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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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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으윽…파트너, 살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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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욱씬거리는 통증에 우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몸을 웅웅 떨었다. 제 파트너와 달리 배려심이라고는 1도 없는 아이리스는 마검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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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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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챔피언과 싸우면서 반파된 투기장이 부서져 내렸다. 유일하게 그녀와 오래 검을 부딪쳤던 챔피언은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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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기장에 있던 많은 이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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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게 뭐야!”
   “젠장 내보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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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기장 전체를 집어삼킨 돔 형태의 막이 그들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도 밖으로 탈출을 성공한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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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달려, 앞만 보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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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에 물들지 않은 선한 영혼만이 아이리스가 쳐놓은 막을 넘어 도망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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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한 경기를 즐기는 관객과 본인의 재미를 위해 남을 해친 경험이 있는 노예들은 빠져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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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짜증 나네. 망할 신성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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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던 힘이 나른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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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래도 아직 죽일 것들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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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서 저 끔찍한 놈들을 죽이자고, 사랑하는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쓰레기들을 다 없애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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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그런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이미 분노에 이성을 놓아버린 아이리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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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 콰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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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휘둘러 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음과 함께 투기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에 깔린 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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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간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사무실로 돌아온 오뚜기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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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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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소의 답장이었다. 분명 그라면 답장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투기장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답장이 오기만 하면 오뚜기는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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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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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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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날려 보냈던 까마귀가 돌아온 것에 환희에 잠긴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까마귀의 다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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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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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장이라고 생각했던 편지는 오뚜기가 보냈던 SOS 편지였다. 그 말은 곧…이 편지가 지소에게 닿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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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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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님이 이곳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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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울 경우, 그럴 경우엔 지금처럼 답장받지 못하고 까마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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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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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의 서류 책상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돌연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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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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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가 날아오르기 무섭게 매서운 공격이 사무실을 할퀴었다. 똑똑한 까마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서져 내리는 투기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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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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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벅,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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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마다 붉은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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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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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시체 처리장 한쪽에 버려져 있는 리안의 앞이었다. 아이리스는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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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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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바닥을 굴렀지만, 아이리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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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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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덤한 표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베어 넘겼던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애닳는 표정으로 리안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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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슬픔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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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으로 그를 붙잡고, 아무리 애원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게 늦었다. 이미 제 가족은, 구원은, 사랑은 -… 제 손에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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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로 강을 이루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끝없이 눈물을 토하며 리안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름이 끼치는 고요 속에서 아이리스는 절망하고 애원하고 증오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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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울어버린 탓일까, 어린 몸에 열이 오르고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이대로 리안의 시체 위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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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동물처럼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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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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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들릴 리 없는 맥박 소리와 함께 리안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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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꿈으로 꾸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눈을 뜨면 꿈에서 깨어나 그의 시체와 마주하게 될까 무서워 최대한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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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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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어찌 막아볼 새도 없이 눈이 번쩍 떠지고 고개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마치 몸에 새겨진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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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어? 아,아이리스?”
    “흐윽…”
    “헉…! 아,아이리스 왜 그래 누,누가 우리 아이리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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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이 가득 담긴 눈동자를 마주하자, 아이리스는 꾹꾹 눌러 참은 슬픔을 애원을 증오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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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윽,흐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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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을 기점으로, 그녀에게 리안은 제 죽음이며, 구원이고, 사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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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죽는다면 따라서 죽으려 할 정도로.
   
