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08

        

       해변에 가 본 적이 있는가?

       파도가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그 부근의 모래사장을 밟아본 적이 있는가?

       메마른 모래사장과는 달리 축축한 모래.

       물에 젖어서 짙은 색을 유지하는 그 땅에 한 발 한 발을 걸으면 모래가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그저 간지럽히기만 하고 쉬이 떨어지는 메마른 모래와는 다르게, 무어 그리 애달파 사람에게 들러붙기라도 하는지 그런 모래들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들어가서 쉬이 빠져나오려 하지를 않더란다.

       그러다가 철썩하는 소리가 들리고 쏴아아 소리와 함께 물이 들어오고 나면 시원한 느낌과 함께 달라붙어 있는 모래가 휩쓸려 사라지고, 내가 걸어왔던 곳의 자국들은 밀리고 저들끼리 뒤섞이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물결이란 그런 것이다.

       파도란 그런 것이다.

         

       들이닥치면 삽시간에 그 자리를 침범하고, 물러설 때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것이 바로 모래사장이 기억하는 파도의 모습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짭짤하고 비린내가 나는 그 공기를.

       잘 세워진 모래성은 단숨에 부숴버리고, 사람의 발자국은 지워버리고, 푹 파인 곳은 이리저리 모래를 밀어 메꾸고, 알갱이 사이사이로 물을 스며들게 해서 젖게 하는 그러한 물결을 우리는 기억한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과도 다르고, 목욕물 받아놓은 곳에서 장난삼아 스윽 손을 휘저어 내는 자그마한 물결과도 다르고,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나는 물결과도 다른.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커다란 물결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물결이 있다.

       해변도 아니고 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지만,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Animam meam pro te ponam.”

         

       “Animam meam pro te ponam.”

         

       “Animam meam pro te ponam.”

         

       “Animam meam pro te ponam.”

         

       물결에는 물 알갱이와 거기에 휩쓸리는 부산물들이 있듯이, 미국에서 일어나는 물결 역시 무언가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물이 없는 물결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 물결에 휩쓸리는 것들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그것들이 바로 모래 알갱이요 자갈이요 나뭇가지나 나뭇잎과 같은 것들인지라.

         

       하나하나가 보잘것없어도 제 나름의 쓰임새가 있어 물결에 휩쓸리고 휘말리며 나아가고 있으니, 그들은 달라 보여도 통일되어 있으며, 하나의 물결에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상하지 않다.

         

       “Animam meam pro te ponam.”

         

       “Animam meam pro te ponam.”

         

       “Animam meam pro te ponam.”

         

       그들의 입에서 똑같은 라틴어가 흘러나오는 것도.

       그들의 눈이 약이라도 한 것처럼 초점이 흐릿한 것도.

       비척이는 걸음걸이가 꼭 약쟁이들을 보는 것만 같은 것도.

       험상궂기 그지없는 인상이 척 보아도 하류 인생들이라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물결에 속해있는 이들이었으니까.

       파도가 치면 이리저리 휘말리는 모래 알갱이와 같은 자들이었으니까.

         

       그것은 이들이 보잘것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하나하나로는 큰 의미가 있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quo vadis?”

         

       어디로 가십니까?

         

       “Domine! quo vadis?!”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 Et quo ego vado, scitis viam. 』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느니라.

         

       “Domine, nescimus quo vadis; quomodo possumus viam scire?”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 Ego sum via et veritas et vita; nemo venit ad Patrem nisi per me. Si cognovistis me, et Patrem meum utique cognoscetis; et amodo cognoscitis eum et vidistis eum.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음은 아버지를 앎과 같으니. 너희는 그분을 알고 뵌 것과 같으니라.

         

       오, 사람들의 물음에 답을 하였으니 신성하고 신성하다.

       사람들은 그 현기어린 말에 감탄하며 홀린 듯 그 사람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선지자를 따르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이요 목자를 따르는 양의 모습과도 같음이라. 방황하고 방황하다가 마침내 자신을 인도하고 길을 안내할 사람을 찾은 저들의 눈을 보아라, 저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보아라. 어찌 저것을 갸륵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늘에서 보시기를 그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고 만족스럽다 하였다.

         

       어린 양들아 목자를 따라가라.

       어린 양들아 방황하는 양들을 모아 길을 걷도록 하여라.

         

       그 길은 너희의 목자를 통해 갈 수 있으니.

       그 목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위대한 분과 같으니라.

         

       “Dominus meus et Deus meus!”

         

       “Dominus meus et Deus meus!”

         

       “Dominus meus et Deus meus!”

         

       믿는 자는 행복하나니.

       보아라. 저들을.

       신실한 표정으로, 믿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목자를 따르는 저들의 모습을.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옆구리를 칼로 째고 그 안에 손가락을 넣는 모습이 보이느냐?

       손바닥과 발바닥에 구멍을 내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느냐?

       잘린 손가락을 옆구리에 쑤셔 박는 모습이 보이느냐?

         

       저것이 바로 신실함이니라.

       저것이 바로 믿음의 행복이니라.

         

       “Dominus meus et Deus meus!!!”

         

       믿음으로.

       한 치의 의심이 없는 믿음으로.

         

       나아가라.

       수를 불려라.

       양의 떼가 아니라 양으로 왕국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불어나도록 하여라.

         

       생육하고 번성함이 너희의 의무이니.

       너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러하니라.

