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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6

    <706 – 불쌍한아이(6)>

     

    교관은 강했다.

    카타콤의 교관컬렉션 17번 석관으로 돌아간 거인화 해골교관을 대신해서 나온 18번 석관의 제 18대 해골교관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교수의 의도를 파악하고 실행하는 재주가 전임자보다 비상하게 뛰어났다.

     

    그 비상한 머리가 경종을 울렸다.

    카타콤의 튼튼한 관들을 방패로 삼아 곳곳에 포진한 학생들.

    2학년 편입생과 일전에 들이닥쳤던 2학년들, 새롭게 늘어선 3학년 선배들, 까마득한 4학년 학생회 혹은 졸업을 미루거나 아예 교관으로 취직하고 눌러앉은 서귀연의 괴물들까지.

     

    심지어 그런 괴물들을 모두 포함해도 서귀연의 최강자라 불리는 <공포의 벨벳>이 있다.

     

    매복과 위장작전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처럼, 천천히 또각또각 걸어오는 벨벳.

    그녀의 변치 않는 걸음걸이는 자신에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시간제한과 같았다.

    학생들은 그녀가 도착하는 순간, 강자와의 일방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의 교전이라는 유익한 기회를 벨벳에게 빼앗긴다.

    카타콤을 사수해야 하는 사다코 교수의 교관인 그로서는 가뜩이나 불리함에 처한 처지에서 승리를 장담키 어려운 강자까지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벨벳이 도착하기 전에 결판을 내지 못하면 사실상 패배는 확정이군.’

     

    역습을 하던지 도주를 하던지 일단은 매복한 학생들의 일제 공격을 버텨낸 뒤의 이야기.

     

    <47중 마법기능>

    <33중 사격기능>

    <13중 방해기능>

     

    질릴 정도로 잔뜩 눈에 들어오는 공세들.

    준비시간이 긴 필살기도 더러 보인다.

    아주 죽일 작정으로 판 함정이다.

     

    사태가 급박할수록 머리는 가볍게 써야 한다.

    해골이 되기 전, 생전의 그가 그러했듯이.

     

     

    * * *

     

     

    -세상에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네게 다가온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하거라.

    -춤은 네 인연을 견고하게 만들 무기다.

     

    귀족이었던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사교계와 춤들.

    생전의 그는 자신과 가문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흐름을 깨닫지 못했다.

    위기가 목전에 치달았을 때, 가문은 존속의 위기에 처했으며 그는 이웃한 영지로 향하는 사신이 되어 절박한 걸음으로 영주성을 방문했다.

     

    -미안하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나?

    -우리는 혈맹도 무엇도 아니지 않은가.

     

    무도회장의 열기에 어울리지 못한 죄는 차갑게 식은 주변 영지의 냉대였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소중하게 대접받을 수 없다.

    그는 홀로 영지로 돌아갔고, 폐허가 된 영주성 위에서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혼자구나. 충분히 무르익어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너무 큰 기대였나?

    -…내가 떠난 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인망이 없었지?

    -부끄럽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해 어떤 힘도 지니지 못한 사람이 여긴 왜 돌아왔어?

    -제 어리석음으로 가문의 모든 어르신의 믿음마저 저버린 지금, 제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은 평생을 도망자가 되어 살아남지 않겠다는 믿음뿐입니다.

     

    신의가 필요치 않은 삶을 살았기에 가볍게 여겼던 믿음은 신의가 필요한 냉혹한 인생을 마주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생의 최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살아갈 신념과 믿음 하나만큼을 지켜낸 그를 <그녀>는 비웃지 않았다.

     

    -가장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죽을 자리를 찾는 마음가짐. 조급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어. 네게는 ‘다음’을 허락하겠어.

     

    남자는 덤볐고, 그녀를 넘어서지 못한 채 죽었다.

    그리고 언데드로서 제 2의 삶을 시작했다.

     

    -너는 시야가 좁단다. 그렇기에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는 한계가 생기겠지.

    -흐름을 읽어. 세상은 네가 보는 비좁은 시야 너머의 거대한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어.

     

    언데드가 되고 나서야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가족에게는 상냥했던 부친이 천만 단위의 중독자를 만들어 쌓은 부로 영지를 매수한 거물범죄자라는 사실도, 그가 온실 속의 화초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돈으로 영주직을 살 수 있는 금권의 나라는 온갖 악인들의 각축전이 열렸고, 제국은 그 틈을 노려 집단군의 편성을 시작했다.

