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70

       

        

        

        

        하모니의 하루는 상당히 평범했다.

        

        오전 아홉 시에 힘겹게 기상하여 스케줄 사이에 힘겹게 끼워넣은 헬스장을 다녀온 후, 고작해야 한두 시간의 운동에도 땀을 비오듯 흘리며 간신히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시원하고 달달한 스무디를 파는 카페가 몇 개나 눈에 들어오지만, 배를 만지면 여전히 느껴지는 찰떡같은 말랑함에 한숨을 내쉬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곧바로 샤워를 한 뒤, 냉장고에 쟁여놓은 여러 밑반찬들과 소분한 후 얼려둔 국 등을 꺼내어 점심식사. 얼마 전까지도 넘쳐나던 고칼로리 배달음식들은 그 때문인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운동의 피로와 식곤증이 겹쳐서 몰려오는 탓에, 소화가 어느 정도 될 정도의 시간을 꾸벅꾸벅 졸면서 보내다, 이후 두 시간 정도 곤히 잠든다.

        

        만약 외출을 필요로 하는 스케줄이 있다면 이때 나가는 편이었다.

        

        그리고 기상하여 어느 정도 잠이 깨면, 보통은 오후 네 시 정도.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낮잠 전에 처리하지 못했던 스케줄을 마무리한다.

        

        주된 것들은 유어스페이스에 올라가는 동영상이나 소속 MCN 컨텐츠 관련. 그래도 그녀는 자율권이 있어서 크게 신경쓰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후 여섯 시 즈음이 되면, 그녀는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양치를 하고 방송을 켠다.

        

        주로 오후 일곱 시부터 열한 시 – 길면 오전 열두 시까지 이어지는 그것은 가상현실로 환산하였을 때 열두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정도였고, 당연하게도 압축된 시간을 경험한 그녀는 방송이 끝난 후 칼같이 잠든다.

        

        

        그리고 8월의 막바지,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다크 존과 연관된 여러 일들로 인해, 기존보다 한참은 불어난 시청자들을 껴안고 오늘도 방송을 하고 있을 무렵.

        

        저스트 채팅을 이어가던 그녀의 눈 앞으로 하나의 화면이 떠올랐다.

        

        

        

       <해파리박스 님이 7,000원 영상 도네이션을 해주셨어요!>

       -녹냥아!!!! 또 사방팔방에 이상한 게임 뿌리고 다녔지!!!

        

       “…흐힝.”

        

        

        

        굳이 거창한 부연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는 광경.

        

        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간략하게 나온 후, 유진이 점프 마스터를 플레이하는 시점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참으로 그녀스러운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한테도 그랬지만, 누군가가 원하는 건 죽어도 안 해준다.

        

        물론, 저 방법을 알려준 건 자신이었지만 – 그래서 더 웃음이 나온다.

        

       

        

       -어어 웃지마라

       -딱 보니까 얘가 가르쳐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트루 악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모니 또 너야?

       -이게 역병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는 적응해버리기 시작한 하모니의 시청자들과, 근래 들어 똥겜에 손을 대버린 유진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직감한 이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과는 완전히 인연이 없어,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인 몇몇까지.

        

        오늘도 하모니의 주변은 평상운전 중이었다.

        

        

        

        

        

        

        

        

        

        

        

        

        

        시간은 그 사람이 바쁜 만큼과 비례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요즘 그 사실을 꽤나 깊숙하게 체감 중인 사람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는 하루의 루틴이 상당히 굳건하게 고정되어있다는 점과 맞물려, 요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살살 녹는 기분이다.

        

        구체적으로는 눈을 감았다 뜨니 밤낮이 훌쩍 지나가있을 정도로.

        

        그 사이에는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일마다 진행되는 스크림이야 별다른 일정 상의 문제가 없으면 참가했고, 그 와중 다이스가 제안한 임시 코치직 – 구체적으로는 아시아 예선전 전까지 계약이 예정되어있는 – 관련 논의도 끝냈다.

