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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라이덴, 괜찮아?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나는 루시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넋을 놓고 있던 내 표정이 어두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입가를 쓸며 굳어있던 안면 근육을 풀어주었다.

         

         

       “괜찮습니다, 저하. 그저 잠을 조금 설친 탓에 피로할 뿐입니다.”

         

         

       내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리 답하자.

         

       루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에 찬 시선을 보내왔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어깨를 쿡쿡 찔러왔다.

         

         

       “정말 괜찮은거 맞아…? 오늘 이상해, 수업에도 집중을 못하는 것 같고…”

         

       “문제 없습니다.”

         

       “흐음…”

         

         

       나의 대답에도 루시는 못 미더운 기색을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잠시 입술을 삐죽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하지?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의지해줘야 해…?”

         

       “예, 저하. 명심하겠습니다.”

         

         

       루시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뒤로 물러났다.

         

       걱정이 조금 과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동안 나의 행실을 생각해보면 업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씁쓸한 날숨과 함께 놓고 있었던 펜을 다시금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수업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7번 문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한 원리를 사용하여 풀 수 있습니다.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식에서 마나 회로를 차단해주면, 겉부분의 식들이 자동으로 약분됩니다.

         

       -이렇게 문제가 깔끔해진 상태에서 마나의 질량과 밀도를 각각 대입할 경우……

         

         

       사각사각…

         

       교수의 설명을 따라 펜을 이리저리 기울이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꽤나 분주했다.

         

       아마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필기 시험 역시 랭킹전 만큼이나 성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니까

         

       나는 그들에게 뒤쳐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들이 중첩되면 곧바로 마나를 공급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적정 수준보다 1.5배 정도 많은 마나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써, 마나식의 과부하를 활용한 간이 폭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의에 집중을 해보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이 애먼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새벽부터 이어진 고민이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난밤, 상태창이 상기시켜주었던 사실.

         

       어쩌면 이 세계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떠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이곳에 정을 붙이는게 맞는 걸까.

         

       오히려 나와 주변인들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아…”

         

         

       옅은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머릿속이 다시 한 번 어질러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 속의 사멸초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수업 시간에 피우면 쫓겨나려나.’

         

         

       나는 실없는 독백과 함께 눈을 돌렸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주군님의 얼굴이 시야에 비춰졌다.

         

       태양을 녹여 엮어낸 듯한 백금발과 바다의 푸름을 담고 있는 청안.

         

       찬란하게 빛나는 소녀의 자태를 응시하며, 나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루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따분함에 물든 소녀의 눈동자 위로, 눈물에 젖은 과거의 잔상이 겹쳐졌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

         

       -나에게서… 네가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어…

         

       -나, 난 정말… 네가 죽을까봐…

         

         

       내가 모든 계약 조건을 완수하고 사라진다면.

         

       홀로 남은 루시는 나의 빈자리를 보며 무어라 할까.

         

         

       ‘아마도 펑펑 울겠지…’

         

         

       라이덴이라는 소년은 루시의 인생에서 유일한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니 또 가슴팍이 욱씬거려왔다.

         

       아려오는 마음의 한 켠을 갈무리하며 루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작게 하품을 하고 있던 졸린 동공과 시선이 마주쳤다.

         

       창백했던 소녀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라, 라이덴…? 왜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혀까지 꼬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하품을 하던 모습을 보인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소녀의 물음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저.

         

       생각할 것이 조금 있어서.

         

         

       .

       .

       .

         

         

       고민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렵게 얽혀드는 것 같았다.

         

       온종일을 지난밤에 대한 생각으로 보낸 나는, 결국 이도저도 하지 못하며 기숙사로 복귀했다.

         

         

       나는 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교복을 풀어헤치며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사멸초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차칵, 치익…

         

       “하아……”

         

         

       한숨과 함께 토해낸 연기가 허공을 진하게 매웠다.

         

       나는 어김없이 콧잔등을 스치는 약초의 향기를 곱씹으며 늘어졌다.

         

       그렇게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눅진한 호흡만을 반복하고 있으니.

         

       문 밖에 서있던 레이첼이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혹시 힘든 일이라고 있으신가요? 지쳐보이시는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이쪽을 응시하는 눈동자에는 선명한 걱정이 녹아있었다.

         

       그 눈빛은 내 마음을 한 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루시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충 얼버무렸다.

         

         

       “괜찮아… 그냥, 별일 아니야. 생각할게 조금 있어서…”

         

       “……”

         

         

       레이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만히 서서 자리를 지켰다.

         

       아마도 내 괜찮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겠지.

         

         

       ‘……역시, 레이첼한테는 못 당하겠네.’

         

         

       나는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사멸초를 빨았다.

         

       그렇게 우리의 사이로는 한동안 잿빛의 연기만이 떠다녔다.

