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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아주 오래전 일이다.

    23년이라면 엘프 기준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제 잊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집착하게 될줄은 몰랐다.

    결국 몬스터 상대가 대부분인 루크숲의 숲지기를 다시 시작 하고, 삶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런데도 아직도 TV만은 볼 수 없었다.

    혼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그때의 방송들이 떠오를것만 같아서.

    그래, 분명 그래서였다.

    루크를 처음 보았을때, 바로 카렌과 아이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도 수인이었는데.

    그래도 처음엔 그냥 시설에 인계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정을 붙이기 전에, 직접 선정한 아주 청렴하고 좋은 시설에 인계해 좋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랬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랬어도 퇴근할때마다 고아원에 한번씩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리 했겠지.

    그러나 수인화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우리의 시설은 그런 아이를 감당하고싶지 않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덕분에 예르나의 기준을 충족하는 극소수의 시설(자신에게 가까울 것, 시설이 좋을 것, 교육과정이 포함될 것, 운영이 청렴할것등의 기준이 있었다)도 끝내 포기해야했다.

    그래서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루크를 맡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에게 자신이 집착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루크는 귀엽고, 씩씩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고, 착하고, 똑똑한, 나를 잘 따르고, 잘 웃는 아이니까.

    분명 내가 돌봐도 괜찮을거야, 하고.

    안심한걸지도 모르겠다.

    나같은 여자도 아직 쓸만한 부분이 남아있구나,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구나.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끝이야.”

    그렇게 카리나, 그리고 예르나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이 이야기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말하면서도 이걸 말해도 될까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더랬다.

    그래서 이건 말하지 말자, 이것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 같은 생각으로 생략한 부분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 탓에 아이가 제대로 이해는 했을런지 모를 애매한 한풀이가 되어버렸으려나. 

    그리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루크는 그녀가 생략한 부분을 손쉽게 유추해냈다.

    “그런 게로군.”

    루크에겐 숨겨진 사정까지 사실상 다 말한것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알게된 그녀의 속마음에, 루크는 진지하게 말했다.

    “예르나.”

    “…….”

    예르나는 자신을 부르는 조용한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한마디도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루크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표정을 볼 용기가 안난다.

    거의 홀린듯 이야기하고 말았지만, 사실은 말하기 싫었다.

    이 얘기로 루크가 안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면…….

    예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원망할까?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이토록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을까.

    처음 털어놓을때는 분명 후련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다 말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한들…….

    내가 피곤해서 잠깐 미쳤던걸까.

    자신을 주무르는 손길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입을 열어버지리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었다.

    루크는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채 예르나의 손을 응시했다.

    굳은살이 즐비한, 전사의 손이었다.

    “예르나, 그대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게지.”

    진지한 루크의 물음에 예르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루크를 어떻게 생각했던가.

    이 아이에게 돈을 쓰고 돌보는 자신에 심취하고 있는것은 아니었나?

    그것을 건전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라고, 단언할 수 있었나?

    모르겠다.

    한번 의심이 생기니 그동안 자신이 루크에게 애정이 있기나 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예르나는 마치 마법주문처럼 말했다.

    “루크, 내가 잘못했어, 널 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도구처럼 사용했어. 나는……. 내가 미안해.”

    예르나는 사과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았다.

    카렌과 아이렌에게는 사과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루크에게 돈을 쓰고, 신경을 쓰고, 잘 해주는 것으로 나는 속죄를 바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죽은자의 대신이라니, 그런 끔찍한 이기심이었다니.

    질끈 감은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한다면 네가 날 떠나도 좋아. 그것도 도와줄 수 있어. 나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완전히 다른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을거야. 그럼 다신 날 보지 않아도 돼.”

    증인보호 프로그램은 이미 신청된 상태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잠적하고 새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분명 국가의 시설에서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떠나는 것으로 루크가 얻을 자유와 행복을 생각해봐도 역시 그러는 편이 좋았다.

    루크는 나같은 죄인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가를 훑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눈물을 닦은 후에는 손을 잡아쥔다.

    루크도 이 마음에 대한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는가.

    전쟁은 언제나 그런 끔찍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어느쪽을 희생시킬것인지, 어느쪽을 생존시킬 것인지.

    수많은 양자택일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희생된 이들은 당연히 모두가 어느 가정의 기둥이고 뿌리였다.

    그런 자들의 목숨이 가장 하찮게 변하는곳이 전장이다.

    따라서 어느쪽을 선택하든 사람이 죽는다.

    그런 끔찍한 선택으로 자기혐오에 빠져, 마법을 다룰 수 없게된 시기도 있었으니까.

    “예르나…….”

    루크는 그런 예르나가 안쓰러웠다.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직접 죽이지도 않았고, 그건 실수에 가까웠다.

    혼자서 그리 힘들어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네.”

    그녀가 이말을 몇번을 들었을까, 한번? 두번? 아니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번?

    아니면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부드럽게 쓸어주는 루크의 손길은 기분이 좋았다.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자신의 굳은살박혀 단단한 손가락을 꾸욱 꾸욱 지압하듯이 눌러주는게 마치 답답했던 가슴을 자극하는것 같았다.

    꽉 막힌 피가 녹으며 새롭게 펌프질되는 느낌.

    한동안 그 느낌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째설까, 답답함이 사라질수록 눈물이 흘렀다.

    마치, 녹은 얼음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예르나가 눈에서 흘리는것은 심장의 얼음이 녹은 물이었다.

