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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기어코.

       

       

       죽음에서 벗어난 건가.

       

       

       페르세포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단순히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몸은 열광과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 정도는 되어야 영웅이라고 할 수 있지.

       

       

       타나토스는 세계에서 가장 힘이 강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끌고자 마음을 먹으면 태산조차 끌 수 있으며, 하늘조차 거뜬히 들 수 있는.

       

       

       타나토스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의 의지.

       

       

       그런 타나토스를 이긴 시점부터. 이미 그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영웅.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군, 이게 제우스가 말한…….

       

       

       [자네도 인간을 믿게 될 걸세.]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웃기는 소리.]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녀는 명계의 왕.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모두 명계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수많은 인간을 보았다. 당연히 그중에는 영웅들 또한 존재했다.

       

       

       [내가, 내가 죽었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죽었을 리 없어!]

       

       

       [죄송합니다! 잘못 했어요!]

       

       

       그리고 굴지의 영웅들조차 대부분 죽음의 공포에 굴복하여 자신의 죄를 고하였고. 또 자신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물론 굴복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진짜 영웅이라면.

       

       

       하다못해 죽음 정도는 이겨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명에게 죽음이란 절대적인 것. 죽음을 초월한다면, 그건 이미 영웅이 아니라 신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바로 지금.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마침내 영웅이 나타났다.

       

       

       “너였구나.”

       

       

       낫이 공명하며 다시 불길한 자색을 머금기 시작했다. 흥분된 그녀의 감정에 호응하는 것처럼.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해도 꺼림직한 기운. 죽음, 그 자체.

       

       

       “…….”

       

       

       하지만 막상 불길한 기운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아이작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째서인지 옛날 생각이 났다. 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그 시절.

       

       

       어째서 카메라를 들었더라.

       

       

       어째서 그런 고난길에 올랐더라.

       

       

       그 이유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의 의지로 정한 길.”

       

       

       설령 남들이 비웃어도, 무시해도.

       

       

       그래도 상관 없다.

       

       

       그게 내가 정한 길이니까.

       

       

       먼저 선수를 가져간 것은 페르세포네였다. 음영으로 드리운 마귀 같은 미소와 함께 휘둘러진 낫이 정확히 목을 노렸으나. 애석하게도 수확하지는 못했다.

       

       

       “천천히 하자고.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좋지!!!”

       

       

       아주 잠깐의 충돌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죽음을 극복하고 강해진 녀석은 아까와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졌다. 이게 내가 바래왔던 것.

       

       

       죽음조차 넘어설 수 있는.

       

       

       진짜 영웅.

       

       

       기다란 낫의 끝부분을 둔기처럼 휘둘러서 아이작의 어깨를 타격했다. 힘의 반동을 받은 아이작이 뒤로 밀려났고. 그 틈을 노려 다시 한번 날을 휘둘렀다.

       

       

       ‘대낫의 숙련도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다.’

       

       

       괜히 주신급은 아니라는 건가. 사실 대낫은 의외로 전투에 사용하기 매우 까다로운 무기였다. 하지만, 페르세포네는 숙련도로 페널티를 완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근접전으로 간다.”

       

       

       찌르는 것이 주된 무기인 창과 다르게. 낫은 어디까지나 베기가 메인이기 때문에. 공간이 좁혀지면 창과 다르게 크게 무력화가 된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아이작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경험이 조금만 있다면 아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는 낫이 머금은 죽음의 기운 때문이다.

       

       

       생명이라면 죽음에 두려움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령 용맹한 용장이라고 해도. 죽음 앞에서 끝까지 의연할 수는 없는 법.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누가 진심으로 죽고 싶어하겠는가.

       

       

       단지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달랐다. 죽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명계에서. 수호자와 문을 찢고 현실로 다시 돌아온 아이작이 고작 본능 따위에 패배할 리가 없었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 이거지?”

       

       

       그럼 조금 난이도를 올려볼까?

       

       

       페르세포네는 웃으면서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대낫을 놓았다. 그러나 대낫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항복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큭!!”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떨어진 날카로운 칼날이 아이작의 어깨에 박혔다. 살아있는 식인 물고기처럼 칼날은 더더욱 깊숙히 살점에 쳐박히고 있다.