     

    -이제는 제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조국은 제국이 쫓아낸 거물범죄자들의 손에 무너졌고, 국력이 쇠퇴한 조국의 멸망을 위해 제국이 숨겨왔던 발톱을 꺼냈다는 사실도.

    -이제야 조금은 나아졌네. 그래서, 그 다음은?

    -제국이 의도하지 않은 진정한 거악, 퀸 사다코께서 죽은 자들의 나라를 만들고 제국을 향한 분노로 결집한 언데드들을 이끄실 차례입니다.

     

    흐름이 생겼다.

    제국이라는 항거불가의 거대한 흐름에 맞서 죽은 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증오하고 분노하며 일어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녀>로부터 비롯된 흐름이.

    그 흐름의 끝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실패로 마무리될지는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뛰었다.

    존재할 리 없는, 진즉에 멈춰 사라진 심장임에도.

    마력으로 자아낸 암흑하트가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복수해야 할 이유를, 그녀의 은혜에 헌신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었다.

     

     

    * * *

     

     

    교관의 4단계 영역은 공격의 선후를 무시하고 속성별로 세 종류의 <흐름>을 붙잡았다.

     

    <영역4단계 – 각인영역>

    <암흑의 무도회>

     

    음산한 귀기로 시퍼런 불이 드문드문 피어올랐던 카타콤의 내부가 일순간 암흑에 집어삼켜졌다.

    은은한 불빛마저 사라진 어둠 속에서 막대한 마나를 머금은 공세들만이 돌벽을 할퀴고 천장과 바닥이 들썩일 힘을 드러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단지 상호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매복자들은 자신들의 흐름이 막을 수 없는 힘이라고 여겼고, 교관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을 뿐.

     

    -가장 거대한 나라가 그 힘을 전력으로 투사해서 상대해야 했던 이전시대의 거악을 아는가?

    -그분의 위대했던 일곱 대전사와 그들이 남긴 일곱 전장의 전설을 아는가?

    -모른다면 알게 해주마. 아무리 아둔한 자라도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푸름의 오를레앙>

    <가장 깊은 남색의 검>

     

    그가 꺼낸 검은 무거웠다.

    압도적인 심연 깊은 곳의 압력으로 자아낸 검은 그 기운을 모사하여 심해압력을 형성했다.

    형형색색의 강력한 마법들은 심해압력에 왜곡되고 짓눌리며 그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힘을 잃고 쇠락하거나 미미한 마력흔만을 남긴 채 소실되었다.

     

    <남색의 질주>

    <대분사>

     

    누구보다도 책임감 있던 대전사 오를레앙의 영역은 그의 성격을 닮아 시전자 자신이 가장 거대한 압력을 견뎌내야만 하는 영역이었다.

    그는 그런 영역을 제 몸에 두르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며 그가 짊어진 무게를 타인에게도 동등하게 감당할 것을 강요하였다.

     

    병사들은 그가 다가가는 것만으로 짓눌려 피떡이 되어 죽어나갔다.

    지휘계급의 기사들은 온전히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목이 베여 죽었다.

    마갑을 두른 귀족조차도 빠르게 소실되는 잔여마나에 기함을 내지르며 달려들고 쓰러졌다.

     

    그 거대한 전설을 온전히 흉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흐름을 읽었다.

    그 거대한 흐름의 일부만이라면 가장 부족한 대전사였던, 가장 마지막에 각성한 대전사였던 그라도 흉내 낼 수 있었다.

     

    “투사체가 분해당했어?!”

    “미, 미친. 저거,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언데드잖아!”

    “언데드라도 저런 마나밀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말이 안 돼! 생명체가 지닌 생체마나까지 짓눌려 사라질 마나량이라고!”

     

    33중의 사격기능이 일제히 소실된다.

    선배들조차 경악하며 바라보는 광경을 후배들이라고 경악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의 고수들은 다른 의미로 경악하고 있었다.

     

    “저 사람의 마나밀도, 닮지 않았어?”

    “맞아. 닮았어.”

     

    마법사인 로지니와 샌드쿠커는 한눈에 알아봤다.

    저 괴기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마나밀도가 낯설지 않았다.

    무려 1년이나 옆에서 보아왔다면 아무리 양과 질, 형태나 사용법이 다르더라도 알아볼 수밖에 없다.

     

    “오크노디의 마나밀도와 비슷해.”

     

    그저 저만치 멀리 어딘가를 앞서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크노디의 수준이 이제야 그들의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가늠이 되었다.