    루크는 이제 손을 놓고는 일어나서 예르나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예르나는 머리를 감싸오는 작은 아이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

    한바탕 울음이 그치고, 예르나는 훌쩍거리면서 가슴을 추슬렀다.

    “이거, 좀 부끄럽네.”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게 오랜만이기도 하거니와, 아이한테 진심으로 위로받았다는게 이제와서 부끄러워지고 만다.

    그러고 있으니 또 어째서일까, 루크는 어찌 저리도 의연할까.

    자신을 향해 조그맣게 미소짓고있는 아이의 표정은 정말 티없이 맑았다.

    자신이 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게 맞는건가, 싶을 정도로.

    “하하하! 나를 여태까지 그런 눈으로 본 겐가!”

    하고 호탕하게 웃을때는, 오히려 예르나의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루크는 침대에 누운 예르나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말했다.

    “이제부터 내 걱정은 말게. 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자책해도, 그대가 얻는건 눈가에 내려앉는 피곤함 뿐이니. 그것은 결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잖은가?”

    “루크…….”

    예르나는 루크의 말에 조금 곤란한 느낌이다.

    평범하게 대해달라 말하지만, 루크는 자신이 봐온 어떤 아이들과도 달랐다.

    재능, 성격, 행동, 말투…….

    또래와 닿는것이 단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루크를 단순한 아이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래, 넌 그냥 아이들과 다르잖아.”

    비단 불우한 과거만이 아니다. 

    루크는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섞여들려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말투를 고집하고 있잖은가.

    루크 이루시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여전히 대마법사의 연기를 하고 있잖은가.

    “그런가.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다…….”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물론 자신은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다.

    같다는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그동안 스스로의 행동거지를 전혀 고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루크는 자신이 변하면, 분명 자신의 안에 있는 루크 이루시가 사라질거라고 생각했다.

    그 탓에 자신의 정체성의 변화를 거부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예르나에게는 고민과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말았구나.

    루크는 다짐하고 입을 열었다.

    “예르나.”

    “응, 루크.”

    루크는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모으며 발랄하게 말했다.

    평소같은 근엄한 말투가 아닌, 또래아이다운 경쾌한 억양으로.

    “더이상 내 걱정은 하지 마요. 보세요, 지금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구요?”

    “……응?”

    예르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루크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말, 루크의 입에서 나온거 맞아?

    루크는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저한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어요. 언제나 고마워요, 언니.”

    맙소사.

    예르나는 급기야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는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지금 나한테 언니라고 한거야?’

    언니, 이 무슨 울림인가……!

    누군가 시킨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직접 언니라고 부른건 처음이다!

    루크 이루시라는 껍질을 벗은 아이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잘 어울려서…….

    예르나는 결국 그 천사같은 목소리에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피곤함과 행복감과 안도감이 뒤엉켜, 마침내 제정신으로 그것을 버틸 수 없었으니까.

    ——–

    아이의 흉내라니, 마음만 먹으면 못할건 없다.

    자신이 또래아이답지 않아 걱정을 끼친거라면…….

    자신이 고치는게 맞다. 예르나가 은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

    그녀에겐 항상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언니.”

    라고 직접,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반응은 처참했지만.

    “흐에응…….”

    무슨 요상한 소리를 내며 기절해버리듯 잠든 예르나.

    루크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머리를 긁었다.

    “역시 난 이런데 별로 소질이 없나.”

    예르나가 자신의 연기를 듣고 기절해버리다니.

    그렇게 별로였던가.

    뭐 어떻든 일단 예르나가 잠들었으니 루크는 방에서 나온다.

    자신도 나름대로 생각할게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듣고보니 참으로 재밌군. 이야기를 들어봐도 정말 그럴듯해.’

    어떻게든 색안경을 끼고 오해를 하면 그렇게 되겠구나 싶다.

    만약 자신이 예르나의 입장이라도 그런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밝힐 필요는 없겠지.’

    인체실험은 실제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게 행한것이겠지만.

    그걸 지금 말해봤자 역효과밖에 없으리라.

    이 몸은 분명 ‘불사연구’에 대한 영향이겠지.

    ‘하하, 그럼 나는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이리 변한 모습은 자업자득.

    하지만 그리 생각하니 또 마음이 놓인다.

    나는 실패한게 아니었던것인가?

    ‘자그만치 5000년을 뛰어넘었으니.’

    이 몸은 자신이 만들기를 원하던대로 불사의 육체일까?

    만약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만든걸까.

    아직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이 몸의 변화에 큰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리고 고양이가 아닌 루크 이루시로서의 기억을 떠올려보았을때…….

    꿈속에 그 장소는 분명 마계의 숲이었다.

    “마계, 인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 사는 고양이가 평범한 고양이일리 없다.

    그리고 꿈속의 감각을 떠올려보면, 숲 자체가 내게 호의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평온하고 안락한 기분은 그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일반적인 야생동물에게 야생은 생존을 위한 전장이지, 한가로운 놀이터따위가 아니니까.

    ‘마계라는 실마리라도 생겼으니, 그쪽의 자료를 찾아보아야겠군.’

    그나저나, 이 시대엔 마계가 어떻게 기록되어있을까?

    호기심이 동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흐에응….

    딜 넣고 힐링은 국룰이죠…..

    루크의 저 언니라는 말과 한순간의 존댓말을 위해, 저는 연참을 땡겨온 것입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하얗게 불태웠으므로…. 내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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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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