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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 * *

       

       

       

       아르투어 치머만.

       

       이 사람 외교장관 사임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치머만 전보 사건이었지.

       

       무려 멕시코에게 미국 치면, 잃어버린 고토 회복시켜주겠다. 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 미국을 협상국으로 참전시킨 이유 중 하나가 된, 인물.

       

       동프로이센으로 갔다가, 지금은 대사로 파견된 모양이다.

       

       독일제국.

       

       동프로이센 하나만 가지고 독일제국이라. 크흠.

       

       그냥 거의 잔존세력이나 동프로이센 왕국으로 불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간에 이 자는 내 앞에서 온갖 기름 발린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 쪽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게 대단하다.

       

       

       “잘도 살아계셨군요.”

       “예?”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동프로이센에 이런 양반이라도 써야 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겠지. 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역시 폴란드는 독립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우리 독일제국의 카이저께서는 폴란드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시고 독일제국은 러시아의 편에 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폴란드가 뭔 일 저지르니 바로 이러는 것 봐.

       

       카이저 역시 폴란드를 믿지 못한다는 거겠지.

       

       지금이야 협력하고 있지만, 있지도 않을 미래 같은 거 말이다.

       

       예를 들면, 공산 독일을 때려잡은 폴란드가 독일을 다 먹어 치우지 않을까. 빌헬름 2세는 그 점도 좀 걱정하고 있겠지.

       

       

       “귀국의 카이저께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방공협정에 관련해서 저희 카이저께서는 긍정적으로 여기고 허락만 해준다면 직접 모스크바까지 와서 양국의 미래를 논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아. 그거 좋죠.”

       

       

       어쨌든 너희는 공산 독일을 무너트릴 중요한 패니까 말이야.

       

       독일의 정통성, 히틀러의 오스트리아가 빈주도로 독일을 통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프로이센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역량으론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닌가?

       

       카이저 씨가 나중에 북독일이라도 건져야지. 안 그래?

       

       치머만은 한참을 나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속 보인다. 이 자식아.

       

       내가 독일대사를 접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말 많은 동네 아줌마와 대화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겨우 대사를 돌려보낼 무렵.

       

       총리가 귀찮은 얼굴로 나타났다.

       

       

       “폐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런 얼굴인가.

       

       채점 또 하라 그러면 나 죽을 거 같은데. 오답 노트는 이제 스스로 해라.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께서 알현을 청했습니다.”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니콜라이 2세의 사촌 동생. 결국, 아나스타샤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

       

       그 인간은 본래 2월 혁명이 터지고 러시아 임시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고 니콜라이 2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물론 니콜라이 2세가 그만큼 인복이 없고, 니콜라이 2세 본인도 군밤왕 급에 결국 본인이 혁명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어쨌든 그 인간의 딸이자, 차리나가 된 아나스타샤로서는 로마노프의 뒤통수를 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니콜라이 2세도 죽고 니콜라이 2세 다음 차르로 여겨지던 미하일도 죽으니 도망친 주제에 황제라고 선언했지.

       

       그래. 그놈도 내가 오흐라나를 보내 블라디미르 관련해서 적당히 조율해봤거든.

       

       여기저기 망명해보려다가 백계 러시아의 상황을 보고 다시 핀란드로 온 것 같은데. 내가 그 아들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알렸으니, 그놈도 뭔가 바라는 것이 있을 거다.

       

       

       “자기 자식 때문이겠군요.”

       

       

       슬슬 그 인간도 정리를 해야겠지.

       

       

       

       * *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혁명으로 러시아가 뒤집어지자마자 핀란드로 떠나버린 니콜라이 2세의 사촌 동생.

       

       그 이전에는 2월 혁명에서 니콜라이 2세를 뒤통수를 치고 임시정부에 충성했던 인물.

       

       그는 적백 내전에서 백군이 승기를 잡으면서 핀란드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자식이 차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럼 최소한 자신의 권위는 아나스타샤가 보장해 주지 않을까?

       

       물론 아나스타샤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아나스타샤의 건강을 생각하면 아마 따로 후계자를 정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 예상대로 아들인 블라디미르를 후계자로 삼겠다며 오흐라나를 보내왔다.

