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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2

    <702 – 불쌍한아이(2)>

     

    다크노디에게는 꿈이 있었다.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오크노디. 이거 봐라?

    -으앙, 내 눈!

    -히힛. 셀로판지를 붙인 복수야!

     

    …기억으로도 같이 데미지를 입은 복수를 하는 것.

    당연히 아카데미에서 그녀가 제일 먼저 마주친 친구도 티토소가였다.

     

    “오크노디?”

    “응.”

     

    주인을 만난 개처럼 신나서 다가오던 티토소가가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노디야 괜찮아? 기분 안 좋아? 피자빵 먹을래?”

    “피자빵? 그건… 도감에 없는 음식인데.”

    “체다 포테이토피자가 귀족파 군자금을 벌려고 포인트 받고 팔았어!”

     

    오크노디만큼은 아니어도 기프트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식탐마저 내려놓고 음식을 양보하는 티토소가.

    그 상냥한 태도에 뭉클함을 느낌과 동시에 뉴비가 갑자기 일주일 기아체험주간이라도 닥치면 어쩌려고 이러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티토소가가 이렇게 식탐을 내려놓은 이유도 자기 때문이었다.

     

    ‘오크노디와 내 텐션이 달라.’

     

    기억 속 오크노디는 언제나 해맑았다.

     

    -앗, 이슈타르다! 안녕하세요!

    -…날 기숙사 미로에 버려두고 갔으면서 그런 해맑은 인사가 나와?

    -하지만 네비게이션 기능경험치 올랐죠?

    -오르기는 했지만 무서웠잖아!

    -용사는 원래 네비게이션 잘해야 해요. 그래야 마계에서도 길을 안 잃죠!

     

    미운 정이 먼저 든 이슈타르에게도 꼬박꼬박 활기찬 인사를 건네는 아이가 무뚝뚝한 얼굴로 짧은 인사를 건넸으니 기분이 나쁘게 보일만도 하지.

    다크노디는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는 심정으로 애써 활기찬 목소리를 꾸며보았다.

     

    “티토. 오늘은 같이 놀래?”

    “와, 정말? 너무 좋아! 우리 머하고 놀까?”

    “요일던전?”

     

    오크노디가 아카데미를 양보한 틈에 여기서 최대한 꿀을 빨아야한다고 생각하던 다크노디는 무의식중에 성장이 가능한 선택을 골랐다.

    요일던전에는 브론즈 교수의 보물고로 가는 길도 있었고, 계단에 숨은 미믹은 티토소가의 오랜 트라우마로 자리한 지 오래였다.

     

    “히잉. 역시 기분 나쁜 거지? 그런 무서운 곳 다시는 가기 싫다고 했잖아!”

    “도서관은 어때?”

    “금서 무서워!!”

    “요 앞에 강에서 수영할래?”

    “잊었어? 지난주에 사다코 교수님이 강바닥에 물귀신 풀어놨잖아!”

    “…실뜨기나 할래?”

    “완전 좋아!”

     

    그래, 성장이야 밖에 나가도 얼마든지 할 기회가 있지, 친구와의 교류는 여기서만 할 수 있다.

    마음을 좀 더 느슨하게 먹어보자.

    무엇보다도 직접 만난 티토소가는… 생각보다 그렇게 막 얄밉지도 않았다.

    티 없이 맑은 미소와 한결같은 순수한 호의는 저절로 다크노디의 마음 속 빗장을 풀고 무장해제를 시켰다.

    마치 이런 게 친구 사이라는 것처럼.

     

    “으앙, 손이 베였어!”

    “마력실뜨기야. 손에 실뜨기처럼 장갑을 씌워서 막으면 돼.”

    “으앙, 실이 장갑에 파고들어!”

    “빛을 사방으로 내뿜는 요령으로 마나를 방출해. 출력을 높인 상태에서 천천히 낮추면 베이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어.”

    “이, 이런 건 실뜨기가 아니야!”

     

    다크노디는 조금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하면 놀이와 수련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력실뜨기 싫어…?”

