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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8

    <708 – 불쌍한아이(8)>

     

    카타콤은 마치 해발 1000m 단위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위계가 변하는 세계 최고봉의 산, 신정산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관문 10개마다 언데드들의 위계가 오르는군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은 ‘마법병단’이나 ‘해골교관’같은 존재는 이를 무시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검에 능한 평화의 시대의 용사 이슈타르.

    그녀에게 대응하는 마법에 능한 전쟁시대의 용사 아스타로트의 말대로였다.

    하찮은 뼈다귀에서 살을 지닌, 그렇기에 부패하고 가스를 발산하며 더욱 위협적인 시체폭발까지 일으키는 좀비들로 이루어진 2계층.

    형체 없는 영체화와 형태를 지닌 물질화를 넘나들며 괴롭히는 악령들이 정신과 몸을 동시에 노리는 유령들의 3계층.

    인외종의 변칙성이 추가되는 4계층과 중급종이 속출하고 이를 지배하는 상급종도 가세하는 5계층까지.

     

    카타콤의 5계층의 끝인 50층에 이르러서는 981기 이학년들은 이미 기가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5계층부터 이러면 6계층에는 뭐가 나오는 거야?”

    “무덤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나오겠지.”

     

    아이린의 짐작이 간다는 말투에 티토소가가 호기심을 보였다.

     

    “예를 들면요?”

    “불의의 사고로 죽은 ‘학생’의 시체.”

    “…”

     

    굉장히 무섭게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은 특별한 무덤에 안치해. 얼어붙은 토지를 파헤치며 매번 시체를 묻는 것도 일이고, 눈밭에 버리는 것도 죽은 자에 대한 예우도 아닐뿐더러 남은 병사들의 사기에도 좋지 않아. 그래서 북부에서도 수습된 시체는 태우고 지하묘지에 유골을 안치시켜.”

     

    유골보관소.

    전장과 거리가 먼 이들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시설을 입에 담는 아이린을 보며 티토소가는 이 자리의 모두가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들임을 새삼 느꼈다.

    기프트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일 일도 없었겠지.

    그녀 또한 카넬레 시의 귀염둥이 막내이자 아싸 히키코모리로 저택에서 지내며 초콜릿과 사탕이나 축내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교수나 교관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지도 않겠지.

    과제에 치여 꾸벅꾸벅 조는 일도 없을 것이고.

    …그거 너무 부러운 삶인데?!

    잡생각을 하던 티토소가는 돌연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

    마땅히 닿아야 할 대지가 닿지 않는다.

    허공을 부유하며 한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공포심에 전신이 오싹해졌다.

    설마 사다코 교수님의 기습인가?!

     

    덥썩.

     

    공포심은 그녀의 팔을 붙잡아준 손 덕분에 사라졌다.

     

    “딴생각하면서 걷지 마. 넘어지잖아.”

    “미안! 헤헤. 역시 즈앙뿐이야!”

     

    순간적으로 엄습한 감정은 그저 발을 헛디디며 일어난 공포심이었다.

    그래, 즈앙의 말이 맞다.

    이런 건 쓸데없는 생각이야.

    언니 말대로 조명대 덕분에 인싸도 되고 인간조명기구도 되고 친구들이 파티할 때마다 불러서 칠색미러볼 쇼도 펼치고 얼마나 좋아?

    간식을 먹일 때마다 조명대 색이 바뀐다며 신기해 하는 아카디아 님을 보고 조명대 색을 바꾸면 온갖 종류의 간식을 얻어먹을 수 있겠다고 꾀를 부리고 속인 건 죄송스럽지만!

    아무튼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생긴 좋은 이들은 나쁜 일들보다 훨씬 많고 즐거웠다.

     

    ‘이왕이면 오크노디도 그랬으면 좋겠어!’

     

    사실 즈앙에게는 비밀이지만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함께 있어서 가장 즐거운 친구는 오크노디다.

    매번 새롭고 신기한 비밀을 알려주고, 가끔은 막 놀리고 괴롭히고 조명대에 셀로판지도 붙이고 마력실뜨기처럼 무섭고 못된 짓도 저지르지만!

    아카데미 학생 중에 단 한 명만 집에 초대할 수 있다면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오크노디를 고를 것이다.

     

    “오? 이건…”

    “무게감이 다르군.”

    “거기 2학년들. 너희, 괜찮겠냐?”

     

    서귀연 소속 역대 고수들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여기까지 오고도 우리 실력으로는 부족해 보이냐고, 욱하는 얼굴로 발을 들인 헤스티아의 다리가 일순간 휘청거렸다.

    아이린도, 즈앙도 지팡이나 여우가면을 쥔 손에 힘이 잔뜩 실렸다.

     

    “으으윽…!”

     

    어떻게든 저 너머로 한 걸음을 내딛겠다며 발을 들이려던 모브를 자쿠가 뒤에서 붙잡아 빼냈다.

     

    “아직이다.”

    “할 거야!”

    “넌 강해지고 있어.”

    “벌써 몇 번째나 무기력하게 물러나야 하냐고!”

    “그래도 견뎌라. 약자는 분함을 간직해야만 더욱 강해질 수 있으니까.”

     

    모브는 자쿠의 주먹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자쿠 또한 분한 마음을 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억지로 들어간다면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암흑마나를 통제할 수 없어진다.

    마인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자쿠는 이 자리를 자신의 죽을 자리로 고를 수 없었다.

    모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어도 그들의 목숨값이 한없이 하찮은 공간이었으니까.

