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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신문부가 정식 동아리로 승인받을 수 있게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파스텔은 당당히 선언했다.

         

       “학생회는 학생을 위해 있으니까요!”

       “우린 학생회만 믿을게. 생활비를 아껴가며 운영하던 현실을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겠어.”

         

       부부장과 부원들이 감격해했다.

         

       아무래도 신문부는 가십거리를 주로 다루다 보니 학술지 발간 같은 귀족답고 명예로운 저술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런저런 후원을 받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럴 때 내가 딱 등장!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는 귀족처럼 수표를 빠라밤~!

         

       꽤 귀족다웠어!

         

       이 정도면 0.5 멜리사는 되지 않을까?

         

       게다가 게다가!

         

       바로 정식 동아리로 승인까지!

         

       정식 동아리가 된다면 학생회가 손수 예산을 집행해서 신문부가 바라는 종이, 잉크, 식비, 용돈 등을 줄 수 있게 된다.

         

       본래라면 이런 당연한 조치조차 교수진과 행정 직원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이젠 아니다.

         

       학교는 학생의 것.

         

       학교를 학생에게 주는 절차를 거친 지금은 학생회가 예산안 가결권을 포함한 많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

         

       정식 동아리?

         

       어렵지 않다.

         

       본래 학생회란 눈에 안 띄는 곳의 고충을 듣고 꼼꼼히 일해야 하는 법.

         

       생활비도 아껴가며 학생을 위해 활동하는 참된 언론인들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뿌드읏.

         

       파스텔은 마음껏 으스댔다.

         

       까치발까지 들어서 몸을 쭉 펴고 으쓱으쓱.

         

       신문부 부부장이 눈치를 보다가 의자를 손수 가져왔다.

         

       “여기 앉아.”

       “앗! 괜찮아요! 바로 학생회로 돌아가서 신문부를 정식 동아리로 만들게요!”

         

       파스텔은 꾸벅 인사하고 신문부를 나왔다.

         

       흥얼거리며 콩콩 뛰었다.

         

       “세상은 아름다워~.”

         

       빙그르르 회전.

         

       “갈등은 대화로 해결해요~.”

         

       양팔을 번쩍.

         

       “세상엔 착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오예.

         

       『하아.』

         

       마검으로 변해 있던 악마가 찝찝해했다.

         

       오잉.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으잉.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더 궁금해짐.

         

       마검을 받쳐 들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궁금해요 빔~.

         

       잠시 그러고 있으니 마검이 연기로 흩어지려다 말고 형태를 유지했다. 사람 모습으로 진지하게 대화할지 말지 고민한 듯한 모습이었다.

         

       『……됐다.』

         

       악마가 한숨을 쉬었다.

         

       『섭취한 존재의 격은 내면세계에 제대로 동화시킨 게 맞겠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수성과 금성 친구요?”

       『그래, 그 뭔지 모를 것들.』

       “당연하죠! 완전 태양계 가족이에요!”

         

       양팔을 펼쳤다.

         

       “너희는 모두 가족이야!”

       『그럼 됐다.』

         

       악마가 다소 안도했다.

         

       『사춘기가 온 모양이군. 단지 환경과 상황이 안 좋아서 삐뚤어진 건가.』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반항적인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보호자 같은 발언을 하시면, 하시며언.

         

       완전 충격.

         

       혹시 나, 사춘기?

         

       호르몬에 휘청휘청?

         

       으잉.

         

       아닌데.

         

       파스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아까 거울 앞에서 권력자라고 자칭한 걸 가지고 그러시는 거예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땡땡땡! 틀렸습니다! 사춘기가 아니라 그냥 평소 성격이에요! 전 원래 권력을 사랑하거든요!”

         

       맞아맞아!

         

       고개를 끄덕인 파스텔은 살짝 뚱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악마님 또 날 의심했어.

         

       “애초에 악마님이 저에 대해 뭘 아신다고 그러세요? 그런 식으로 남의 성격을 재단하니까 칙칙한 정장이나 입고 사시는 거예요.”

         

       맞아맞아.

         

       악마가 조용히 있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춘기가 맞군.』

         

       툴툴대느라 제대로 못 들은 파스텔은 멈칫했다.

         

       “뭐라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널 신경 쓰지 못한 발언을 사과하지. 앞으론 주의하마.』

         

       으잉.

         

       사과를 들었는데도 찝찝.

         

       “네, 뭐어.”

         

       파스텔은 입술을 삐죽이다가 고개를 휘젓고 걸었다.

         

       그러다 역시 찝찝해서 악마를 추궁하려 했지만 복도 저편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대화를 멈췄다.

         

       기다리자 멜리사가 걸어왔다. 한 손엔 신문부가 발행한 신문이 쥐어져 있었다.

