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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

        “…하, 하아… 하아…”

        ​

        ​

        ​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라일라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

        안 그래도 약한 몸뚱이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

        아니면 차가운 땅속에서 벌레와 미생물들이 실컷 만찬을 즐기고 알을 까댄 여동생의 흉물스러운 시체를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 두려워 그런 것일까.

        ​

        원인 모를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며 천천히 흙더미를 파내고 있었다.

        ​

        ​

        ​

        “…흣,”

        ​

        ​

        ​

        공교롭게도 삽 같은 물건을 찾지 못해, 나는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흙을 파내는 중이었다.

        ​

        손톱 사이로 흙이 끼어 점점 벌어지는 것처럼 아파졌고, 한껏 힘이 들어간 손날은 쥐가 나는 듯 뻐근하게 경련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

        그러나 점점 깊게 흙더미를 파 내려갈수록 손끝은 점점 심하게 떨려왔다.

        ​

        피로나 통증에 의해 떨림이었으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

        언제 라일라의 유해에 손끝이 닿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척추를 타고 흘렀기 때문이었다.

        ​

        나는 공포를 이겨내려 연신 여신을 부르짖었다.

        ​

        ​

        ​

        “여신님께서… 라일라를 보살펴주시길.”

        ​

        ​

        ​

        무섭다, 두렵다.

        ​

        내가 지키지 못한 라일라의 시체가, 내가 실비아씨의 품속에서 즐겁게 보낸 시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무척이나 죄스러웠다.

        ​

        하지만 그런데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그녀를 내 두 팔로 꺼내 안아 올려 실비아씨가 준비해준 관 속에 묻어야만 했다. 

        ​

        그리고 마침내.

        ​

        ​

        ​

        “…아,”

        ​

        ​

        ​

        내 손끝에 그 물러터진 축축한 살덩이 같은 게 닿는 순간.

        ​

        그 순간이 와버리고 말았다.

        ​

        나는 조심스레 흙을 치우며 라일라의 몸을 찾았다.

        ​

        손가락 끝의 힘만으로도 쉽게 찢어질 만큼 물러진 살과 그 속에서 드러낸 새하얀 백골이 점차 흙 속에서 튀어나왔다.

        ​

        ​

        ​

        “아아…. 윽,”

        ​

        ​

        ​

        여기저기 파먹힌 너무나 작은 머리, 그 안에 꼭 감은 창백한 눈두덩이와 흙가루에 잔뜩 뒤섞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

        ​

        ​

        “라일… 라…”

        ​

        ​

        ​

        나는 떨리는 손으로 라일라의 머리를 감싸 쥐려다 뒤로 넘어지듯 물러나며 내 머리를 잡아 뜯듯이 쥐었다.

        ​

        숨이 조절되지 않았다.

        ​

        내 폐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숨을 들이쉰다.

        ​

        ​

        ​

        “헉, 허… 헉, 허억,”

        ​

        ​

        ​

        심장이 쿵쾅거렸다.

        ​

        눈물이 쏟아지듯 흐른다.

        ​

        아아, 라일라, 

        ​

        라일라, 정말 정말로,

        ​

        ​

        ​

        “정말 미안해…”

        ​

        ​

        ​

        죄책감, 모멸감, 자책, 그리고 원망이 마음속을 찢어발길 듯 날뛰었다.

        ​

        내 모든 감정이 나를 공격했다.

        ​

        내가 나를 증오했다.

        ​

        ​

        솔직히 잊고 살았지?

        ​

        감히 잊으려 했겠다?

        ​

        아니야,

        ​

        아니, 그렇지 않아.

        ​

        거짓말,

        ​

        기억하기 싫었잖아.

        ​

        동생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은 주제에 기뻤지?

        ​

        실비아씨 같은 미인이랑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나 내면서 깎은 비석을 라일라한테 주겠다고?

        ​

        그거야말로 참, 나답네! 그치?

        ​

        자기만족, 자기합리화.

        ​

        그런 비겁함이 바로 내 본성이잖아.

        ​

        ​

        아니야.

        ​

        아니긴, 생각해봐.

        ​

        넌 예전부터 그랬잖아.

        ​

        안 그랬어.

