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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브왈레의 선언에 홀 안은 벌집이 떨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입장료 무료.

       그것은 공연 업계의 오래된 화두 중 하나였다.

       

       좋은 쪽으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 것은 아니었다.

       재주꾼들을 착취하고 공연을 망치는 상술로 악명높았다.

         

       “입장료가 무료가 되면 공연은 저질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늙은 마술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의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의 곡예사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쾅 치며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맞아요! 지나친 할인은 공연의 가치를 떨어트립니다!”

         

       입장료 무료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쪽은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 상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몇 년을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재주만 익혔지 세상 물정에는 어리숙했던 곡예사들.

       계약서의 딱딱한 조항들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오, 글 자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저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뭣도 모른 채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렇게 상단은 재주 부리는 곰들을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다.

       상인들이 그들을 착취한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가 바로 ‘입장료 무료’였다.

       

       당시 상인들은 ‘입장료 수입의 몇 퍼센트를 공연자에게 지급한다.’라는 조항으로 곡예사들을 유혹했다. 그런데 정작 장터나 여관에 도착해 공연에 들어가면 ‘입장료 가격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설정한다.’라는 조항을 구실로 뻔뻔하게 무료입장을 내걸곤 했다.

         

       입장료 수입이 없으니 계약에 따라 곡예사들은 돈을 정산받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공연을 거부하면 상인들은 계약서의 중도해약금 조항을 들이밀며 협박하거나, 어쨌든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냐며 살살 구슬렸다.

         

       그렇게 많은 재주꾼이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곳 옆에서 공짜로 재주를 펼쳐야 했다.

       보수는 침대와 3끼 밥, 가끔 수고비 명목으로 주는 몇 푼뿐이었다.

       상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착취였다.

         

       차라리 공연이라도 제대로 하게 해줬다면 예술혼이라도 불태우며 자신을 달랬을 것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그 영역마저 침범해 들어왔다.

         

       손님들이 지루해하는 부분은 건너뛰고 극적인 부분만 하라고 독촉을 한다든가, 대본 작업에서부터 간섭해 불필요한 노출이나 활극을 강요한다든가, 공연의 제목이나 공연자의 예명을 자신이 파는 주력 상품의 이름을 붙여 선전하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활동하는 업계 인물 중에도 별명에 그들의 과거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술사 ‘이그나이트’는 성냥에서, 차력사 ‘빅풋’은 구두 덧신에서, 곡예사 ‘바리캉’은 잔디 깎는 가위의 상품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상인들의 그러한 횡포에 영향을 받은 것은 계약 당사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때문에 지역의 놀이마당이나 극장들도 경영난에 빠져야 했다.

       돈 안 내도 여기저기서 공연을 볼 수 있으니,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상설 공연장을 찾지 않는 것이다.

         

       질소 비료의 개발과 농업 생산량의 증대,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생산 수단의 발전, 자영농의 몰락과 급격한 도시화.

       온갖 복합적 요소가 겹쳐지면서 나타난 산업 혁명 과도기의 노동력 착취 현상은 공연계도 빗겨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재주꾼들에게 배고프고 고달픈 시절이었다.

       

       그나마 20년 전에 서커스 그랑프리를 통해 곡예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업계 사정을 공유하고 불공정계약에 대한 타도를 부르짖고 단체 행동에 나서면서 부당 대우는 많이 줄게 되었다.

         

       초대 서커스 그랑프리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축제라기보다 배우, 가수, 광대, 재주꾼들의 단합대회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나이 든 사람들이 무료입장에 대해 가지는 반감이 큰 것은 당연했다.

       상황이 개선된 현재도 편견이 심했다.

       그들은 무료 공연을 (관객 수) X (입장료)로 명확한 매출이 잡히지 않아서 상인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제도로 봤다.

         

       어수선한 시장바닥에서 가림막도 객석도 없이 행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맥락도 없는 재주와 연기를 남발했던 부끄러운 시절이 떠오르는 건 덤이다.

         

       그러나 젊은 곡예사들의 생각은 그들과 많은 면에서 달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떠돌이 행상과 함께 나타난 유랑 서커스는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거리였다.

