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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말씀 나누고 오셨나요?”

        

       예사라는 생각보다 빠르게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소희가 소리를 얼른 떼어놓고 나서, 소희의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앉고 나자, 목을 살짝 가다듬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소리가 만지작거린 볼이 살짝 붉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어…… 그게.”

        

       자신의 둘째 딸의 행동을 사과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소희의 아버지는, 그건 그냥 넘어가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사라 본인부터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니 이쪽에서 굳이 먼저 말을 꺼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예사라를 보았다.

        

       사실, 소리는 아직 어린아이다. 아마 사라의 볼을 만진 그 행위가 깊은 생각을 한 끝에 나온 행동은 아닐 것이다. 사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무릎에 소리를 앉혔던 것을 보면 소리가 먼저 다가가 놀아달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어린아이 놀아주는 기분으로 그렇게 했다가 그대로 얼굴을 잡혀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거겠지.

        

       소희는 소리의 언니였기에 떼쓰는 걸 딱 잘라 거절하거나 너무 예의 없게 행동하면 타이르거나 따끔하게 혼내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사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실, 상대가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라의 방어력은 굉장히 허술한 편이었다.

        

       ……유하늘이나, 이수아나, 그, 소희 자신도, 아무 생각 없이 그 낮은 방어력을 뛰어넘어 다녔으니까.

        

       그리고 그 낮은 방어력의 원인은, 사라가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걸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이 너무 얕았다.

        

       사라 입장에선 상처였다. 게다가, 앞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크나큰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사라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해온다거나—

        

       상상만 해도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광경이었다. 사라는 예쁘고 돈도 많다. 누군가가 접근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듣기로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메이드가 된다면, 상식 주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그런데 내 상식도 일반적인 상식이랑은 좀 많이 다른데.

        

       소희가 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사라와 아버지 사이에서는 이야기 꾸준히 오가고 있었다.

        

       “물론 걱정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상주하면서 꾸준히 저와 붙어 있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 그렇지.

        

       걱정되지.

        

       소희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신의 딸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소희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속을 아이가 아니었다. 그때는 전화 내용을 듣고 머리에 피가 몰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막상 와서 실상을 보니, 눈앞에 있는 이 소녀, 예사라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항을 제쳐 두고라도, 아버지로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희가 이 사라라는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사라의 집안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메이드가 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어질 가능성이 더 낮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전까지는 재산은 둘째치더라도 동갑의 친구로서 대등한 관계였다면, 메이드가 되는 순간 주종관계가 되는 것이니까.

        

       물론 소희는 그에게 있어 어디에 내놓더라도 절대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딸이었지만…… 그건 사라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아니, 그보다.

        

       사실 그것보다도 더 걱정되는 부분은, 사라를 보는 소희의 눈이었다.

        

       물론 그는 소희의 아버지였다. 자기 딸을 믿었다.

        

       믿기는 하지만—

        

       “아빠.”

        

       상념에 빠져있던 그에게, 그의 딸이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그리고 내가 공짜로 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별일 없을까……?

        

       혹시라도 소희가 저 사라라는 아이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메이드 일은 의외로 잘 해낼지도 모른다. 자신이 일 나가 있는 사이에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소희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매일같이 붙어 다니면서 ‘정말로’ 자신의 고용주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까?

        

       “아, 잠깐.”

        

       소희의 아버지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어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아까 사라가 했던 말대로, 말은 편하게 하기로 했다.

        

       사라와 소희는 서로를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사라네 학교로 전학 갈 거야.”

        

       “그 학교가 어디에 있는 학교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으며 묻는 그에게, 사라가 대답했다.

        

       “화영 고등학교입니다.”

        

       화영 고등학교.

        

       그도 그 학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워낙 비싼 학교로 유명한 학교였으니까. 사실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는 사안이긴 했지만,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그는 꽤 가까운 곳에 있는 그 학교에 대한 소문을 자주 들었었다. 물론 자세한 것은 아니고, 등록금이 수천만 원이라더라, 들어가기 까다롭다더라, 하는 소문 정도였지만.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르바이트 정도는 허용해줄 수 있다. 딸의 첫사랑을 따라 학교를 옮기는 것도, 조금 고민해보고 허락해줄 수 있긴 했다. 하지만, 화영 고등학교의 학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소희의 성적이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인지 알 수도 없었고.

        

       “소희야, 아무래도 그건 조금 힘들지 않겠니. 화영 고등학교 등록금이면……”

        

       “아, 학비는 전액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사라가 예의 바른 말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끼어들었다.

        

       “……예?”

