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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귀왕의 온몸 곳곳에는 작살이 꽂힌 상태였다.

       작살로 꽃꽂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상태.

       총 열세 개의 작살 전부가 다 명중한 것이다.

         

       정밀한 사격이 아닐 수 없었고, 신궁 소리 듣는 활잡이조차 이토록 정확히 놈을 꿰뚫지는 못할 터였다.

         

       주르륵!

         

       미치도록 흐르는 피.

       꿰뚫린 허벅지와 팔뚝, 거기다 가슴팍까지.

       저 정도 부상은 당장 망자의 발걸음이 들려야 함이 옳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귀왕의 곁에는 망자들이 다가오지 못했다.

         

       귀왕의 위세 앞에선 망자조차 겁을 먹고 도망가는 것이 당연할 터이니.

         

       무엇보다.

         

       [[주…죽…인…다…!]]

         

       귀왕은 겨우 ‘이까짓 상처’로 죽을 존재가 아니었다.

         

       콰앙!!

         

       상처 입었을지언정 그의 생명력은 조금도 꺼지지 않았으니.

       일반적인 생물이 가슴이 뚫리고, 목이 베이면 죽음의 위기가 아닐 수 없겠으나 귀왕에겐 이건 상처 축에도 끼지 못했다.

         

       [[GAAA!!]]

         

       도리어 화만 돋울 뿐.

         

       귀왕의 주먹이 이한을 향해 내리쳐졌다.

         

       콰아아앙!

         

       파공성과 함께 뒤흔들리는 폭음.

         

       지진파가 일어난 게 아닐까 싶은 떨림이었고, 일순 학술원 일대에 서있던 사람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 빈번했다.

         

       균형조차 잡기 힘든 여진이 일어났고, 이러한 지진파가 발생한 근원지는 당연스럽게도.

         

       후두둑…!

         

       움푹 파이다 못해 땅이 꺼질 판이었다.

         

       국가를 멸하는 힘.

       그것이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려주는 증명이 아닐 수 없는 바.

       그 상황에서.

         

       “나 여기 있다.”

         

       [[!!?]]

         

       어느 순간 귀왕의 어깨에 올라간 그가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딱히 어떠한 기술의 이름조차 없는 단순한.

         

       서걱, 서걱!

         

       난도질이었다.

         

       그의 검날이 무수한 궤적을 그리며 귀왕의 팔을 난도질했다.

       열 번이 넘는 칼질.

         

       [[주…죽-어!]]

         

       허나 귀왕의 살결은 쉽게 뚫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렴, 대형 작살로 겨우 뚫었을 뿐이지, 웬만한 수단으론 상처를 내는 것조차 어려울 터였다.

         

       -몸 상태가 정상일 때 얘기지만.

         

       푸화악!

         

       [[!!]]

         

       놈이 고통스럽게 울었다.

         

       “그걸 그대로 꼽아 놓으니까 그런 거다.”

         

       몸에 박힌 작살을 무시하는 멍청함에 진저리가 나는 동시에 반갑다.

       멍청하니 상대하기 쉽지 않은가.

         

       귀왕이 미처 뽑지 못한 작살과, 그로 인해 균열이 난 부분.

       그곳을 정확히 난도질하여 파헤치니 귀왕의 팔은 처참하게 갈렸다.

         

       [[비…비…켜!]]

         

       후욱, 하고 치고 들어오는 주먹.

       덩치에 맞지 않은 재빠르고 정확한 일격이다.

       보고 있는 이들은 마치 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연상하리라.

         

       지능에 반비례하듯 육체만큼은 대단한 바였다.

         

       휘익!

         

       “거, 새끼. 육체 스펙 하나는 끝내주네.”

         

       허나 이한은 떨어지는 주먹을 곧장 피했다.

         

       궁신탄영의 수법.

         

       쏘아진 화살마냥 순식간에 움직이는 수법이었고, 독자적인 그만의 고속이동술이었다.

       이한은 말 그대로 바람이 되어 이동했고, 그때마다.

         

       사아악!

