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의 밖으로 긴장감이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성에 합류할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전투 중이라고 했었나…”
갑자기 적들의 규모가 커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방어는 해내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의미 없는 소모전이 될 뿐이라는 소식도 함께.
“골치 아픈 잡귀들이네.”
먹지도 지치지도 않는 언데드.
파라몬 영감의 말대로 의미 없는 소모전일 뿐이었다.
나 하나 합류한다고 크게 바뀌기야 하겠냐만은….
“빨리 온다고 오기는 했는데…”
달리고 달렸다.
며칠째 잠을 자거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그 쉬는 시간 조차 식사 시간을 빼면 길지도 않았다.
지친 말들을 회복시키는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회복 조차도 순식간이었다.
말에게 물을 준다.
그리고 신성 마법으로 체력을 회복시킨다.
이 두 과정이면 말들은 깔끔하게 회복이 되었다.
“정신 나간 방법이네.”
다들 바빴지만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루나를 돌봐주면서 쉬는 게 내 할 일이라고나 할까.
편안한 마차와 때가되면 제공되는 식사.
급박한 상황치고는 여유로웠다.
이럴 때라도 쉬어야지….
“아부으…!”
“옳지. 그렇게 미간에 힘을 주는 거야.”
“우으?”
루나가 작은 이마에 힘을 주며 얼굴을 찌푸렸다.
신안에 집중을 한다기보다는 내 표정을 따라 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직 아기인데.
“그렇지! 잘한다!”
“꺄르륵!”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루나.
덩달아 마차 안의 분위기도 훈훈해졌다.
“성녀께서 크리스 경을 좋아하시는 것 같소.”
루나는 다른 사람에게 안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잠시 옮겨 갔다가도 금세 나를 향해 팔을 버둥 거렸으니까.
“아우…!우으..!”
“…또?”
정말 귀엽고 순수한 아이.
문제라면 이렇게 자꾸 내 방울을 탐낸다는 것.
딸랑 –
“꺄륵!”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아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했다.
벌써 옹알이가 능숙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방울은 경건한 마음으로 흔들어야 해.”
츄읍 –
“아니, 입에 넣는 게 아니라…”
조기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
천재들은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는 느낌으로 흔들어야 하는 거야.”
말똥말똥 –
정말로 내 말을 알아 듣는 걸까?
루나의 눈이 과하게 반짝거렸다.
저 눈은 분명 보이지 않을 텐데.
“성녀는 눈이 안 보이는 게 맞나요? 눈이 너무 잘 움직이는데…”
“안 보이는 것이 맞을 것이오. 전대의 성녀는 아예 눈을 감고 다녔소.”
“…신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인다고 하던가요?”
“원래 외부에는 발설하면 안 되는 것이긴 하나…”
교황아저씨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형형색색의 빛으로 보인다고 하오. 성녀께서는 그 빛에 눈이 멀어 버린 것이라며 농담을 하곤 하셨소.”
“빛이라…”
방울을 만지작거리는 루나.
그렇게 한참을 놀아 줬을까.
교황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 봤다.
“이제 도착할 것이오.”
나도 알고 있다.
아까부터 온 사방에서 악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니까.
대충 숫자를 느껴보니 지난번 보다 훨씬 많았다.
하늘을 메우고 있는 잡귀들도, 땅을 기어 다니는 잡귀도 말이다.
순간,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알루어드의 얼굴이 보였다.
“성하, 곧 언데드와 부딪힐 것입니다.”
“성의 상태는 어떠하더냐.”
“치열한 격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도 성문의 근처엔 언데드가 없습니다.”
교황의 시선이 나에게로 닿았다.
“경께서 말한 장승이란 것 때문이오?”
더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교황 역시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대답을 해주려다 입을 닫았다.
“…신께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소?”
교황의 모습이 온전히 눈에 담겼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배신자들에게서 신성력이 사라지고 난 후 처음으로 있는 큰일이니 말이다.
성녀가 태어난 이 시점의 교단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리라.
지금부터 하는 것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했으니.
움찔.
내 눈을 본 것만으로 대답이 된 것일까.
교황은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알루어드의 목소리가 들릴 뿐.