       

       

       그러나 그걸 아이작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작은 바로 손을 뻗어서 어깨에 처박힌 칼날을 힘으로 뜯어냈다. 그건 직사각형 모양의 날이었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야. 아니, 단두대라고 해야하나?”

       

       

       “……그렇군, 이게 전력인가.”

       

       

       단순히 낫 하나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단두대가 하늘에서 죄인을 노려보고 있다. 저거 하나하나가 필살에 가까운 힘을 품고 있다.

       

       

       그나마 아이작이라서 절단이 되지 않은 것이지. 영웅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화의 마수조차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칼날이다. 근데 그것이 수백개 이상.

       

       

       기드온에서도 굴지의 영웅으로 불리는 미친 황소는 물론. 남부의 지배자인 여왕마저도 기가 꺾이는 죽음의 칼날. 그러나, 아이작은 그저 담담히 마주했다.

       

       

       “정면에서 깨부순다.”

       

       

       가족의 적. 가족의 위협.

       

       

       길드의 장이라면. 모든 가족이 믿고 따르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라면. 위협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장 앞에서 든든힌 방패가 되어줘야 한다.

       

       

       그게 아이작의 지론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과도 같은 단두대의 칼날을. 아이작은 피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전부 주먹을 휘둘러서 깨부순다. 그리고 그걸 모두가 눈에 담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칼날.

       

       

       그건 마치 신의 천벌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그 천벌을 정면으로 부숴버리는.

       

       

       저 남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신이 내리는 칼날이 주먹에 부숴진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두 다리를 한 자리에 붙이고 버티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방패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 시련을 내려주고 싶은데.”

       

       

       즐겁다. 내 생각이 틀렸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나도 즐겁다! 그러나 이 이상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슬슬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신.

       

       

       권능을 통해 가장 신에 가까운 그릇에게 일시적으로 신이 담기는 궁극의 힘. 그러나 그건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는 페르세포네라는 그릇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반증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이길 수 있겠지. 그러나 그걸로 만족하나? 그 물음에 아이작은 답했다.

       

       

       “그럴 리가 없지.”

       

       

       정했으면 확실하게 한다. 그따위 애매한 결과를 인정할 것 같나? 마음을 정한 아이작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렸다. 아주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덕분에 드디어 손잡이에 손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손잡이에 손을 올린 그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게 진짜다.’

       

       

       흥분한 여자의 음부처럼. 순식간에 손이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이 내가 긴장했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녀는 광소를 터뜨리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여기서 끝낼 수 있을 리가 있나!!”

       

       

       시간 제한으로 끝난다는 애매한 결말 따위. 적어도 당사자들은 원하지 않는다. 설령 이 자리에서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결말을!

       

       

       광소의 끝에서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자색으로 빛나고 있는 두 갈래의 창.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이미 거기에 있었다.

       

       

       낫도 단두대도.

       

       

       그저 취향에 지나지 않을지니.

       

       

       이것은 미래의 거대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둔. 신조차도 스스로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벅찬 신기. 그런데 그것을, 고작 인간을 상대로 꺼내들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끝.

       

       

       그 의미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Bident

       바이던트

       

       

       명계는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계의 지배자는 죽음을 다스리는 동시에. 그 죽음부터 벗어날 수 있는 부활을 허락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

       

       

       죽음과 부활.

       

       

       그 무게를 짊어진 창의 끝이 아이작을 향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담담하게 검을 뽑아들었다. 상대가 더럽게 강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다.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가족을 지키는 것.

       

       

       그리고 이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니까.

       

       

       그러니까, 지킨다.

       

       

       一揮掃蕩

       일휘소탕

       

       

       血染山河

       혈염산하

       

       

       복잡한 신념도, 그 이상의 대의도 없는. 그저 순수한 의지가 담긴 섬광이  삶과 죽음의 무게조차 담긴 창끝을 가르며. 마침내 페르세포네의 심장에 닿았다.

       

       

       “……훌륭해, 이 정도면 세계를 지킬 수 있겠어.”

       

       

       언약을 어기고 신기 바이던트마저 꺼내들었건만. 마지막에 정면 대결에서 밀리고 말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드디어 인간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신이 풀려서 쓰러지는 페르세포네의 혼잣말에 아이작이 답했다.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다.”

       

       

       가족을 위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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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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