     

    “모두들 이 너머를 부탁한다.”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자쿠와 모브.

    두 사람을 비롯한 낙오자들의 고개 숙인 모습에 벨벳의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이어졌다.

     

    “고개 들어. 그리고 똑똑히 지켜봐. 너희가 맡긴 짐을 짊어질 사람들의 뒷모습을.”

    “…!”

    “다음은 너희가 나설 차례야.”

     

    상급반의 일원이면서도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물러선 학생들 사이에 분통함의 눈물이 흘렀다.

     

    “모두… 벨벳 선배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해요. 오늘의 수치심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누군가의 앞에 나설 수 있을 테니까요.”

     

    꼭 수련회에 참석해서 캠프파이어를 앞두고 “자, 지금부터 다들 울어!”라고 교관이 외치면 엉엉 우는 학생들처럼 우는 모두들.

    티토소가는 이 분위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혼란스러웠다.

     

    ‘난 어느 쪽이지?!’

     

    아픈 건 싫어서 건너가기 무서운데.

    또 그렇게 막 못 건너갈 것처럼 무서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소리를 내든 홀로 울음을 삼키든 눈물바다가 된 학생들 사이에서 혼자만 말똥말똥한 눈으로 동공에 지진이 난 엉뚱한 모양새였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안 건너오고.”

    “그, 그치만… 아픈 건 무서운걸!”

    “멍청한 소리 그만해. 넌 혁명군의 성녀잖아.”

    “응?”

    “성녀가 언데드의 사기에 밀리는 꼴 봤어?”

     

    아앗!

    그러고 보니 성녀는 언데드의 상극인 존재.

    그녀가 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티토소가가 “에잇!” 하고 6계층 안으로 점프했다.

    그러자 현기증이라도 느꼈던 모두와 달리, 너무나도 멀쩡히 착지한 티토소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혹시 점프를 잘못해서 건너편으로 넘어가질 못한 건 아닌가 싶었으니까.

     

    “제대로 건너왔어.”

    “와! 하나도 아프지 않아!”

    “황제한테도 티토솔라빔을 쏜 애가 무슨 이런 걸로 쫄고 그래?”

    “헤헷. 그러게!”

    “가자. 사다코 교수님한테 이번엔 진짜 너무 심했다고 말해야지.”

     

    천하태평하게 드드득 조명대를 끌고 가버리는 티토소가의 등을 바라보며 남은 학생들은 울음마저 뚝 그치고 황당해하였다.

    그들이 바라봐야 할 뒷모습에 티토소가의 뒷모습이 있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힝잉잉, 누가 셀로판지 좀 떼어줘!

    -히끅히끅! 교수님이 눈부시니까 조명대 놓고 강의실 들어오래. 기분이 좋으면 조명이 좀 밝아질 수도 있지, 정말 너무해!

    -으앙앙앙! 오크노디가 줬던 장수풍뎅이가 참새한테 물려서 반으로 갈라져 죽었어!

     

    떠올려 보면 목격하는 매 순간 우는소리를 하거나 이미 울고 있고, 하찮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아이가 자신들보다 멀리 나가 있다니!

     

    “뾰이도 너무 분해! 쟨 마나밀도도 너무 높아서 저주템이 장착도 안 되는데!”

     

    화가 나면 한 달간 강제로 착용해야 착용해제가 가능한 저주받은 비키니아머를 입히는 못된 버릇이 있는 뾰이조차도 속수무책인 티토소가.

    뾰이의 푸념을 들은 많은 학생이 동시에 움찔했다.

    자쿠는 그 모습을 보고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뾰이 이 녀석, 쥐도 새도 모르게 981기 사이에 비키니아머를 죄다 뿌려대고 있었던 건가?!’

     

    같은 빌런이라길래 잘해주었길 망정이지, 만만하게 보고 밉보였으면 언제 비키니아머를 입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조심해라, 모브. 온 사방에 비키니아머를 입은 녀석들이 깔린 것 같다. 뾰이 앞에서는 앞으로 특별히 언동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래.”

     

    친구의 너무 늦은 조언에 모브는 투구를 쓰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 * *

     

     

    남겨진 981기 학생들이 뾰이와 티토소가의 반전강함에 덜덜 떠는 사이.

    6계층에 진입한 980기 강자들은 몹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교내에서 죽은 학생이 안치되어 있다면… 역시 걔들도 있겠지?”

    “그러겠지.”

     

    981기 학생 대부분은 그 대화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으나 어느 특별한 편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즈앙만큼은 그 의미를 정확히 눈치챘다.

     

    ‘조나의 세 번째 아가씨. 그 여자의 수완에 당해 죽은 980기 학생들을 말하는 거겠네.’

     

    강의실처럼 넓은 공간에 가득한 생도복 차림의 언데드들.

    그들 중 일부를 본 980기 학생들의 표정이 심상찮게 굳었다.

    즈앙은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일까? 재단의 <아가씨>에게 당한 학생들의 수준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980기 학생들은 작년에도 981기 학생들에게 대운동회에서 학년대항전의 승리를 양보했다.

    오크노디와 이슈타르가 있는 981기에 비하면 980기 학생들의 고점은 그리 높지 않다.

    하물며 2년 전.

    그들이 신입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6위계에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초라한, 기껏해야 좀 노력한 ‘자쿠’나 ‘모브’ 수준일지도 모르지.

    그런 업신여김은 언데드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모조리 사라졌다.

     

    ‘저걸 어떻게 다 죽였지…?’

     

    지금의 자신이 보기에도 쉽게 킬각이 나오지 않는 언데드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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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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