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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5

        

         

       무릎을 꿇고 행하는 기도.

       그 기도는 누구에게 행하는 것인가?

       하늘에게?

       하늘 위에 있을 초월적인 존재에게?

       혹은 자신의 영혼에게 행하는 기도인가?

         

       늙은 지빠귀.

       나무와 숲.

       이끼와 담벼락.

       구름과 빗방울.

         

       그는 무엇에게 답을 구하는가?

       누구에게 올려 답을 얻고자 하는가?

         

       [ 탐무스. ]

         

       옛날 옛적.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살아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시절.

       에피테르세스가 배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 탐무스. ]

         

       새빨간 석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바다 저 너머로 사라지려고 할 적. 바람이 멎고 배가 난바다에서 흐르고 흘러 팍소스(Paxos) 섬에 다다랐더란다.

       그대 섬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 탐무스. ]

         

       그 이름은 이집트인 뱃사람의 이름으로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기에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 하겠다.

         

       탐무스를 부르는 소리는 세 번 반복되었고, 그 후 대답하자.

         

       [ 탐무스여 탐무스여 팔로데스 섬에 도착하였을 때 위대한 자연과 들과 목자들과 양 떼와 산짐승과 들짐승의 신인 판이 죽었다고 알려다오. 헤르메스와 페넬로페의 자식이요 피티스의 가지로 관을 만들어 쓰고 다니는 이요 시링크스의 몸뚱이로 피리를 만들어 불고 다니는 위대한 신이 죽었음을 알려다오. ]

         

       라 하였다.

         

       사람들은 놀라 목소리가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고, 팔로데스 섬으로 배를 몰았다. 그리고 완전히 잠잠해진 바다에 기이함을 느끼며 탐무스가 섬을 바라보며 ‘판이 죽었다! 대목신 판이 죽었다!’라고 외치자 커다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아! 과연 그러하다.

       위대한 신의 죽음은 그만한 슬픔을 안겨 오는 것이니.

       자연과 들과 목자와 양 떼와 산짐승과 들짐승이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하노라.

         

       “신의 죽음에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이에게 말하노니 신의 죽음이 애석함을 느끼며 애도를 표하는 바이며 그 장례에 참석하고 마땅히 그 슬픔을 담아 제물을 바치고프니 그것을 허락해주오 늙은 지빠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그것을 전하고자 하오니 섬이여 섬이여 답해주오.”

         

       신의 죽음이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였던 존재가 사라짐은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그 공백은 차마 다시 채워 넣을 수 없으며 그 빈자리는 오래도록 남아 흉터로 남을 것이니 애도를 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다만 전령이 먼 길을 와서 말을 전하여주었는데 어찌 그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슬픔이 거대하다고 한들 어찌 귀한 소식을 전해준 전령에게 대접하는 것에 소홀할 수 있겠는가?

         

       [ 라피스 마날리스(Lapis manalis)에서 아벤티누스(Aventinus)로. 유피테르 엘리케우스(Jupiter Elicius)가 그대를 가호하여 라피스 마날리스에서 물을 흘리게 만드니 텅 비어있는 곳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너는 마땅히 몸을 식힐 빗방울과 목을 축일 음료를 얻게 될지어다. ]

         

       그리하여 가장 먼저 먼 길을 와서 헐떡이고 있을 이들의 몸을 식힐 비를.

       감로와도 같은 달콤하고 시원한 물방울을.

         

       [ 카피톨리움에서 빗물에 흠뻑 젖은 아름다운 처녀가 너의 피로를 풀어주리라. ]

         

       거기에 신의 죽음에 슬퍼하고 애도하며 제물을 바기로 한 이 갸륵한 신자에게 위대한 신 유피테르가 축복을 내리기를 아름다운 처녀를 품에 안기게 하여 그 피로를 한껏 풀게 만드니 뭇 용맹한 전사들과 권력자들이 질투하고 시샘할만한 상이라 할 것이다.