       

       차르의 제위는 아나스타샤 때문에 무리일지라도 아들이 차르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몸을 생각하면 그리 오래 그 자리에 머물지 않을듯하고.

       

       심지어 콘스탄티노플마저 회복했다.

       

       아마 이건 내전에서 정예화된 백군의 장군들이 차르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한 모양이다.

       

       이 정도라면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분위기가 냉랭한 것을 느꼈다.

       

       그를 환영하는 사람. 아니, 로마노프 황실 자체를 환영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러시아는 오로지 아나스타샤를 찬양하는 목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심지어 한때는 군에 몸담았던 몸으로서 백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했더니 백군에서조차 그를 찬밥 취급을 했다.

       

       확실한 것은 백군부에서도 아나스타샤를 칭송하며 군부 자체를 아나스타샤가 휘어 잡고 있다는 것.

       

       니콜라이 2세의 사촌 동생으로 그는 현재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분명히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를 후계자로 삼았고, 심지어 이제는 로마노프 황실을 수호하는 비밀 조직이 되어버린 오흐라나에서 직접 데려갔다.

       

       그럼 자신을 이런 취급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차리나인 아나스타샤를 알현하기로 했다.

       

       이건 해야만 했다.

       

       적어도 아나스타샤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명색이 백군의 상징으로 취급되는 몸이니 아나스타샤가 말만 해준다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아나스타샤를 볼 수 있었지만. 그녀는 키릴을 냉랭하게 쳐다봤다.

       

       

       “아나스타샤.”

       “당신은 차르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까?”

       “뭐?”

       

       

       아나스타샤가 원래 이런 애였나?

       

       키릴대공은 처음 접해보는 아나스타샤의 행동에 살짝 당황했다.

       

       원래 이랬던 애인가. 아니, 뭐 내전을 겪었으니 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러시아를 대표하는 두마에서 직접 선출된 차르입니다. 어째 차르에 대한 조금의 존경도 없습니다만.”

       “크흠.”

       

       

       보지 않은 사이에 차르의 자리에 올랐다고 정말 많이도 변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 했나.

       

       군부가 차르로 내세워주니 뭐라도 된 것처럼 아나스타샤는 무표정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

       

       

       “2월 혁명 때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신 분의 귀국을 다시 허락해 줬더니 뭔가 바라는 것이 더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아니, 내 아들을 후계로 삼는다고.”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도 뭔가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로마노프 황실의 부활을 위해 황실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상 지금 땅에 떨어진 황실의 권위를 세우려면 아나스타샤가 도와줘야 하는데. 왜 비협조적인가?

       

       

       “그렇죠. 후계로 삼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게 당신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아니죠. 아버지를 배신하더니 왜. 조카의 자리가 탐나십니까?”

       “아.아니, 그러려던 것이.”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동자를 굴렸다.

       

       한참이나 어린 조카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이상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얼굴 마담만 차르인 줄 아시나 본데. 아닙니다. 저는 키릴 대공께서 핀란드에서 놀고먹을 때, 병사들과 함께 직접 내전을 뛰었다 이 말입니다. 합중국 신민. 아니, 국민은 로마노프에 대한 존경은 내 아버지 대에 끊었습니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제 대에서 신로마노프라고 해야겠군요.”

       “그.그럼 내 아들은.”

       

       

       황실의 권위가 그 정도로 땅에 떨어졌으면, 블라디미르는 어떻게 되는 건가?

       

       설마 블라디미르를 죽이려는 것인가?

       

       자기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설마 그건 아닐 것이다.

       

       

       “후계로 삼을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키릴 대공께서 어떠한 특혜도 권력도 바라셔서는 안 될 겁니다. 황위는 말할 것도 없죠. 오로지 내가 선택한 후계자만이 합중국 국민의 존경을 받을 겁니다.”

       “내 아들이야!”

       

       

       키릴 대공은 흥분해서 소리쳤으나, 아나스타샤는 여전히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벽안의 눈동자로 키릴 대공을 응시했다.