        

       바로 조금 전까지 말을 놓기로 생각하고 있던 그였지만, 그 말을 듣고 순간 존댓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학비 정도는 직원복지로 대 줄 수 있죠.”

        

       직원복지로……?

        

       일 년에 수천만 원을……?

        

       “그리고 사실, 전임자에게 지급되었던 연봉을 생각하면 딱히 제 지원 없더라도 화영 고등학교에 다닐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거예요. 돈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

        

       사실, 등록금 직원복지는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대기업이라면 해 주는 곳도 많다. 회사 직원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준다거나, 사원의 연수 비용 같은 걸 대주거나.

        

       물론 그런 기업과의 비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애초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장이 직접 고용하거나 내가 직접 고용하거나 둘 중 하나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고용할 ‘내 사람’들한테 쪼잔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뭐, 파벌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내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만에 빠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돈만 주는 것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보다는, 뭔가 ‘성과’가 있어야 한다. 아직은 아이디어가 없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만약 소희가 나의 전속 메이드가 된다면 그 첫 사례가 된다.

        

       절대로 대충 대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소희는 내 친구 중 하나였으니까.

        

       “전임자의 연봉은 5억 원이었습니다. 의료보험과 세금을 제하면 그보다 낮아질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그 수준으로 맞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소희 아버지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소희의 입도. 설마 이 정도의 돈을 제시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억?”

        

       그리고 그런 반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리만이 그 말을 따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 아니, 그렇게 줄 필요는…….”

        

       “내가 말했잖아. 전임자가 받던 돈이 이만큼이었다고. 물론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똑바로 한다는 가정하에 주는 거야. 내 마음에 안 들면 깎을 거니까 똑바로 해야 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농담이었는데.

        

       사실 뭐, 그렇게 대단하게 할 일은 없을 거다. 양혜인은 이 저택의 사용인들을 모두 통솔했었지만, 소희는 그럴 일까지는 없을 테니까. 이 저택 사용인들이 말을 들을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노동 시간도 법이 정한 안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거예요.”

        

       내가 소희의 아버지 쪽을 다시 보면서 말하자, 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소희야,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니?”

        

       그렇게 소희에게 물어오는 것이었다.

        

       *

        

       “언니, 안녕~!”

        

       의외로 소리는 소희와 헤어지는 것이 그리 아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멀리 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어느 쪽이건, 기분 좋을 정도로 밝은 아이였다.

        

       단둘이 있기는 조금 무섭지만. 아까도 자꾸 말을 걸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만약 동생 돌봐야 하면 여기 데리고 와도 돼. 무조건 옆에 꼭 붙어 있어야겠지만.”

        

       “어, 응, 고맙다…….”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소희의 복장은 여전히 트레이닝 복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침대도 주문해줄 테니까 거기서 자도록 해. 아무리 그래도 바닥에 침낭 깔고 생활할 수는 없잖아.”

        

       소희가 내 방에서 지낸다고 했던 건,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소희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불안했으리라. 이 저택 안에서 ‘내 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직원들이 대놓고 해코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이익을 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소희 아버지께는 죄송한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쏙 빼놓고 했으니까. 아마 내가 처한 상황을 전부 알고 있었다면, 소희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허락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 그러면.”

        

       크흠, 하고 소희가 조금 과장되게 목을 가다듬더니,

        

       “그, 그럼, 아가씨. 이쪽으로—”

        

       “아직 일 시작한 거 아니니까 그런 말투 쓸 필요 없어.”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인수인계도 해야 하고…… 너 전학 처리도 해야 하고. 다음 주에 바로 우리 학교에 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오늘은 아직 토요일이었다. 전학수속을 밟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잘 모르겠고……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엄청 복잡하네. 학군이니 뭐니 하면서 전학도 쉽지 않지 않던가? 소희 주소지를 아예 이 저택으로 옮겨야 하나?

        

       …….

        

       하, 이것 참.

        

       지금 저택 안에 있는 사용인들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줄 생각은 없겠지?

        

       “……그런데, 소희야.”

        

       “응…… 으응!?”

        

       내 부름에, 갑자기 소희가 깜짝 놀라서, 나도 흠칫 떨고 말았다.

        

       “뭐, 뭐야, 왜 그래……?”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것 치고는 얼굴이 실실 웃고 있는데.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혹시, 그……”

        

       그러고 보니,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전까지는 그냥 메이드라고 불렀었는데, 이제 일도 그만뒀으니까. 어…… 양혜인 씨? ……좀 오글거리지 않나?

        

       “혹시, ‘전임자’ 연락처 있어?”

        

       그래서, 나는 결국 그런 애매한 호칭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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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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