   
   리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리스’라는 족쇄에 묶여버린 것이다. 이젠 그가 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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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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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일하네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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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을 알 수 없는 모자이크가 여기저기 널린 걸 보니 눈이 어지러웠다. 나는 무너진 투기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돈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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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흐, 이제 나도 다크 판타지 세계에 좀 적응한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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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시체의 주머니를 털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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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칭찬하며 아이리스와 잔혹한 마왕의 땅에서 생존하기 위한 물자를 바리바리 챙겼다. 운 좋게 아공간 가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다 좋아 보이는 물건은 다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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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추 다 챙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무너진 투기장 밖에 기척이 느껴졌다. 거지꼴을 한 이들이 눈을 번뜩거리며 투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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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거지나 도적들 같았다. 걸려봤자 노예로 팔릴 뿐이라 빠르게 투기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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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아이리스 이거 입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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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집요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리스를 손에 들고 있던 질 좋은 옷으로 갈아입힌 후 후드가 달린 망토도 입혔다. 오래 이동해야 하기에 신발도 좋은 놈으로 신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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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 똑같이 나도 옷을 챙겨입고 난리가 난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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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대체 누가 저 투기장을 날려버린 거야?”
    “사천왕끼리 싸움 난 거 아냐?”
    “그럴 확률이 높겠네. 쩝, 지금 가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꽤 좋은 물건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야! 지금 아니면 언제 투기장을 털어보겠어! 나는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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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의 땅 위에는 여러 종류의 투기장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가장 메인이 되는 곳은 내가 있던 투기장인 듯했다. 크기만 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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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꼭 잡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마다 시체처럼 늘어진 약쟁이들이 수확 철 밀처럼 흔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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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최대한 투기장에서 멀어지자. 여긴 다른 곳에 비해 더 위험한 곳이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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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걸어서 이동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기에 버스처럼 도시 내를 정기적으로 빙빙 도는 마차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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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은 눈치껏 알아서 했다. 흥정하는 목소리가 워낙 커서 적정 가격을 알아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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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가 뻥 뚫린 마차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몰래 마차에 매달려 이동하려다가 채찍을 맞고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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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야생의 도시잖아.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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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을 뒹굴어 얼굴이 엉망이 된 사람을 흘긋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차 덕분에 금방 도시 입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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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기 전에 잠깐 상점에 들리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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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계획은 바로 도시를 빠져나가는 거였지만, 야영에 필요한 도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렀다 가야 할 듯했다. 마침 가까운 용병 상점이 보여 그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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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낭이랑 랜턴…아, 이것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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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눈에 보이는 물건을 훑어보며 뭘 살지 머릿속에 적어두었다. 돈은 투기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고와 죽어버린 도박꾼들의 주머니를 잔뜩 털어왔기에 두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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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 없이 필요한 물건을 싹 쓸어가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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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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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무시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가르간도아를 소환해 들고,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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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어느새 내 앞에 서서 투기장에서 챙긴 튼튼한 철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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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지키겠다고 작은 몸으로 씩씩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상황 파악이 먼저였기에 거대한 흙먼지가 치솟은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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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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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못해도 건물 10층 높이로 솟아난 흙먼지 위로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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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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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층 높이보다 더 높이 날아올랐다가 이내 떨어지기 시작한 사람 형태의 실루엣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빠르게 상점 쪽으로 몸을 틀어 미리 봐뒀던 물건을 싹 다 골라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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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오..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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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정 없이 쿨하게 결제하자 가게 주인이 활짝 웃으며 덤을 몇 개 얹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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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료품은 다른 가게에서 판다니까, 거기까지만 들렸다가 바로 마을에서 나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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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사건·사고가 많은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큰 소란이 발생했다면 언제 지소가 돌아올지 몰랐다. 그는 나와 아이리스를 꽤 마음에 들어 했으니 다시 노예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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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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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안쪽에 자리한 가게로 향하려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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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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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아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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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거기 너 돈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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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아치가 돈 뜯기는 시전 하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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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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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위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자. 새카만 그림자가 골목 안쪽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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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순히 내놓으면 -…크허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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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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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다 찢어지고 낡아빠진 로브를 두른 누군가가 양아치 위에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다. 딱 봐도 수상한 이의 등장에 리안은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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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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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드를 눌러쓴 낯선 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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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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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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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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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달려와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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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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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윽…파트너, 살려줘… ]

마검은 욱씬거리는 통증에 우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몸을 웅웅 떨었다. 제 파트너와 달리 배려심이라고는 1도 없는 아이리스는 마검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쿠구구궁!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챔피언과 싸우면서 반파된 투기장이 부서져 내렸다. 유일하게 그녀와 오래 검을 부딪쳤던 챔피언은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투기장에 있던 많은 이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이게 뭐야!”

“젠장 내보내 줘!”

투기장 전체를 집어삼킨 돔 형태의 막이 그들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도 밖으로 탈출을 성공한 이들이 있었다.

“언니…!”

“달려, 앞만 보고 달려!”

‘악’에 물들지 않은 선한 영혼만이 아이리스가 쳐놓은 막을 넘어 도망칠 수 있었다.

