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06

        

       어릴 적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가?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몸에서 분유 냄새도 채 가시지 않았을 그 무렵, 교사가 주는 한 장의 종이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 장래 희망이 있나요? 』

         

       『 꿈이 무엇인가요? 』

         

       그것은 어릴 적에 받아본 첫 번째 미래에 관한 질문.

       어서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는 질문이자, 자신이 무엇이 될지 어렴풋이나마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들어 방향성을 정하는 하나의 질문.

       그 질문을 받은 수많은 어린이는 각자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여 글자를 썼더란다.

       혹은 글자를 쓰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님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교사에게 물어보기도 하였지. 때로는 무언가 되고 싶기는 한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명칭을 몰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고, 사전이나 책을 뒤져가면서 그것을 찾아서 적기도 하고, 결국 찾지 못해서 엉망진창 적거나 그림을 그리는 걸로 끝내기도 했다.

         

       상상해보라.

       장래 희망이 있냐고 묻는 종이에 그려진 어설픈 꽃 그림을.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얼기설기 세워진 집과 나무, 그리고 환하게 웃는 대충 그려진 사람 여럿.

         

       어린아이의 꿈이란 이런 수준이다.

       어설프고,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

       밑그림조차 되지 못한 어설픈 조각의 모임.

       하지만 그렇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집약체이며,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천변만화의 종이.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이러한 꿈이 길게 이어질 때가 있다.

       어릴 적에 어설프게 떠올리고 다짐한 꿈이 깊숙하게 박히고, 환경이 들어맞고, 세상이 그 길을 가라고 떠밀어주는 것처럼 어릴 적 적은 장래 희망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조금 특별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드문 것은 아닌 일.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남자 역시 그러하였다.

         

       어릴 적에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질문에 진지하게 마주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던 것, 책이나 TV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은 경험들.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그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하나의 결론.

         

       또렷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형상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수준의 그림.

       숭고함이나 목표 따윈 존재하지 않는 모호한 형태의 꿈.

         

       그는 장래 희망을 썼다.

       꿈을 그렸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것을 이루고 있다.

         

         

         

        * * *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소영광송(Gloria Patri)의 구절이 울려 퍼진다.

       이제는 목사도 신도도 없으며, 목자도 양도 없어진 비어버린 공간.

       마을의 몰락과 함께 버려진 교회의 구석진 곳에 찬송의 소리가 퍼진다.

         

       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아멘, 아멘.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아-멘!

         

       다 낡아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나무로 된 장의자에 그 누구도 앉아있지 아니하더라도.

       뽀얀 먼지가 내려앉아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묻혀 퇴색되어버릴 것임을 알면서도.

       한때 색으로 가득 찼을 공간이 언젠가는 회색빛으로 변하고, 그 회색조차도 사라지며 시간에 파묻혀 조각조각 날 것임을 알면서도.

         

       부른다.

         

       찬송의 소리를.

       소영광송의 구절을.

         

       아아.

       어린아이의 몸이란.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남자아이의 목소리란 어찌 이리도 높이 올라가는지.

         

       높게 솟아있는 천장을 찌르듯 올라가고, 둥글게 만들어진 벽면을 따라 타고 반사되고 퍼져나가며 음악 소리가 교회를 가득 메운다. 한때 번성하였을 과거를 그리워하듯이, 다만 한 사람으로 그 그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신이시여 이 소리를 들으소서.

       교회를 가득 메우는 기도를 들으소서.

       가호를 내리사 질서와 풍습을 어지럽히는 삿된 존재를 물리치옵시고 하루를 살아갈 힘과 안전을 내려주소서. 따스한 봄볕의 햇살처럼 나를 감싸 안으시어 시련에서 허우적대지 않게 하옵고, 그 자비와 자애로움을 주위에 건네어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Amen.”

         

       아멘.

         

       아 음악이 참으로 감미롭고 감미롭다.

       정신이 위로 올라가 신과 대면하는 느낌마저 드는 소리였으니.

       이는 목소리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목소리에 품고 있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찬사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으니.

