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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명상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명상이었다.

        

       앉아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

        

       물론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을 돌린다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춘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도 스트레스받을만한 일들은 꽤 많이 있었으니까.

        

       레오와 클레어를 포함한 주인공 일동이 성실하다, 같은 것은 사실 스트레스 받을만한 일까지는 아니다. 몸이 피곤하긴 할 거고, 내가 뭘 예측하건 그 예측이 파괴되어버릴 만큼 애들이 열심히 움직이긴 했지만, 사실 그런 것은 즐거운 오산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레오가 내 생각보다 지독하게 성격이 나빴거나, 사실은 주인공 중에도 회귀자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원작’을 망치고 있다거나…… 물론 나도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질적인 존재였고, 원작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원작을 마음대로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망치고 있는 주체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 그 외의 시선으로 보는 것에 큰 차이가 존재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음, 이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주인공다워서 내가 입는 피해는 사실 피해도 아니다. 사실은 그저 원래 그렇게 흘러가야 했을 일이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지나치게 원래대로’ 흘러갔을 때,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야기가 원작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은 때’에 발생했다.

        

       우선, 이야기가 지나치게 원래대로 흘러갔을 때.

        

       지금까지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주인공인 레오는 서브 퀘스트 하나하나까지 전부 클리어하게 될 것 같다. 아마 플레이할 수 있는 부분 외에도 굉장히 성실하게 움직여서 스토리가 원작대로 흘러가도록 하는 데 일조할 거다.

        

       원작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그건 좋은 일일 것만 같다.

        

       하지만 원작대로 간다면, 주인공 일행 중에서는 반드시 죽는 이들이 나온다.

        

       히로인뿐만이 아니다. 남자 일행도 충분히 죽을 수 있고, 그 남자 일행이 좋아하는 여자애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주인공이 아무리 강하게 성장했더라도 넓은 제국에 퍼져있는 캐릭터들 모두와 함께 있을 수는 없기에 결국 모든 순간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반드시 죽는’ 캐릭터도 있다.

        

       클레어.

        

       지금은 내가 클레어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으니, 나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돌리는 것이 과연 그 죽음을 막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어떤 억지력이 존재해서 둘 중 하나가, 혹은 둘 다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시간을 돌려본 적은 있지만, 죽어본 적은 없다. 죽은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또다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여 다른 캐릭터가 되어서 살아가게 될까?

        

       게다가, 이 세상은 마냥 원래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참 줏대 없게도, 게임과 비슷한 부분과 그렇지 않고 현실적인 부분이 혼재한다.

        

       게임에서는 총을 맞건 칼에 찔리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인의 손을 맞건 다른 차원에서 날아온 레이저를 맞건, HP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죽지 않는다. 설령 HP가 0이 되어 쓰러졌다고 하더라도 사망 처리가 아니라 컷신에서는 멀쩡하게 나온다. 불이익은 그저 전투에서 그 캐릭터를 쓰지 못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플레이와 컷 신에서 모순되는 연출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무리 보아도 한 대 맞아서 죽을 법한 공격을 맞고도 ‘쓰러지는’ 것이 고작이었던 캐릭터들이, 컷신에서는 가슴에 총을 맞았다는 이유로, 배에 칼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냥 죽기도 한다. 게임에서야 게임적 허용이고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다면 그 기나긴 서사 동안 주인공 일행이 단 한 번의 칼과 총도 맞지 않아야 하고, 짐승과 마주해도 그 몸부림을 전부 피해야 하며, 마법의 범위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스토리상 분명 제일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미아 크로우필드는 곰의 마법에 맞을 뻔했다. 직전에 내가 시간을 돌리기는 했지만.

        

       그것 또한, 그저 내가 그곳에 있었기에 결괏값이 틀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억제력이라 그 모든 이를 살려서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것일까?

        

       내 기준으로는 300일이 넘는 연속적인 명상 시간 동안, 나는 끊임없이 그 일들에 대해서 고민했다.

        

       시간을 돌림으로써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은 채 명상에만 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모로 꽤 이득이 되었다.

        

       특히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지금까지는 이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으니까.

        

       *

        

       “…….”

        

       눈앞에는 전장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투가 있었던 듯 화약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참호와 참호 사이의 무인 지대에선 뭔가 타는 것 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포탄이 몇 번이고 떨어진 듯 사이사이에 큼직한 크레이터들이 있었고, 그 안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전장 자체는 제국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적이 참호를 파 주변을 요새화해두기는 했지만, 제국군은 그 요새를 참호째로 둘러싸고 있었다.

