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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0

        

         

       돈과 생존에 미쳐있던 한 남자가 누워있는 병실.

       그곳은 평화로웠다.

       저승으로 떠나야 할 사람조차도 이승에 묶어두고 붙잡는 과학기술의 정수가 가득했고, 신원이 보장된 몇몇만이 출입하며 진료를 봐준다.

       병원 측은 어디에서 보내왔는지 모를 사람들이 이상한 기계를 들고 ‘뇌파를 한 번 분석해봐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 중인 프로토타입 장비다. 이것을 이용한다면 의식을 되찾게 할 수 있다.’, ‘뇌에 전기자극을 주어서 어둠뿐인 현재보다 훨씬 더 훌륭한 환경을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한번 해 볼 생각이 있느냐.’ 같은 수상한 제안을 반려하기도 했고, 미끄럽게 처리가 되어있는 건물 외벽을 굳이 굳이 타고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움직임으로 창문을 통해 병실에 잠입하려다가 실패한 능력자들이 발각되기도 한다.

       때로는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병실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저격을 맞고 제압, 요원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끌려가기도 했고.

         

       급박하면서도 평화로운.

       그러한 풍경이 이어졌다.

         

       “찾았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 속에서 박진성은 발견해낼 수 있었다.

       아슈토쉬 싱이 말했던 ‘힌트’와 가장 가까울 무언가를.

         

       삐-

       삐-

       삐-

         

       그것은 루카스의 몸에 붙어있는 수많은 기계도 아니었으며, 루카스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수작질을 부리는 조직이나 능력자들도 아니었으며, 먼저 선점을 한 뒤 루카스를 관리하는 미국 정부와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

       아니, 어쩌면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약.

       그것도 치료용 수액.

         

       루카스의 혈관에 꽂혀서 일정 시간마다 또옥 또옥 떨어지면서 몸에 투약되고 있는 바로 그 약이 바로 박진성의 눈에 들어왔다.

         

       『 Gift 』

         

       선물 상자처럼 보이는 곳 안에서 광채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문양.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거대 제약회사, ‘기프트 코퍼레이션’의 로고였다.

         

       몇몇 유전병 치료제와 치료용 수액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매년 10대 제약회사를 꼽을 때마다 반드시 빠지지 않는 거대한 회사.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냥저냥 유명한 회사구나- 하고 넘어갈 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회사.

         

       하지만 박진성은 알고 있었다.

         

       제약회사, 기프트 코퍼레이션의 어둠을.

         

       ‘그래. 기프트 코퍼레이션. 저것이 있었지. 허허. 병원을 잘 가질 않으니 이거 원….’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세워진 일견 평범해 보이는 제약회사.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이 회사가 나치 독일 출신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세계 2차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은 독일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

       과학기술, 설비, 돈…. 그리고 인재까지.

         

       전범으로 처형될 위기에 처해있던 나치 독일의 인재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신분을 세탁해주겠다.’라는 미국의 제안에 반색하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미국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병기에서부터 의학까지 여러 분야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여도’를 인정받아 몇몇은 신분 세탁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신분을 얻은 이들이 모여서 만든 제약회사가 바로 ‘기프트 코퍼레이션’이다.

         

       기묘하지 않은가.

       선물이나 재능이라는 뜻의 기프트.

       하지만 그것은 ‘독’의 뜻이 있기도 했으니….

       세계 전체를 휩쓸었던 극독의 일원이 세운 회사의 이름으로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할 법하다.

         

       그렇게 신분 세탁을 한 이들은 나치 독일에서 얻은 결과물, 그리고 미국에 협력하면서 행했던 실험의 결과물을 토대로 순식간에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급성장에는 협력자들에게 보여주는 미국의 ‘약간의 호의’가 있기도 했겠지만, 생체실험 등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

         

       그렇게 기프트 코퍼레이션은 강력한 아성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미국의 도움을 받는 다른 제약회사들, 국가 단위로 돈과 인재가 퍼부어지며 성장하는 제약회사들, 전통과 신뢰가 가득한 분야 터줏대감들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적어도 ‘치료용 수액’ 부문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제약이라는 것은 언제든 환경이 뒤바뀔 수 있는 법.

