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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사이먼과의 승부가 성립됐다.

     

    황제를 알현한 직후 나는 사이먼과 함께 천황궁의 접견실에서 앰브로시아에게 설명을 들었다.

     

    “기한은 한 달. 심판은 소녀가 볼 것이오. 황명인 만큼 정당하고 공정한 심사를 약속하겠소.”

     

    앰브로시아가 땅땅, 성유물로 바닥을 두드리며 선언했다.

     

    “사이먼 군은 치유술, 고트베르크 군은 의학이오. 두 주치의는 현재 진행하던 정기 치유 및 응급 상황 외에는 주군께 추가적인 기술을 사용할 수 없소.”

     

    “주군의 건강상태는 어떻게 확인하는지요?”

     

    “좋은 질문이요. 권터 전하, 아셀라 전하, 앞으로 나와주시길 부탁드리나이다.”

     

    황명 아래 긴급히 불려온 권터와 아셀라가 앞으로 나섰다.

     

    “고작 내의원의 다툼 때문에 본녀의 게식시간을 뺏다니, 무엄해.”

     

    영문도 모르고 불려 나온 아셀라는 불만에 가득 차서 볼을 잔뜩 부풀렸다.

     

    “조금만 협조해 주세요. 파벌을 넓힐 기회입니다.”

     

    승자의 파벌이 해체 직전인 게오르크의 내의원 파벌을 흡수한다.

     

    인력은 이미 거의 1황자파로 넘어갔지만 2황자파가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 등의 비품은 상당한 고가다.

     

    무엇보다 사무실.

     

    1층의 200평짜리 사무실은 무엇보다도 탐나는 물건이다.

     

    “공자, 네 방침이 맞긴 했어. 게오르크가 남긴 자산은 남에게 뺏기느니 바닥까지 긁어 월광궁으로 가져와야 해.”

     

    “그럼 왜 화가 나셨어요.”

     

    “오늘 간식은 치즈케이크였단 말이야.”

     

    아, 치즈케이크. 황실 주방의 명물이지.

    그게 불만이었구나.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제도 타냐와 먹었을 텐데.

     

    “치즈케이크는 일주일에 한 번만 드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어제까지가 일주일, 오늘부터 새로운 일주일이야.”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왜 안 돼? 내가 오늘을 월광궁의 안식일로 하겠다면 하는 거야.”

     

    어린애도 아니고 희한한 떼를 쓰는 아셀라였다.

     

    아셀라는 유제품을 잘 소화하는 편은 아니기에 가능한 줄여야 한다. 하지만 황실 주방과 의사소통이 아직 잘 안 된다.

     

    “그럼 판정 방법에 관해서요.”

     

    앰브로시아가 성서를 펼치며 성유물을 한 바퀴 크게 돌렸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며 있는 힘껏 성유물을 휘둘렀지만 키가 작아서 겨우 권터의 턱까지 올까 말까였다.

     

    “앗차차, 실례.”

     

    그조차도 무거웠는지 균형을 잃고 콩콩 넘어질 뻔했다.

     

    쩝쩝 입맛을 다시는 앰브로시아.

    황제의 1주치의로서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악!

     

    깨끗한 구체를 만든 그녀의 신성력이 퍼지며 권터와 아셀라를 감쌌다.

     

    곧 두 사람의 앞에 각자 홀로그램처럼 나무줄기의 모양이 떠올랐다.

     

    “호오.”

     

    사이먼이 가볍게 감탄했다. 지금 그녀가 쓴 스킬은 신성 주문 계열에서는 꽤 고급이다.

     

    “과연 자매님, [회로투영]을 사용하실 수 있군요. 역시 커다란 신성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흠흠, 소녀가 좀 커다랗지.”

     

    내 칭찬을 들은 앰브로시아가 가슴을 쭉 펴며 으쓱해했다.

     

    치유술이라 하면 보통 치유주문 전반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치유주문은 신성주문 범주에 속한다.

     

    화염마법이 원소마법 계열로 분류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로운 버프를 제공하는 축복도 신성주문의 한 계열이다.

     

     

    앰브로시아가 지금 쓴 스킬은 유틸계열의 신성주문이다. 전투용 스킬은 아니기에 내가 배워본 적은 없다.

     

    상당한 신성력을 소모하는데, 앰브로시아가 내의원에서 최고의 실력을 지녔음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셀라에게도 통했다. 지금의 아셀라의 마법보다 앰브로시아의 신성주문 경지가 높다는 뜻이다.