잔혹한 경기를 즐기는 관객과 본인의 재미를 위해 남을 해친 경험이 있는 노예들은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아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짜증 나네. 망할 신성력.
아아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짜증 나네. 망할 신성력.

아이리스의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던 힘이 나른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뭐, 그래도 아직 죽일 것들은 많으니까.
뭐, 그래도 아직 죽일 것들은 많으니까.

‘그것’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서 저 끔찍한 놈들을 죽이자고, 사랑하는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쓰레기들을 다 없애버리자고.
어서 저 끔찍한 놈들을 죽이자고, 사랑하는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쓰레기들을 다 없애버리자고.

굳이 그런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이미 분노에 이성을 놓아버린 아이리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쿠구궁! 콰과광!

검을 휘둘러 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음과 함께 투기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에 깔린 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다.

그 시간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사무실로 돌아온 오뚜기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제발,제발…!”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소의 답장이었다. 분명 그라면 답장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투기장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답장이 오기만 하면 오뚜기는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펄럭 -.

“…! 왔다!”

그가 날려 보냈던 까마귀가 돌아온 것에 환희에 잠긴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까마귀의 다리를 확인했다.

“어…?”

답장이라고 생각했던 편지는 오뚜기가 보냈던 SOS 편지였다. 그 말은 곧…이 편지가 지소에게 닿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오뚜기는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지소…님이 이곳에 없,어?’

지소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울 경우, 그럴 경우엔 지금처럼 답장받지 못하고 까마귀가 돌아왔다.

파드득.

오뚜기의 서류 책상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돌연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올랐다.

까아악 -..

까마귀가 날아오르기 무섭게 매서운 공격이 사무실을 할퀴었다. 똑똑한 까마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서져 내리는 투기장을 떠났다.

***

터벅,터벅.

아이리스는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마다 붉은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오빠.”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시체 처리장 한쪽에 버려져 있는 리안의 앞이었다. 아이리스는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챙그랑!

마검이 바닥을 굴렀지만, 아이리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빠,오빠…!”

무덤덤한 표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베어 넘겼던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애닳는 표정으로 리안을 품에 안았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슬픔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온몸으로 그를 붙잡고, 아무리 애원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게 늦었다. 이미 제 가족은, 구원은, 사랑은 -… 제 손에 죽어버렸다.

눈물로 강을 이루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끝없이 눈물을 토하며 리안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름이 끼치는 고요 속에서 아이리스는 절망하고 애원하고 증오하기를 반복했다.

너무 울어버린 탓일까, 어린 몸에 열이 오르고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이대로 리안의 시체 위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동물처럼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였다.

“으으..여긴..?”

아이리스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들릴 리 없는 맥박 소리와 함께 리안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꿈으로 꾸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눈을 뜨면 꿈에서 깨어나 그의 시체와 마주하게 될까 무서워 최대한 숨을 죽였다.

“아..이리스?”

“…!”

리안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어찌 막아볼 새도 없이 눈이 번쩍 떠지고 고개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마치 몸에 새겨진 본능처럼.

“어,어어? 아,아이리스?”

“흐윽…”

“헉…! 아,아이리스 왜 그래 누,누가 우리 아이리스를 -…”

애정이 가득 담긴 눈동자를 마주하자, 아이리스는 꾹꾹 눌러 참은 슬픔을 애원을 증오를 토해냈다.

“흐으윽,흐어어엉!”

그날을 기점으로, 그녀에게 리안은 제 죽음이며, 구원이고, 사랑이 되었다.

그가 죽는다면 따라서 죽으려 할 정도로.

리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리스’라는 족쇄에 묶여버린 것이다. 이젠 그가 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

“오랜만에 일하네 모자이크..”

기준을 알 수 없는 모자이크가 여기저기 널린 걸 보니 눈이 어지러웠다. 나는 무너진 투기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돈을 챙겼다.

‘흐흐, 이제 나도 다크 판타지 세계에 좀 적응한 거 같지?’

무려 시체의 주머니를 털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칭찬하며 아이리스와 잔혹한 마왕의 땅에서 생존하기 위한 물자를 바리바리 챙겼다. 운 좋게 아공간 가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다 좋아 보이는 물건은 다 챙겼다.