        ​

        정말? 마리아 누나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이론에 빠삭하니까’ 하면서 자기만족으로 마법을 배웠잖아. 안 그래?

        ​

        …

        ​

        실비아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동거인 아닐까.’ 하면서 기껏해야 아버지 반도 못 따라가는 요리 실력으로 으스댔지?

        ​

        아니… 야.

        ​

        사람을 죽여놓고, 실비아씨가 안아주니 금방 기분이 좋아졌네? 죄책감이니 뭐니 하더니 결국 실비아씨를 유혹하려고 꼬리나 쳐댄 거 아니야?

        ​

        그만, 그럴 리가 없어,

        ​

        네깟놈이 뭐라고, 실비아씨가 너를 원하는 게 기쁘면서도 은근히 거절했지? 실비아씨가 안달복달 못하는 게 즐거웠잖아. 그렇지?

        ​

        으윽,

        ​

        실비아씨가 설마 정말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았어? 그냥 외로웠을 뿐이야, 너처럼 무능하고 어리숙한 병신을, 너 같은 걸 누가 사랑해주겠어, 너도 알잖아. 

        ​

        너…? 너라니, 누구야, 누구야 너.

        ​

        오, 미안, 내가 인칭을 헷갈렸다. 난 너야, 정확히는 너의 본성이지.

        ​

        거짓말, 

        ​

        거짓말 같아?

        ​

        …

        ​

        자, 이 한심한 친구야. 하늘을 봐봐, 이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보라고.

        ​

        …

        ​

        아름답지 않아? 아침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황홀하지 않아? 라일라 대신 살아남은 게 기뻐서 미칠 지경이잖아. 안 그래?

        ​

        ​

        ​

        “아니야!”

        ​

        ​

        ​

        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나듯 몸을 일으켰다.

        ​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자, 차갑게 누워있는 라일라의 시체가 보인다.

        ​

        아아, 라일라.

        ​

        내가 정말, 너 대신 살아남은 게 기쁜 걸까.

        ​

        나, 저주에 휘말려서, 이미 다섯명의 목숨을 빼앗았어.

        ​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데,

        ​

        나 정말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

        …미안해, 라일라.

        ​

        사실은 맞아.

        ​

        나 살아있어서 기뻤어.

        ​

        실비아씨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

        ​

        미안해.

        ​

        나 정말…

        ​

        ​

        ​

        “…라일라?”

        ​

        ​

        ​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

        아니, 분명 멎었다.

        ​

        잠시동안은.

        ​

        ​

        라일라가 두 눈을 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

        ​

        ​

        ​

        ​

        ​

        ​

        *

        실비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달리면 달릴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

        갑작스러운 마기의 출몰,

        ​

        이건 숲속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

        숲 전체가 갑작스럽게 마기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

        마치, 오래전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처음 이 숲에 왔던 그날처럼.

        ​

        어째서지, 뭐가 원인이지.

        ​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알 수 없었다.

        ​

        실비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

        두 눈이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시큰거렸다.

        ​

        ​

        ​

        “윽!”

        ​

        ​

        ​

        눈동자 안쪽부터 울리는 듯한 시큰거림은 점차 따끔거리는 통증으로 변하더니 이내 곧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작열통이 되어갔다.

        ​

        실비아는 지면을 박차던 발을 멈춘 채 나무에 기대 두 눈을 감싸 쥐었다.

        ​

        ​

        ​

        “아, 흑! 아파… 눈이…!”

        ​

        ​

        ​

        상황파악이 되질 않는다.

        ​

        실비아는 갑자기 벌어진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숲에 마기가 들어차더니 안구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

        실비아는 손바닥으로 제 눈을 퍽퍽 두들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

        점점 심해지는 작열통에 실비아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설마… 그때 그게…”

        ​

        ​

        ​

        실비아는 지난번 시체 줍기 하던 날을 떠올렸다.

        ​

        애쉬가 마리아의 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그날, 서둘러 애쉬에게 돌아가려던 그녀의 앞길을 방해하던 수많은 마물의 무리가 있었다.

        ​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애쉬를 보고 싶었던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

        그저 하필 오늘따라 재수 없게 많네, 라고만 여겼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징조였던 모양이었다.

        ​

        이미 늦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마물들은 평소 모여 살던 구역을 벗어나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던 것은 아닐까.

