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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너, 수석이랑 언제 사귀냐?”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선박 안.

        

       나와 리제타는 선실 안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방안엔 단둘뿐이었다.

        

       참고로 이안과 카야는 각각 개인 병실 용도의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처럼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위원회는 선박에서 간이로 소집되었다.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된다면, 최대한 빠르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이후, 가능한 한 사건 관계자들이 심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우선 나와 리제타부터 진술 조사 시간을 가졌고.

        

       카야와 이안은 깨어나고 휴식을 취한 뒤에 불려갈 예정이었다. 그때는 이미 아카데미에 도착할 무렵이겠지.

       

       학사 측에서 진술 대조 후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나와 리제타를 다시 부르겠지만.

       

       딱히 그런 부분은 없을 터였다. 진술을 미리 짜놨었으니까. 리제타도 말을 잘 맞춰주었고.

        

       우리가 어떻게 말을 맞췄느냐.   

        

        

       1. 나는 수렵 평가 포인트를 많이 벌 수 있다는 중심부로 향하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리제타의 뒤를 쫓았다.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는 팔찌로 위치가 추적되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해선 안 됐다.

        

       2. 리제타가 화산 동굴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끝내 리제타와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진이 났다.

       

       이 다음부터 구라 시작이다. 땅속 거인의 마력 무력화 기능 때문에 시험용 팔찌가 위치 추적 기능을 상실했었으니까.

        

       3. 지진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무너지고 막혀서, 나와 리제타는 다른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는 싱크홀에 빠지고 말았다.

        

       4. 리제타는 나를 구해주러 싱크홀에 뛰어들었다. 들어온 길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출구를 찾아내고자 거인 마족의 몸속을 탐사하게 되었다.

        

       5. 도중에 기절해 있던 이안과 카야를 만났다. 사역마로 그들을 데리고 다녔다.

        

       6. 갑자기 검은 괴물이 나타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도 되는 양 마족들을 싹 다 처리해주었다.

        

       7. 우리는 잘 도망쳤다.

        

       끝.

        

        

       진상규명위원회 공식 소집 명단에는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학사에 도착한 뒤에 진술 조사를 받는 건 되도록 피하는 편이 좋았다.

        

       그나저나 리제타 이 새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네.

        

       리제타는 늘어진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쳐 버린 탓에 대충 생각나는 대로 씨부리고 있는 듯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아, 이미 사귀고 있었냐? 새끼, 잘나가는구만.”

       “…….”

        

        

       현재 루체는 다른 선박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도망쳤을 때, 루체가 뇌신조를 소환할 기색을 보여서 곧바로 유턴했었지. 설마 나 쫓는다고 8성급 사역마를 소환하려 들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잠깐 시험용 팔찌 다른 데 놓고 온 줄 알았어. 내 손목에 있었지, 하하’하고 바보 같이 변명했다.

       

       그러자 ‘당연하잖아’하고 피식 웃었던 루체. 심리를 읽어보니, 내가 자길 웃기려고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럴 리 없잖아, 멍청아.

       

       이후, 나는 사건 조사에 협조해야 해서 따로 선박을 타고 가야 한다고 루체에게 설명했다.

       

       교수에게는 안내받기 전이었지만,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렇게 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체는 의심이 깃든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으나.

       

       때마침 페르난도 교수가 팔찌 음성으로 나와 리제타를 불러줘서 다행이었다.

        

        

       ─ ‘따라가면 안 돼?’

       ─ ‘안 된다고 들었어.’

        

        

       마지막으로 그리 말을 주고받고서, 루체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터덜터덜 물러나 주었다.

        

        

       ‘설마 친구한테도 그럴 줄 몰랐는데.’

        

        

       나는 루체가 좋다. 하지만 자칫 엑스트라 배드 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녀의 습성은 무섭다.

        

       내가 그릉이라는 사실만 안 들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실책이었다.

        

       조만간 ‘루체, 아무리 걱정된다고 해도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잘못된 짓이야’라고 어린애 가르치듯 확실하게 타이를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그러면 루체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겠지. 하지만 내게는 준수한 도덕관념을 기반으로 한 떼쓰기라는 무기가 있었다. 그걸로 어떻게든 그녀의 논리를 뚫어낼 수 있으리라.

       

       이윽고, 선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여성 치유법사였다.

        

        

       “너희, 카야 아스트레앙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했지? 이제 와도 된다.”

        

        

       치유법사의 말에 나와 리제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옮겼다.

        

       선실 하나가 통째로 카야의 개인 병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넓은 방은 아니었다.

        

       치유법사들은 카야의 상태를 점검하고 몸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터.

       

       그래서 몸의 안정보단 정신적 안정을 취하게 할 필요를 느꼈으리라.

        

       기왕이면 친한 사람이 보호자 신분으로 곁에 있어 주면 피해자 처지에서도 마음이 놓일 테니.

       

       방구석에는 여성 치유법사가 책을 읽으면서 대기 중이었고.