얼추 다 챙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무너진 투기장 밖에 기척이 느껴졌다. 거지꼴을 한 이들이 눈을 번뜩거리며 투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거지나 도적들 같았다. 걸려봤자 노예로 팔릴 뿐이라 빠르게 투기장을 빠져나왔다.

“자, 아이리스 이거 입자.”

“응.”

아이리스는 집요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리스를 손에 들고 있던 질 좋은 옷으로 갈아입힌 후 후드가 달린 망토도 입혔다. 오래 이동해야 하기에 신발도 좋은 놈으로 신겨주었다.

아이리스와 똑같이 나도 옷을 챙겨입고 난리가 난 거리를 걸었다.

“미친, 대체 누가 저 투기장을 날려버린 거야?”

“사천왕끼리 싸움 난 거 아냐?”

“그럴 확률이 높겠네. 쩝, 지금 가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꽤 좋은 물건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야! 지금 아니면 언제 투기장을 털어보겠어! 나는 다녀온다!”

지소의 땅 위에는 여러 종류의 투기장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가장 메인이 되는 곳은 내가 있던 투기장인 듯했다. 크기만 봐도 그랬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꼭 잡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마다 시체처럼 늘어진 약쟁이들이 수확 철 밀처럼 흔하게 보였다.

“우선 최대한 투기장에서 멀어지자. 여긴 다른 곳에 비해 더 위험한 곳이니까.”

“응.”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걸어서 이동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기에 버스처럼 도시 내를 정기적으로 빙빙 도는 마차에 탑승했다.

계산은 눈치껏 알아서 했다. 흥정하는 목소리가 워낙 커서 적정 가격을 알아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뒤가 뻥 뚫린 마차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몰래 마차에 매달려 이동하려다가 채찍을 맞고 떨어지기도 했다.

‘으아…야생의 도시잖아. 완전..’

바닥을 뒹굴어 얼굴이 엉망이 된 사람을 흘긋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차 덕분에 금방 도시 입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가기 전에 잠깐 상점에 들리자.”

“응.”

원래 계획은 바로 도시를 빠져나가는 거였지만, 야영에 필요한 도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렀다 가야 할 듯했다. 마침 가까운 용병 상점이 보여 그곳으로 다가갔다.

‘침낭이랑 랜턴…아, 이것도 필요하겠다.’

대충 눈에 보이는 물건을 훑어보며 뭘 살지 머릿속에 적어두었다. 돈은 투기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고와 죽어버린 도박꾼들의 주머니를 잔뜩 털어왔기에 두둑했다.

고민 없이 필요한 물건을 싹 쓸어가려는데.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가르간도아를 소환해 들고,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가 어느새 내 앞에 서서 투기장에서 챙긴 튼튼한 철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날 지키겠다고 작은 몸으로 씩씩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상황 파악이 먼저였기에 거대한 흙먼지가 치솟은 곳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지?’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못해도 건물 10층 높이로 솟아난 흙먼지 위로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사람..인가?’

10층 높이보다 더 높이 날아올랐다가 이내 떨어지기 시작한 사람 형태의 실루엣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빠르게 상점 쪽으로 몸을 틀어 미리 봐뒀던 물건을 싹 다 골라 계산했다.

“오…오오..감사하네!”

흥정 없이 쿨하게 결제하자 가게 주인이 활짝 웃으며 덤을 몇 개 얹어주었다.

“식료품은 다른 가게에서 판다니까, 거기까지만 들렸다가 바로 마을에서 나가자.”

“응.”

원래 사건·사고가 많은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큰 소란이 발생했다면 언제 지소가 돌아올지 몰랐다. 그는 나와 아이리스를 꽤 마음에 들어 했으니 다시 노예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저기다.”

골목 안쪽에 자리한 가게로 향하려던 그때.

“어이!”

양아치가 나타났다!

“그래, 거기 너 돈 좀 -….”

양아치가 돈 뜯기는 시전 하는 것과 동시에.

슈우우욱!

저 위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자. 새카만 그림자가 골목 안쪽에 떨어졌다.

“순순히 내놓으면 -…크허헉!”

콰아앙!

끝이 다 찢어지고 낡아빠진 로브를 두른 누군가가 양아치 위에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다. 딱 봐도 수상한 이의 등장에 리안은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킁킁…응?”

후드를 눌러쓴 낯선 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엇?”

“아앗!”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쭈인님!”

제스가 달려와 나를 덮쳤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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