        ​

        마물들이 마기를 피하지는 않을 테니 마기가 많이 발생할 지역을 향해 서식지를 옮기던 중이었나?

        ​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자연재해로부터 도망치는 야생동물들처럼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던 중인 건가?

        ​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실비아와 애쉬에겐 어느 쪽이든 위기라는 것이다.

        ​

        숲에 마기가 들이찬다면 두 사람은 당장 살 곳을 옮겨야만 한다.

        ​

        인간은 마기 속에서 살 수 없다.

        ​

        공기 중에 독 가루가 잔뜩 끼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

        ​

        “애쉬…!”

        ​

        ​

        ​

        아무래도 저주의 보호를 받는 실비아는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애쉬는 죽는다.

        ​

        그리고 애쉬가 죽는다면, 실비아도 죽는다.

        ​

        육신은 죽지 않아도 그녀의 정신, 감정, 의지와 영혼 같은 형태를 갖지 않은 그녀의 모든 부분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

        실비아는 애쉬의 이름을 부르며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켰다.

        ​

        적응한 것인지 줄어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점점 눈의 통증이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실비아는 흰자까지 새빨개진 눈으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억지로 부릅떴다.

        ​

        물기 어린 시야 너머로 누군가가 일렁거리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

        ​

        ​

        “…!”

        ​

        ​

        ​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누구지?

        ​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키나 옷이 다르기에 애쉬는 아니었다.

        ​

        실비아는 나무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

        ​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

        되살아나 걸어 다니는 시체.

        ​

        언데드였다.

        ​

        그야 마기가 이렇게나 솟아나니 언데드가 나타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실비아는 상대에게 저주가 옳을 일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안심하며 천천히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오며 등에 멘 활을 꺼내 들었다.

        ​

        썩어 문드러진 피부에는 벌레 먹은 흔적이 가득했고, 몸속에 벌레가 까놓은 알이 부화했는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에선 구더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

        다 해진 천옷, 너덜너덜해진 가죽바지에 부러진 채 덜렁거리는 팔 끝에 매달린 손에는 승마용 채찍이 들려있었다.

        ​

        가죽조끼를 하나 입고 있었는데, 조끼에는 그녀도 익숙하게 아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

        물음표 모양의 나무 막대기.

        ​

        스태프 가문의 문장이었다.

        ​

        ​

        ​

        “아… 이런.”

        ​

        ​

        ​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실비아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하디 아저씨.’

        ​

        ​

        ​

        ​

        ​

        ​

        ​

        ​

        ​

        ​

        *

        “…잠깐,”

        ​

        ​

        ​

        실비아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는 단숨에 화살을 당겨 하디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

        어찌나 센 위력인지, 웬만한 상처로는 죽지 않고 움직이는 게 보통인 언데드의 몸임에도 하디의 몸은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그의 머리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

        실비아는 쓰러진 언데드의 머리에 한 번 더 화살을 꽂아 넣고는 곧장 몸을 돌려 오두막을 향해 달렸다.

        ​

        고민할 시간도,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

        그가 애쉬가 찾는 사람이라는 것 따위는 지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

        실비아는 자꾸만 욱신거리는 눈을 꼭 감은 채 팔로 머리를 감싸고 앞을 향해 발을 세게 박차 올랐다.

        ​

        그리곤 그녀의 앞을 막는 나무나 바위 등을 부수며 그녀는 달려 나갔다.

        ​

        시간이 없었다.

        ​

        마음이 급해진다.

        ​

        실비아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

        ​

        ​

        “제발, 제발…”

        ​

        ​

        ​

        애초에 언데드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

        마기가 흘러넘치는 환경과, 사제가 동반된 공식적인 장례를 치르지 못한 시체.

        ​

        지금 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뿐, 이 숲은 원래 미량의 마기를 항상 품고 있었다.

        ​

        실비아가 마왕을 죽인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걸 보면 확실히 그는 인류의 재앙이라 할 만했다.

        ​

        ​

        지금 이곳에서부터 마차 사고 현장까지의 거리는 평범한 걸음으로는 두 시간도 넘게 걸릴 만큼 멀었다.

        ​

        마차 사고 현장 근처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하디 아저씨가 이곳에 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마부는 이미 옛날에 언데드가 되어 돌아다녔을 것이다.

