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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1

        

         

       광기는 더 큰 광기에 잡아먹히는 법.

       그것은 다른 광기와 합쳐져서 더 큰 광기가 되기도 하고, 그저 장작으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신인류’와 관련된 소동은 명백히 후자였다.

         

       뭐, 그들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이 있기는 하리라.

         

       세력을 모아서 일을 벌이려고 하는 신인류는 공간을 넘어서 날아오는 공격에 모가지가 썰려버렸고, 과학이나 이능을 연구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신인류는 세상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조직들의 텃세조차도 제대로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버렸다. 돈을 벌려고 하는 놈들은 급변하는 세계와 미쳐 날뛰는 화폐 가치를 이기지 못하고 허무하리만치 쉽게 재산을 잃고 몰락했으며, 제 한 몸이라도 유지하려는 신인류는-

         

       그래.

       제 몸 하나 건사하려고 하는 신인류들이 가장 오래 버티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국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붙잡혀 납치되거나, 신인류를 해부하고 뜯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 미친 과학자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서 생체실험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신인류의 맛이 궁금하다면서 달려드는 미식가들에게 붙잡혀 한 끼 요리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몇몇 신인류들은 맛이 좋다면서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배양육으로 만들어서 팔기도 했지.’

         

       그나마 진성이 알고 있는 것만 이 정도였다.

       아마 더 조사해본다면 더 잔혹하고 끔찍하게 죽어 나간 신인류들 역시 적지 않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었던 것을.

         

       기프트 코퍼레이션에서 탄생시킨 ‘신인류’들은 공감 능력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데다가 자신은 우월한 종이라는 우생학적 자부심과 선민사상이 가득했다. 그 때문에 재능을 믿고 온갖 패악질을 벌이기도 하고, 사람을 장난감이나 동물처럼 여겼으며, 세상을 놀이터처럼 가지고 놀려고 하는 것도 여러 번 보였다.

       이러니 이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신인류는 그렇게 모두의 외면 속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넘쳐나는 광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 바로 그것이었음에도.

         

       그렇게 신인류들은 몰락하고…. 기프트 코퍼레이션은 갈가리 찢겨나갔지.

       가장 큰 파이는 중국이 먹었고.

         

       ‘그래. 여기부터 조사함이 옳겠다.’

         

       박진성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곤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사를 할지를.

       어떤 방식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지를.

         

       ‘다만 한국과 일본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은 힘들 것이다. 미국이 보여주었던 심상치 않은 징조 때문인지 경계심이 잔뜩 커져 있으니…. 괜히 미국을 자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겠지. 설령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야 할 터이니….’

         

       정부는 힘들다.

       그렇다면 단체는 어떤가?

         

       ‘단체 역시 애매하다.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 터. 만약 들키게 된다면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깊숙하게 들어와 나에 대해 알게 되는 일도 생길 터이니…. 이 역시 좋은 방법이라 할 수는 없음이니.’

         

       애매하다.

         

       차라리 다른 나라였으면 좋았을 것을.

         

       하필이면 미국이라는 것이 그의 움직임을 제약하게 만든다.

         

       땅이 너무 커서 이동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일본 이상으로 감시가 철저해서 본신이나 위장 신분으로 돌아다니기도 애매하고.

       어린아이로 다니기에는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도 적고, 시선도 많이 끌 것이 분명하고….

       게다가.

         

       ‘이곳에는 주술사가 있지.’

         

       이곳에는 주술사가 있다.

       회귀 전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미지의 주술사가.

       그 주술사가 어떤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인맥을 사용할 수 있는지, 미국에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미지는 항상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니.

       그것이 바로 박진성이 회귀 전에 오래오래 활동할 수 있게 만든 원칙이다.

         

       하지만 경험에서 쌓인 방법 또한 있는 법.

       박진성은 이 ‘위험한 미지’를 희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혼란.’

         

       혼란 속에서는 역설적으로 자유가 부여된다.

       통제와 감시는 줄어들고, 바닥이 뒤집힌 호수처럼 흙탕물로 새까맣게 변해가며, 호수 안에서 살던 생물들은 혼비백산하며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 속에서는 위험이 피어나기도 하지만, 도리어 안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다시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터이지만.

       뭐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혼란 속에서 자유가 생긴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자유.

       기프트 코퍼레이션을 조사할 수 있는 자유.

       ‘힌트’에 접근하기 위한 자유.

         

       아.

       참으로 이 땅에 걸맞은 가치가 아니겠는가.

         

       수많은 자유와 광기가 난립하였던.

       회귀 전의 미국과 같은!

         

       박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미국에 있는 작은 몸이 아닌 본체.