         

       대중문화가 태동하던 초기의 상설 극장은 귀족 문화에서 내려와 지나치게 고상하거나 유흥가에서 시작되어 지나치게 퇴폐적인 두 가지 경향성을 띠었다.

       그렇기에 초기 극장의 공연들은 대중성이 모자랐다. 비싼 입장료는 그러한 진입장벽을 한층 더 두껍게 만들었다.

         

       반면 무료 서커스는 개방된 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즐기기 쉬우면서도 흥겹고 즐거운 것 위주로 공연되었다.

       상인들은 공연의 예술성을 보는 눈은 모자랐지만, 상업성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통찰했고, 공연자들에게 그것을 요구했으며, 덕분에 서커스는 대중들에게 점점 사랑받으며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서커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궁정 광대로, 연회의 재인으로, 귀족들이 즐기는 오페라와 연극의 배우로 일했던 기억이 있는 업계 원로들은 치를 떨겠지만, 상인들은 서커스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젊은 곡예사들이 기억하는 무료 서커스는 그런 것이었다.

       그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렸을 때 어떤 재주를 보고 감명을 받아 서커스를 동경하게 되었는지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다.

         

       연체술사가 되기 위해 약장수들이 파는 마법의 식초를 구매해 마시다 배탈이 나거나, 불꽃술사를 흉내 내기 위해 몰래 화약을 만들다 그만 집에 불을 낸 일화는 술자리의 단골 안줏거리였다.

         

       또, 젊은 곡예사들이 나이든 선배들과 다른 점은 바로 데뷔할 당시의 환경이었다.

         

       그들이 재주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는 곡예사들의 대우가 과거와 비교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초대 서커스 그랑프리 덕분에 곡예사들의 처우는 상당히 개선되었고,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서 많은 베테랑이 사망하면서 재주꾼들의 품귀 현상이 나타난 덕분에 곡예사들의 몸값이 몇 배로 치솟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제안받은 입장료 무료 공연은 대부분 합당한 보수와 대우가 약속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기에 무료 공연에 대한 두 집단의 의견 차이는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젊은 곡예사들이 고생을 덜 했고 배부른 시절을 보낸 것은 맞았다.

       그러나 늙은 곡예사들이 가지는 막연한 반감과 적대적인 태도도 발전적인 것은 아니었다.

         

       브왈레는 이 모든 논의를 즐겼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장미 풍차의 역사 자체를 논하는 것과 같았다.

         

       창관을 좀 더 건전한 예술 극장으로 개조하길 원했던 귀족.

       극장의 수익 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고 싶었던 상인.

       공연계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길 원했던 예술가.

         

       3명의 뜻이 일치하면서 탄생한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각각 소유주 무스탕 후작, 경영자 브왈레, 총감독 마로이네를 뜻하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브왈레는 ‘Free to Enter, Pay to Enjoy’를 시험 주제로 정했을 때부터 이 모든 논란을 예상했었다. 그는 이미 내일 신문에 실을 용도로 이 주제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카바레의 역사를 곁들여 상세한 설명글을 준비해 두었다.

         

       잘 선전된다면, 무스탕 후작은 창녀들을 데리고 다니는 포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안목 있는 공연예술계의 선지자로 이름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소란을 잠재우는 게 우선이겠지만.

         

       “아예 대놓고 술을 팔겠다고?”

       “그게 접대부지 곡예사냐?”

       “키르쿠스가 노할 노릇이고.”

       “이런 건 서커스가 아니야!”

       “서커스 그랑프리도 그 취지가 변질했군! 원래는 공연예술인들의 권익을 위해 움직여야 하거늘!”

       “망할 상인 놈들이 대회를 명목으로 다시 우리 목을 죄려고 하는구나!”

         

       목소리가 큰 것은 당연히 나이든 곡예사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한 서커스단의 단장이거나 원로에 베테랑이었기에, 반대 의견을 가진 젊은 곡예사들이 자유롭게 반박을 하기 힘들었다.

         

       결국에 소란은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가 등장함으로써 가라앉았다.

       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겁나나?”

