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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어둡고 칙칙하고, 짙은 혈향이 감도는 지하 공터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의뢰인 이름을 다르게 말하는 수상한 캠프 주민들.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의뢰인.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사람들.

    갑자기 나타난 닌자들.

    지하 수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수상한 연구원들.

    분명 위험하고 기이한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회색 사신이 나타난 뒤로 뒤바뀌어 버렸다.

    밝고 화기애애하고 말랑말랑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귀여운 황금색 사신이 뛰어노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구석에서 파이프를 태우는 탐정 선배 어깨 위에도 황금 사신 한 마리. 

    황금 사신은 관심을 갈구하며 탐정 선배의 볼을 찌르고 있었지만, 탐정 선배는 귀찮아하기만 했다.

    저쪽에는 망치 선배가 회색 사신을 껴안고 둥기둥기하고 있었다.

    고양이에 황금 사신까지 잔뜩 몰려들어 있는 말랑한 분위기.

    무표정한 회색 사신을 쓰다듬고 주변에는 황금 사신들이 몰려와서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망치 선배의 표정은 행복사 할 것 같은 표정!

    의식이 없는 의뢰인의 남동생에게도 황금 사신이 잔뜩 붙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간병해 주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의뢰인에게는 전혀 붙어있지 않았다.

    설마 의뢰인이 오브젝트라서 그런 건가?

    인간에게만 우호적이고, 다른 건 무시한다?

    그러면 인간에게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건데, 사실 이건 엄청 위험한 신호였다.

    오브젝트가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올수록 위험하다는 게 정설인데.

    분명 엄청 위험한 신호인데….

    절대로 조심해야 하는 현대의 상식인데….

    이 귀여운 녀석들에게는 왠지 그렇게 조심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야 너무 착한 아이들 같은걸!

    내 검지를 꼭 붙잡고 있는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았다.

    손안에서 꿈틀거리는 따뜻하고 말랑한 귀여운 오브젝트.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동질감이 느껴지는 황금 사신.

    이 매력적인 생물에게 빠져들지 않는 사람은 분명 어딘가가 망가진 사람일 거야.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서 내밀자, 황금 사신은 두 손으로 사탕을 잡고는 할짝거렸다.

    할짝할짝.

    몸을 붙잡은 채 사탕을 뒤로 천천히 빼니, 혀를 내밀고 핥으려고 하는 황금 사신이 너무 귀여워!

    사탕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보니, 황금 사신이 째려보기 시작했다.

    장난을 너무 쳐서 그런지, 황금 사신이가 토라져 버렸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니 금방 헤실헤실 웃었다. 

    아, 하나만 가져가고 싶다.

    집에서 기르고 싶다.

    몰래 주머니에 하나 넣어서 가지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주머니 속에 황금 사신을 한번 넣어봤지만, 실패했다.

    넣어두면 얌전히 있다가도 금세 주머니 밖으로 나와서 피부에 달라붙으려고 버둥버둥.

    결국 주머니 안에 넣어서 몰래 옮기는 계획은 파기했다.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좀 더 방법을 궁리해 봐야겠어.

    ***

    나는 파이프를 정리해서 수납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의뢰인에게 다가갔다.

    “남동생을 확인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그… 그게. 너무 무서워서 못 다가가겠어요.”

    의뢰인의 표정은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표정이었다. 

    언젠가 오브젝트들이 회색 사신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설마 의뢰인 본인이 오브젝트라서 황금 사신이 거북한 걸까?

    사실 의뢰인이 오브젝트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봐도 두려울 만도 했다.

    나나 후배들에게는 끝없는 호감을 뿜어내는 황금 사신이었지만, 의뢰인에게는 냉담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죄다 갈아 죽이는 흉흉한 오브젝트가 자신에게만 냉담하다?

    이거 꽤 무서울 것 같긴 하네.

    나는 의뢰인의 남동생이 앉은 의자로 다가가서 남동생에게 달라붙어 있는 황금 사신들을 모두 집어 들었다.

    다행히 내가 황금 사신을 집어 들자, 황금 사신들은 선선히 그 자리를 내 어깨 위로 옮겼다.

    놀아달라고 귀찮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기어 올라오는 황금 사신이 많아졌지만, 이 정도는 뭐 참을 만했다.

    의뢰인은 그제야 쭈뼛거리며 남동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태훈아. 태훈아.”

    의뢰인은 남동생에게 딱 달라붙어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태훈아. 내 동생, 정신이 들어?”

    “헤헤, 누나다.”

    30살은 넘어 보이는 청년의 입에서는 어눌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둘의 만남을 멀찍이 서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후배 2호가 다가와서 물었다.

    “선배, 이번 사건은 도대체 뭐죠? 의뢰인은 뭐고, 저 남동생은 또 왜 저렇게 커다랗죠?”

