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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EP.71

     

   단체전이 시작된 첫날.

   필드의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탈락했다.

     

   하지만 깃발을 사수하거나 탈취하기 위해 장렬하게 전사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탈락을 한 인원들도 있다.

     

   정찰이나 기습 등의 이유로 자리를 잠시 이탈한 사이, 깃발을 빼앗긴 플레이어들.

   단체전에는 억울한 그들을 위한 특별한 규칙이 하나 존재했다.

     

   띠링!

     

   [밤이 되었습니다.]

     

   해가 산을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드리운 시간.

   빛이 없는 숲의 언저리에 띄엄띄엄 나타나는 흐릿한 잔상들이 있었다.

     

   [사망하지 않은 채 탈락한 무작위 인원의 15%가 필드에 소환됩니다.]

     

   “어엉?”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필드에 소환된 몇몇 선택받은 플레이어들이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아직 소환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당황한 표정은 모두가 한결같았다.

     

   띠링.

     

   [특별 임무가 주어집니다.]

     

   —

   『패자 부활의 기회』

     

   주제 : 이벤트

   난이도 : 이벤트

     

   설명 : 당신들은 사망하지 않고 깃발을 빼앗겨 탈락한 인원의 일부입니다. 매일 밤, 당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빼앗긴 깃발을 되찾으십시오. 깃발 탈환에 성공한다면 다시 단체전에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임무 : 빼앗긴 깃발을 탈환하기.

     

   보상 : 사망하지 않은 모든 플레이어가 부활.

   실패 페널티 : 패자 부활 도중 사망 시, 로비로 영구 추방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깃발을 빼앗은 좌표’와 동등해집니다.

   ※ 제한 시간은 ‘3시간’입니다.

   —

     

   그들 앞에 새로운 임무가 떠올랐다.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패자 부활전이라는 시스템.

     

   빼앗긴 깃발을 다시 찾아오기만 해도 어이없게 탈락한 모든 인원들을 모조리 부활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망하는 것에서는 특별한 추가 페널티는 없는 모양.

   모든 내용을 확인할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몸을 옭아매던 무형의 기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

   “……”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가만히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소환된 사람들이 같은 좌표의 인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당장이라도 패자 부활의 경쟁자를 탈락시키기 위해 싸움을 벌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특별한 액션을 취할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저놈들이랑 지금 싸워서 남는 게 있나?’

   ‘지면 뼈아프고 이겨도 손해만 보는 거 아닌가?’

     

   모두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

   단체전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그들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견해를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눈치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이. 그쪽.”

     

   자신과 다른 좌표의 인원에게 말을 거는 검은 로브의 사내.

   그의 짧고 굵은 호출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돌렸고 그것을 확인한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난 당분간 패배자들끼리는 싸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인데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그의 말에 보랏빛 피부를 가진 종족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 어차피 살아남은 인원에서 15% 밖에 돌아오지 않았다는데 우리끼리 싸워 봐야 개죽음뿐이지. 나는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에 그런 미련한 짓을 하고 싶진 않다.”

     

   그의 말에 수긍한 다른 좌표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수긍하며 어느새 뽑아놨던 검을 옆구리에 착검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시간.

   깃발을 누구에게 빼앗겼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작전을 짜고 깃발을 탈환하는 것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때.

     

   “고작 그 인원으로 가려고 그러나?”

   “……”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의 말에 보랏빛 피부를 가진 남자가 무심하게 그를 돌아본다.

     

   “혹시 지원이 필요하지는 않겠냐는 것이지. 아무리 능력치가 동등해졌다고 하지만 고작 그 인원으로 깃발을 탈환하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연합하자는 말이냐?”

   “임시로 서로가 부활을 하기 전까지만. 어떤가?”

     

   타당하다. 아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빈틈도 있었기에 보랏빛 남자는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목표물이 같으면 어쩌려고? 나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들의 깃발을 빼앗은 좌표가 같을 경우. 한 팀만 부활이 가능한 상황.

     

   “뭐 그건 그때 가서 알아서 할 일이지. 선의의 경쟁이라고 생각하자고.”

   “바보 같지만 나쁘진 않군.”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서로였지만, 각자의 목적을 위해 연합이 완성됐다.

     

   파파팟!

     

   뭉쳐 놓으니 온전한 좌표 한 개 이상의 전력을 자랑하는 그들이 숲을 이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에키온의 플레이어와 흑마법사로 이루어진 타우론의 플레이어, 그리고 그 외 3개 좌표쯤으로 추정되는 무리들.

     

   그렇게 찾게 된, 절벽 끝자락의 가려진 장소.

   그곳에는 단체전에서 그 5개의 좌표를 탈락시킨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

     

   쐐애액!

   카아앙!

