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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72. 살인귀 소녀에게도 구원은 있는가(4)

       

       

       카론은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구슬프게 울고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

       

       그녀가 지금 카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피로 얼룩진 검을 들고서.

       

       하지만, 카론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 피투성이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악마의 계약을 모방한다는 일을 벌이면서, 악마와 가깝게 변형된 카론의 육체.

       

       그것은 카론에게 평소라면 볼 수 없었을 것들을 보여주었다.

       

       소녀의 뒤에 있는 영혼이 카론의 눈에 보였다. 

       

       신성력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더러운 오물. 

       

       다시 말해, 아이들의 영혼.

       

       성황청에 대한 깊은 원망과 저주를 품고 있기에, 해가 되지 않도록 분명 하나로 뭉친 뒤 힘을 억제해서 보관해 놓았는데.

       

       그것이 어찌서인지 지금 저 소녀에게 깃들어 있었다.

       

       ‘도대체 왜…….’

       

       머리가 상황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였다.

       대체 저 아이는 누구이고, 대체 어째서 폐기했던 오물이 저 소녀와 섞여버린 것인지.

       

       뭐 하나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카론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든 말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죄가 카론을 찾아왔다.

       여태껏 저질러온 일들의 결과물이, 카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모습을 바꾼다면 ‘우리’가 널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수백…. 아니, 수천의 목소리가 푸른 머리 소녀의 목소리에 겹쳐진다.

       

       카론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압도적인 격의 차이.

       

       신성력도 성흔도, 이미 가지고 있는 힘을 대부분 잃은 상황에서 카론이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허나, 그런 카론의 사정을 저 괴물이 신경쓸 리가 없었다. 푸른 머리의 소녀는 계속해서 그를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그 발소리가 마치 끝을 고하는 종소리처럼 느껴진다.

       

       너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너 같은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제 그만 이 세상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고.

       

       ‘안 돼…….’

       

       그런 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살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곘다고 정했다.

       

       이제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목숨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출세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한 삶을 되찾기만을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허나, 카론의 마음속으로 그리 애원하더라도 소녀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소녀의 뒤에 있는 영혼이 그를 비웃는 것이 보인다.

       

       마치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네가 그렇게 바라는 생존은, 자신들 또한 원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었을 때, 네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정말로, 우리가 당신의 목숨구걸에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하냐고.

       

       “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카론의 몸이 두려움으로 부들부들 떨려 온다.

       

       카론은 공포에 질린 채 마구잡이로 저주를 난사했다.

       

       하지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다.

       신체가 악마처럼 변했다고 한들, 흡수한 생명은 고작 하나뿐.

       

       결국 카론이 쏘아대는 저주는 보잘것없었다.

       

       파란 머리의 소녀는 그것을 피할 필요성까지 느끼지 못했는지, 저주를 태연하게 받아내며 계속해 카론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결국 그 순간이 찾아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었던 그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 괴물 같은 소녀는 카론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끔찍한 살기.

       전해지는 저주와 원한.

       

       그것들에 짓눌린 카론은 볼품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에게는 지금 뒷걸음질을 칠 만한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카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녀는 검을 잡았다.

       

       카론이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찰나의 순간, 검격이 이루어진다.

       

       카론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배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전해지는 격통에 당장이라도 의식이 끊어질 것 같다.

       

       카론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상관없이, 소녀는 웃으며 그의 내장을 헤집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 이젠 아예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카론은 허무히 그 삶을 끝마쳤다. 분명 그렇게 되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카론의 의식은 끊어지지 않았다. 카론은 아직 살아 있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육체는 부풀어 오르더니, 제 형태를 되찾는다. 카론은 순식간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허나, 카론의 얼굴에 생존의 희열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운 좋게 내려온 기적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걸로, 한 명 몫이야.”

       

       그리 말하며 소녀는 미소지었다.

       눈물을 흘리며 미소지었다.

       

       잔뜩 망가지고 뒤틀린 광기.

       카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복수귀였다.

       

       그 누구도 아닌, 카론 자신이 만든 복수귀.

       

       “아아…….”

       

       죄악이 카론을 짓누른다.

       카론이 쌓아온 죄업이, 카론을 마주보고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벌이었다.

       

       *****

       

       정신이 몽롱하다.

       검은 액체에 몸을 담군 이후로,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의식은 흐릿하다.

       

       들리는 건 오직 목소리였다.

       끊임없이 저주와 원망을 말하는 목소리.

       

       그렇기에 루시는 그 목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복수를 행하였다.

       

       화려한 대신전.

       장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곳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유혈이 낭자되어 이곳저곳이 피와 살점으로 뒤덮인 공간. 사방팔방이 시체로 가득하다.

       

       그리고… 소녀의 눈앞에는 늙은 노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성황청의 인물.

       더 이상 사람의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인간.

       

       루시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 노인의 목을 비틀었다.

       

       이번엔 소생 따윈 시키지 않았다.

       이미 그 아이들의 복수는 끝났으니까.

       

       그것으로… 끝내 노인의 목숨은 끊어졌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켜온 인간은, 결국 자신이 빼앗아온 생명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루시 한 명 뿐이다.

       

       영혼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각오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서른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 만족하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루시에게 복수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루시를 해치지 않았다.

       

       성황청에 협력해서 자신들을 일부러 납치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시점에서.

       

       아이들은 루시를 죽이지 않고, 그녀에게 속죄의 의미로 몸을 빌려줄 것만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끔찍했다. 

       

       차라리 그녀를 원망했더라면,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라면서 그녀를 욕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괴롭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끔찍한 죄악감이 밀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원망하되, 복수를 행하지 않은 아이들.

       그 선량하던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은 것은 다름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의 손으로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빼앗아버렸다.

       

       루시는 멍하니, 칼을 검집에서 빼어들었다. 이제 적 같은 건 없다. 쓰러트려야 할 상대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들의 영혼 또한, 모두 원한을 풀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어야 할 사람은, 아직 남아있어.’

       

       루시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허나, 눈물 한 방울로는 그녀가 뒤집어쓴 피를 지우지 못했다.

       

       그동안 저질러온 죄악 또한 지우지 못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무지는 절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그간 소녀가 성황청에 인도했던 아이는 총 서른 명. 루시의 무지는 그 서른 명의 아이를 지옥에 빠트렸다.

       

       그건, 미안하다는 말로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죄였다.

       

       어떻게 사과하고 속죄하더라도, 이미 떠난 아이들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죗값을 치러야 해.’

       

       여태까지 소녀는 자신의 행동에 자부심을 품으며 살아왔다.

       

       사람을 구하기는 커녕, 그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아 놓고서.

       

       소녀는 뻔뻔하게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이런 자신이 살아있어도 될 리가 없다.

       살아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항상 해 왔던 일을 하는 것 뿐이다.

       

       극악무도한 살인귀를 처단할 뿐이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피에 물든 검을 목에 가져다댄다.

       

       날카로운 검끝이 목에 닿아 상처를 낸다. 조그마한 핏방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허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 몸은 진작에 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추악한 살인자의 몸이었으니까.

       

       소녀는 그렇게 제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니, 

       찍으려고 했다.

       

       붙잡고 있던 검의 감촉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누군가가 그녀의 검을 빼앗은 것이다.

       

       “…루시 발리에르.”

       

       그와 동시에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도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로브를 걸쳐입은 백발의 소년.

       그 짙은 푸른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한다.

       

       검은 송곳니의 단장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표지 외주를 의뢰했습니다!
    이런 건 처음이라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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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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