        

        그리하여 당장 내일부터는 스크림 대신 해당 시간에 전술 어드바이저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이곳으로 돌아온 이후 일이 그다지 안 풀리면 해보려고 했던 직업인데, 이걸 현실의 PMC가 아니라 사이버 세상에서 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하나, 이걸.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내가 굳이 현실의 몸을 이끌고 오지 않아도 된단다. 어차피 가상현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경기들이기에 그렇다나.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새로운 걸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분야의 고민들도 따라오는 법이었다. 그 중에는 방금 언급하였듯 내 전문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비교적 간단한 일도 있었지만 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었다.

        

        가령 다이스를 통해 제시되었던 제안을 내 입장에서 간단히 비유해보자면 – 이는 길을 가던 도중 나와 행선지가 같은 사람이 내게 길을 물었기에, 그곳까지 동행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후자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가령, 유어스페이스 편집자를 구하고 나만의 채널을 운영하는 것.

        

        가령, MCN 소속 제의를 받는 것.

        

        

        둘 다 강제성이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채널 운영에 관련된 의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간과하거나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아직까지는 준비가 미흡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전 조사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계획이라는 건 원래 시작 단계에서부터 어그러진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집자한테 월급을 얼마나 줘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채 구할 수는 없잖아.

        

        사실 그 부분을 논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채널의 방향성을 구상하고, 편집 스타일을 정하고, 한 달에 몇 개의 동영상을 올리고, 채널 홍보를 어떻게 할지 정하고…영상 섬네일도 있으면 좋겠지. 그렇다면 그 부분 역시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방송 내적으로도 변화가 있겠지.

        

        내가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항상 같은 내용과 컨텐츠로 이뤄진 영상을 올리기도 좀 그럴 것이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많은 만남과 변화가 수반될 것이다.

        

        그것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손대기에는 좀 까다롭지 않을까.

        

        

        

        사실 그리 큰 고민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건 내 개인적인 성향 중 하나인 ‘기왕 할 거면 좀 더 완벽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기질이 발동한 거니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기 전에 간략한 편집만을 해줄 사람을 구해도 되고.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내가 이를 진지하게 구상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하모니 : 선생님~~~~요즘 잘 지내시나여?? 날이 아직도 많이더워용╰(*´︶`*)╯]

        

       -[하모니 : 다름이 아니라 근래 이것저것 소식이 많이 들려와가지고 항상 하는 안부인사 겸 와봤어요 ㅎㅎ! 점프 마스터는 깨셨나요?]

        

       -[유진 : ( •᷄⌓•᷅ )]

        

       -[유진 : 어케 이런 껨을 추천해주실 수가 있죠….]

        

       -[하모니 : 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모니 : 미아내요,,ㅠㅠ]

        

        

        

        이런 연례적인 인삿말 뒤에 나온 말 때문이었다.

        

        

        

       -[하모니 : 구구절절 이유를 늘어놓을까 하다가 구지 빙빙 돌려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하모니 : 여태까지 이런저런 도움 많이 받았는데도 변변찮은 답례 한 번 못해드린 것 같아가지구]

        

       -[하모니 : 괜찮으시면 식사 한 끼 대접해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하모니 : 제 개인적인 욕심이니까 거절하셔도 돼욤….]

        

        

        

        구체적으로는, 이걸 보고 난 다음 뻗어나온 마인드맵 중 – 내가 실제로 하모니를 만나러 가게 된다면, 그때 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생각해보다가 그만 삼천포로 빠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사실 만나지 않는다거나 하는 선택지는…딱히 생각해보진 않았다.

        

        내가 무슨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사람 만나는 게 무서울 이유가 있나. 이미 예전의 신체는 기억도 안 날 정도인데. 까놓고 운동량만 따지면 내가 뉴욕에서 보냈던 4년 8개월이 이전의 20년을 압살할 정도인 것을.

        

        아무튼, 여태까지의 긴 잡설은 결국 저 메시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약 끝.

        

        

        

       -[유진 : 잠시 생각해봐도 될까요?]

        

       -[하모니 : 넹!]

        

        

        

        사실 저건 우회적인 거절이라기보단, 앞으로의 내 스케줄을 확인하고, 만날 때 입고 갈 옷이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과정에 가까웠다.

        

        도대체가 집에 옷이라고는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왠갖 희한하게 생긴 것들밖에 없었기에 생긴 불상사였다. 물론 뒤져보면 이것저것 입을 만한 것들은 있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내 기준에선 조금….