        ​

        마기가 뿜어져 나온 지금 활발히 움직이게 되었을 뿐, 그가 언데드가 된 건 옛날 일이란 뜻이다.

        ​

        하지만, 지금 이 마기가 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다면,

        ​

        이 숲 전체에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마기의 발현이 일어난 것이라면, 

        ​

        이 숲에는 사제의 기도 없이 묻힌 시체가 한가득 모여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

        마을 주민의 시체가 모두 모여있는 공동묘지.

        ​

        그녀와 애쉬의 오두막.

        ​

        밀우드 마을.

        ​

        ​

        그러고 보니 애쉬,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

        그가 오늘 뭘 한다고 했더라.

        ​

        아…

        ​

        ​

        ​

        “애쉬… 애쉬… 안돼… 애쉬!”

        ​

        ​

        ​

        아, 

        ​

        아아아아

        ​

        안돼, 안돼, 안돼!

        ​

        실비아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

        ​

        ​

        “애쉬… 제발, 별일 없어야 해. 제발!”

        ​

        ​

        ​

        실비아의 발걸음은 쉴 새 없이 장애물에 부딫히면서도 느려지지 않았다.

        ​

        점점, 밀우드 마을이, 

        ​

        두 사람의 안락한 보금자리인 그 폐허가 가까워졌다.

        ​

        두 눈이 뜨겁다.

        ​

        아니, 온몸이 뜨거웠다.

        ​

        실비아는 갑작스러운 그 열기에 천천히 눈을 떴다.

        ​

        ​

        ​

        “불?”

        ​

        ​

        ​

        화염.

        ​

        사방이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

        ​

        ​

        “애쉬!”

        ​

        ​

        ​

        터만 남은 흔적부터 다 쓰러져 가는 통나무집, 그리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오두막까지도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

        사방에 불길이 휘몰아치고 곳곳에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

        실비아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

        언젠가 자신이 죽였던 밀우드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

        ​

        ​

        “…”

        ​

        ​

        ​

        실비아는 망설임 없이 타오르는 오두막 안으로 몸을 날렸다.

        ​

        어차피 불길은 그녀의 몸에 생채기조차 남길 수 없으니까.

        ​

        그녀는 타오르는 잔해들을 맨손으로 밀어내며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 본인의 검 한 자루를 챙겨 들고 나왔다.

        ​

        아직 꿈틀거리는 시체들을 베어내며 그녀는 곧장 묘지를 향해 달렸다.

        ​

        ​

        ​

        “애쉬! 여기 있어?”

        ​

        ​

        ​

        그녀의 타들어 가는 목소리처럼 묘지엔 습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공기가 가득했다.

        ​

        사방이 붉게 타오르는 화염에 뒤덮인 그 묘지 속에서 애쉬가 앉아 있었다.

        ​

        주황빛으로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여우 한 마리가 애쉬의 주변에 몸을 말고 앉아있었다.

        ​

        여우는 그 커다란 꼬리로 실비아를 막아섰다.

        ​

        ​

        ​

        “애쉬! 괜찮은 거야?”

        ​

        ​

        ​

        실비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타오르는 여우의 꼬리를 맨몸으로 지나 애쉬를 향해 다가갔다. 

        ​

        애쉬는 아무런 말 없이 앉아있었다.

        ​

        그의 양 팔에는 새카맣게 탄 시체 하나가 안겨있는데, 그것은 시체라기보단 사람 모양의 숯덩이에 더 가까웠다.

        ​

        그 광경에 실비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애쉬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팔에 들어 올린 시체를 내려다보며 바싹 마른 목소리를 뱉었다.

        ​

        피가 섞인 토악질처럼, 어떤 매캐한 비린내가 가득 서린 목소리였다.

        ​

        ​

        ​

        “…실비아씨.”

        ​

        “애쉬…”

        ​

        “…”

        ​

        ​

        ​

        애쉬는 더이상 입술을 떼지 못했다.

        ​

        상황을 파악한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

        ​

        타닥타닥,

        ​

        사방이 불타오르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득 메웠다.

        ​

        마치 이 세상이 불타오르는 것 처럼 느껴졌다.

        ​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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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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