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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

         

         

        -연금 실험중, 출입 전 노크 필수.

        -아이가 자고 있어요. 노크 X.

         

         

         완벽한 출입통제로 봉인된 동아리방의 문틈에선 은은한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법대학, 신학대, 체대 기사학부. 세 학부의 괴인들이 모여 결성된 이 기괴한 동아리는, 평소에도 기피의 대상이었지만 이 시기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삭힌 청어 냄새가 진동을 하는, 연금학과 관계도 없는 학부생들이 모여 실험을 하고 있는 저 동아리방에 감히 다가갈 사람은 없었다.

         

         학과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항의할 선량한 연금학부 학생들은 모두 랩실에서 좀비처럼 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람이 문과를 가야 한다. (예체대는 넓은 의미에서 문과다. 놀고먹으니까.)

         

         

         

         “엔초비를 더 넣어.”

         “하, 하지만… 여기서 더 넣었다간…!”

         “더 넣어!! 프로젝트를 망칠 셈이냐!”

         “알겠어! 알겠다고, 제기랄!”

         

         

         와 같은, 무슨 호문클로스나 현자의 돌이라도 만들 분위기의 연구진들이 떨리는 손으로 거대한 용기에 재료를 투하하고.

         

         

         “시음… 시음 해봐!”

         “난… 난 아까 해봤잖아. 이번엔 네 차례야!”

         “저는 제조 담당이잖아요! 저한테 폭탄 돌리지 마세요!”

         “폭탄? 지금 우리의 열정과 추억을 폭탄이라고 부른 겁니까?”

         

         

         서로에게 연구 성과를 돌리는 훈훈한 광경을 잠시 연출해준 뒤에.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 마침내.

         

         

         “완성… 했다….”

         “제기랄. 내가 이런 걸 진짜 보게 될 줄이야.”

         “완성 맞죠? 제가 보기엔 그냥 괴수 시체 하나 해부한 것 같은 꼴인데.”

         “팩트 멈춰.”

         

         

         그들은 어두운 동아리방 한가운데에 모여서 고대신을 소환하는 하수인들의 모습을 한 채로 정결하게 서로의 공을 축하했다.

         

         새하얀 가운 위로 붉은 액체가 무질서하게 튀어 있는 모습, 냄새만 제외한다면 도축장과 다를 바 없다.

         

         식은땀 어린 복면을 벗어 던지며, 오스왈드는 탄식했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유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성호를 그었다. 신학대생다운 완벽한 각도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영광으로 이 땅을 평강케 하소서.”

         “아, 축복 멈춰요. 이거 정화되잖아요!!”

         

         

         유리는 유진의 등을 후려치고는 훈훈하게 웃었다.

         

         

         “하지만 다들 고생했어요. 진짜 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난 알고 있었어.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믿음이거든.”

         “모두들 아직 마음 놓긴 일러.”

         

         

         오스왈드는 침착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는 천천히 보존용기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실험의 첫 단추를 꿴 것이나 다름 없어. 우리 목표는 이것보다 웅대하다고.”

         “그래. 곧 있으면… ‘그날’이 오니까.”

         

         

         유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스산하게 속삭였다.

         

         

         “그날. 대학 축제에… 우리 동아리가 모든 학부와 모든 동아리를 지배하리라. 주께서 가호하시기를. 선진 문물의 힘을…!!”

         “솔직히 이게 누구한테 먹힐 것 같진 않지만요.”

         “어허, 국뽕 몰라? 말 조심해. 이건 암과 간질발작과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그 말을 진짜 믿었어요?”

         

         

         야채를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와 젓갈로 간을 맞춘 뒤 삭힌 음식.

         

         그렇다.

         

         그들은 김치를 완성하고 말았다.

         

         김치란 결국 채소를 염장하고, 젓갈과 향신료를 때려 박은 뒤에 발효시키면 되는 단순한 요리.

         

         채소(양배추)도 있고, 생선젓(엔초비)도 있으며, 고춧가루도 있는 세상에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좀 형태나 냄새가 기괴하지만, 21세기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김치란 것은 원래 볶거나 끓이면 대개 먹을만해지는 법이다. 이는 싸구려 중국산 김치를 볶아주는 냉동삼겹살 집 사장들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증명한 진리다.