        

        언더웨어 착용까지는 어쩔 수 없이 적응해버린 게 아이러니긴 한데.

        

        

        그것도 그렇고, 이제…내 실물을 설명할 준비도 좀 해야겠지.

        

        

        

       -[유진 :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예선 랭크가 열리는 날이라서 아무래도 그 즈음부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하모니 : 엇]

        

       -[하모니 : 생각 있으신가용,,??]

        

       -[유진 : 못 만날 것도 없죠 ㅎㅎ]

        

       -[하모니 : 어예~~~~!!!٩(ˊᗜˋ*)و]

        

       -[하모니 : 괜찮으신 날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저는 아무때나 시간 비울 수 있으니까!]

        

       -[유진 : 저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한 가지 말씀드려야만 할 게]

        

       -[유진 : 제 실물 보면 조금 놀라실지도 몰라요,,]

        

        

        

        그러자 금방 대답이 돌아온다.

        

        

        

       -[하모니 : 괜찮아여! 마음의 준비도 끝났구…아무리 근육 빵빵한 헬스트레이너 분이 나와도 안 놀랄 자신있어요ㅎㅎ^^]

        

       -[하모니 : 그러면 고깃집을 예약해야되낭…?]

        

       -[유진 :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게 빠를 것 같기는 한데]

        

        

        

        찰칵.

        

        한 장의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

                                       [신체증명증]

        

              식별종  :  Eunectes murinus Linnaeus

               구분   :   Serpentia (in Green Anaconda)  

               이름   :   이 유 진

               정의   :   EM/IPN

               상세   :   신체적 특징 다수 식별

                           (Evident/Multiple)

                           신원 보호 필요

                           (Identity Protection Needed)

               비고   :   010 – XXXX – XXXX (인권보호센터)

        

       └───────────────────────┘

        

        

       <전송하시겠습니까? [Yes]/No>

        

        

        

        그것을 꾸욱, 하고 눌러 보낸다.

        

        망설임 같은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그 단계를 지나친지는 좀 오래기도 했고, 본래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뭔가 거창하게 말해서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냥 사주면 잘 먹는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 하모니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하모니 : !!?!??!?!?!?!!?!?!!?!?!?!?!]

        

       -[하모니 : 선생니임?????????????????]

        

       -[유진 : (•ε•;)]

        

       -[하모니 : 그린아나콘다면선생님설마아바타가설마설마???]

        

       -[유진 : (;◔д◔)]

        

       -[하모니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끝나지 않는 ㅋ 속에 담긴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의 집합이란.

        

        그나마 참 다행이게도 이 세상에는 발현자라는 게 있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외부의 반응은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 하모니의 반응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모니 : 날 속였어!!!!!]

        

       -[유진 :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유진 :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모니 :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모니 : 진짜 정신이 아찔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기도 전 이어지는 말들.

        

        

        

       -[하모니 : 그럼 진짜 꼬리도 있어요? 꼬리 보여주세요!]

        

       -[하모니 : 꼬리로 하트 모양 그릴 수 있어요?]

        

        

        

        …음.

        

        마지막 서비스 같은 기념으로 해줬다. 꼬리 구조상 원만하게 하기 어려운 형태였지만, 사실 옛날에도 해본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재차 터진 플래시를 뒤로 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옆의 숫자 1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모니 : ♡♡♡♡♡♡♡♡♡♡♡♡♡♡]

        

       -[하모니 : 저 E2급 이상 발현자는 처음봐요….]

        

       -[유진 : 이상하지는 않죠?]

        

       -[하모니 : 뱀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꼬리가 넘 예뻐요!]

        

       -[유진 : 다행이네요]

        

        

        

        조금 본질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혹여나 모를 놀라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으니…결론적으로 보자면 목적은 달성된 거긴 했다.

        

        

        

       -[하모니 : 그러면 가고 싶은 곳 있으세요?]

        

       -[유진 : 제가 식사량이 좀 많아서….]

        

        

        

        대화가 이어졌다.

        

        근래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 앞날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다이나믹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주회가 다음주야…살려줘..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