       한국에 있는 박진성의 몸으로 말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새까만 어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어둠이 아닌,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하고 곰팡이의 냄새가 가득 섞인 지하실의 어둠. 새까만 습기를 머금은 어둠은 마치 물결치듯 먼지를 싣고 흐르고, 물속에 물고기가 살 듯이 어둠을 타고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며 그 흐름을 타고 신나게 노닌다.

       그것들이 무엇을 씹는지 설겅설겅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리는 듯하고, 윙윙거리며 가동되는 기계들은 물속에 들어온 이에게 찾아오는 먹먹함과도 같기도 하다.

       다만 찾아온 이의 무서움을 알아 두려워 사방으로 물러났으니, 그들은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까닭인지라. 천국의 상징을 세우고 모방하여 제 거처로 삼은 이가 아래로 내려와 걸으니 그 걸음이 하늘에서 추락한 샛별과도 같아 그 빛이 없어도 그 뜨거움은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며, 그 음험하고 사악함이 저들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솟구쳐 차마 다가갔다가는 태양에 날개가 타버려 추락한 이카로스보다도 끔찍한 꼴을 보게 될 것임을 뇌 없는 머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리하여 그것들은 물러난다.

       해충들이 인기척을 느끼기 무섭게 곰팡이가 가득 핀 구석진 곳에 제 몸을 숨기는 것처럼, 사념으로 이루어진 그것들은 그 진화와 변이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몸을 숨기고 숨긴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주인이 자신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지만 안심하라.

         

       저것들은 번견처럼 부리고, 혹은 일부러 키우는 화초나 벌레처럼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인 것들이었으니. 일부러 내버려 두고 있는 것에 어찌 증오와 혐오심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가 향하는 곳은 흐르는 어둠 속 피비린내를 풍기는 곳에 있는 이들.

       감히 그의 빌딩에 침입하였다가 붙잡혀 공헌하게 되어버린 이들.

         

       무엇에 대한 공헌이냐?

       그것은 사사로이는 박진성을 위한 공헌이요, 박진성의 동생인 이아린을 위함이요.

       그리고 더 크게는 이들이 세상에 퍼뜨릴 해악과 그 업을 멈추게 했음이니 세상을 위함이요, 또한 그들을 위함이기도 한 것이라.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말하기를 하늘의 그물은 너무나 넓고 커서 성긴 듯 보여도 빠뜨리는 법이 없는 법이라 하였음이라!

       악인이 만든 업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끈질기게 따라붙어 반드시 그 대가를 징수해간다. 본인이 아니라면 혈육에게, 혈육이 되지 않는다면 친지에게, 친지조차 되지 않는다면 가족에게, 가문에게.

       기나긴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와 함께 그것들은 업의 대가를 지불함이니.

       이것이 바로 인세를 이루는 규칙 중 하나일 것임이라.

         

       그리하니 칼질로 사람을 죽이고 남의 명령을 받아 나쁜 짓을 하고 다니던 이들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게 되었으니 어찌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다만 박진성은 안타깝게도 초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필부(匹夫)요 범인(凡人)인지라.

       그리하여 인과를 읽고 법칙을 통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지라.

         

       그리하여 어림짐작으로밖에 그들을 도울 수 없음이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일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보라.

       저 흐드러지게 피어난 익선청련을.

       매미의 날개처럼 투명한, 피를 머금으며 자라난 저 생명력이 가득한 꽃을.

         

       저 꽃이 한가득 피어난 화단의 아름다움이 이리도 대단한데.

       저 꽃이 뿜어내는 매력이 이 어둡고 좁은 지하에서도 범상치가 않음인데.

         

       어찌 저것이 나쁜 일일 수가 있겠는가?

       어찌 저것을 좋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래. 충분히 제 소임을 다하여 쓸모가 끝을 보이는 자들이 있으니. 너 충분히 꽃을 길러낸 자들은 마땅히 물건 하나를 있어야 할 곳에 가져다 놓고 오기만 한다면 들에 풀어주어 해와 달의 아래에서 활보할 수 있게 해주겠느니라.”

         

       박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구석에 숨은 것들을 끌고 와 그들을 꾹꾹 눌러 담고 압축하여 연기와 같은 형태로 만들고.

         

       “끅. 끄극.”

         

       무인의 얼굴에 나 있는 구멍들로 그것을 흘려보내어 채우기 시작하였으니.

         

       “너는 택배이자 택배 기사가 될 것이다.”

         

       물건을 옮겨라.

       네 몸에 담긴 것들을.

       지하실에 방생해놓았던 귀신과 악령을.

         

       ‘저것은 훌륭한 택배가 될 것이요.’

         

       또한 들키게 된다면 폭탄이 될 것이니.

       혼란을 일으키기에는 나쁘지는 않으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700화를 넘게 되다니…!!!!
    이렇게 짧지 않은 여정동안 이렇게 의미 있는 숫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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