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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그리고 산양의 맞은편에는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새끼 염소가 풀 사료를 먹고 있었다. 새끼 염소의 옆에는 설치류 한 마리가 있었는데, 널찍한 공간 구석에 있는 쳇바퀴에 가만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진성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멍해 보이는 표정으로 코를 쫑긋거리며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던 설치류는 뽈뽈거리며 그들의 앞에 다가가 얼굴을 들이댔다.

         

       이세린은 그 귀여운 모습에 슬쩍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고, 설치류는 이를 깨물거나 위협을 하는 대신에 가만히 눈을 감고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세린은 뻣뻣한 털을 쓰다듬으며 홀리기라도 한 듯 연신 귀엽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진성은 자신이 구해온 염소랑 기니피그가 어떠냐는 듯 자신을 빤히 보는 이아린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이아린에게는 충격적일 말을 꺼냈다.

         

       “저건 기니피그가 아니라, 카피바라 새끼이니라.”

       “응?”

         

       그의 충격적인 말에 이아린은 화들짝 놀라며 축사를 바라보았다.

         

       “저거 기니피그라고 해서 샀는데?”

       “카피바라이니라. 가치로 따지자면 훨씬 비싸고 귀한 녀석이긴 한데…. 허어.”

         

       얼마 전까지는 기니피그로 불렸던, 그리고 이제는 카피바라라고 불릴 설치류는 이세린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지 뻣뻣한 털을 세우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저게, 기니피그가 아니라고요?”

         

       엘라 역시 충격이었는지 이세린의 품에 안긴 채 쓰다듬을 받는 카피바라를 쳐다보았다.

         

       “제가 못 알아보다니….”

         

       엘라를 더 충격에 빠지게 하는 것은, 저 카피바라를 산 것이 엘라였다는 것이다.

       산양과 염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아린에게 맡기는 것은 불안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직접 설치류를 구해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러시아 시장에 직접 가서 구한 것이 바로 저 카피바라였다.

       통통한 몸에 누가 봐도 설치류로 보이는 외형을 하고 있기에 의심 없이 구매한 것인데….

         

       호언장담하고 나서서 구해온 것이 기니피그가 아닌 카피바라라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카피바라는 일반적인 설치류와는 달리 물과 생선의 상징을 함께 품고 있어서 특수한 상황에서나 쓰는 건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상징으로 이아린에게 타박을 준 것이 얼마 전인데, 똑같은 실수를 해버리다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창피해….’

         

       그런 엘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진성은 방긋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제 여동생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염소와 카피바라의 관리가 아주 잘 되어있고,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이 느껴지는군요. 잠시 맡아주는 동물인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다니.”

       “네? 아,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닙니다. 보니까 두 동물 모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데다가, 따뜻한 집 안에 있어서 그런지 잔병도 없고 아주 건강한 것 같군요. 게다가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니 애정을 듬뿍 담아서 돌봐주신 것 같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셨다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네, 네에….”

       “흠. 이렇게 신경을 써주셨는데 답례를 꼭 해드리고 싶은데….”

         

       진성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턱을 슬쩍 쓰다듬더니 말했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터라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음에 올 때 제가 좋은 선물을 하나 들고 오겠습니다.”

       “네? 선물이요? 아, 아뇨! 주지 않으셔도!”

       “하하,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프라우 빈터는 제 여동생의 친구이기도 하고, 제 여동생을 도와서 재료를 구해주기도 했으며, 동물들을 정성껏 돌봐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주지 못한다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진성은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며 방긋 웃었다.

         

       “지금 당장은 동물들을 데려갈 수 없으니 조금만 더 돌봐주셨으면 합니다. 대신에 다음에 찾으러 올 때, 선물을 함께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프라우 빈터.”

       “네….”

         

       진성은 그녀에게서 승낙을 얻어내고는 축사 밖으로 나왔다.

         

       “하하, 본래는 동물만 보고 가려고 했던 게 이렇게 시간이 흘렀군요.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폐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아니에요. 저도 재미있었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음. 오늘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서 놀라신 모양이더군요. 다음에 방문할 때는 반드시 미리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그리고는 외투를 다시 걸치고는 밖으로 나와 작별 인사를 하고 집 밖으로 빠져나왔고, 아까 왔던 길을 통해 호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이, 오래비. 오라비가 말 그렇게 잘하는지 처음 알았어.”

       “저, 저도. 처음 봐요….”

         

       그리고 엘라의 집에서 멀어지자 이아린이 그를 콕콕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을 걸었다. 그 옆에서는 이세린이 약간은 어색한 듯한, 하지만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진성을 슬그머니 쳐다보고 있었다.

         

       “반했어? 응? 오래비. 오래비 취향이 저래?”

         

       약간은 장난기가 서려 있는 얼굴로 이아린의 모습에 진성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니. 반하지도, 취향인 것도 아니니라.”

       “하지만 목소리에서 완전 꿀이 떨어졌는걸? 여자 좀 꼬셔봤나봐? 어? 대답해보시지?”

       “맞아요….”