         

         21세기 문물을 가져와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은 빙의물의 ‘상식’이었으므로, 세 빙의자들은 기꺼이 이 기회를 살리기로 했다.

         

         축제 시작까지 일주일 남은 시점의 어느 날이었다.

         

         

         “우린 부자가 될 거야!”

         

         

         그들은 그날 곧장 학생회에 매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마쉐린이 없는 세상에서 무려 ‘미슐렝 파인다이닝’이란 이름으로.

         

       

       

       

       ep12. 아카데미 축제의 상식들

       

         

       

       

         

         “축제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

         “음.”

         “혹시 축제날에 할 거 있으세요?”

         

         

         이반은 이자벨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축제란 결국 대학 스케줄의 연장이다. 그리고 그건 넓은 관점에서 볼 때 평범한 학부 과정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반에겐 축제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없다.”

         “드!! 디어!!!”

         

         

         이자벨은 들고 있던 목검을 내팽개치며 괴성을 질렀다.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묵묵히 떨어진 목검을 주워 다시 이자벨에게 쥐어 주었다.

         

         

         “그럼 저랑 같이 축제 구경 가요!”

         “축제 구경?”

         “네! 막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사격도 좀 하고, 그, 네? 또 축제에 뭐가 있지… 마술 공연 같은 것도 하나…?”

         

         

         총화기가 하급 전쟁병기 취급받는 세상에서 과연 풍선 사격이 인기 있는 놀이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마법이 있는 세상에서 마술 공연이 뭐 특별할 것이 있나…? 어지간한 마술 테크닉은 마나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인데.

         

         이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에도 이자벨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뭐가 됐든! 축제잖아요! 같이 구경도 좀 하고, 네? 그, 호위. 그래요. 비상사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음.”

         

         

         틀린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 미개한 전근대 중세 판타지 세상의 주민이 상식적인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축제가 일어나면 반드시 다음 중 하나의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적대 세력의 습격, 교수의 죽음, 폭격, 용 또는 그에 준하는 대괴수의 준동, 반군의 선전포고.

         

         언젠가 회고했듯, 아카데미는 최전방 전선보다 많은 침략을 받는다. 이제 5월이 된 이 시점에서 이미 아카데미에 있었던 대형 사건만 세 건이다.

         

         이반은 침중한 눈으로 이자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와!! 대박!! 진짜!!? 진짜 이 아저씨가 내 말을 들었다고…?! 빠, 빨리 내 뺨 좀 꼬집어봐요. 진짜 이게 현실인지 내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주접 그만 떨고 훈련이나 마저 하지.”

         “현실 맞네.”

         

         

         이반은 투덜거리는 이자벨을 향해 목검을 내려 찍었다.

         

         

         

        *

         

         

         엘프들에겐 오만하고 독선적이란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 그건 동어 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엘프들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엘프들이기에 더욱이. 그들 사이엔 확고한 신분 격차가 존재했다.

         

         이는 영국과 일본이 예로부터 ‘신사(영국 : 해적질을 함)’와 ‘화(和)의 민족(일본 : 해적질을 함)’라는 식으로 쌓아올린 문화 체계와 다를 바 없다.

         

         섬나라의 족속들이 갖는 세상을 초월한 공통점이라 할만하다. 도망칠 곳이 바다 밖에 없는 나라에서, 상호확증파괴를 할 것이 아니라면 예의를 차리길 강요받는 문화인 것이다.

         

         따라서 엘프들은 뭇 섬나라가 그렇듯 평화롭고 화기애애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신분 격차에 순응하는 문화 시민들이다.

         

         

         “저… 그리켄코스 양?”

         “네?”

         “아까부터 뭔가… 음.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머, 기분 나쁜 일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아뇨!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한 엘프가 겁에 질린 채 떠나갔다. 엘피헤라는 그 비실비실한 엘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계집애들은 음흉하고, 사내놈들은 비실비실하고.

         

         아, 어디 건장하고 굴강한 남자 하나가 이토록 없어서야.

         

         이래서야 꼭, ‘인간’들에게서 사내다움을 수입해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엘프의 미래가 이토록 어둡기만 하다.