    “앗, 그건 싫기는 하지만 노디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싫은데… 우우우……”

     

    고민 끝에 티토소가가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계속 하자……”

     

    티토소가는 [마나제어술 경험치+15]를 얻고 다크노디는 [협박][고문][가스라이팅][사악한아이] 경험치를 골고루 얻었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오크노디가 순수한 호의를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 때의 기분은.’

     

    타인이 쌓아왔던 과거로만 존재했던 기억을 자신이 직접 쌓아오르는 경험으로 재현하니, 비로소 자신이 오크노디의 영구분신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만나봐야겠어.’

     

    재미없고 굽신거리기나 하는 로시난테나 곽조.

    무뚝뚝하고 반응 없는 알파나 크루엘.

    인정하지 않고 거리감이 있는 선황 히우그마그와 시종장 오카시이네.

    실패한 학년데뷔처럼 서먹했던 뱀피군단에서의 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이번 아카데미 생활은 인싸노디의 일상과 즐거움을 잔뜩 누리고야 말겠다.

     

     

    * * *

     

     

    지젤은 침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크노디가 재단과의 접촉 이후로 단단히 마음에 상처를 입었나 봅니다. 태도에 어딘지 모르게 벽이 느껴지고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밥 먹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처하면서 내 눈치를 봤어. 꼭 우리 사이가 이렇게 해야만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사벨의 얼굴에도 슬픔이 떠올랐다.

    보통 밥만 먹던 아이가 설거지를 하면 대견하겠지만, 그 이유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여기면 슬픔을 느끼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쥐방울 녀석, 밥도 깨작깨작 먹어대는 꼴 봤냐? 우리랑 ‘먹는 속도’를 맞췄다. 꼭 언제라도 ‘마지막 식사’나 ‘최후의 만찬’이 될 것처럼. 이 녀석, 또 어디론가 제멋대로 사라지는 거 아니야?”

     

    강력해진 오크노디에게 수인 특유의 직감을 발휘하고 강자를 향한 공포를 느껴왔던 손오천조차도 측은지심을 보일 정도로 오크노디의 상태는 심각했다.

     

    “들려오는 소문도 좋지 않습니다. 롯토와 헤스티아에게는 지금껏 가르쳐준 적이 없었던 고등격투술을 전수하고, 로지니와 샌드쿠커에게는 커플이 익히면 상승효과가 있는 마나연공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건 좋은 거 아니야?”

    “고등격투술은 관절을 떼어놓고 <무감>과 <마나제어술>을 이용해 신체를 더욱 길게 확장, 결합을 반복하며 긴 사거리와 짧은 사거리의 교전을 넘나드는 살벌한 격투술입니다. 친구에게 쉽게 가르칠 만한 기술이 아니죠.”

     

    당연히 이 살벌한 기술을 전수받은 롯토는 의료동에 실려갔고, 헤스티아도 깁스를 차고 다니고 있다.

     

    “마나연공법은 거 뭐든 익히면 좋은 거 아니냐? 작년 2학기에 디오게네스 교수는 흙을 퍼먹어도 마나만 얻을 수 있으면 좋다고 했는데 짝만 있으면 익힐 수 있는 연공법은 양반이지.”

    “서로 같은 수준의 연공법을 펼치면 상생의 효과를 얻지만 한쪽의 출력이 밀리면 다른 쪽의 마나를 집어삼키는 살벌한 연공법이라고 합니다.”

    “…아니 애가 사탄이 들려서 왔나, 왜 이렇게 원래보다 더 무서워졌어?”

     

    이게 불쌍한 거 맞나.

    그냥 평소보다 더 무서운 오크노디 아닌가?

    손오천이 자신의 감각을 불신할 때, 지젤만이 이 현상을 해석하고 있었다.

     

    “저는 일련의 사태의 원인을 알 것 같습니다. 오크노디는 지금 초조한 겁니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닙니다. 재단이 저희를 오크노디가 정을 떼고 무가치하게 느끼며 제 손으로 버릴 짐짝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은 훈련의 탑에 들렀던 작년 여름방학부터 이미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실제로도 오크노디는 3학년으로 월반했고, 저희와의 실력차이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아카데미 외부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고 사천왕 습격 때처럼 교내에서도 그녀가 하는 일에 동행하는 경우도 없어졌죠.”

