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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아이들이 네게 관심이 많구나.>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방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와 아서의 대결을 구경하러 온 이들 같았다.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애들이 맨 손으로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잖아.

   

   ‘저 중에서 제가 이기길 바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있기는 할까?>

   ‘할아버지.’

   

   이럴 때는 희망찬 말을 해주셔야죠.

   

   성기사이자 영웅이라는 인간이 그런 비관적인 말을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물론 저도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모르잖아요.

   

   <아. 있긴 하겠구나. 도박하는 놈들 중엔 승률보다 한방을 추구하는 놈들이 있거든.>

   

   과연. 내 어깨 위에는 역배충들의 혼이 담겨 있는 건가.

   

   알겠어. 너희들의 염원을 담아 오늘 정배충 놈들의 돈이 불타는 광경을 보여주도록 할게.

   

   소울 아카데미 인근에 커다란 강 하나가 없는 게 참 아쉽네.

   

   적당한 곳이 있었다면 오늘 거기는 워터파크가 됐을 텐데 말이야.

   

   칼을 데리고서 던전의 입구로 향하니 우물쭈물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들러리 영애와 칼 한 자루 딸랑 들고 와서 하품을 빼액 쉬고 있는 프레이가 보였다.

   

   이걸로 던전에 들어갈 준비는 끝났고 아서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루시 알른.”

   

   말하기 무섭게 등장하셨구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불쌍 왕자.”

   

   일부러 아서의 이름을 안 불렀는데 그래도 불쌍왕자라는 호칭을 붙이는구나.

   

   왜 이렇게 쓰잘데기 없이 성실한 거냐 메스가키 스킬아.

   

   아서는 내가 불쌍왕자라고 부르는 데에 익숙해진 건지 눈을 살짝 치뜰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길 자신은 있나?”

   

   ‘그건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불쌍왕자님을 손쉽게 이길 만큼은 준비해뒀죠.”

   

   이 정도면 메스가키 스킬치고는 겸손하게 말한 것 같은데 아서의 얼굴이 무표정한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에라이. 그래. 내가 겸손은 무슨 겸손이냐.

   

   어차피 패배하는 순간 업보와 함께 폭사할 거라면 업보를 하늘 끝까지 쌓아 버리자고.

   

   “그 오만함이 어디까지 갈지 보지.”

   

   ‘왕자님께서 무너트릴 순 없을 겁니다.’

   “오만을 무너트릴 실력도 없으시면서 그런 말씀이라니. 오만한 쪽은 불쌍왕자님 아니신가요?”

   

   “쯧.”

   

   아서는 들으라는 듯 혀를 차더니 이야기를 돌렸다.

   

   “규칙을 확인하지. 던전에 들어가는 건 오전 10시 정각. 나오는 시간은 오후 8시다. 도중에 포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경우 패배한다. 던전을 공략하는 인원은 1학년 셋으로 한정하며 함께 가는 재학생 혹은 교수는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는다. 승리하는 쪽은 제한시간 내에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이의 있나?”

   

   ‘아뇨. 없습니다.’

   “아뇨.”

   

   “그럼 정각이 되는 순간 승부를 시작하는 걸로 하지.”

   

   그는 그리 말을 하곤 등을 돌려서 자신의 파티원들에게로 떠나가 버렸다.

   

   어디 보자.

   

   멤버는 내가 들었던 대로네.

   

   아서. 자칼. 매튜.

   

   아서나 매튜는 소울 아카데미에서 국밥처럼 든든하던 캐릭터들이고 자칼도 다른 원톱급 캐릭터들에게 밀려서 그렇지 성능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저 정도 멤버 구성이면 뉴비는 물론이고 1회차를 돈 사람보다 던전 공략을 잘 할 것 같은 수준이네.

   

   그런데 쟤네가 같이 데리고 가는 사람은 누구지?

   

   던전 공략을 하려면 반드시 재학생이나 교수 하나를 데리고 가야 하잖아.

   

   그게 의아해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인파 사이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안 늦었죠?”

   

   전투학 교수 루카.

