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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충성! 금일부로 그레이브야드 제3 전투중대 1소대에 배속을 명 받은 아르헨 오르카 소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애초에 군인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선택.

         

       전쟁이 극도로 장기화되면서 고아원의 숫자는 제국 전역에서 급속도로 증가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모든 전역에서 보고되는 일주일 평균 사망자는 약 300명 남짓.

         

       그 말은 곧, 그 300명 아래에 남아있던 자녀들이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유별난 비극도 아니다.

         

       아르헨 오르카 역시 그런 평범한 비극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다.

         

       고아원의 맡언니였고 큰누나였던 그녀는 입대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곧장 현지 장교로 임관했다.

         

       2년이라는 기간동안 철저하게 교육받는 사관학교가 아니고, 임시로 설치된 부트캠프에서 고작 3개월의 단기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모품’ 장교.

         

       그런 소모품 장교라 할 지라도, 다른 병이나 부사관들보다는 형편이 나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 그녀의 보금자리였던 고아원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당장 그레이브야드에 지원한 것도, 그곳이 가장 높은 사상자를 기록하는 최전방 요새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전선보다 위험수당이 1.5배 더 나왔다.

         

       아르헨 오르카에게 있어 그곳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장이었다.

         

       그리고 요새에서 만난 첫 번째 상관이 바로 루터스 에단이었다.

         

       계급은 소위로 같았지만 출신이 달랐다.

         

       그는 단기 장교와는 달리 사관학교를 통해 임관한 ‘정식 장교’였으니까.

         

       “1소대장 루터스 에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루터스 에단과 손을 맞잡았다.

         

       두 남녀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자, 끔찍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던 아르헨의 삶에 불어온 변화였다.

         

       하지만 과연 최전방 요새일까.

         

       인사를 나누고 부대에 채 적응하기도 이전, 티탄의 첫 번째 습격이 벌어졌다.

         

       소규모 침투조였다.

         

       은신과 침투에 특화되어있는 개체인 ‘레이스’.

         

       기어코 최전방의 방어선과 전초기지들의 감시를 뚫고 들어온 다섯 마리의 티탄들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녀가 묵고 있던 숙소를 습격한 것이다.

         

       “습격! 적습이다!!!”

         

       “티탄이 요새 내부로 침투했다!”

         

       왜에에에에에엥!!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과 함께 부여받은 총기를 챙겨든 아르헨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물론 부트 캠프에서 배운 것들이 있었다.

         

       티탄의 습성, 공격 방식, 종류, 그리고 대처법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막상 실전이 되니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사라져버렸다.

         

       이제 막 요새에 부임한 신임 소위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

         

       “키야아아악!!”

         

       막 누군가를 찢어발기기라도 했는지, 시큼한 피냄새를 풍기는 티탄 한 마리가 아르헨을 향해 달려들었다.

         

       충분한 거리였다.

         

       제국군 제식 소총인 G416 카빈은 소규모 티탄의 갑피 따위는 간단하게 찢어발길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패닉이 되어버린 몸은 제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훈련소에 있을 때에는 300m 바깥에 있는 표적도 줄곧 맞췄던 특등사수라 할지라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그저 무방비한 살덩이에 불과할 뿐.

         

       “캭! 캬아악!!”

         

       “꺄아아악!!”

         

       어느새 아르헨의 눈 앞까지 다가온 티탄의 날카로운 발톱이 번뜩이던 찰나.

         

       타다다당!!

         

       “아르헨 소위!! 괜찮습니까!?”

         

       루터스 에단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다.

         

       급소를 정확하게 적중당한 티탄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툭 널브러졌다.

         

       “…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조금 전처럼 순식간에 당하는 거예요!”

         

       아르헨은 루터스가 건넨 손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어떻게 그 사이에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지?

         

       루터스 에단의 활약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자신과는 달리 루터스 에단은 언제나 두각을 나타냈다.

         

       -중대장 부재시 중대장 직무 대리는 1소대장 루터스가 맡는다.

         

       -이번 1차 방어선 수비 작전에서도 자네 소대가 굉장히 좋은 실적을 냈더군. 진심으로 고맙네. 루터스 에단… 중위.

         

       -2중대장의 사망이 조금 전 확인되었어. 지금부터는 자네가 2전투중대를 지휘하게 될 거야.

         

       -루터스 대위! 지금 즉시 작전지역으로 출동하게! 한 시가 급해!

         

       그런 사람이었으니 주변에서 빠르게 인정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거의 일평생을 고아원에서 지내온 아르헨에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나.

         

       루터스는 그것도 줄곧 해냈다.

         

       마치 완벽한 육각형 같은 인간이었다.

         

       인성도 훌륭하고, 전략전술에도 능했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따뜻했다.

         

       그가 주는 에너지는 하나같이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황무지에 피어난 꽃.