    나는 품속에 넣어둔 인명부를 후배 2호에게 건네주었다.

    “우선 남동생은 저게 맞아. 35살이니까. 여기서 문제인 건 누나 쪽이지.”

    165cm는 되던 여자가 150cm를 지나, 이젠 120cm 정도로 작아져 버린 시점에서 평범한 누나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신장이 줄어들면서 옷이나 신발까지 죄다 쪼그라들었는데, 평범할 리가 없지.

    “너도 그 서류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저 남동생 ‘이태훈’은 누나가 없어. 그러면 문제가 되는 건 하나지. 저 의뢰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키가 멋대로 줄어들고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걸 보면 역시 오브젝트?”

    “조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아마 저 의뢰인을 포함해서 캠프 주민 모두가 동일한 종류의 오브젝트였던 것 같아.”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여전히 통화는 불가능이었다.

    “나가서 사람 좀 불러야겠어. 현장 정리도 필요하고, 의뢰인 남동생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까 말이야.”

    남동생의 몸에는 큰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정신 연령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인명부의 병력란에는 저런 상태라는 건 안 쓰여 있었는데 말이다.

    고문 때문에 저렇게 된 게 아닐까 싶지만, 자세한 건 병원에서 확인을 해줘야겠지.

    ***

    후배 2호에게 나가서 경찰이나 구급차를 불러오라고 시킨 뒤, 나는 회색 사신과 놀고 있는 후배 1호를 강제로 끌고 나와 지하 시설 수색을 시작했다.

    “선배, 왜 지금 지하 시설을 찾아보자고 한 거예요?”

    회색 사신과 놀다가 끌려와서 그런지 후배 1호의 반응이 조금 까칠했다.

    생각보다 회색 사신에 너무 빠진 것 같은데, 혹시 회색 사신이 정신 오염 능력도 가지고 있나?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그래. 사람들이 캠프에 오기 전에 우리가 미리미리 조사해 두자고.”

    사실 나도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우리 의뢰인은 인간이 아니라 오브젝트니까. 미리미리 조사해 두는 편이 좋아.”

    “?”

    이상한 캠프, 이상한 의뢰인. 

    이번 사건에서 제대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었다.

    지하에는 정체불명의 박동음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심장 소리를 이정표 삼아서 지하 속에 뚫린 미로 같은 복도를 돌아다녔다.

    이 복도는 생각보다 끔찍한 곳이었다. 

    어딜 봐도 고문실이 잔뜩.

    그리고 그 고문실에는 캠프에서 본 기억이 있는 캠프 주민의 시체가 하나씩 있었다.

    환대를 해주던 정육점 아저씨부터, 집주인까지. 

    캠프 주민들이 소장에게 여기로 끌려온 건 확실해졌다.

    고문실들을 지나치고 지나친 끝에 새로운 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이하고 커다랗고, 깔끔한 방.

    심장이 천장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방.

    그 방 천장에서는 황금으로 만든 심장들이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혈관처럼 연결된 고무관들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여기가 이 캠프의 ‘이변’의 핵심이군.”

    “여기 심장 대부분이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후배의 지적처럼 심장 대부분은 망가져 있었다.

    맥동할 때마다 황금 부스러기를 토해내고, 바닥에 조각들을 뱉어냈다.

    꽤 많은 숫자의 심장들이 쪼개져서 더 이상 뛰고 있지 않았다.

    남은 심장들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볼 때, 하루 안에 심장 대부분이 활동을 멈출 것으로 보였다.

    “이거로군.”

    그중에 딱 하나, 딱 하나의 심장만이 멀쩡했다.

    나는 그 심장을 정성스럽게 챙겨 넣기 시작했다.

    “그 심장은 왜 챙기는 거예요? 기념품?”

    “아마 이 심장이 의뢰인의 심장일 테니까 미리 챙겨두는 거지.”

    “네?”

    “뭘 그렇게 놀라? 너도 캠프 주민이랑 의뢰인이 오브젝트라는 건 알고 있잖아. 그러면 여기 잔뜩 걸린 심장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음… 끔찍하다?”

    황당한 소리를 후배 1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뒤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이 심장이 캠프 주민을 발생시킨 원인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지.”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거기다가 여기 오다가 너도 봤잖아. 고문 끝에 죽어간 캠프 주민들의 시체들. 그럼 똑같은 얼굴을 한 시체가 지하에 한 구, 지상에 한 구. 이상하지 않아?”

    “아, 그러면 여기 있는 심장들이 밖에 있던 가짜 캠프 주민들을 만든 매개체인 건가요?”

    후배 1호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그러니까 협회에서 조사 오기 전에 의뢰인의 심장을 챙겨두자는 거지.”

    유리병에 심장을 밀봉해서 수납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 심장’을 의뢰인에게 전해주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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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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