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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4

    <704 – 불쌍한아이(4)>

     

    사다코 교수의 만행에 분개한 사람은 많았으나, 가장 분개한 사람은 역시 아카디아였다.

    다과회도 열어주고 세계 각지에서 오크노디를 위한 디저트도 선별하며 공수해 오고, 아이를 음해하고 헐뜯는 동기들이 있다면 가차 없이 귀족의 품격과 언변을 적극 발휘해 찍어누르기도 했다.

    디라는 애칭까지 붙이고 곰인형처럼 애지중지해왔던 아이가 흙 먹고 뱉고 활기찬 모습도 사라졌으니 어찌 열받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물렀어요. 동기들의 선에서 해결이 안 된다면 그 너머에도 도움을 요청해야죠.”

    “그, 그래도 되는 건가요? 선배들은 다 학점에 영혼을 판 악마에 후배들을 갈아가며 포인트를 얻으려는 미치광이뿐이잖아요.”

    “프릴. 모든 선배가 다 악마는 아니야.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착한 선배도 있어.”

    “무슨 착한 일을 했는데?”

    “눈 마주치고 인사를 3초 늦게 했는데도 인사비로 50포인트밖에 뜯어가지 않았어.”

    “…”

     

    티토소가의 친구 프릴과 카닐리언 트러플의 짠내 나는 대화에도 아카디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학생회도 재학생들을 상대로 각종 대출금 장사나 벌이며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죠.”

    “지난주에 <고공낙하에서 살아남기> 강의에 괴조를 풀겠다는 교수님이 교관을 시켜서 파견되었던 수송부대를 산적으로 위장한 학생회에서 습격했다는데요?”

    “학생회 일 잘하네.”

    “대신에 괴조를 자체적으로 부화하고 어미각인까지 마친 학생회 선배가 괴조에게 먹일 식비를 해결하려고 저학년 숲에 괴조를 풀어놓았대.”

    “…”

     

    앞에선 돈놀이에 미친 쓰레기들처럼 보이지만 뒤에서 은근히 제 할 일도 잘하고 있는… 잘하고 있는 거 맞나? 아무튼 뭔가는 하고 있는 학생회의 소식에도 아카디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부귀족연합의 유대는 비록 한 번 서귀연에서 이탈한 저에게도 이어질 것이 틀림없어요. 저는 자랑스러운 서부출신 귀족이니까요!”

    “학생회 발행 신문 보면 요즘 도이치 왕국의 군비증강에 인접국들의 긴장도가 오르고 있다는데요?”

    “그러고 보니 안데르센 대공자님도 겨울방학 내내 서귀연 최강자 벨벳 선배한테 불려갔다가 시커먼 그을음이 가득 묻은 채로 돌아왔다는 목격담이 계속 들리지 않았어?”

    “비밀병기라도 만들고 있을지도 몰라.”

    “…그건 채광 알바에 강제 동원된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방학 내내요?!”

     

    서귀연의 위신을 위해 애써 시도한 포장이 포장지째로 쥐어뜯기는 모습에 아카디아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벨벳 선배의 인성이야 어쨌건! 우리 981기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강자가 세상에는 많아요. 사다코 교수의 거처 카타콤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우리는 선배들이 힘을 빌려야 해요!”

    “공짜로 도와줄 리도 없는데… 무슨 수로요?”

    “포인트를 차출하죠.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벨벳 선배에게 빚을 지겠어요.”

    “맙소사! 그만두세요, 아카디아 영애. 제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숲지기라서 아는데 안데르센 대공자는 마석광산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쫓느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서 새벽 늦게 돌아오고 한두 시간 있다가 다시 출근하는 때도 있었는걸요!”

     

    숲지기 도로시의 충고에도 이미 결심이 굳은 아카디아는 거침없이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 오크노디에게 도움을 준다? 굉장히 흥미롭게 들리는 상황이군요. 마음이 동했습니다. 한 수 거들어 드리죠.”

    “아스타로트가 한다면 이 환경미화국 부국장, 땃쥐인간 띠따 님도 함께 하는 것이닷! 다른 모두도 분명 그럴 것이닷!”