         

       둥근 알의 선글라스를 쓴, 작대기처럼 깡마른 노인이 좌중을 훑어보자 홀 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만큼 마로이네가 업계에서 가지는 카리스마는 막강했다.

         

       “내가 카바레의 감독으로 들어갔을 때는 많은 사람이 비웃었지. 늙은 마로이네가 망령이 들어서 술 따르던 여자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친다고 말이야. 놈들은 내 도전을 비웃었어. 분명 여기도 몇 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로이네가 몇 명을 특정해서 노려보자 그들은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어떤가?”

         

       그는 지팡이를 든 손을 쫙 펼치며 외쳤다.

       그렇게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저께 개막식에서 봤지 않나? 나의 말년을 쏟아부은 ‘캉캉’을. 그것이 단순히 여흥을 안주로 삼아 파는 술장사라고 말할 수 있겠나? 흥. 황실 극단의 늙은이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가 있었던 자리에 안주했다면 결코 그런 걸 만들지 못했겠지.”

         

       그는 지팡이를 마치 검처럼 치켜들고는 곡예사들을 죽 훑었다.

         

       “어떤가? 너희들도 그 자리에 안주하며 있는 재주로 놀고먹는 게 목적이 아닌가? 무료 공연은 제대로 된 게 아니라는 식으로 떠들어대며, 패배했을 때를 대비해 변명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과연 너희들이 하는 게 서커스가 맞냐! 위대한 키르쿠스 앞에서 ‘나 춤추다 왔소!’라고 외칠 수 있겠냔 말이다! 이 소시민 새끼들아!”

         

       그의 말은 도발적인 동시에 곡예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었다.

       가장 먼저 무료 공연에 반발심을 표했던 늙은 마술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마로이네! 누굴 보고 소시민이래! 한 번 뒤에서 씹었던 거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곡예사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쾅 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 춤추다 왔소! 하하, 그거 좋습니다. 장난 같은 과제 같지만 어울려서 춤춰 드리지요!”

         

       그렇게 단장들은 하나둘 무대를 향해, 다른 테이블을 향해, 각자의 단원들을 향해 나름대로 결의를 표명했다.

         

       “꼬끼오! 가자! 하하! 우리가 이 예선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려보자!”

         

       물론 가장 큰 목소리를 자랑하는 것은 수탉 미노바의 것이었다.

       그는 붉은 볏을 흔들며 단원들을 독려했다.

       주변에서 목소리 좀 낮추라는 타박이 들어왔다.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이 앉은 테이블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조용했다.

       스벤과 유라크네가 다른 서커스단 사람들을 둘러보며 속닥거렸고, 엘라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옆에 앉은 단장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때? 자신 있어? 이거 단원들이 대본만 열심히 익힌다고 해서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엘라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물론이지요.”

         

       엘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 무대에 서본 적도 없잖아.”

       “있는데요?”

         

       그의 당당한 태도에 엘라는 수상쩍은 듯 눈가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몇 명 앞에서? 100명은 돼?”

         

       그는 엘라의 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1000명?”

       “아뇨.”

         

       그는 잠시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3만 명이요.”

       “미친. 그런 무대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일축한 엘라는 고개를 휙 돌렸다.

         

       이 인간이 또 사람을 가지고 놀리네.

       3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이 어디 있어.

         

       그렇게 행사의 다음 진행을 지켜보던 그녀.

       그때, 그녀는 문뜩 그런 곳이 한 곳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도시 히포드롬.

       그곳에 있는 공중극장 원더스테이지.

         

       17년 전에 테러로 무너졌다가, 최근 들어 재건되어가고 있다는 그곳.

       그곳의 수용 인원은 몇만 명이 된다고 들었다.

         

       설마……

         

       그때, 브왈레가 이번 시험의 조 추첨을 하기 위해 각 서커스단마다 한 명씩 위로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드디어!

       엘라의 머릿속에서 원더 스테이지에 대한 생각은 금방 지워졌다.

         

       시작되는 건가?

       원더스타인도 자신의 트위치 생방송 최고 시청자 수가 얼마였던가 떠올리던 것을 그만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예화 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드디어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제 키보드로 편하게 글 쓸 수 있겠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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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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