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0

       시간이 지나고, 프란체 코퍼레이션은 재가동됐다.

         

       안드레아의 지휘하에 만들어진 의상들은 계속해서 매장에 들어왔고, 주문 제작 준비까지 마쳤다.

         

       그렇게 한창 매장을 운영하던 도중.

         

       “데카르트 공녀, 오랜만이군요.”

         

       매장에 제국의 황후, 로마르마 페델리안이 방문했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프란체는 황실 예법으로 인사했고, 황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였다.

         

       “맞춤 제작을 맡기러 왔는데, 지금 가능하겠지요?”

         

       촤락. 부채가 펼쳐지며 황후의 입가를 가렸다.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황후 폐하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호선을 그리는 황후의 눈살. 드레스에 대한 욕심이 컸나 보다.

         

       “그럼 바로 부탁해요.”

         

       프란체는 고개를 숙이곤 곧장 안드레아를 불렀다.

         

       “안드레아! 네가 기다리던 순간이란다!”

         

       그녀의 말에 헐레벌떡 달려오는 안드레아.

         

       “옙! 도착했습니다! 그럼 바로 치수부터 재겠습니다!”

         

       안드레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황후를 안쪽의 방으로 안내했다. 황후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안드레아를 따라갔다.

         

       그리고, 다른 귀족들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데카르트 공녀님! 평안하셨는지요?”

       “드디어 매장이 다시 열렸군요!”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각각 백작 영애, 자작 부인, 남작 영애. 자기들끼리 항상 같이 다니는 세 명이다.

         

       프란체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지만, 세 집안 전부가 사업을 통해 성공한지라 돈이 많다. 고객으로서 만점이다.

         

       “저희 매장에 방문해주시는 건 늘 환영합니다. 그럼 바로 둘러보실까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영부인들. 프란체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파티장에선 그렇게 나를 물어뜯더니.’

         

       어째서일까? 최근에 감정을 숨기기가 어렵다.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건 프란체의 주특기였다.

         

       그런데 저번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그렇고.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저… 데카르트 공녀님…?”

         

       영부인들이 잔뜩 겁먹으며 바라본다. 프란체는 순간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왜 저러는지 눈치챘다.

         

       자신도 모르게 흑마법이 피어나오고 있었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저 영부인들을 위협한 것이다.

       

       “아, 아니에요. 어서 가시지요.”

         

       영부인들을 먼저 보내두고, 프란체는 고개를 휘저으며 미간을 주물렀다.

         

       ‘요즘 지쳤나? 뭔가 이상하네.’

         

       정신을 차린 프란체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접객의 가면을 썼다.

         

         

       * * *

         

         

       나는 지금 카자르의 집에서 고대 마법서를 알아보고 있는 도중이다.

       

       “해석은 좀 되고 있나?”

       “처음 보는 룬어라 시간이 좀 걸려요.”

         

       카자르는 현미경과도 같은 안경을 쓰고 내가 가져온 고대 마법서의 페이지를 넘기며 유심히 지켜봤다.

         

       “음, 확실히 룬어가 복잡하긴 하네요.”

         

       안경을 벗고 미간 마사지를 하며 고개를 젖히는 카자르. 아무래도 과도한 집중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온 듯하다.

         

       “시간이 한참 걸리겠군.”

       “네. 이제 한 페이지 해석했어요.”

       “그 한 페이지 내용은 뭔데?”

       “책을 읽을 때 주의점이요.”

       “…….”

         

       시간만 날렸군. 원래 책을 읽을 때 첫 페이지는 넘기는 게 국룰인데.

         

       나는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게임 지식을 토대로 카자르에게 힌트 몇 개를 던져주었다.

         

       “그 마법서는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마법들이 존재해. 고대 마법서들 중에서 제일 희귀하고 위대한 마법서라고 볼 수 있지.”

         

       ‘로판소’의 아이템은 등급이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일반, 희귀, 서사, 유일, 신화.

         

       평범한 고대 마법서라면 서사 급이거나 유일 급이다. 하지만 내가 가져온 저 마법서는 신화 급.

         

       초월 마법사도 모르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검을 쓰시는 소드 마스터 치시곤 마법서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네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는 카자르. 내 주변에 있는 여자들은 왜 쓸데없는 곳에서 눈치가 빠른 거지? 어쩔 수 없지.

         

       “친한 친구 중에서 룬어를 해석하는 대마법사가 있었다. 그 친구도 제대로 해석은 못 했지만, 말을 들으니 그 마법서가 제일이라 하더군.”

         

       왕족 치트키는 만능인 법이다.

         

       “흐음, 그래요? 아무리 타국의 마법사라도 룬어를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름이 뭔데요?”

         

       어, 이건 좀…….

         

       “비밀이다.”

       “네?”

       “비밀이라고.”

         

       여기선 어떻게든 잡아떼는 수밖에.

         

       내가 좋아하던 소설에서 나온 방법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고 넘어갔다.

         

       “…알려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그러나 그 소설과는 달리 내 종족은 인간이었다.

         

       계속되는 의심의 눈초리.

         

       “그러고 보니 그동안 좀 이상한 점이 많았어요.”

         

       드르륵. 카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제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 안드레아라는 장인을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지금 이 마법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

         

       뭐지, 들켰나?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직전이다.

         

       “너무 수상하단 말이죠. 아무리 정보상 엑시드가 있다고 해도 존재를 알아야 찾을 수 있는 법이에요. 그들이 만능은 아니니까요.”