     

    그나마 선택받은 사람이 오크노디가 학업을 등한시하는 와중에 학년수석으로 치고 올라간 이슈타르 한 명이었다.

     

    “이대로라면 우리와의 관계는 단절될 것이다. 필요에 의해 멀어지는 것도 있지만, 관계를 쌓지 못해 멀어지는 것도 있으리라. 오크노디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런 다급한 실력증진행동도 이해가 갑니다.”

     

    놀 시간도 아깝다.

    하루를 놀면 열흘을 함께 있을 시간이 사라지니까.

    평범한 수련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속도로는 서로의 격차만 점점 벌어질 테니까.

    사이 나쁜 이슈타르조차도 아쉽다.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니면 곁에 둘 사람도 없으니까.

     

    오크노디는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너무 빠른 성장 때문에.

    재단의 계속되는 압박 때문에.

    친구관계를 상실하고 고독한 강자가 되어간다.

    재단은 오크노디가 스스로 모든 감정을 버리고 진정한 암살자가 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즈앙의 말처럼.

     

    “도와줍시다.”

    “도와준다고 해도… 어떻게?”

    “알려주는 겁니다. 우리는 오크노디가 조급해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주겠다고. 꼭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진심을 전해 마음의 교류를 이어간다.

    가족과 친구, 연인 사이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비결로 손에 꼽히듯이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란 오랜 관계에 필수적이다.

    오크노디는 살아온 세월이 너무 짧고, 이를 알려주지 않는 어른이 주변에 많았기에 미처 이 사실을 모르고 알더라도 실감하지 못했을 뿐.

     

    “쳇. 이런 건 조나라는 그 집사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분은 오크노디를 노리는 재단이나 엘프암살자들의 습격을 막는 걸로도 충분히 바쁘실 겁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겠네.”

     

    오크노디에게 진심을 전하자.

    그 방법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들었으나, 이사벨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신메뉴 축제 어때. 모두가 서로에게 먹이고 싶은 새로운 요리를 하나씩 개발해서 가져오는 거야.”

    “하하. 벌칙게임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되는군요.”

    “으하핫! 하루는 종일 굶어야 먹을 맛이 나겠군.”

     

    오크노디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신메뉴 축제의 소식을 알리고, 모두가 각자의 요리를 준비하고, 오크노디를 신메뉴 축제에 초대했다.

    처음 먹는 음식이라면 입에서 “와!”를 멈추지 못하고 침을 뚝뚝 흘리고 눈에서는 별빛을 반짝일 오크노디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는 모두들.

    그들의 흐뭇한 미소는 흙투성이가 되어서 콜록콜록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흙이 나오는 처참한 몰골의 오크노디를 보고 싹 사라졌다.

     

    “사다코 이 미친 교수님… 애를 생매장을 시켜놓기라도 한 거야…?”

    “죄송해요. 흙을 너무 많이 먹어서… 콜록콜록. 많이는 먹을 수 없겠지만… 최대한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콜록콜록 켁켁…”

    “안 먹어도 되니까 의료동부터 가!”

     

    다리를 절뚝이며 멀어지는 오크노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나, 옆에서 부축하며 눈물을 꾹 참는 이사벨이나 떠올리는 생각은 모두 같았다.

     

    오크노디 너무 불쌍해.

    사다코 교수 존나 선넘네.

     

    “더는 못 참겠어요. 아무리 교수라도 이건 아니야. 함께 항의하러 갈 사람은 따라오세요!”

     

    전 서귀연의 홍일점이자 서열 2위.

    전 해상국가 피렌체의 세비체 공작가문.

    화려했던 타이틀은 벗어던졌으나 고독을 딛고 일어서며 전보다 더욱 늠름하고 강력해진 현 세비체 백작가문의 실세, 백작영애 아카디아.

    그녀가 당당히 총대를 메고 일어섰다.

    오크노디의 친구들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그 뒤를 따라나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짜 너무 불쌍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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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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