        

       적에게는 전차가 없지만, 제국군에게는 전차가 있었다.

        

       전투기도 있었고.

        

       하지만 그런 기갑 장비를 국경 너머까지 끌고 가는 것은 여러모로 복잡한 이야기였다. 리클란트 공화국에서는 제국에 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런 ‘최신 장비’들이 국경을 넘어서 진군하는 것까지는 조금 꺼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실 이렇게 군대가 국경을 넘는 것도 사실상 ‘국경 지대의 군벌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해 우리 쪽에 피해가 생겼다. 어쩔 것이냐’라는 제국의 정치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해서 제한적으로 허락했다는 모양이다.

        

       “수는 많다.”

        

       제니퍼는 쌍안경으로 요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꽤 튼튼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벙커가 보였다. 여기서도 작게 보일 정도로 꽤 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어선을 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지.”

        

       저기까지 가는 내내 병사들이 죽어 나갈 테니까.

        

       “저들에게 기관총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총열 여러 개를 묶어서 만든 것을 기관총 대용으로 쓰더군. 초반 공세 때 많은 병사가 그것 때문에 죽어 나갔지. 연사력은 기관총만 못하지만 그래도 총알 여러 발이 빠르게 날아오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아직 돌격소총 같은 것이 개발되지 않았다. 기관총 또한 최신 병기 중 하나였고, 무게도 무척 무거웠다. 적어도 들고 돌아다니며 쏠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은 아니었다.

        

       “어때, 할 수 있겠나?”

        

       “…….”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나를 제니퍼가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물었다.

        

       “아니면 이미 한 건가?”

        

       “일곱 번 성공했습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재시도를 해야 했다.

        

       백작가 잠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였다. 저 참호까지 가는 중간의 무인 지대는 무척 길었으니까. 내가 보이기만 해도 총탄이 날아왔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에 들키지 않고 가야 했다.

        

       벌써 날이 어두침침해졌다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 요인이 되긴 했다.

        

       아무리 대치 중인 상황이더라도 사람의 경계심이 몇 시간씩 계속 예리하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기나긴 전선 일부에서는 졸고 있는 병사가 있기도 하고, 아니면 슬슬 근무를 끝내고 자러 갈 시간이라는 것에 설레는 병사가 있기도 했다.

        

       그런 곳을 찾을 때까지 어마어마하게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한 번 참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총알만 있다면 한 발에 한 명씩 쓰러뜨릴 수 있었으니까. 내가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어둡고 당황한 적이 한가득해서 그랬던 건지, 나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춘 적은 한 사람도 없었다.

        

       피하고, 숨고, 쏘고.

        

       총소리를 숨길 소음기는 없었다. 설령 현대적인 소음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총소리는 아주 조금만 가려질 뿐, 결국 쏘는 순간 적에게 들킬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적의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뿐이었다.

        

       참호 사이사이에 있는 방 하나하나에 잔뜩 들고 간 수류탄을 까 넣으며 참호 안을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 보려고 노력했다.

        

       산탄총에 마르마로스를 달아둔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불꽃만으로도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등에 거대한 기름통을 들지 않은 채로도 나는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기관단총과 산탄총, 리볼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총의 탄이 소진되면 다른 총을 주워다 쓰는 식으로 계속 전진해서, 결국 기지 깊은 곳의 탄약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때쯤에는 제국군 쪽에서도 공격을 시작했다.

        

       적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격전과 폭발을 보고 제국군은 그때가 공격하기 가장 좋은 적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안쪽과 바깥쪽에서 동시에 공격이 일어나는 와중에—

        

       쾅!

        

       땅을 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기절했던 것은 몇 초 정도. 등과 어깨가 미친 듯이 아팠다. 최대한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적 병사들이 보였다.

        

       나도 그쪽을 바라봤더니, 밝게 타오르는 불빛이 보였다. 검은 하늘보다 훨씬 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몇 번 정도 거대한 폭발이 더 있었다.

        

       ……탄약고가 터졌다.

        

       내가 아무렇게나 던져넣은 수류탄 중 하나가 운 좋게도 탄약고를 폭발시킨 모양이었다.

        

       참호 바깥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와아아—

        

       환성처럼 들리기도 하는 제국군 병사들의 함성이 들렸다.

        

       용병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다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나를 두렵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참호 위쪽으로 기어 올라가 원래 벙커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벙커는 안쪽에서 폭발해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나머지 반쪽 안에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사하지는 못했으리라.

        

       설령 무사했더라도, 떼로 몰려오는 제국군 병사에 의해서 잡히거나 사살되겠지.

        

       그게 내 첫 번째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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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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