“언데드를 뚫고 성으로 합류하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 한번 알루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야말로….신관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이 마차 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이윽고, 악취가 훅 풍겨 왔다.
콰앙 –
채앵 –
병장기가 휘둘러지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커다란 함성 소리.
사방에서 느껴지는 눈부신 빛들.
나는 가만히 루나를 품에 안아 들었다.
“…크리스 경?”
스윽 –
천천히 루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너무 이르니, 조금 더 자고 있으렴.”
콰앙 –
마차 밖은 아까보다 더 시끄러워졌다.
잠들어야 할 루나가 움찔거리며 놀라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연것일까, 저절로 벌어진 것일까.
입에서 편안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채앵 –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밖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탁한 어둠을 가르는 빛.
동요하는 감정들.
어느새 언데드의 기운이 온 사방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귀를 찌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벤시의 울음소리이리라.
“내가 막겠소.”
신성력을 끌어모으는 교황.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계속 입을 움직였다.
스윽 –
“앞집 개야 짖지마라.”
움찔.
마차 안으로 파고들던 섬찟한 비명이 뚝 멎었다.
더 이상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뒷집 개야 짖지마라. 우리 아가 잠들었다.”
스윽 –
신비한 일이었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마치 당연히 할 수 있었던 것을 하는 것처럼.
방울이 가볍게 느껴진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영기의 움직임마저 아주 편안 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교황의 경직된 몸이 느껴졌다.
조금은 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렴풋이 강신을 느꼈을 것이다.
스윽 –
루나의 따듯한 체온이 손을 타고 흘러왔다.
어느덧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해 있었다.
새근 –
새근 –
“걱정하지 마세요.”
“….”
“이번에는 마음에 드신 듯하니.”
밖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한창이었다.
언데드를 무찌르고 성을 향해 나아가는 신관들.
신성력을 다루는 자들 답게 맹렬한 기세로 언데드와 싸우고 있었다.
단순히 전투만을 보여 주었다면 신령님의 기분이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마음을 잘 썼네.”
공명심은 없었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지.
그것들이 주변에서 한가득 느껴졌다.
“저게 신성력이 내려온 이유지.”
스윽 –
루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리스 경? 아직 밖은 위험하오. 정리가 된 뒤에 나가는 것이 어떻겠소?”
지금이 나가야 할 때가 맞았다.
이미 신령님이 흡족해 하는 듯했으니까.
대지의 신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루나가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세레나, 좀 도와줄래?”
루나를 등 뒤로 돌리자 세레나의 손이 조심스럽게 나를 거들었다.
옆에 있던 커다란 천을 손에 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돌려 등 뒤에 감았다.
질끈 –
루나와 내 몸을 감싸며 묶이는 천.
손을 뒤로 돌려 루나를 받치니 제법 안락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이래서 자꾸 뒷짐을 지는 거 였구나…”
요즘 들어 왜 강신을 할 때마다 뒷짐을 지게 되나 했더니….
아기가 업히는 자리였을 줄이야.
몸주신을 똑 닮은 자세였다.
어쩌면 할머니의 습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 경! 조금만 기다렸다가….”
나를 말리려는 교황 아저씨에게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걱정하는 마음이야 알겠지만, 딱히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기절해 있는 동안 변화가 있었던 건지, 그 전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무당으로서의 능력이 올라갔다는 것.
그보다 아까부터 줄곧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전 기사가 아니라서 경이라는 호칭은 안붙히셔도 돼요.”
마땅히 나를 부를 호칭이 없다 보니 그렇게 부른 모양이지만….
박수무당과 기사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럼 무어라 불러야 하겠소?”
“흐음…”
마땅히 정해 둔 이름이 없기는 하다.
얼마 전까지 애동이었으니, 아직은 호칭을 쓰기도 애매했고 말이다.
그래도 이왕 불러야 한다면….
“도령이라고 부르세요.”
이제는 이름을 지을 때가 되기는 했다.
신당에 돌아가는 대로 간판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싶었다.
철컥 –
마차의 문이 열리며 밖의 풍경이 보였다.
땅을 딛는 발에서 느껴지는 감촉 역시 선명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주위가 일시에 고요해졌다.
딸랑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