         

       절친 등장에 파스텔은 반색했다.

         

       “멜리사!”

         

       양손을 들고 휘저었다.

         

       “날 만나러 와줬구나!”

         

       나의 힐링 팩터!

         

       꿀벌꿀벌 멜리사!

         

       마침 속상했는데 잘 왔어!

         

       멜리사가 파스텔을 발견하곤 움찔했다. 멈칫멈칫하더니 신문을 등 뒤로 숨기려다가 본인의 그런 행동 자체가 품위 없다고 생각했는지 포기했다.

         

       “파스텔, 마침 당신과 얘기하고 싶-”

       “멜리사아!”

         

       파스텔은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들어봐! 들어봐! 세상 모두가 날 의심해! 완전완전 의심해!”

         

       악마님까지도!

         

       꽉 끌어안겨진 멜리사가 괴력에 헛숨을 들이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법사는 파스텔을 힘겹게 밀어냈다.

         

       “앗, 미안!”

         

       멜리사가 옅은 기침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세상 모두가 당신을 의심한다고요?”

         

       파스텔은 울상이 됐다.

         

       “응응! 그거야! 그거! 진짜 모두가 내 마음을 의심해! 난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려 했을 뿐이고 일도 열심히 해서 성과까지 냈는데!”

         

       속상해하는 목소리로 마음을 펑펑 쏟아냈다.

         

       “다들 이렇게 돌변하면 아무리 나라도 서운하고 속상하단 말이야! 믿을 사람은 하나 없고 인기인인 줄 알았던 난 사실 외톨이었고!”

         

       인기인 아님 파스텔이라니!

         

       말도 안 돼애!

         

       머리를 부여잡던 파스텔은 휘청이다가 여린 눈동자로 멜리사를 바라봤다.

         

       그리곤 점점 밝게 웃었다.

         

       “하지만 괜찮아! 내겐 멜리사가 있으니까!”

         

       와아!

         

       나의 절친!

         

       악마님보다 믿을 수 있는 절친!

         

       파스텔은 멜리사의 손을 꼭 잡았다.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오늘도 함께 놀기 위해 날 찾아오다니! 정말 너밖에 없어!”

         

       반짝반짝.

         

       “그렇지, 멜리사?”

         

       멜리사가 움찔했다.

         

       “네, 네.”

         

       금색 눈동자가 은근히 시선을 피했다. 남은 손에 쥔 신문이 등 뒤로 숨겨졌다.

         

       “그럼요. 당신을 믿어요. 우린 친구잖아요.”

       “역시 멜리사야! 너만은 날 의심하지 않을 줄 알았어! 만약 너까지 의심했으면 정말 절망해서 쓰러졌을 거야!”

         

       흐윽.

         

       “아…….”

         

       멜리사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러더니 신문을 더 등 뒤에 숨겼다.

         

       오잉.

         

       “그런데 손에 든 건 뭐야?”

         

       멜리사가 눈동자를 떨었다.

         

       “별거 아니에요.”

         

       파스텔은 슬쩍 멜리사의 등 뒤를 확인했다. 멜리사가 황급히 몸을 돌려 신문을 숨겼다.

         

       “멜리사?”

         

       멜리사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보다, 티타임을 즐기지 않을래요? 당신이 벨라몬트 가의 쿠키를 맛있다 평가한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제가 그보다 더 맛있는 사과 쿠키를 준비해 놨어요.”

         

       허억.

         

       앨시어의 셰프가 만든 쿠키보다 맛있는 쿠키라니.

         

       “고마워 멜리사! 역시 너밖에 없어!”

         

       파스텔은 와락 끌어안았다. 멜리사가 움찔 떨다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틈을 파고든 파스텔의 손이 신문을 낚아챘다.

         

       “아앗!”

         

       놀란 멜리사가 다시 잡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떨어진 파스텔은 히히덕대며 신문을 펼쳤다.

         

       “별거 아니라니 볼게!”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문부가 창작했던 기사.

         

       후작 각하가 검은돈을 줘 신문부의 입을 막았다는 바로 그 날조 기사였다.

         

       어째서 멜리사는 이 신문을?

         

       그러고 보니 여긴 신문부로 가는 길목이었다.

         

       설마설마 멜리사는 날 의심하고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문부로 향하는 도중이었던 거야?

         

       허억.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충격받은 얼굴로 멜리사를 쳐다봤다.

         

       “멜리사……?”

         

       세상에서 유일한 절친이자 한순간은 악마님보다 믿었던 네가 나를?

         

       멜리사가 눈동자를 떨었다.

         

       “당신을 의심했던 게 아니에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그게.”