         

         

         “왜 자꾸 애들을 겁주고 그래요?”

         “뭐가.”

         “지금 당신 말야 당신. 아주 살기가 주체가 안 되는데요.”

         

         

         그녀의 앞까지 의자를 드르륵 끌고와 앉은 여자는 그녀가 힘으로 쫓아낼 수 없는 녀석 중 하나다.

         

         추밀의장 러스트피츠 공작의 딸, 에블린 러스트피츠.

         

         이 대학 엘프들 중 가장 큰 파벌을 이룩한 계집애다. 평소라면 웃으며 응대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

         

         

         “나중에 이야기 하지요, 러스트피츠 양. 제가 지금 머리가 아파서.”

         “어머, 사제를 불러 드릴까요?”

         “신경 끄세요.”

         

         

         당황한 에블린을 두고, 엘피헤라는 싸늘하게 대답하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무려 열흘간 이반을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극단적일 정도의 저기압 상태, 심지어 그 이유가 다른 이들을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만날 기회도 많았고, 직접 찾아간 적도 많았으며, 심지어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목구비가 인식되는 범위 안까지 접근할 수가 없다는 점.

         

         

         “으그윽….”

         

         

         엘피헤라는 소매를 와락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마법의 천재인 것은 좋다. 좋을 뿐만 아니라 사뭇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베올그린의 딸이 마법의 천재라는 데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너무 굉장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창작 마법, 즉 고유주문을 고작 20대 나이에 완성한 것은 엘프 사이에서도 우러름 받을 만한 일이었다.

         

         비록 그 주문은 온전히 자기자신에게만 효과가 국한된 정신계 주문이었지만, 세상의 인식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강대한, 그리고 부작용까지 없는 주문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문제가 있다면, 너무 대단했다는 것뿐.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

         

         

         그녀는 저 멀리 교정에서 하찮은 인간 여자와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반을 창가에서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저 여자는 쓸모 없는 흉부 지방을 이반의 팔뚝에 적극적으로 비비며 따라붙고 있었다.

         

         그래봐야 저 사내는, 미약 없인 도모할 수 없는 미치광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소유물에 감히 영역 표시를 하려는 들개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하지만!

         

         

         ‘다가갈… 수가… 없어!!’

         

         

         환상면도 주문을 사용하면 이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반의 맨 얼굴을 보면 이반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이 무슨 역설인가. 그녀는 주문을 완성한 첫날 당당하게 이반을 찾아갔다가 그대로 뒤를 돌아 도망치고 말았다.

         

         깊은 곳에서 긁어 올라오는 듯 허스키한 목소리, 우묵하고 진중한 눈, 이따금씩 설핏 웃는 매끄러운 입매…. 그리고, 남들은 모를 그녀와 사내의 추억까지.

         

         그건, 너무 파괴력 강한 조합이라서.

         

         하필이면 정확히 취향에 직격 해버린 상대라서.

         

         그리고,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어려 보여서. 어쩐지 친근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 그래서.

         

         

         ‘이대로는 안 돼…!’

         

         

         수염을 밀어버리려는 멍청한 인간 여자와, 수염마저 좋다고 달려드는 천박한 인간 여자 사이에서 강점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더 큰 수단이 필요했다.

         

         다행히 그녀는 다른 멍청한 인간(동어반복의 오류다)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고대의 악신이 보여준 행복의 환상. 그 사이에서 확인한 이반의 취향이다. 다른 인간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이반의 비밀스러운 취향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빗과 개껌.

         

         그 둘이라면, 그저 멍청하게 육탄공세만 펼칠 줄 아는 저 하등 생물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엘피헤라는 굳게 결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퇴근하자마자 바로 올립니다!

    어..음…! 이번주는 아마 계속 이 시간대에 올라올 것 같아요! 10시 안팍…이요!!

    가급적이면 시간 맞춰 올리겠습니다! AI일러스트와 캐릭터 설정도 조만간 준비가 끝납니다! 다듬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

    *

    엔초비는 삭힌 정어리 젓갈입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옛날부터 흔한 전통 음식이었어요! 생선젓은 서양에서도 흔한 식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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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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