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제송함미다

    힝힝

    넉넉하게 담아왔으니까 봐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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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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