         

         

         

        * * *

         

         

         

       투두두두두두-!

         

       쇠 파이프를 잘라서 만든 것 같은 볼품없는 모양새의 총.

       싸구려 총의 대명사이자 ‘총알 분무기’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스텐 기관단총(Sten Machine Carbine)이 미친 듯이 총알을 토해낸다.

         

       두두두두-!!!

         

       총을 발사한다기보단 말 그대로 총알을 뿌리는 것에 가까운 모습.

       쉴 새 없이 불을 뿜고, 반동이 제대로 제어되지도 않아서 그나마도 조준점이 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빠른 속도로 총알을 뿜어낸다는 것 말고는 큰 장점이 없는 것이 이 총의 특징인데.

       그런 특징을 알면서도 이런 총을 굳이 굳이 쓰고 있는 것이 자신들인데.

         

       “Fuck! 제기랄! 돈 생길 때마다 술을 사지 말고 총을 샀어야 했어! 하다못해 AK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은 잘한다 개자식아!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총 쓸 돈 아껴서 술이랑 여자 샀을 거면서!”

         

       총에 돈을 쓰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그들의 선택.

         

       하지만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이루어진 갱단.

       어느 정도 손재주가 있는 이들은 넘쳐났고, 총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 덕분에 그들은 쇠 파이프와 공업용 스프링, 그리고 망가진 총기에서 뜯어온 개머리판이나 방아쇠들을 대충 만져서 총을 뚝딱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총알 분무기’라는 악명대로 그 성능은 끔찍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로 총알을 쏟아낼 수 있다는 점, 그냥 대충 많이 만들어놓고 망가지면 버리면 되는 간편함, 거기에 돈을 아껴서 술과 여자를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압도적인 장점 덕분에 그들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괜히 총에 돈 쓰지 말고 그냥 스텐 기관단총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쓰는 것으로.

         

       “빌어먹을!!!”

         

       그때는 합리적인 줄 알았다.

       실제로도 꽤 합리적이기도 했다.

       싸구려 총이라고는 하지만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그들을 건드릴 놈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단발로 나가는 소총이나 샷건, 권총이 두렵지 않게 해줬으니까.

         

       “저딴 새끼들이 쳐들어올 줄은 몰랐지! 제기랄 너는 알았냐? 알았냐고!”

         

       “썅! 그딴 걸 어떻게 예상해! 양복쟁이 새끼들도 저런 건 몰랐을 거다!”

         

       그래….

       어떻게 알았겠는가.

         

       저딴 미친놈들이 쳐들어올 줄은.

         

       “Quis similis bestiae, et quis potest pugnare cum ea?”

         

       쿠웅!

         

       “Quis similis bestiae, et quis potest pugnare cum ea?!”

         

       쿠웅!

         

       “Quis similis bestiae, et quis potest pugnare cum ea——!!!!”

         

       도대체 어디서 뜯어왔는지 모를 엄청나게 두껍고 무거운 철판.

       스텐 기관단총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흠집만 날 뿐 뚫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그 철판의 너머.

         

       쿠웅!

         

       어디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외우며 한 발짝 한 발짝 철판을 옮기는 미친놈들이 있다.

       저게 무슨 주술인지, 주문인지, 아니면 그냥 구호라도 되는지.

       저 철판 방패 뒤에 있는 미친놈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온다.

       싸구려 총으로는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들고, 무슨 자기들이 로마 병사라도 되는 것처럼….

         

       거기에 쇠 파이프를 용접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창인지 꼬치인지 모를 것들로 갱단원들을 하나씩 찌르고.

       갈고리를 던져서 사람들을 낚아서 끌고 가기도 한다.

         

       “빌어먹을! 우리가 무슨 야만인도 아니고 로마 병사랑 싸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다.

         

       능력자처럼 보이지도 않는 놈들이 공업용 철판을-솔직히 철판이라기보다는 철벽이라고 불러야 어울릴법한 것들에 떼거리로 달라붙어서 옮기는 광경이라니.

       심지어 한 곳에서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아지트를 포위하듯 사방에서 그 철판을 옮기면서 거리를 좁히는 모습이라니.

         

       “내가 이 짓거리하면서 언젠간 뒈질 줄은 알았는데.”

         

       보인다.

       점점 다가오는 철벽이.

       그리고 틈새 사이로 도망가려던 놈들, 철벽 너머의 놈들을 직접 죽이기 위해서 뛰어들었던 녀석들의 잘린 목이 꽂힌 길쭉한 쇠 파이프가.

         

       “많이도 꽂혀있군. 제기랄.”

         

       하.

       코앞까지 저놈들이 다가왔다.

       저 미친놈들 눈깔을 봐라.

       약쟁이도 저것보다는 멀쩡하겠다.

         

       좀비 같은 새끼들.

         

       “아아아악-!”

         

       갈고리, 혹은 저놈들의 손길에 끌려간 놈들의 비명이 들린다.

       대체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 걸까?

         

       좀비 같은 저놈들 얼굴을 보면….

         

       흐흐.

         

       쇠 파이프가 보인다.

       끝이 날카롭게 되어있는 쇠 파이프가 보인다….

         

       어디 보자, 쇠 파이프 하나에 목이 하나, 둘, 셋, 넷….

         

       “씨발. 사람 탕후루가 되기는 싫은데.”

         

       아.

       갈고리가 날아온다….

         

       “신이시여.”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