         

       칼을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등과 다리, 어깨와 무릎, 사타구니와 목까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이한은 그 말을 명확히 재현했으며, 완벽한 치고 빠지기의 정석을 몸소 보여주었다.

       허나 아무리 그가 빠르고 노련하게 상대를 농락하고 있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시, 싫어-!]]

         

       콰아아아!

         

       …한 번의 실수로도 죽음에 이르고 말 테니까.

         

       “하, 괴물 새끼….”

         

       이한은 마른 웃음을 지은 채 식은땀을 흥건하게 흘렸다.

         

         

         

         

         

       -놈의 팔과 다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온몸이 저릿해지는 압박이 쏟아진다.

         

       마치 바람으로 이루어진 면도날들이 그를 할퀴는 듯했고, 묵직한 망치가 온몸을 두들기는 느낌 등이 동시에 난다.

         

       ‘이게 어딜 봐서 약해진 거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게 전성기 시절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이란다.

       100%였으면 진작 자신은 죽었으리란 뜻일 터.

         

       ‘아니, 전성기가 아니더라도 머리만 좀 좋았으면 끝났겠지.’

         

       무식하게 힘만 쓰는 놈이기에 상대하는 게 가능하다.

       이놈의 지능이 조금만 영민하여 무예를 쓰거나, 아님 다른 장소를 덮치려고 도망갔다면 진작 이 싸움은 무의미해졌으리라.

         

       ‘일부러’ 도발하여 오로지 자신에게만 적의와 살의를 집중시킨 보람이 있다.

       적어도 자신을 죽일 때까진 이 자리를 벗어나진 않을 테니까.

         

       하여.

         

       ‘진짜 죽으면 안 되겠네.’

         

       죽는 순간 콜로세움의 제자 녀석들을 비롯하여 학술원의 모든 생도들까지 전부 죽어나갈 테니.

         

       어쩌다 보니 임무가 막중해진 이한이었고, 슬슬 자신의 움직임에 익숙해지며 공격을 가하려는 귀왕에게 새로운 각오를 품게 된다.

         

       기필코 뚫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말이다.

         

       그러니.

         

       ‘익숙해질 틈이 없게 해주마.’

         

       화악!

         

       더욱 요란한 것을 보여주기로 하였다.

         

       휘청!

         

       귀왕은 휘청거렸다.

       드디어 잡았다고 생각하고 전력으로 몸을 움직였는데, 갑자기 상대가 사라졌으니 저럴 만도 하다.

         

       허나 이한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저.

         

       슉! 슈욱!

         

       [[!!]]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복잡한 움직임을 취했을 뿐이었다.

         

       이한의 움직임에는 정해진 법칙이란 것이 없는 것마냥 자유롭고도 상대를 농락하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일순 궁신탄영이 만들어낸 이한의 잔영이 귀왕의 눈을 어지럽혔고, 귀왕의 감각에 착란 현상마저 일으켰다.

         

       [[늘…었다.]]

         

       “━━.”

         

       이한은 앓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이를 악물었다.

       기껏 숨겨놓은 비전의 절기를 선보이는 순간 온몸에서 비명을 질러댄 것이었다.

       허나 효과는 탁월했고, 이한은 좀 더 거칠게 움직이며 상대를 농락했다.

         

       원래는 발타르에게 보이려고 숨겨놓은 비기였거늘, 괴물 따위에게 먼저 선보일 줄이야.

         

       – 환영팔괘보(幻影八卦步)

         

       궁신탄영으로 만들어낸 최속의 속도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잔영, 그리고 팔괘의 원리를 응용한다.

       아직은 미완성에 불과하다.

       팔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있고, 팔괘의 원리를 감안하며 경신법을 펼치려 하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마물 하나 농락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고속이동과 함께 만들어지는 환영과 자유로움 속 현묘함이 깃든 이한의 경신법이었고, 마물을 현혹시키기엔 충분하다 못해 과분한 수법이었다.

         

       뿌드득!

         

       …안타깝게도 오래 쓸 수법은 아니었지만.

         

       몸에 오는 무리가 만만치 않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하니 해야 할 것은.

         

       “후우!”