    저것이었다.

    저것과 다르지 않았다.

    단신으로 이 많은 학생의 매복공격을 받아내는 저 괴물 같은 해골 교관과 동격의 마나를 지니고 있다.

     

    <남색의 최후>

    <붕괴점 개방>

     

    그런 마나가 저 자신의 형체도 유지할 수 없는 임계점 너머로 밀도를 상승시키며 마나구조가 단숨에 붕괴하였다.

    붕괴한 마나에서 새어나온 힘이 새카만 암흑 속으로 남색의 섬광을 발산했다.

    그 빛은 어둠을 가르며 솟구쳤던 티토소가의 솔라빔조차도 밀어내며 13중의 방해기능과 학생들을 일제히 사방으로 튕겨내었다.

     

    “그 정도야?”

     

    튕겨나간 학생들 사이로 굳건히 버텨선 4학년, 혹은 졸업생 서귀연의 역대고수들.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또각 소리와 그녀의 무심한 감흥이 자신을 향한 의문이라고 느꼈던 만델라 영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요. 제 차례는 지금부터입니다.”

     

    벨벳의 도달까지 남은 거리, 스무 걸음.

    오크노디는 전쟁세대의 주역이라 부르는 편입생 대표 아스타로트가 손을 들었다.

     

    “교관님의 재주는 잘 보았습니다. 뛰어난 대지술사는 땅에 깃든 기억을 읽어내고, 훌륭한 대지술사는 마나에 깃든 잔흔만으로도 기억을 읽어내죠.”

    “보았다는 말이냐? 내 일격에 실린 기억의 파편을.”

    “남색의 오를레앙. 제국집단군의 대규모 공세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존재를 유지할 수 없는 특대형의 마나폭발을 일으켜 군단 세 개와 동귀어진한 대전사의 일격을 가능한 최약의 위력으로 개량한 <마나대폭발>의 술식.”

    “정말로 보았군.”

    “그 노력과 헌신에는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경외를 표합니다. 그러니 저는 마법사로서, 마법사다운 방법으로 제 경외심을 보여드려야겠지요.”

     

    출력을 약화시키는 대신, 데미지를 본인이 더욱 크게 떠안는 술식을 전개하여 상태가 악화된 해골교관.

    그를 향해 아스타로트의 전투지팡이에 직전과 같은, 빛마저도 집어삼키는 마력반응이 일어났다.

     

    <아스타로트류 비전대지마법>

    <대지의 기억 – 남색의 최후>

     

    놀란 해골교관이 지친 몸으로 마나를 끌어올리기 무섭게 두 번째 대폭발이 해골교관을 집어삼켰다.

    다양한 무술과 마법을 무도회의 춤처럼 뽐내던 학생들은 단 하나의 특별함으로 그 모든 재주를 집어삼킨 <주역>의 등장에 전율을 느꼈다.

    연령과 강함을 막론하고 그들은 가슴 깊이 느꼈다.

    몇 년을 노력해도.

    평생을 노력해도.

    ‘저것’을 따라할 수는 없다고.

    마치 <오크노디>의 그것처럼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의 끝에 자리한 무언가라고.

    격렬한 춤이 끝난 뒤, 무도회장에 남은 전율의 흔적마저 지워내듯이 아스타로트가 손을 펼쳐 먼지와 어둠을 걷어내었다.

    뻥 뚫린 문 앞에 비스듬히 기댄 해골 교관이 깨진 검을 내리고 눈두덩이에서 푸른 안광을 흐릿하게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몇 학년이라고?”

    “2학년 편입생 대표 아스타로트입니다.”

     

    4학년에는 벨벳.

    3학년에는 오크노디.

    2학년에는 아스타로트.

    학년별로 늘어난 강자들을 떠올리며 해골 교관이 진저리를 쳤다.

     

    “괜히 걱정해서 손해만 봤군. 가라. 이젠 나도 안 말린다.”

    “음? 그 말씀은 저흴 돌려보내려고 힘을 쓴 이유가 저흴 걱정해서였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학생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 의도를 깨달은 몇몇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부딪치며 덜덜 떨었다.

    이 너머에는 해골교관보다 더한 것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끝에는 사다코 교수가 있다.

    이런 강자들을 ‘교관’이자 ‘수하’로 종속시킨 존재가.

    자신들이 어떤 괴물에게 맞서려고 왔는지 그제야 학생들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작이자 완결작 무림계 귀환자의 게임방송과 같은 7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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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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