         

       본인의 거짓말이 우스운지 멜리사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시선을 피하더니 거짓말을 자백했다.

         

       “미안해요.”

         

       허어억.

         

       힘이 빠진 파스텔은 털썩 주저앉았다.

         

       “멜리사, 너마저……!”

         

       믿을 사람 한 명 없어어!

         

       멜리사가 굉장히 미안해하며 다가왔다.

         

       “기사를 읽고 의심이 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크래프트라는 것과 별개로 직접 당신의 밀무, 음. 가문 재건 활동을 대행해 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당신을 보니 그런 의심이 가시네요.”

         

       파스텔을 울상으로 올려 봤다.

         

       “정마알?”

       “네.”

         

       멜리사가 조심스럽게 신문을 가져갔다.

         

       “비합법적 재건 활동은 크래프트 가문이 원래 하던 일과 노하우가 있으니 당신의 성향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이런 건 다른 영역이잖아요.”

         

       신문을 펼치더니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기사였어요. 당신이 명예롭지 못하게 신문부의 입을 막거나 테러범과 똑같은 독극물을 제조하는 일을 할 리 없잖아요.”

       “응응! 맞아맞아!”

         

       파스텔은 완전 공감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멜리사야! 너밖에 없어!”

         

       그런데 완전히 믿어주는 것처럼 보이던 멜리사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거든요. 대답해 주시겠어요?”

       “얼마든지!”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 사령관의 후계자가 입을 열었다.

         

       “교내에 사병은 왜 들이셨나요?”

         

       시선이 마주쳤다.

         

       정적이 흘렀다.

         

       파스텔은 점점 눈이 동그랗게 됐다.

         

       “왜 그런 걸 물어봐? 앨시어랑 그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아? 그렇다면 너희 정말 화해하는 게 어때? 부끄럽다면 내가 주선해 줄까?”

       “네?”

         

       느닷없는 소리에 멜리사가 당혹스러워했다.

         

       고심하더니 자기 혼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앨시어 벨라몬트 때문이었나요.”

       “앨시어 암살 방지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휩쓸리는 무차별 테러잖아.”

         

       파스텔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고 정말 그렇긴 하지만 사안은 가리며 살아. 중요할 땐 정신 바짝 차린단 말이지.”

         

       바짝바짝.

         

       “아, 미안해요.”

         

       멜리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욕에 휩쓸린 줄 알았어요. 또 크래프트의 악명에 눈이 어두워졌네요. 미안해요.”

         

       파스텔은 방긋 웃었다.

         

       “오해할만해! 사과를 받아들일게!”

         

       멜리사와 팔짱을 꼈다.

         

       “오해도 풀렸으니 신문부는 갈 필요 없지? 내가 업무가 남아서 네 쿠키를 먹으러 가긴 그렇고, 오늘은 학생회실에서 가볍게 티타임 하자!”

       “그렇네요.”

         

       걸음을 옮겼다.

         

       룰루랄라.

         

       한참을 걷자 뭔가 긴장이 풀렸는지 멜리사가 살포시 웃었다.

         

       “다시 생각하니 민망하네요. 저속한 기사에 속아 넘어갔어요. 당신이 신문부의 입을 막거나 불명예스러운 독극물을 제조할 리 없는데요.”

       “그렇다니까!”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면 학생의 목소리를 막는 게 아니라 응원했겠지! 방금도 그러고 왔거든! 신문부가 너무 가난하길래 후원까지 해줬어! 이런 사람이 어딨어!”

         

       응응.

         

       “네?”

         

       멜리사가 홱 돌아봤다.

         

       금색 눈동자가 강렬하게 쳐다봤다.

         

       파스텔은 툴툴댔다.

         

       “다들 정말 너무해.”

         

       어느새 학생회실 앞에 당도했다.

         

       “그러고 보니 과자가 있을지 모르겠네.”

       “그보다 파스텔.”

       “응? 왜 그래?”

         

       파스텔은 학생회실 문을 열며 멜리사를 돌아보려 했다.

         

       문틈에서 노란 마비 가스가 흘러나왔다.

         

       어라라.

         

       화들짝 놀란 파스텔은 문을 벌컥 열었다.

         

       노란 가스로 뒤덮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와 더스틴이 여전히 쓰러진 채 엎어져 있었다.

         

       허억.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

         

       “아까 가스 터트린 다음 환기 안 하고 갔어어!”

         

       얘들아 미안해애!

         

       멜리사를 돌아봤다.

         

       “마법으로 환기를…….”

         

       매우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잉.

         

       “왜 그래 멜리사?”

         

       범죄자를 보는 눈빛.

         

       파스텔은 급격히 억울해졌다.

         

       내가 안 했어!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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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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