         

       놈이 정신 못 차리는 새, 더 기가 막힌 공격을 박아넣는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콰직!

         

       [[??]]

         

       귀왕의 턱이 돌아갔다.

       아프기도 아프지만, 귀왕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저기 있는데?

         

       분명 놈의 기척은 아래 있는데, 왜 저의 머리가 돌아갔는가?

       이를 이해할 수 없어 아픔보다 의문이 더 앞서는 것이었다.

         

       백보신권.

         

       복싱이나 격투기에서 팔과 다리의 길이, 그러니까 리치(Reach)가 긴 것은 경기를 압도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리치 차이가 수십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선 격산타우의 수법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뜻이 되었다

         

       하여 백보신권이다.

         

       격산타우의 수법을 권법으로 재정립한 이한의 권격.

       상대의 덩치와 리치 등을 무시하는 백보신권의 권격이 연달아 놈의 몸을 사방에서 두들겨 댔다.

         

       퍼버버버벅!

         

       [[Gaaa!!?]]

         

       환영팔괘보를 이용한 감각의 교란.

       백보신권을 통한 거리와 방향 등을 무색해 하는 무차별적인 타격.

       여기서 추가로.

         

       쿠웅!!

         

       내가중수법의 묘리를 더한 발경까지.

         

       이한은 틀림없이 귀왕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다만 이를 보는 제3자의 눈에는.

         

       “어, 어떻게, 저러다 교관님 죽으시겠어!”

         

       그가 언제라도 한계를 맞이하여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비록 현재 압도당하는 것은 귀왕이지만, 재생력도 여전할뿐더러,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내뿜는 위세가 줄지 않았다.

       생판 처음 보는 기술에 당황할 뿐이지, 아마 저 기술에 익숙해지는 순간-.

         

       “아, 안 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무리 저분이라고 해도 저렇게 큰 기술을 연달아 쓰면 무리가 따를 거야. 아린아, 빨리 마법으로 좀 도와드려!]

         

       “틈이 있어야 돕기라도 하지!”

         

       아이린이라 하여 그를 돕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귀왕의 몸에는 일반적인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만 해도 마법으로 어떻게 공격을 가하려고 해도 마력이 무효화된다.

       왜 오드왈이 귀왕을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했는지 알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저항력.

         

       하지만 아이린은.

         

       “큰 거, 무조건 큰 거 한 방을 준비해야 해….”

         

       아이린은 있는 대로 마력을 모았다.

         

       상대가 강력한 마력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저항력마저 대항하지 못할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는 언제라도 마법을 발동시킬 기회를 노리며 마력을 있는 힘껏 모았다.

       위기에 처한 그를 돕기 위해서라도…!

         

       “그, 그럼, 틈만 만들면 됩니까?”

       “그래, 틈만 만들면 돼!”

       “…어느 정도 틈이면 되겠습니까.”

       “으으음, 교관님이랑 한 1미터만 떨어져 있을 정도?”

       “아, 알겠습니다. 한 번 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근데…. 넌 누구니?”

       “…이제 물어보시는 겁니까?”

         

       존재감이 희미한 소년은 어이없다며 아이린을 보았다.

       뭔가 기대했던 이미지랑 다르다며 실망한 표정.

         

       아이린은 저한테 왜 실망감을 느끼고 있나 이해가 안 되는 눈으로 눈을 끔뻑거렸지만, 소년은 궁금증을 풀어주는 대신.

       

       “…후우, 그냥 지나가는 비겁한 놈이라고 알아주십시오.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저분한테 부탁만 했던….”

         

       “응?”

         

       “그러니 뒤늦게라도 돕기라도 해야겠지요.”

         

       회색머리가 인상적인 소년은 의미모를 중얼거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비장의, 그리고 목숨을 건 최후의 수를 펼쳤다.

         

         

       [도적 직업 – 종결급 스킬]

         

         

       “…만천화우(滿天花雨), 발동…!”

         

         

       – 하늘에 꽃비가 가득하니(滿天花雨).

         

         

       데릭, 그가 하늘에서 암기의 비를 떨어트렸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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