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하아… 하아…”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라일라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약한 몸뚱이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차가운 땅속에서 벌레와 미생물들이 실컷 만찬을 즐기고 알을 까댄 여동생의 흉물스러운 시체를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 두려워 그런 것일까.
원인 모를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며 천천히 흙더미를 파내고 있었다.
“…흣,”
공교롭게도 삽 같은 물건을 찾지 못해, 나는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흙을 파내는 중이었다.
손톱 사이로 흙이 끼어 점점 벌어지는 것처럼 아파졌고, 한껏 힘이 들어간 손날은 쥐가 나는 듯 뻐근하게 경련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점점 깊게 흙더미를 파 내려갈수록 손끝은 점점 심하게 떨려왔다.
피로나 통증에 의해 떨림이었으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언제 라일라의 유해에 손끝이 닿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척추를 타고 흘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포를 이겨내려 연신 여신을 부르짖었다.
“여신님께서… 라일라를 보살펴주시길.”
무섭다, 두렵다.
내가 지키지 못한 라일라의 시체가, 내가 실비아씨의 품속에서 즐겁게 보낸 시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무척이나 죄스러웠다.
하지만 그런데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녀를 내 두 팔로 꺼내 안아 올려 실비아씨가 준비해준 관 속에 묻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
내 손끝에 그 물러터진 축축한 살덩이 같은 게 닿는 순간.
그 순간이 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조심스레 흙을 치우며 라일라의 몸을 찾았다.
손가락 끝의 힘만으로도 쉽게 찢어질 만큼 물러진 살과 그 속에서 드러낸 새하얀 백골이 점차 흙 속에서 튀어나왔다.
“아아…. 윽,”
여기저기 파먹힌 너무나 작은 머리, 그 안에 꼭 감은 창백한 눈두덩이와 흙가루에 잔뜩 뒤섞인 머리카락이 보였다.
“라일… 라…”
나는 떨리는 손으로 라일라의 머리를 감싸 쥐려다 뒤로 넘어지듯 물러나며 내 머리를 잡아 뜯듯이 쥐었다.
숨이 조절되지 않았다.
내 폐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숨을 들이쉰다.
“헉, 허… 헉, 허억,”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물이 쏟아지듯 흐른다.
아아, 라일라,
라일라, 정말 정말로,
“정말 미안해…”
죄책감, 모멸감, 자책, 그리고 원망이 마음속을 찢어발길 듯 날뛰었다.
내 모든 감정이 나를 공격했다.
내가 나를 증오했다.
솔직히 잊고 살았지?
감히 잊으려 했겠다?
아니야,
아니, 그렇지 않아.
거짓말,
기억하기 싫었잖아.
동생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은 주제에 기뻤지?
실비아씨 같은 미인이랑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나 내면서 깎은 비석을 라일라한테 주겠다고?
그거야말로 참, 나답네! 그치?
자기만족, 자기합리화.
그런 비겁함이 바로 내 본성이잖아.
아니야.
아니긴, 생각해봐.
넌 예전부터 그랬잖아.
안 그랬어.
정말? 마리아 누나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이론에 빠삭하니까’ 하면서 자기만족으로 마법을 배웠잖아. 안 그래?
…
실비아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동거인 아닐까.’ 하면서 기껏해야 아버지 반도 못 따라가는 요리 실력으로 으스댔지?
아니… 야.
사람을 죽여놓고, 실비아씨가 안아주니 금방 기분이 좋아졌네? 죄책감이니 뭐니 하더니 결국 실비아씨를 유혹하려고 꼬리나 쳐댄 거 아니야?
그만, 그럴 리가 없어,
네깟놈이 뭐라고, 실비아씨가 너를 원하는 게 기쁘면서도 은근히 거절했지? 실비아씨가 안달복달 못하는 게 즐거웠잖아. 그렇지?
으윽,
실비아씨가 설마 정말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았어? 그냥 외로웠을 뿐이야, 너처럼 무능하고 어리숙한 병신을, 너 같은 걸 누가 사랑해주겠어, 너도 알잖아.
너…? 너라니, 누구야, 누구야 너.
오, 미안, 내가 인칭을 헷갈렸다. 난 너야, 정확히는 너의 본성이지.
거짓말,
거짓말 같아?