         

       고요함이 가득한 공간과는 반대로, 내 머릿속은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심코 돌아간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얇은 유리벽 너머로는 붉은색 노을에 물든 주홍빛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부서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비추는 아카데미의 풍경은 은은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

         

         

       -치익…

         

       나는 피우고 있던 사멸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곧장 새로운 한 개비를 갑에서 꺼내들었다.

         

       그것을 입술 사이에 끼워넣고 다시 불을 붙이기 직전.

         

       나는 아까부터 나직이 옆에 서있던 레이첼에게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레이첼.”

         

       “네, 도련님.”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순간 목이 막히며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나는 물음을 망설이지 않았다.

         

       고요를 잘라내며 울려퍼지는 음성은 미약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만약 내가 다시 사라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

         

         

         

       ***

         

         

       “만약 내가 다시 사라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

         

         

       쥐 죽은 듯이 서있던 레이첼은 라이덴의 물음에 숨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가녀린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사라지신다니… 그게 무슨 말씀…”

         

       “그냥, 만약을 말하는 거야.”

         

         

       라이덴은 아리송한 웃음과 함께 손끝으로 심마로를 톡톡 두드렸다.

         

       재떨이 위로 회색 먼지들이 낙하했다.

         

       어색하게 덧붙이고 있는 미소가 더욱 소년의 의중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레이첼은 라이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만약에… 말씀이신가요.”

         

       “응, 만약에.”

         

       “……”

         

         

       만약이라니.

         

       도련님께서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꿈틀거리는 불안과 걱정이 레이첼의 가슴을 조여왔다.

         

         

       ‘……설마.’

         

         

       다시 떠나시려는 것일까.

         

       일 년 전, 한 마디의 언질조차 하지 않고 어딘가로 떠나버리셨던 그때처럼.

         

       그런 염려가 들자 레이첼은 표정을 한 층 굳힐 수 밖에 없었다.

         

         

       “……”

         

       “……”

         

         

       라이덴은 차분하게 사멸초의 연기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노을의 빛줄기가 어둠에 가려져 있던 소년의 안면을 비췄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형형하게 가라앉아 있는 흑안이 보였다.

         

       묘하게 생기가 부족해 보이는 동공은 깊은 수심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이첼은 그 쓸쓸한 눈동자를 보며.

         

       소년이 현재 곱씹고 있는 고민에 대해 눈치챘다.

         

       그것은 아마도…

         

         

       “……떠나시려는 거군요.”

         

       “……”

         

         

       레이첼의 물음에 라이덴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 침묵의 의미는 명백한 긍정을 표상하고 있었다.

         

         

       -욱씬…

         

       레이첼은 가슴의 한 켠이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분명 괜찮아지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곪아가고 계셨던 걸까.

         

       결국에는 다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이 도련님께 주는 시련과 고통이 버거웠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

         

       그 짧은 문장은 소녀의 마음을 가혹하게 짓눌렀다.

         

       항상 올곧게 앞만을 바라보던 갈색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레이첼은 동요를 지우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생각했다.

         

       자신이 여기서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괴로워 하는 도련님을 위해서,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은 많았고 마음은 복잡했으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다릴 거에요, 도련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소녀는 나지막이 답하며 웃어보였다.

         

       애처롭게 떨려오는 음성을 감추기 위해 소녀는 목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라이덴은 그런 레이첼의 대답에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기다리겠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것처럼 눈살을 찡그리는 라이덴.

         

       레이첼은 잔잔한 목소리로 자신의 진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씀 드렸었잖아요… 저는 언제나 도련님의 편이라고. 설령 도련님께서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떠나신다고 할지라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언제나 도련님의 편이니까요.

         

       도련님께서 사라지시는 그날부터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시는 날까지.

         

       도련님의 빈자리에 남아, 계속해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릴게요.

         

         

       “돌아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것이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도련님께서 행복해지실 수 있는 길이라면.

         

         

       “저는 언제나 응원할 거에요.”

         

         

       레이첼은 해맑은 미소를 입가에 붙이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어설프게 만들어낸 가면에 불과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레이첼은 입술을 꽉 깨물며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씹어삼켰다.

         

         

       “저는 만약에라도… 도련님께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돌아오실 경우를 대비하여.”

         

         

       도련님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을게요.

         

       도련님이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해놓고 있을게요.

         

       도련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저는 그렇게 남아있을게요.

         

         

       폐부가 쑤셔오는 감상이었다.

         

       자신의 입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혔다.

         

       하지만 내색 하지 않았다.

         

       억지로 피워낸 미소를 일그러트리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바래주는 것.

         

       이것이 소녀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었으니까.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감정을 죽이게 되는 것이라거나.

         

       영원할지도 모르는 기다림을 약속하는 잔인한 일이 된다고 할지라도.

         

         

       “저의 모든 것.”

         

         

       모든 시간.

         

       모든 감정.

         

       모든 삶의 발자취.

         

         

       “그것들은 전부… 도련님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 그거면 됐다.

         

       나의 미약한 존재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전부 가진 것처럼 행복할 테니.

         

         

       그저, 당신의 행복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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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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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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