         

       다가오던 카자르는 내게 근접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이마가 맞닿을 만한 거리.

         

       “사실대로 말해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죠? 당신에게 새겨진 마법진부터 시작해, 증상, 그리고 여러 수상한 점들까지. 제가 이걸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꿀꺽. 침이 무겁게 넘어가 돌덩이를 삼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여자는 지금 내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어요. 혼자서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니까요.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 건 좀 이상해요.”

         

       마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있는 느낌까지 든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당신이 이상하니까요.”

       “그냥 여러 정보를 알고 있을 수도 있지.”

       “그냥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 귀중한 정보들이죠.”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내가 바바리안이었더라면…….

         

       여기서 내가 결정한 탈출구는.

         

       “카자르.”

       “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정면 돌파다.

         

       “음. 그건 이해해요. 하지만 이건 선을 넘은 정도란 말이죠.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와, 저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뭐, 이건 던져 본 말이고요. 말해줄 생각은 없는 거죠?”

         

       무심코 던진 말이었군. 떨리는 목소리를 내보이면 안 될 거 같기에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근데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언젠가는 그 왕족이라 알고 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래, 고맙다.”

         

       카자르는 다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현미경 같은 안경을 다시 썼다.

         

       “아, 참고로 제가 굳이 캐묻지 않은 이유는 당신과 특별한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를 쏘아보며 말을 이어가는 카자르. 그녀의 눈빛에는 장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없이 진지한 눈빛.

         

       “공녀님이 의심을 시작하시면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 거예요. 흑마법의 영향도 있지만, 공녀님은 소유욕이 강하니까요. 아마 당신을 죽여서라도 곁에 둘걸요?”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냐. 프란체는 그런 소름 돋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설마. 쓸데없는 걱정이야. 공녀님이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멈칫. 카자르가 다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동안 같이 있으면서 눈치 못 챘어요?”

       “뭐가?”

       “하아. 이래서 둔감한 남자는.”

         

       카자르는 관자를 짓누르며 고개를 휘젓더니 말을 이었다.

         

       “잘 들어요. 지금 공녀님보다 위험한 건 당신이에요.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흑마법에 잠식당하면 대처하지 못한다고요.”

         

       훈계와도 같은 카자르의 말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하고 중얼거리니 쏜살같이 내 말을 끊었다.

         

       “공녀님의 당신을 생각하는 감정은 계속 강해지고 있어요. 그에 따라 흑마법도 반응하죠. 혹시 몰라요? 이미 당신을 잠식하고 있을지도. 진 바렌베르크라는 사람을 평생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서.”

         

       할 말이 없었다. 이전에 말했던 프란체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군.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허.”

         

       탄식이 나왔다.

         

       프란체는 언젠가 내가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마법을 카자르에게 물어봤던 거겠지.

         

       “제 말이 이제 이해 가셨나요?”

       “그래.”

       “조심하세요.”

       “근데 어떻게 조심하라는 건데?”

         

       내가 묻자 카자르는 옆으로 고개를 꺾으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공녀님의 안정을 최우선시하세요. 불안감을 주면 당신이 위험해지니까. 거짓말을 해도 좋아요.”

         

       나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거짓말이라…….”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은 많이 해왔다. 하지만 프란체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약속을 해야 한다.

         

       나는 절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겉멋으로 만든 신념이 아니다.

         

       그 약속이 얼마나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상실감을 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많이 당한 거기도 하지.’

         

       뭐, 더 얘기하면 각설이니 넘어가고.

         

       “최대한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그래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요.”

         

       카자르는 그리 말하고 다시 룬어 해석에 집중했다. 나는 벽에 기대서 창밖을 바라봤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나 말고도 아군이 많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그녀의 스승과도 같은 격인 카자르. 전속 시종이면서 프란체의 보필을 잘해주는 헬레나.

         

       이 둘을 중심으로 점점 넓혀가면 되겠지.

         

       ‘그리고 그놈까지 있으면 되겠군.’

         

       ‘로판소’에 등장하는 첫 보스이자, 용병왕이라고 불리는 자.

         

       일명 ‘뉴비 절단기’.

         

       내가 없어도 프란체의 곁에 남아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줄 수 있으면서,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놈.

         

       ‘어떻게든 설득해서 데려오자.’

         

       결정을 끝마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본다.”

       “공녀님 뵈러 가시게요?”

       “그래. 할 일이 생각나서.”

       “네. 룬어는 맡겨두세요.”

         

       그렇게 문을 열려던 차, 새하얀 빛이 뒤에서 흘러나와 대신 열어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카자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말한 거 명심하세요. 단순히 겁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

         

       그게 겁주려는 거 아니면 뭔데.

         

       “…알았다.”

         

       그리하여 카자르의 집을 나오고, 나는 곧장 프란체의 매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러를 활성화하며 지붕을 넘어 다니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프란체 의류점은 입구부터 귀족들로 빼곡했고, 황족까지 행차하셨는지 황실 기사단도 보였다.

         

       ‘슬슬 황후가 올 때가 되긴 했지.’

         

       탁. 지붕에서 착지하고, 조용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프란체는 매장에 방문한 귀족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음?’

         

       그녀의 뒤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나오고 있다. 보기만 해도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저 안개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저게 강해지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마법을 배우자고 한 게 실수였던 걸지도. 근데 나라고 해서 흑마법에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나. 게임에서도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를 주물렀다.

         

       최대한 프란체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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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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