     

   ‘도대체 이게 무슨…!’

     

   나는 나에게 날아드는 불길한 보랏빛의 마력 화살을 검으로 쳐내며 뒤를 돌아봤다.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습격을 받고 있는 야영지의 인원들.

     

   나와 한가민이 지키고 있던 길목이 아닌, 다른 두 사람이 경계를 맡고 있던 방향을 통해 적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어딜 보시나!”

     

   카아앙!

     

   “크윽!”

     

   심지어 능력치고 현재 Lv.15로 고정된 나와 비슷한 수준.

   게다가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놈들이 우리에게 깃발을 빼앗기고 탈락해서 로비로 돌아갔어야 할 인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츠츠츳!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정신이 혼란스러워지자 패시브 스킬이 발동된다.

   서서히 사태가 파악되기 시작하자 나는 검을 들어 몸에 있는 마력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월광검법 月光劍法

   신월 新月

     

   나의 검신이 달빛을 받아 무식한 섬광을 터트린다.

   순간 시력에 피해를 입어 주춤하는 놈들. 나는 순식간에 적 하나를 베어 넘기고는 한가민에게 소리쳤다.

     

   “야영지로 뛰어!”

     

   나의 말에 정신을 차린 한가민이 곧장 야영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희생이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깃발과 그것을 소유한 주인. 그 둘의 안전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파지직!

     

   추뢰신법 追雷身法

     

   나는 한가민이 달린 길을 따라 그녀에게 날아드는 마법과 칼날들을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야영지에 가까워질수록 전투를 하는 사람들의 소음이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 마법이 사람을 꿰뚫고 화염이 목책을 불태우는 소리.

     

   야영지를 목책으로 요새화한 덕분에 짧게나마 버틴 것 같기는 했지만, 들이닥치는 인원이 계속 증원되는 것을 보니 그것도 머지않아 무너질 것 같았다.

     

   “시인 씨! 가민아!”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한가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야영지를 버리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시인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보라색 피부들! 우리가 탈락시킨 사람들 아닙니까?!”

     

   이미 한바탕을 크게 한 것인지 몸 곳곳에 피가 맺힌 박조철과 남궁천호가 소리친다.

   어안이 벙벙한 사람들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보류하며 소리쳤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절벽 따라서 달려요! 그리고 가민이 지켜요!”

     

   나의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선봉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플레이어들은 그래도 자신의 몸을 사리는 인원들이 많았다.

   지켜야할 것이 있고 좌표 간의 견제와 그들만의 작전이 있었기에 최대한 이성을 가지고 전략에 임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세워둔 야영지가 안전할 것이라 여겼다.

   본인 좌표의 갖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이미 강해진 좌표를 선공할 좌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들은.

     

   “하하핫! 죽어라!”

   “깃발! 깃발은 어디에 숨겼나!”

     

   잃을 것이 없는 악귀 그 자체.

     

   죽어 가는 와중에도 마법 한 발을 더 쏜다.

   오른팔이 날아가면 왼팔로 검을 잡아 상대의 목덜미를 찌른다.

     

   그런 그들의 광적인 살기에 지구 좌표의 인원들은 기가 질려 버렸고 전의를 상실한 순간부터 절반 이상이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앞에!”

     

   숲에 다다른 시점.

   누군가의 외침에 전력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봤고 우리는 그곳에 매복하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언가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는 듯, 양손을 높이 들고 웅얼거리는 보랏빛 피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흑색 마력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무슨…!”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토끼가 언급했던 흑마법이라는 개념. 오로지 파괴와 저주를 위해 개발된 그것은 그들이 배운 간단한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스윽.

     

   천천히 우리를 향하는 흑마법사들의 손.

   그들이 동작에 맞춰 구름 같은 마력 덩어리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후방과 우측에서 우리에게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이 보인다.

   전방에는 흑마법이 좌측에는 절벽인 진퇴양난의 상황.

     

   “이렇게 끝이야?”

   “젠장… 이번에는 뭔가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입에서 포기가 나왔다.

   여기에서 죽는다고 완전히 사망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벌벌 떨면서도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을 남기는 사람들.

     

   하지만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했던가.

     

   ‘방법이 있다.’

     

   나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에 나의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주마등이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나는 품에 손을 넣어 튜토리얼 단계에서부터 도대체 어디에 써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

   [망각의 단]

   종류 : 소모품

   랭크 : A+

   설명 : 복용자의 인과를 조작하는 단약이다. 삼키는 즉시 한 가지 효과가 무작위 발생한다.

   효과

   – 기억을 24시간 전으로 되돌린다.

   – 상태를 24시간 전으로 되돌린다.

   – ???

   —

     

   붉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검은색 알약 3개.

     

   외통수까지 아직 세 수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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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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