     

    머지않아 역전되겠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권터 전하, 아셀라 전하 두 분의 마력회로입니다.”

     

    “흐응.”

     

    아셀라의 마력회로는 촘촘하고 복잡하게 전신을 도배한 형태다.

     

    다만 흐르는 마나가 막힌 혈이나 뭉친 자리가 많이 보인다.

     

    “나는 뭐가 좀 적은데….”

     

    권터의 마력회로는 확실히 아셀라보다 얇고 조금 갈라졌다.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뜻이다.

     

    “두 분의 마력회로에서 마나가 흐르는 모습은 방금 소녀가 기록했사옵니다. 한 달 후 현 시간, 마나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더 활달해진 분의 주치의가 승리합니다.”

     

    “이해했습니다, 자매님.”

    “이견 없습니다.”

     

    사이먼 역시 동의했다.

     

    “사이먼군, 고트베르크군. 기록의 객관성은 여기 있는 부주치의들이 검증해줄 것이오. 공정성은 맡겨주시오.”

     

    “의심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성품도 내의원의 꼭대기에 올라서 계신 자매님의 판단이시니 믿고 따르겠습니다.”

     

    “흐흐, 좋소. 참고삼아 물어보겠는데 두 분은 어떤 방법을 주군께 쓰실 생각이오?”

     

    “신성주문엔 치유주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이먼이 앞으로 나서서 자신 있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제가 내의원에 스카우트 된 것은 치유주문은 물론, 모든 신성주문을 일류로 사용하는 이단심문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오. 알베리치가 데려왔지.”

     

    “악마도 추종자도 신성한 불꽃을 꽂아 버리면 불타 죽습니다.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해하는 병마는 악마와 같습니다.”

     

    ―화악!

     

    사이먼이 손에서 신성력을 불태워 보였다.

     

    “병마 역시 불태운다면 사라질 것이 분명! 전하를 괴롭히는 악마를 토벌한다면 앞으로 자신감도 더 생기실 것이 분명합니다!”

     

    “어, 으응?”

     

    사이먼의 발언에 권터가 어깨를 움츠리며 쭈그러들었다.

     

    아무래도 사이먼은 권터에게 대 악마 주문으로 마사지라도 해줄 생각인가 보다.

     

    “사이먼, 그게 맞아?”

     

    “전하, 저만 믿으십시오.”

     

    “그래…?”

     

    권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께름칙하지만 이견이 있지도 않다.

    강단이 없는 남자였다.

     

    “흐음, 생각해본 발상은 아니로군. 기대는 해보겠소. 고트베르크군은?”

     

    “아셀라 전하의 간식 시간을 방해한 사죄의 의미도 올릴 겸, 정찬을 직접 준비하고자 합니다.”

     

    “오호라, 정찬을?”

     

    내 발언에 여태 지루해하던 아셀라도 눈썹을 치켜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궁금하시다면 자매님도 함께 어떠십니까? 내일 저녁은 월광궁에서 함께하시지요.”

     

    “으음. 그때라면 마침 교대할 시간이긴 하오. 그리 권유한다면 내 들러보겠소.”

     

    탕탕, 앰브로시아가 성유물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럼 한 달 후에 뵙겠습니다. 권터 전하, 아셀라 전하, 강녕을 빌겠사옵니다.”

     

    앰브로시아의 승부 개시 선언에 모여있던 인원들이 해산한다.

     

     

    월광궁으로 발걸음을 돌리던 아셀라가 나를 향해 물었다.

     

    “공자, 요리도 할 줄 알았어?”

     

    “어떨 것 같으세요?”

     

    아셀라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눈동자를 하늘로 향했다.

     

    뭔가를 상상하는 모양이다.

     

    “어울리네.”

     

    “뭐가요?”

     

    “맛있는 거 해줄 거지?”

     

    “기대하세요.”

     

    아셀라는 가볍게 턱 끝을 까딱이고는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 파벌 구성원들을 향해 손뼉을 한 번 쳤다.

     

    “다들 들었지? 바로 준비 시작하자고. 클로에, 요리 할 줄 알아?”

     

    “어읍… 빠, 빵에 소금 친 것도 요리로 쳐 주시나요?”

     

    “빵을 구울 줄 알면.”

     

    “몰라요….”

     

    “잡무, 설거지, 청소 담당으로 가고. 여기 재료 써줄 테니 내일 정오까지 구해와. 슈프레 상단에 주문부터 하고 나머진 기사들하고 채집해.”

     

    “네, 네엡!”