   

   명작을 완성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학생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미치광이.

   

   저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그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루카가 아서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하필이면 인솔로 저 놈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한 거야?!

   

   나는 미친 짓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아서가 제대로 된 사람을 선택했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사람들 제정신이야?

   

   루카라는 정신병자를 데리고 있는데 저게 어떻게 훌륭한 인선이 될 수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저들이 루카라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사람들은 루카가 얼마나 미친놈인지를 모른다.

   

   지금 겉으로 드러난 그는 뛰어난 학생을 여럿 배출한 실력 있는 젊은 교사일 뿐이었으니까.

   

   어떡하지? 지금 내게 저 놈을 쫓아낼 방법이 있나?

   

   아니면…

   

   <루시. 왜 그러느냐.>

   

   할배의 목소리를 듣고서 현실로 돌아왔다.

   

   후우. 진정하자.

   

   저 놈은 미친놈이긴 하지만 분별 있는 미친놈이잖아.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자리에서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설령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아서의 파티원들은 충분히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이다.

   

   저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 지금 내가 저들을 걱정할 처지던가.

   

   지금의 나는 내 앞가림을 하기도 바쁜데 말이다.

   

   ‘프레이…’

   “허접 검사. 어제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나 바보 아냐.”

   

   프레이가 짐짓 어깨를 피며 그리 대답했지만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대련을 하기 위해서라도 내 지시 따라 줄 거지? 나 믿는다?

   

   다른 파티원인 들러리 영애는 긴장이 되는 건지 손을 꼼지락대는 걸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들러리 영애님…’

   “야. 들러리. 너 이름이 뭐였더라?”

   

   “…모르고 계셨던 건가요?! 비시에요. 비시 벨.”

   

   비시인가.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 생각하며 고갤 끄덕이고 있자니 비시가 무언가 기대가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라는 거야?

   

   미안.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알겠어요. 비시.’

   “알겠어. 들러리 영애. 기억은 해둘게.”

   

   메스가키 스킬은 어지간하면 사람 이름을 불러주지 않거든.

   

   또 다시 들러리 영애라고 불린 것에 실망한 걸까.

   

   비시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미안해. 그래도 긴장은 풀렸잖아?

   

   “정각입니다. 알른 영애님.”

   

   칼이 정각을 알림에 따라 잡담을 멈췄다.

   

   ‘알겠어요. 여러분. 가죠.’

   “알았어. 자. 허접들. 가자고.”

   

   자. 오랜만에 고인물로써의 실력을 뽐내보실까.

   

   던전의 문을 넘어서자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벽 이곳저곳에 발광석이 박힌 동굴.

   

   여기까지 오는데 몇 개월이나 걸렸네.

   

   예전에 이걸 게임으로 할 적에는 매일 같이 봤던 모습인데 말이야.

   

   발광석이 저렇게 박혀 있는 걸 보면 여기가 시작지점 중 어딘지는 알겠고.

   

   좋아.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여러분들 어제 말씀드렸던 거지만…’

   “허접들. 어제 말했던 거지만 다시 한 번 말할게. 우리는 보스룸을 돌파하는 걸 제외하면 전투를 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이건 스피드런 대결이잖아?

   

   스피드런에서 제일 중요한 건 회피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를 회피하는 거라고.

   

   *

   

   처음 비시가 루시 알른의 전략을 들었을 때 그녀는 루시가 미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모든 전투를 회피하고 진행을 하겠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던전 공략이라는 건 그 안에서 무작위로 생겨난 몬스터를 상대하고 함정을 돌파하면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싸우고 싶지 않다고 싸우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던 비시가 루시 알른에게 설득이 되었던 이유는 루시 알른이 예시랍시고 늘어놓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1학기 던전의 1층에 진입해서 골목을 돌면 좆밥 고블린 두 마리가 튀어 나오는데…’

   

   루시 알른은 체스판 위에서 모든 걸 관찰하는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던전 공략이 어찌 이루어 질 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1층. 2층. 3층. 이윽고 10층에 이르기까지.