…
자, 이 한심한 친구야. 하늘을 봐봐, 이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보라고.
…
아름답지 않아? 아침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황홀하지 않아? 라일라 대신 살아남은 게 기뻐서 미칠 지경이잖아. 안 그래?
“아니야!”
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나듯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자, 차갑게 누워있는 라일라의 시체가 보인다.
아아, 라일라.
내가 정말, 너 대신 살아남은 게 기쁜 걸까.
나, 저주에 휘말려서, 이미 다섯명의 목숨을 빼앗았어.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데,
나 정말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미안해, 라일라.
사실은 맞아.
나 살아있어서 기뻤어.
실비아씨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
미안해.
나 정말…
“…라일라?”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니, 분명 멎었다.
잠시동안은.
라일라가 두 눈을 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실비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달리면 달릴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마기의 출몰,
이건 숲속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숲 전체가 갑작스럽게 마기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처음 이 숲에 왔던 그날처럼.
어째서지, 뭐가 원인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알 수 없었다.
실비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두 눈이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시큰거렸다.
“윽!”
눈동자 안쪽부터 울리는 듯한 시큰거림은 점차 따끔거리는 통증으로 변하더니 이내 곧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작열통이 되어갔다.
실비아는 지면을 박차던 발을 멈춘 채 나무에 기대 두 눈을 감싸 쥐었다.
“아, 흑! 아파… 눈이…!”
상황파악이 되질 않는다.
실비아는 갑자기 벌어진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숲에 마기가 들어차더니 안구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실비아는 손바닥으로 제 눈을 퍽퍽 두들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점 심해지는 작열통에 실비아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마… 그때 그게…”
실비아는 지난번 시체 줍기 하던 날을 떠올렸다.
애쉬가 마리아의 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그날, 서둘러 애쉬에게 돌아가려던 그녀의 앞길을 방해하던 수많은 마물의 무리가 있었다.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애쉬를 보고 싶었던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저 하필 오늘따라 재수 없게 많네, 라고만 여겼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징조였던 모양이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마물들은 평소 모여 살던 구역을 벗어나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던 것은 아닐까.
마물들이 마기를 피하지는 않을 테니 마기가 많이 발생할 지역을 향해 서식지를 옮기던 중이었나?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자연재해로부터 도망치는 야생동물들처럼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던 중인 건가?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실비아와 애쉬에겐 어느 쪽이든 위기라는 것이다.
숲에 마기가 들이찬다면 두 사람은 당장 살 곳을 옮겨야만 한다.
인간은 마기 속에서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독 가루가 잔뜩 끼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쉬…!”
아무래도 저주의 보호를 받는 실비아는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애쉬는 죽는다.
그리고 애쉬가 죽는다면, 실비아도 죽는다.
육신은 죽지 않아도 그녀의 정신, 감정, 의지와 영혼 같은 형태를 갖지 않은 그녀의 모든 부분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실비아는 애쉬의 이름을 부르며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켰다.
적응한 것인지 줄어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점점 눈의 통증이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비아는 흰자까지 새빨개진 눈으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억지로 부릅떴다.
물기 어린 시야 너머로 누군가가 일렁거리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누구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키나 옷이 다르기에 애쉬는 아니었다.
실비아는 나무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되살아나 걸어 다니는 시체.
언데드였다.
그야 마기가 이렇게나 솟아나니 언데드가 나타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실비아는 상대에게 저주가 옳을 일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안심하며 천천히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오며 등에 멘 활을 꺼내 들었다.
썩어 문드러진 피부에는 벌레 먹은 흔적이 가득했고, 몸속에 벌레가 까놓은 알이 부화했는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에선 구더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다 해진 천옷, 너덜너덜해진 가죽바지에 부러진 채 덜렁거리는 팔 끝에 매달린 손에는 승마용 채찍이 들려있었다.
가죽조끼를 하나 입고 있었는데, 조끼에는 그녀도 익숙하게 아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물음표 모양의 나무 막대기.
스태프 가문의 문장이었다.
“아… 이런.”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실비아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디 아저씨.’
*
“…잠깐,”
실비아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화살을 당겨 하디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어찌나 센 위력인지, 웬만한 상처로는 죽지 않고 움직이는 게 보통인 언데드의 몸임에도 하디의 몸은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머리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실비아는 쓰러진 언데드의 머리에 한 번 더 화살을 꽂아 넣고는 곧장 몸을 돌려 오두막을 향해 달렸다.