         

       그리고 그 꽃에서부터 비롯된 생명이 요새 곳곳에서 움트고 있었다.

         

       그레이브야드는 공동묘지였다.

         

       이름과 생김새 뿐만이 아니라, 사망률이 그러했다.

         

       처음 아르헨 오르카가 임관했을 당시에는 모든 것이 검고 회색빛이었다.

         

       사람들은 우울했고,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부정적인 감정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루터스가 있는 곳에서는 웃음이 언제나 함께했다.

         

       임관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입 장교가 압도적인 전공을 세우며 대위에까지 올라섰고, 실제로 맡은 직무는 소령급이었다.

         

       애초에 계급도 말이 대위지 사실상 소령(진)이었다.

         

       정말 삐뚤어진 몇 명과, 부패한 이들을 제외하면 그레이브야드의 모두가 루터스를 좋게 평가했다.

         

       시기, 질투, 부러움.

         

       다만 그들 모두 예전부터 인망이 그리 두텁지는 않은 이들이었기에, 루터스 에단에게는 때때로 고성을 내거나 잡다한 잡무를 미루는 정도의 찌질한 보복밖에는 가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무섭도록 치고 올라오는 신입 장교의 기세에 압도당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연히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본 아르헨 오르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루터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막연한 놀라움이었고, 두 번째는 동경이었으며, 세 번째는….

         

       “조, 좋아해요.”

         

       “아르헨…?”

         

       큰 용기를 내고 전한 속마음.

         

       그 고백을 들은 루터스 에단은 처음 보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 사람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부끄러움을 애써 억누르면서도, 아르헨은 그런 감상을 떠올렸다.

         

       “모르겠어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중대장님도 아시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잖아.”

         

       “하지만… 다들 그러잖아요? 당장 옆 대대만 해도 사귀는 커플만 여섯 명인데요.”

         

       “….”

         

       “중대장님은…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루터스 에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특유의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야.”

         

       다행히도 아르헨의 감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첫 임관 때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붙어다녔던 두 사람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요새의 미래를 책임질 장교라 할 지라도 루터스 역시 남자였다.

         

       아무런 접점이 없는 남녀였다 할지라도 그 정도가 되면 자연스레 마음이 동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르헨 오르카의 미모는 그레이브야드 요새를 넘어, 다른 지역에 있는 사령부에까지 전해질 정도였으니까.

         

       루터스는 곤란한 듯, 제 뺨을 긁적이더니.

         

       “…고마워, 아르헨.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꼼지락거리던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맞잡아주었다.

         

       찌릿.

       처음 느껴보는 감각.

         

       아르헨 오르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자마자, 황급하게 손을 빼내어 뒤로 물러설 정도의 자극.

         

       “으, 으읏!! 아. 안돼요! 이건 너무 일러요!”

         

       “아르헨?!”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새빨게진 얼굴을 애써 진정시킨다.

         

       자신은 아마 죽을 때까지 이 감정을 잊지 못하리라고.

         

       아르헨 오르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그 이후에도 종종 데이트를 즐겼다.

         

       때때로는 요새를 떠나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이름모를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을 전장을 앞에 두고, 그들은 시내를 거닐며 서로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밝게 떠오르는 달빛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고.

         

       남들보다도 뜨겁게 몸을 섞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은 어느순간 종언을 맞이했다.

         

       임관으로부터 2년 째.

         

       아직 레아 길리아드가 요새에 전입하지도 않았고, 루터스 에단이 정식 소령으로도 진급하기 이전.

         

       경계 교대를 위해 투입되었던 참호선에서.

         

       루터스 에단과 아르헨 오르카가 이끌던 제2전투중대는 전멸을 맞이했다.

         

       밤중을 기해 습격해온 티탄의 대규모 군세.

         

       언제나 그랬듯, 상부에서 올라온 명령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방어선을 사수하라는 것이었다.

         

       즉.

       그곳에서 싸우다가 죽으라는 명령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포성과 비명, 그리고 전투의 함성 속에서 루터스 에단은 피를 흘리는 연인을 안아들었다.

         

       “아르헨! 아르헨!!! 정신 차려! 안돼!!”

         

       “정말, 행복했어요. 루터스. 당신은 제 인생에 찾아온 가장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어.”

         

       “왜, 왜! 뛰어든 거야!”

         

       “맨 처음, 기억해요…? 그때 당신이 날 구해줬잖아요. 그 빚, 이제야 갚는 거니까….”

         

       점점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아르헨 오르카는 맨 처음 자신이 고백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감각을 잊지 못하리라고 했던가?

         

       ‘진짜였어….’

         

       그녀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터스, 우리 하늘에서도 다시 만나요. 전쟁도, 죽음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아르헨…!!”

         

       “제발,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당신과 함께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중위 아르헨 오르카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단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투명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연인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그것이 맨 처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회귀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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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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