     

    편입생 대표 아스타로트가 아카디아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자 981기 실력자들도 감당하지 못한 사다코 교수의 군세에 전쟁세대 편입생들도 호기심을 느꼈는지 참전 의사를 드러냈다.

     

    “…애는 착하니까 혼자 죽으러 가라고 보낼 수는 없겠군. 부국장 한번 살리는 셈 치지 뭐.”

    “애초에 저딴 게 어떻게 우리 편입생들이 먹은 학생회 조직의 부국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지? 존나 너무 괘씸한데. 실력순으로 먹으면 안 되나?”

    “안 된다. 강한 놈을 앉히면 매일같이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대놓고 약한 놈한테 감투를 씌운 것 아니냐.”

     

    바지사장도 아니고 바지부국장 노릇을 하는 띠따를 보며 아카디아와 981기 동기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편입생들 사이에서의 티토소가 포지션은 저 녀석이 담당하고 있구나, 하고.

    하지만 다음 조력자는 저런 미덥지 않은 이가 간부로 속한 그룹이 아니었다.

     

    “아카디아 영애. 당신과는 귀족영애로서 영애력을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다과회를 즐기는 사이이지요. 소중한 다과회의 벗을 잃을 수는 없으니 그 무모한 소동에 조금은 어울려드리겠사와요. 아앗━핫핫하!”

     

    귀족영애 만델라 카스테라.

    980기 학년수석인 그녀를 필두로 익숙한 980기 학년사천왕들과 상급반 학생들이 위층 창턱으로 발을 딛고 나타나며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선배님들은 왜 집결장소에서 한층 위에 계세요?”

    “물론 하늘 같은 980기와 땅 같은 981기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교관님. 창턱에 발을 올리고 시설물을 더럽히는 학생들을 제보하겠…”

     

    3학년들이 우르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어느 쪽이건 계단을 통해 집결장소로 모여드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겉멋 다 죽은 패잔병 몰골에 측은지심이 앞서기까지 했다.

     

    “응? 우리 수가 늘지 않았어?”

    “잠깐, 분위기가 우중충해서 같은 과로에 시달리는 3학년인 줄 알았지만, 저기 저 녀석들은 2학년이야!”

     

    더럽고 해진 낡은 망토를 두른 한 무리의 학생들이 푹 숙인 고개를 들었다.

     

    “서귀연!”

    “안데르센 대공자?!”

    “저 남자, 이번엔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지?”

     

    안데르센은 근엄한 얼굴로 선언했다.

     

    “서귀연의 정은 한번 그룹을 이탈한다고 해도 멋대로 단절할 수 없다. 아카디아 영애. 그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그대를 도울 것이다.”

    “표정만 보면 참 멋진데 땅을 짚은 검이 굉장히 흔들리고 계시는데요. 진짜 뭐 하다 오셨어요?”

    “<공놀이> 강의를 듣고 왔다.”

    “근데 몸을 왜 그리 못 가누세요?”

    “속이 바위고 무게가 300kg인 공을 썼으니까.”

    “…진짜 저놈의 저주받은 손은 어휴. 도움을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요.”

     

    같은 서귀연 출신인, 그렇기에 더욱 불안해하는 아카디아의 반응에 구두 소리가 또각, 하고 울리며 정신을 사로잡았다.

     

    “안데르센이라면 괜찮아. 간간이 내가 직접 단련을 시켜줬으니까.”

     

    특징적인 구두 소리가 아니더라도 벨벳을 알아보는 이는 많았다.

     

    “저분은 올해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는 집행국 국장이잖아?”

    “위로 다섯 기수는 씹어먹는 그 벨벳 선배의 도움이라니, 대공자의 저주받은 손도 이겨낼 정도의 행운이 따라준 건가?”

     

    공포의 벨벳.

    집행국의 괴물.

    서귀연의 최강자.

    그녀를 부르는 칭호는 많았으나 981기 학생들은 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죄짓고 사고 치고 도망 다니는 자가 아니면 벨벳과 마주칠 일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거참 나쁜 짓은 저 불여시가 다하는데 속을 꺼내다가 보여줄 수도 없고 참나.”

    “오, 얘들 봐라? 나쁜 애들이 좀 있나 본데. 벨벳 보는 눈이 좀 두려움이 보인다?”