       

       카야는 침대에 이불을 덮은 채 쥐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여성 치유법사들이 갈아입혀둔 연갈색 의복 차림이었다.

        

       참고로 전리품은 화산 동굴에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리 빼돌려 놨었다. 카야의 귓불에 귀걸이 형태로 남아 있던 부산물이었으니.

        

       

       [ 카야 아스트레앙 ]

       Lv : (140)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얼음, 식물,

       위험도 : X

       심리 : [ ]

       

        

       ‘인격은 악식 그대로네.’

       

       

       내가 카야를 찾아온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카야와 말을 맞추기 위해서.

       

       카야는 선박이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에 의식을 되찾을 것이고.

        

       곧바로 진상규명위원회에 불려갈 터. 그녀와 말을 맞출 기회는 이때 말곤 없었다.

       

       선실 구석에 치유법사가 있으므로 구두로 얘기를 나누기엔 난처한 상황.

       

       그래서 나는 리제타와 함께 시험 감독관들에게 구조된 뒤, 간이 마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하던 중.

        

       무인 상점에서 미리 매입해 뒀던 양피지에 전달 사항을 적어두었다. 그걸 카야에게 건네줄 계획이었다.

       

       둘째, 카야가 걱정돼서.

       

       카야는 내 애정캐다. 걱정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나는 카야의 침대 옆 보호자석에 앉았다.

        

        

       “아까 그 빛 속성 놈한텐 안 가냐?”

       “걔는 에이미랑 마테오가 있어서 괜찮아.”

        

        

       내가 카야의 보호자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이유였다.

        

       예상대로 에이미와 마테오는 교수에게 부탁해 이안의 보호자가 되길 자처했고.

        

       현재 이안의 병실에서 정신을 차린 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까 [천리안]으로 살펴보고 알아낸 사실이었다.

        

       참고로 이안과는 어떻게 진술할지 말맞출 필요가 없었다. 녀석은 쭉 기절해 있었으니까.

        

        

       “하아, 난 둘 다 뒤지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쉬러 간다. 피곤해.”

       “그래라.”

        

        

       리제타는 병실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은근슬쩍 카야 쪽으로 곁눈질하는 그녀.

       

       

       [ 리제타 라이온하트 ]

       심리 : [ 카야 아스트레앙의 몸 상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

       

        

       같은 클래스인 정은 있는 모양이었다.

       

        

       ‘이따가 카야 괜찮다고 귀띔이나 해 줘야겠다.’

       

        

       리제타가 문을 닫자 적막이 찾아왔다.

       

       카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의 트윈테일 머리가 아닌 긴 생머리도 무척 잘 어울렸다.

       

       카야의 뽀얀 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날 남자로서 좋아해 주고 있는 아이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으나, 끝내 무사히 끝나서 천만다행이었다.

       

       이제부터 이중인격 카야를 맞이해야 한다. 어느 인격이든 카야 자신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리라.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츄릅.

        

        

       “……!!”

        

        

       돌연 카야는 내 손가락을 앙 물었다. 갑작스러웠다.

       

       물렁하고도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손을 빼냈다.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는 카야.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카야?”

        

        

       붉게 달아오른 뺨. 야릇한 미소.

        

       그 눈동자는 평소의 에메랄드빛과는 명백히 다른, 이질적인 진홍빛이었다.

        

        

       “아이작 님, 왜 제 얼굴 만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저 만지고 싶었습니까~?”

        

        

       카야의 귀여운 목소리에 능청스러움이 깃들었다.

        

       악식의 인격이 자신감 넘치고, 플레이어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성격임은 알고 있었지만.

       

       나만 보면 부끄러워하던 카야의 모습과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아,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카야의 눈길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던 내 손 쪽으로 향했다.

       

       

       “더 만지셔도 되는데….”

       

       

       [ 카야 아스트레앙 ]

       심리 : [ 당신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

       

       

       아쉬워하는 표정. 조올라 귀여웠다….

        

        

       “으흠.”

        

        

       선실 구석. 힐끔힐끔 이쪽을 곁눈질하던 치유법사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경고식으로 헛기침했다. 카야의 언동이 낯뜨거운 모양이었다.

       

       일단 감정 잠재우고. 진정하자.

        

        

       “그, 몸 상태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대뜸 상체를 일으키는 카야.

        

        

       “멀쩡합니다. 몸은 조금 뻐근하지만.”

        

        

       카야는 ‘으으’하고 신음을 흘리며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카야. 선명한 핏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적안은 내 평범한 적안과는 격이 다른 영롱함이 깃들어 있었다. 무척 신비롭다고 해야 할까.

        

        

       “왜? 할 말 있어?”

       

       

       가만히 눈만 마주치고 있으니 어색해서 묻자.

       

       카야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키스해도 됩니까?”

        

        

       푸우우!

        

       

       언제부턴가 주스를 마시고 있던 선실 구석 치유법사가 입안에 머금었던 주스를 내뿜고는 콜록콜록, 하고 헛기침해댔다.

        

       그녀의 반응이 내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예?”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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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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