고민할 시간도,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그가 애쉬가 찾는 사람이라는 것 따위는 지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실비아는 자꾸만 욱신거리는 눈을 꼭 감은 채 팔로 머리를 감싸고 앞을 향해 발을 세게 박차 올랐다.
그리곤 그녀의 앞을 막는 나무나 바위 등을 부수며 그녀는 달려 나갔다.
시간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실비아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제발, 제발…”
애초에 언데드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마기가 흘러넘치는 환경과, 사제가 동반된 공식적인 장례를 치르지 못한 시체.
지금 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뿐, 이 숲은 원래 미량의 마기를 항상 품고 있었다.
실비아가 마왕을 죽인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걸 보면 확실히 그는 인류의 재앙이라 할 만했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마차 사고 현장까지의 거리는 평범한 걸음으로는 두 시간도 넘게 걸릴 만큼 멀었다.
마차 사고 현장 근처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하디 아저씨가 이곳에 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마부는 이미 옛날에 언데드가 되어 돌아다녔을 것이다.
마기가 뿜어져 나온 지금 활발히 움직이게 되었을 뿐, 그가 언데드가 된 건 옛날 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지금 이 마기가 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다면,
이 숲 전체에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마기의 발현이 일어난 것이라면,
이 숲에는 사제의 기도 없이 묻힌 시체가 한가득 모여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마을 주민의 시체가 모두 모여있는 공동묘지.
그녀와 애쉬의 오두막.
밀우드 마을.
그러고 보니 애쉬,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그가 오늘 뭘 한다고 했더라.
아…
“애쉬… 애쉬… 안돼… 애쉬!”
아,
아아아아
안돼, 안돼, 안돼!
실비아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애쉬… 제발, 별일 없어야 해. 제발!”
실비아의 발걸음은 쉴 새 없이 장애물에 부딫히면서도 느려지지 않았다.
점점, 밀우드 마을이,
두 사람의 안락한 보금자리인 그 폐허가 가까워졌다.
두 눈이 뜨겁다.
아니, 온몸이 뜨거웠다.
실비아는 갑작스러운 그 열기에 천천히 눈을 떴다.
“불?”
화염.
사방이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애쉬!”
터만 남은 흔적부터 다 쓰러져 가는 통나무집, 그리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오두막까지도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사방에 불길이 휘몰아치고 곳곳에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실비아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언젠가 자신이 죽였던 밀우드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
실비아는 망설임 없이 타오르는 오두막 안으로 몸을 날렸다.
어차피 불길은 그녀의 몸에 생채기조차 남길 수 없으니까.
그녀는 타오르는 잔해들을 맨손으로 밀어내며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 본인의 검 한 자루를 챙겨 들고 나왔다.
아직 꿈틀거리는 시체들을 베어내며 그녀는 곧장 묘지를 향해 달렸다.
“애쉬! 여기 있어?”
그녀의 타들어 가는 목소리처럼 묘지엔 습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공기가 가득했다.
사방이 붉게 타오르는 화염에 뒤덮인 그 묘지 속에서 애쉬가 앉아 있었다.
주황빛으로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여우 한 마리가 애쉬의 주변에 몸을 말고 앉아있었다.
여우는 그 커다란 꼬리로 실비아를 막아섰다.
“애쉬! 괜찮은 거야?”
실비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타오르는 여우의 꼬리를 맨몸으로 지나 애쉬를 향해 다가갔다.
애쉬는 아무런 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양 팔에는 새카맣게 탄 시체 하나가 안겨있는데, 그것은 시체라기보단 사람 모양의 숯덩이에 더 가까웠다.
그 광경에 실비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쉬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팔에 들어 올린 시체를 내려다보며 바싹 마른 목소리를 뱉었다.
피가 섞인 토악질처럼, 어떤 매캐한 비린내가 가득 서린 목소리였다.
“…실비아씨.”
“애쉬…”
“…”
애쉬는 더이상 입술을 떼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한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닥타닥,
사방이 불타오르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득 메웠다.
마치 이 세상이 불타오르는 것 처럼 느껴졌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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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식 장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