         

       이아린의 얼굴은 장난기가 서려 있었으나, 진성을 찌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약간의 불편함이나 짜증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런 것은 아니니라. 너희의 친구라 하여 예의를 차린 것뿐인즉.”

         

       그는 두 사람의 의문을 대충 그렇게 둘러대고는 슬쩍 점집을 쳐다보았다.

         

       점집의 주변은 깨끗하게 쓸려있었다.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도록 깨끗하게 말이다.

         

         

         

        * * *

         

         

         

       “아~! 저 오라비 진짜, 일본에서 뭐 하다가 온 거야!”

         

       이아린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어린애가 떼를 쓸 때 하듯이, 바둥바둥 몸을 움직이며 침대에서 날뛰었다.

         

       “야! 네 능력으로 못 알아봐? 저 오래비 일본에서 뭐 하고 온 거 맞는 것 같은데!”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침대의 등받이쿠션에 몸을 기대고 있는 이세린에게 말했다.

         

       “…안 돼.”

         

       이세린도 진성이 일본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던 터라 순간 혹할 뻔했지만, 얼마 전에 영시를 하다가 걸려서 곤욕을 치른 것을 떠올리고는 단호하게 그녀의 요청을 거부했다. 다만 능력으로 알아보는 것은 포기했어도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침대 옆에서 식빵을 굽듯 앉아 있는 낙타를 쳐다보았다.

         

       ‘어때?’

         

       자신이 직접 찾아볼 수 없다면, 자신의 악마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진성의 변화에 대해서 들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세린은 그레모리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대답을 해줄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대에 부응해주듯, 그레모리는 진성의 변화에 대해 대답해주었다.

         

       다만 그것은 이세린이, 이아린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 변했다. ]

       ‘어? 진짜? 어떻게 변했길래…?’

         

       그레모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 다른 인간들과 흡사한 외형으로 변했다. ]

       ‘응?’

       [ 그래. 나의 계약자야. 내가 저번에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새끼 고양이에 비유했던 그때의 대화를 말이다. ]

       ‘으, 응. 당연히 기억하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데….’

         

       저번에 업에 관해 설명할 때, 그레모리는 인간의 업을 새끼 고양이에 비유하며 이해하기 쉽게 그녀에게 설명해준 일이 있었다. 그때 이세린은 그레모리가 자신을 어떤 형태로 바라보는지, 어떤 모습의 새끼 고양이 느낌인지 알게 되었고, 초월종들이 왜 인간에게 우호적인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때 나는 네 오빠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지. ]

       ‘응. 어디에서 봐도 모습이 똑같아서 이질적이라고, 그렇게 말했었어….’

       [ 그 모습이 더 뚜렷해졌다. 이질적인 것은 똑같지만, 그 형태만큼은 다른 인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이세린의 질문에 악마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 글쎄. ]

         

       그레모리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차마 자신의 계약자에게 하기는 힘든 말이었기에.

         

       그녀의 오빠가.

       마치 사람 형태를 껍질처럼 뒤집어쓴 무언가로 느껴졌다고 말하기는 힘들었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 * *

         

         

         

         

       러시아의 밤은 차갑고, 쓸쓸하고, 어둡다.

       그나마 도심은 하늘의 별을 갖다 놓은 듯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기에 어둡지만은 않았지만, 도심 외곽으로만 나가도 추위가 그대로 색을 품고 내려앉은 듯 어둠이 사방에 깔린다. 그 어둠은 너무나 차갑고 서늘해서, 마치 끈적하게 제 피부에 달라붙어 그림자만이 가득한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악령을 연상케 만든다.

         

       이는 호텔과 저택가의 사이에 있는 골목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시처럼 뾰족하게 솟아난 앙상한 나뭇가지가 가득한 숲속처럼 골목길에도 어둠이 가득했고, 소련 시절에 세워졌던 가로등은 어느새 하나둘 그 수명을 다해 음산한 길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한다.

         

       그나마 골목길의 한편에 펼쳐진 천막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가로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나, 그 빛은 포근하다기에는 음산했으며, 밝다고 하기에는 어둠과도 한없이 닮아 차가운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다.

         

       특히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깨끗한 천막의 바닥은 그 싸늘함을 배가시키고 있으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천막으로 다가갈 생각조차 못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용기가 있어 천막에 다가간다고 한들, 천막의 안쪽에 보이는 기괴한 풍경을 본다면 장정이라고 할지라도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으리라.

         

       “흐~응.”

         

       천막의 안에는 거울이 걸려있었다.

       현대미술 전시장이라도 된 것처럼 천막 안은 거울로 가득 차 있었다.

       천에는 실버플라스틱 거울이 붙어 있었고, 어두운색의 테이블에는 유리가 붙어 간이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천장에서는 줄에 매달린 거울이 모빌처럼 가득 있었고, 곳곳에는 거울로 된 벽이 세워져 있었다.

         

       거울.

       수많은 거울.

       마치 광대가 뛰어노는 거울로 된 미로를 연상케 만드는 기괴한 풍경.

         

       그 중앙에서 점술사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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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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