    “안데르센네 애들 아니야?”

    “아니야. 귀족들이 품종개량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 배우자 뽑는 기준에 키높이 제한도 있다고. 설마 귀족가에 저런 키 작은 애들이 있겠어?”

    “하긴.”

    “…”

     

    정곡을 찔린 즈앙과 티토소가가 엄청난 억울함을 드러내었다.

    작은 키가 귀족적이지 못함의 상징이었다니!

    억울함과는 별개로 즈앙이 두려움을 품은 이유는 오크노디와 함께 도서관원정대에서 벨벳 선배를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티토소가는 그냥 바람만 불어도 추워서 달달 떠는 인간진동조명대였기에 별 이유 없이 선배들이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저 선배님들은…”

    “오오, 대공자님. 서귀연의 고참분들을 아십니까?”

    “저희도 얼굴을 뵙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분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랜 고생 끝에 인맥빨로 정치다운 정치도 하고 선배 덕도 보고 꿀 빨 생각에 신난 981기 서귀연 귀족들에게 안데르센 대공자가 미안함을 느꼈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혜택을 줄 수 있는 선배님들이 아니시다. 고향 돌아가서 일하기 싫다고 아카데미에 눌러앉거나 형제 목 따고 가주 자리를 빼앗겠다며 졸업을 미루는 분들이시지.”

    “아……”

    “오……”

    “이런……”

     

    형언할 수 없는 실망감에 안데르센은 찬물 한 바구니를 더 끼얹었다.

     

    “얻을 게 없다고 선배님들을 향한 깍듯한 대우를 잊지는 마라. 나고 자란 가문과도 칼부림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니 근처에 있는 후배는 하나 담그고 몇 년 대감옥에서 살다가 나오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

     

    하기야 졸업만 하면 창창대로가 기다리거늘, 아카데미에 오래 머무르는 서귀연 소속 귀족이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처음 집결했던 당시의 든든함은 온데간데없이 빌런대집합의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가운데, 카시아가 문득 태양을 가리켰다.

     

    “지금, 낮. 더 지나면 밤 돼.”

     

    언데드는 야행성이다.

    밤이 되면 달의 마력을 받아 더욱 강해진다.

     

    “아니 그럼 우리 어제는 제일 힘든 시간에 쳐들어갔단 말이야?”

     

    전날 새벽의 고군분투를 떠올리며 뾰이가 씩씩거렸다.

     

    “미안해요. 그땐 너무 빡쳤어요.”

     

    아카디아의 솔직한 사과와 빌런 올스타 라인업을 보고도 복수심이 전혀 가라앉지 않은 눈을 보며 뾰이가 홧김에 꺼내든 저주받은 비키니아머를 주섬주섬 챙겨서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빌런같은 사람이 한 명만 온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겠지만, 모아놓은 사람이 죄다 빌런같은 사람들이라면 모은 사람도 이상한 거다.

    당연한 사실을 한 발 늦게 깨우친 뾰이는 아카디아 백작영애 앞에서는 늘 조신하게 지내야겠다며 불량한 자세를 고치고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저녁엔 강의가 있어.”

     

    벨벳이 짐짓 무심한 얼굴에 그렇지 않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카타콤의 입구를 가리켰다.

     

    “피크닉은 빨리 끝내자는 말이야.”

     

    거대화한 벨벳 선배의 구두굽이 카타콤의 제 1 관문을 걷어찼다.

    일격에 뻥 하고 날아간 문이 아래의 문과 충돌하며 연달아 쿵 쿵 쾅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당연히 문과 문 사이에 있었을 언데드들은 문에 치여 죄다 박살 나고 흩어진 상태였다.

     

    “선배님이 바쁘시다니 서둘러야겠네요. 다들 진격해보아요!”

     

    거의 10층 아래까지 일자로 뻥 뚫린 길을 향해 아카디아가 용맹하게 전진했다.

    이게 맞나, 너무 강한 분을 부른 건 아닌가, 끝나고 벨벳 선배가 출장비 달라고 하면 포인트 다 삥뜯기는 거 아닌가.

    온갖 불안과 공포가 2학년들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카타콤 2차 원정대의 진격이 개시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상한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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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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