     

    클로에가 앞머리 커튼이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 자네는?”

     

    “이유식이라면 꽤 합니다. 에리를 요리해서 먹여야 했으니까요.”

     

    “오케이. 자네가 보조 맡아. 나랑 같이 연습 들어가고. 타냐.”

     

    “예.”

     

    “아셀라랑 간식 자주 먹지?”

     

    “황녀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부르십니다.”

     

    아주 절친 다 됐네.

     

    “아셀라 입맛은 꿰뚫고 있겠어.”

     

    “물론입니다.”

     

    타냐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내가 아는 10년 후의 아셀라는 치즈에 포도주만 주로 즐기곤 했다.

     

    지금 입맛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타냐의 도움을 받는 게 정확하다.

     

    “단장이 시식 담당을 맡아. 실시간으로 재료를 맛보고 우리에게 어드바이징을 해.”

     

    “맡겨만 주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만, 정말 요리로 황녀님의 마나 흐름을 호전하는 게 가능합니까?”

     

    타냐의 질문은 일리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영양소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난다, 배가 고프면 굶어 죽는다, 하는 본능에 의한 개념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식재료는 밀과 고기야.’

     

    민중은 밀을 먹고 돈이 많은 황실은 고기가 주식인 게 상식이다.

     

    실제로 나도 끼니마다 스테이크 한 덩이와 소금, 버터가 나올 때가 대부분이다.

     

    “마력회로는 혈관이나 다름없어. 영양소가 골고루 보급되면 호전돼.”

     

    “영양소! 비타민 같은 미네랄 말이군요.”

     

    이미 내게서 의학을 배우고 있는 클로에는 바로 이해했다.

     

    “폐하만 해도 콜레스테롤 과다야. 그 나이에 육류만으로 식단을 구성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지.”

     

    이건 전부터 조정하고 싶었던 부분이지만 황족의 식사는 황실 주방에서 담당하기에 조율이 연기되고 있었다.

     

    이번에 황명을 빌미로 아셀라의 식단은 확실히 체계를 정립하려 한다.

     

    “그럼 황녀님께 어떤 음식을 제공하실 생각입니까?”

     

    “아셀라는 풀을 좀 먹어야 해.”

     

    “풀… 야채 말입니까?”

     

    휴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만도 했다. 흔한 야채인 당근이나 양파 같은 건 여물로 쓰는 게 대부분이고, 돈이 많은 귀족 위로는 잘 안 찾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맛도 없고, 먹어도 힘이 안 나니까.

     

    귀족은 비싼 걸 먹어야 폼이 나기도 하고.

     

    “황녀님께서 좋아하실까요.”

     

    “만들어 봐야지. 그러니까 단장이 먹어보고 판단해 봐.”

     

    내가 휴고와 타냐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움직이자고. 시간이 별로 없어.”

     

     

     

    ***

     

     

     

    다음 날.

     

    쾅!

    황실 주방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소리가 울렸다.

     

    바쁘게 음식을 요리하던 요리사들이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린다.

     

    구석, 월광궁이 임대한 조리대에서 타냐가 사룡을 상대할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휴고 치유사! 지금 이따위 음식을 황녀님께 내갈 생각이십니까? 이 연어는 덜 익다 못해 날것이라 강에 풀어주면 당장이라도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선생님, 분명 인삼인지 뭔지가 건강식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쓴맛을 버티지 못해 입에 넣자마자 뱉었습니다만, 땅바닥이 건강해진다는 뜻이셨습니까?”

     

    타냐의 폭언에 라스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이, 그 정도는 아닌데.’

     

    아셀라의 건강을 보양할 약선음식을 만들던 라스였지만 벽에 부딪쳤다.

     

    재료를 간신히 구한 건 좋았지만 대부분의 약선음식이 발효나 숙성 등 오랜 조리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생략되었으니 맛이 없다.

     

    심지어 타냐는 생각보다 입이 정확했다.

    항상 아셀라와 간식을 즐긴 탓이다.

     

    ‘씁, 어쩔 수 없지.’

     

    라스가 씁쓸하고 밍밍한 인삼구이에 대고 스킬을 시전했다.

     

    “성질변화. MSG 최대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FT_360님 후원 감사해요! 안노용을 읽어주실 때 상병이셨는데 이제 전역이시네요, 축하드려요. 고생하셨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 D

    크림씨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드아! 하루만에 정주행해주셨다니, 너무너무 듣기 기쁜 말이네요! 이제부터는 매일매일 갑니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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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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