         

       저벅.

         

       보아라.

       저기 유피테르의 빗방울을 흠뻑 맞은 여자가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 길쭉한 팔, 잘록한 허리에 툭 튀어나온 가슴.

       골풀로 만들어져 덜렁거리는 커다란 가슴은 한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크고, 나뭇가지를 엮어 만들어진 팔과 다리는 가느다랗다 못해 앙상하기까지 하구나. 허리는 나뭇잎을 엮어 만들어 폭신하면서도 가느다랗고, 얼굴은 새하얀 것이 햇볕에 탄 흔적이 전혀 보이지도 않으니 곱구나 참으로 고와.

       저벅저벅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이 발걸음도 참으로 곱기도 하지.

       사뿐거리는 걸음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는 좁은 틈새도 쉬이 지나갈 수 있으니 한 팔로도 능히 들 수 있겠다.

         

       줄줄 흐르는 물방울이 참으로 탐미(耽美)스럽기까지 하니.

       아, 이것이 바로 미(美)로구나.

       유피테르의 축복을 받아 참으로 어여쁜 것이 저 품에 꼬옥 안기고 싶구나.

         

       하지만 어찌 질문을 구하는 이가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겠는가?

       넘쳐흐르는 지성은 휴식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샘솟는 호기심은 육체의 쾌락보다는 정신의 충족을 중요시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철학자들의 정신이요 그들의 전통이 아니던가?

         

       그러하니 남자는 암퇘지의 내장 조각을 꿴 산사나무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디에스피테르(Diéspiter)시여. 디에스피테르(Diéspiter)시여. 하늘을 지배하는 하늘의 아버지여. 번뜩이는 천둥과 벼락처럼 저에게 영감을 내려주소서. 번개만큼이나 반짝이고 강렬한 지혜를 내려주소서. 구하고자 하는 답을 알려주옵시고, 옛적 영웅들에게 그러하였듯 그 길을 인도하여주옵소서. 내려주신 눈앞의 시련에 헛되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하옵소서!”

         

       남자의 태도는 경건하기 짝이 없어서.

       육욕에도 쉬이 눈을 돌리지 않고 신에게 지혜를 구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실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서 위대한 신 유피테르는 참으로 기꺼워하며 말하였다.

         

       [ 갸륵하구나. ]

         

       갸륵하고 갸륵하다.

       신에 대한 공경과 향상심이 이토록 뛰어나니 과연 범부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

         

       내 너에게.

       축복을 내리노라.

         

       아.

       번개와 같은 축복이여!

         

       εὕρηκα heúrēka!

       εὕρηκα heúrēka!

       εὕρηκα heúrēka!

         

       “유레카!”

         

       번개와 같은 지혜가 남자의 머릿속에 내달린다.

       언어보다는 이미지에 가까운, 이미지보다는 사념에 가까운 무언가가 뉴런을 질주한다.

       번개의 번쩍임과 닮은 움직임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뉴런은 춤을 추고, 마침내 답을 그려낸다.

         

       “멀리서 잿빛 구름이 몰려오니 그 형태는 부처와 용이라 다만 그 구름보다 위험한 것이 땅속에 있으니 그것의 형상은 사람을 똑 닮아 있으되 무언가 하나씩 부족한 것이 기괴한 형상인지라 그것은 사람의 손에서 탄생하거나 사람의 손을 타 저렇게 된 것임을 나는 알 수가 있음이니 저 새까만 어둠 속에 흐릿하게 깜박이는 것들이 눈동자이며 들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무기가 아닌 공구이니 그것들이.”

         

       남자의 입에선 말이 튀어나온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두서없는 말들이.

       조현병에 걸린 환자의 넋두리와 같은 말들이.

         

       하지만 그렇게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말들은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머릿속에 선명한 계시로서 화인(火印)처럼 박히니.