       대체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발기부전 약조차도 후발주자에 의해 시장이 점령당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판국에, 고작 치료용 수액 하나로 안전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기프트 코퍼레이션은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치료용 수액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연구에 투자하며 달렸다.

         

       달리지 않으면 뒤처지니까.

       달려도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처럼 달리고 달려도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런데도 달리지 않으면 한참을 뒤처져서, 안간힘을 써도 다른 이들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없으니까.

         

       기프트 코퍼레이션은 달렸다.

       기업을 세운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아서.

         

       ‘그 정신이 우생학에 기반하는 것이 문제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업을 세운 놈들이 나치 독일 출신의 과학자와 의학자들이고, 나치 독일과 미국에서 생체실험을 돕고 데이터를 얻은 놈들이며, 심지어 미국 정부에서 가지고 온 일본 제국의 생체실험 기록마저도 열람하기까지 했다.

       그런 놈들이 모여서 기업을 만들었는데 깨끗할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능력으로 전범이 되어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처형당하고, 역사에 이름이 남겨져서 대대손손 욕을 처먹을 위기까지 벗어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놈들이 제대로 된 정신 상태일 리가 만무한 노릇.

         

       기프트 코퍼레이션을 세운 놈들은 나치 독일이 폭삭 망한 것을 보고서도 자신의 신념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놀랍게도 말이다.

         

       나치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리아인의 우수성이니, 게르만족이 최고니 하는 것은 버리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

       우생학에 찌들어 있던 이들은 ‘우월한 인종’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온갖 재능 넘치는 이들이 몰려드는 미국의 환경은 이들의 어렴풋한 허상을 점점 또렷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였다.

       특히나 이들이 존재했던 시기는 인류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법한 천재들이 존재했던 시기였기에, 이들이 가지고 있는 허상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이들은 생각했다.

       우월한 인간은 존재하고, 그것은 인종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일찍이 그들이 배우고 상식처럼 장착하고 있던 우생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그 해답은 유전자에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이들은 유전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약을 팔면서 돈을 벌면서도, 마치 연구에 집착하는 미친 학자들처럼 그렇게….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노력은 보답받는다.

       간단한 방법으로 유전자를 편집하고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기프트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처럼, 마치 선물처럼 지지부진한 연구를 단번에 진전시킬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되고, 마침내 첫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똑똑한 두뇌.

       매력적인 외모.

       선천적인 장애 따윈 찾아볼 수도 없고, 질병에도 강력한 면역력을 갖추고 있는 아기.

       하나부터 열까지 기프트 코퍼레이션의 손길이 더해져 있는 천재.

         

       그 천재 아기를 시작으로 그들은 인류가 새로운 영역에 접어들었음을, 신인류가 탄생하였음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래보아야 광기의 일부일 뿐이었지만.’

         

       하지만 이러한 축포도 잠깐이다.

         

       이들의 유전자 조작 기술에 크나큰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감성의 부족.

         

       그들이 만들어낸 디자이너 베이비들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와 닮아있었다. 심지어는 기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 메마른 아이까지 있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려를 표했으나, 기프트 코퍼레이션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부작용을 기뻐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위버멘쉬(Übermensch)의 조건을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시간이 흐른 후 당연하게도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재능이 뛰어난데다가 공감 능력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 광기가 가득한 세계 3차 대전의 환경 속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디자인되어 탄생한 ‘신인류’들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세상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광기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고작 ‘공감 능력이 부족한 천재 아이들’ 따위가 큰 발자취를 남길 수는 없었으니까.

          

       광기는 재능 너머에 존재하였고.

       신인류들이 일으킨 소동은 말 그대로 소동으로 끝났다.

       지속되지 못하는 소동으로써, 더 큰 광기에 먹혀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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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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