         

       짝짝짝짝.

         

       썩어서 구멍이 뻥 뚫려버린 나무 바닥의 아래.

       그곳에서 사람들이 나타난다.

       벌떡 몸을 일으키고, 손을 가슴께까지 올린 뒤 힘차게 박수를 한다.

         

       소년이 부른 찬송가에 찬사를 부르듯이.

       소년- 아니.

         

       소년의 형상을 한 박진성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으며, 박수는 감동에 젖은 것처럼 힘차다.

       눈동자는 초점이 어디로 가 있는지 모르고,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안에 담긴 의지나 진의는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스쳐 가는 한 줄기의 빛은 광기와 증오와 닮았으니, 그것은 특정 대상에게 보이는 복수심이 아니라 불특정다수에게 보이는 형체 없는 칼날이라 할 법하다.

       그것은 총보다는 화염방사기에 가까운 것.

       개체가 아닌 모든 것을 불태우고픈 욕망.

       상실이라는 장작으로 더더욱 타오른 원념.

         

       정신의 풍화가 진행된 귀신에게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감정이다.

         

       박진성은 교회가 멀쩡했을 적 목사가 설교하였을 그곳에서 내려가 귀신에게 홀린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들을 앞에 두고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천천히 그것의 내용을 읊조리기 시작하였으니.

         

       “quoniam invenitur ab his, qui non tentant illum, se autem manifestat eis, qui fidem habent in illum.”

         

       주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니.

         

       “Perversae enim cogitationes separant a Deo, probata autem virtus corripit insipientes.”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은 위대한 그분에게서 멀어지고 그분의 권능을 시험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니라.

         

       “”Amen.””

         

       오 신실한 양들이여 이 설교를 들으라.

       거꾸로 뒤집은 성경.

       뒤집힌 글자와 뒤집힌 십자가.

       폐허가 되어버린 교회에서 하는 설교를 들으라.

         

       “Quoniam in malevolam animam non introibit sapientia nec habitabit in corpore subdito peccatis. Spiritus enim sanctus disciplinae effugiet fictum et auferet se a cogitationibus insensatis et corripietur a superveniente iniquitate. Spiritus enim diligens hominem est sapientia et non absolvet maledicum a labiis suis, quoniam renum illius testis est Deus et cordis illius scrutator verus et linguae eius auditor.”

         

       이것은 설교.

       너희의 지혜와 간악함을 경계하고 경고하는 설교.

         

       그리고 양들이 목자의 물음에 외친다.

         

       “quoniam Deus mortem non fecit nec laetatur in perditione vivorum!”

         

       “quoniam Deus mortem non fecit nec laetatur in perditione vivorum!”

         

       그분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아니하시고 산 이들의 멸망에 기뻐하지 않으심이니!

         

       아!

       들린다.

       그분의 목소리가 여기에 임하셨노라.

         

       귀를 기울이라.

         

       들리지 않느냐?

         

       [ Etiam, venio cito. ]

         

       그러하다, 내가 곧 이곳에 가겠노라.

         

       교회의 허공에서 목소리가 퍼진다.

       귀가 아닌 머리로 들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는 동공에 파고들고, 마음에서 울려 퍼지고, 귀신에게 홀린 이들마저 움직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Veni!”

         

       거꾸로 성경을 든 목자 말하기를 그분께 이곳에 강림하시기를 재촉하였음이니.

         

       귀신에게 홀린 이들 환호하며 외치기를

         

       “”Amen. Veni, Domine Iesu!””

         

       하나의 목소리로 합창하며 소리친다.

         

       아멘!

       이곳에 오십시오!

       뒤집힌 성자여.

       뒤틀린 삼위일체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쥐를 잡았습니다.
    집 안에서.



    제 팔뚝만한 크기의 쥐가 어찌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괴롭히던 녀석 중 하나가 잡혔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동안 저를 괴롭히던 무기력함과 이명의 스트레스, 불면의 고통 모두가 날아가버리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집니다…
    이 영광을 쥐끈끈이에 바칩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