         

       “…동양에서 나를 노리는 이가 오는군. 대대적인 공격이 아닌, 빈틈을 찾고 잠입하려는 형태로.”

         

       남자는 답을 얻었다.

       기도 아닌 기도로 계시를 얻었고, 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을 이용하였다.

         

       이제 그의 할 일은 끝났다.

         

       숫양의 피를 한없이 쏟아부어 만든 무너진 집터도.

       하나하나가 뿌리에 동물 사체를 휘감고 있을 저 음산한 나무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도.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괴한 인형도 이제는 볼 일이 없으리라.

         

       “나 아르기비(Argivi)는 사투르누스(Saturnus)에게 바치는 제물로서의 운명을 거부한다.”

         

       남자는 손에 들린 산사나무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곤 휙 집어던졌다.

       마치 칼을 던지는 것처럼.

         

       푸욱.

         

       빠르게 날아간 산사나무 나뭇가지는 그대로 자신에게 비척비척 다가오는 인형에게 꽂혔다.

       너무나도 쉽게 말이다.

         

       투둑.

         

       나뭇가지가 박힌 곳은 가슴.

       골풀을 이리저리 뭉쳐서 여자의 가슴 형태로 만들어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산사나무 나뭇가지의 힘은 삿된 것을 쫓는 것.

       그리고 남자가 나뭇가지에 끼워두었던 암퇘지의 내장은 훌륭한 제물이기도 하지만.

         

       “로비구스(Robigus)시여. 숲에 바쳐진 내장을 삼키소서.”

         

       반대로 말하자면 아주 지독한 재앙이요 불길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남자는 옛적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 가도(Via Claudia Augusta)의 다섯째 이정표 부근의 로비구스 숲에서 행했던 의식을 재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붉은 내장을 바라보며 곰팡이 정령 로비구스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로비구스가 자신을 부르는 그 의례에 응답하여 내장을 삼키니.

       붉은 내장은 곧 붉은 곰팡이와 동일시되었고, 빠르게 곰팡이가 앉고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뚝뚝 떨어지는 내장과 역겨운 악취!

       누가 보더라도 저것은 로비구스 신의 손길과 입이 닿았다고 여길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저러한 썩고 상한 것들은 신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라.

       저것에 오염이 된 것은 감히 신의 눈에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저런 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것은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대죄일지언저.

         

       아.

       삿되고 삿되다.

         

       뚝뚝 떨어지는 썩은 내장에 인형이 물들기 시작하고, 오염되기 시작하였으니.

       삿된 것을 부정하고 퇴치하려는 산사나무가 반응하여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뻗치며 골풀을 헤집고 인형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는구나.

       그러고는 골풀을 다 헤집어 바닥에 떨구게 만들고, 인형에 빈틈이 있어 거기에 자리를 따악 잡아 가로줄을 그리니 그 위치는 갈비뼈라.

         

       여자를 만들 때 사용되었을 갈비뼈는 다시 돌아왔고 부푼 가슴이 사라졌으니.

       너는 남자로구나.

         

       “신이시여. 여기 아르게이가 하나.”

         

       남자는 남자가 되어버린 인형에 다가갔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골풀 뭉치를 접어들고 그것을 대충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 인형을 만드니, 이것이 바로 골풀 꼭두각시 인형.

       아르게이다.

         

       “그리고 여기 아르게이가 둘이 있나이다.”

         

       그렇게 아르게이가 둘이 만들어졌다.

         

       사람을 대신해 테베레강에 제물로 바쳐졌던 그 골풀 꼭두각시 인형이 둘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요 대가를 줄이기 위한 재물이라!

         

       “바칩니다.”

         

       남자는 아르게이 둘을 태운다.

       사람을 대신하여 신에게 제물을 올린다.

         

       그 후엔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피테르가 자신에게 내려준 계시대로.

       자신을 노리는 이와 맞서 싸우기 위할 준비를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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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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