   

   루시 알른은 어떻게 단 한 번의 전투도 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해주는 말은 연극의 각본가가 써낸 이야기처럼 상세해서 아카데미의 던전에 단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비시라도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정말로 당신이 말한 대로 다 이루어 질 거라 생각하시나요?’

   

   모든 설명을 듣고 난 후 비시가 루시 알른에게 묻자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대답을 했다.

   

   ‘당연하지. 난 너 같은 허접이랑 다르게 신의 사랑을 받거든.’

   

   평소라면 짜증난다 생각했을 웃음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이런 설명을 한 게 어중이떠중이였다면 비시는 그 설명을 망상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허나 상대는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사람이었다.

   

   만일 루시가 던전 공략에서 만점을 받은 게 아카데미 측의 배려가 아니라 단순히 그녀가 지닌 무언가 때문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비시는 루시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루시가 말했던 계획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자리.

   

   놀랍게도 던전의 공략은 루시 알른이 말했던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골목을 돌면 좆밥 고블린 두 마리가 나올 테니까…”

   

   고블린 두 마리가 나왔다.

   

   루시 알른이 방패로 돌진해서 넘어트리며 전투를 회피,

   

   앞으로 내달렸다.

   

   “오른 쪽으로 가면 멍청이가 설치한 함정이 있는데…”

   

   거기에는 정말로 함정이 있었다.

   

   루시 알른은 그걸 이용해서 길을 가로막던 고블린 무리를 쓰러트리고 앞으로 전진했다.

   

   “앞으로 가다보면 냄새나는 돼지 하나가 나올 텐데 허접마냥 겁 먹지 말고…”

   

   정말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오크 하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오크의 동작은 굼떴기에 무작정 내달리는 루시 일행을 붙잡지는 못했다.

   

   모든 것이.

   

   던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루시 알른이 이야기 한 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던전의 길도.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도.

   

   함정도.

   

   그 모든 변수가 루시 알른의 통제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허접들. 아직 지친 거 아니지?”

   

   아카데미의 던전 1층을 공략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

   

   그것도 전력으로 내달린 것이 아니라 비시라는 짐짝을 데리고 설렁설렁 내달렸음에도 이 정도였다.

   

   비시는 헉헉대다 고개를 들어 다음 층계로 향하는 계단을 보았다.

   

   루시 알른이 준비한 강행군은 사령술사인 비시에게는 다소 가혹한 수준이었다.

   

   이걸 오후 8시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거지?

   

   나… 버틸 수 있을까?

   

   “음. 역시 안 되겠어.”

   

   루시 알른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비시를 보다 그녀의 앞에 섰다.

   

   “들러리”

   “네?”

   “허접 체력에 허접 다리. 도대체 어떻게 아카데미에 합격한 거야? 멍청하게 생겼는데 실은 똑똑한 건가?”

   

   루시의 한 소리에 비시가 고갤 숙였다.

   

   확실히 1층을 돌파하는 동안 내가 짐덩이였던 건 맞아.

   

   저 두 사람이 본래 속도를 냈다면 훨씬 더 빨리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

   

   그치만 당신이 사람이 없다고 끌어들인 거잖아!

   

   나는 애초에 이 공략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고!

   

   비시는 속으로 불평했지만 겉으로는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둘의 관계에서 갑이 누구고 을이 누군지는 명확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폐가 터질 때까지 뛰어야.

   

   “업혀.”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에 비시가 당황해선 고갤 들었다.

   

   루시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재차 말했다.

   

   “들러리. 귀까지 허접한거야? 업혀.”

   “네? 그치만.”

   “하아.”

   

   한숨을 내쉰 루시는 비시의 앞까지 걸어와서는 그녀의 허리춤을 잡고서 짐짝을 메듯 비시를 업었다.

   

   “이대로 갈 거야. 들러리. 불만 있어?”

   “…아뇨. 없습니다.”

   

   괜히 한 마디를 더했다가 독설을 듣고 싶진 않았기에 비시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략하는 사람 vs 스런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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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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