       

       

       “블라디미르도 진실은 알아야죠.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지금까지의 로마노프 황실이 얼마나 무능했었는지. 앞으로 황실이, 차르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전부 알려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들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칠 속셈인가.

       

       

       “그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그래도 호의호식하며 살게는 해주고 있었는데, 흠. 뭐 좋습니다. 다른 선택지를 드리죠.”

       

       

       그래. 그래야지.

       

       이제야 그래도 뭔가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겨우 이제야 아나스타샤와 말이 통한다고 여겼으나, 이내 아나스타샤는 품에서 총 한 자루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하나는 총이고 하나는 저 밖에 있는 대포입니다.”

       “내게 군대의 지휘권을 주겠다는 건가?”

       

       

       뭘 그렇게 알아듣냐는듯,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다른 이야기를 했나?

       

       

       “저는 제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언니들과 동생 알렉세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압니다. 바로 앞에서 볼셰비키들이 참혹하게 처형했죠.”

       “그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군.”

       

       

       키릴 대공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설마하니 차르 일가가 그렇게 당할 줄은 키릴 대공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차르 일가가 처형되고 자신들도 그렇게 될까 봐 부랴부랴 핀란드로 망명한 것이었지만.

       

       

       “네. 그래서 모스크바를 탈환하고 볼셰비키 지휘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되었나?”

       

       

       그래. 그건 좀 궁금하다.

       

       차르 일가를 죽였던 놈들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간 백군을 고생시킨 탓에 백군은 볼셰비키를 극도로 증오했습니다. 해서 도망가다 잡힌 볼셰비키 장교든, 항복한 볼셰비키든 간에 전부 길거리에서 총살당했죠.”

       “그.렇군.”

       

       

       그런데 그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옛날이야기를 하며 죄책감이라도 느끼라고 이러는 것일까?

       

       뭐 그렇다면야 장단 맞춰주면서 고개를 숙여주는 것도 어려울 건 없다.

       

       

       “레닌과 그 일당들. 그러니까. 볼셰비키 정권의 주역들. 내 아버지를, 어머니를, 형제 자매를 죽인 그들은 재판조차도 사치라 그대로 포살형에 처했습니다. 한번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영국이 인도 반란군을 대포로 죽인 것을요. 그걸 그대로 선보였죠.”

       “그.그럼.”

       “총살이 좋겠습니까. 포살이 좋겠습니까. 죽을 자리 정도는 결정하게 해드리죠.”

       

       

       그저 간단한 것을. 너무 당연한 것을 말하듯.

       

       그 무표정의 아나스타샤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를 했다.

       

       죽을 자리를 결정하라고.

       

       

       “!!”

       

       

       목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닿은 것처럼, 키릴 대공은 소름 끼치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당장 내 가족을 처형한 볼셰비키 놈들도 그렇게 죽였습니다. 로마노프의 적인 그놈들도 그리 죽었는데, 로마노프를 배신한 작자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거 같습니까?”

       

       

       감당할 수 있겠나.

       

       어느새 아나스타샤의 손에는 칼까지 쥐어있었다.

       

       

       “그, 좀 말이 심하지 않은가? 나는.”

       “농담으로 보이십니까? 내가 뒤늦게 권력을 탐하러 온 작자에게 권좌를 줘서 러시아를 다시 말아먹게 할 거 같습니까?”

       

       

       아나스타샤가 손가락을 튕기고.

       

       어느새 들어온 군인들이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를 포위했다.

       

       어디 말 한 마디 해보라는 듯.

       

       그 대답 여하에 따라 볼셰비키처럼 죽여버리겠다는 반응이었다.

       

       꿀꺽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는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나.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 차르의 자리는 내 바라지 않네! 그냥. 그저 내 아들이.”

       “아들이. 뭡니까? 계속 말씀해보세요.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될 테니. 어디 계속 그 주둥이를 나불거려 보십시오.”

       

       

       죽기 전에 지껄이는 것 정도는 들어주겠다. 이거였다.

       

       

       “부.부디 목숨만. 목숨만 살려줘. 절대. 절대 권력을 탐하지 않겠네!”

       

       

       그제야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는 살려달라고 빌었다.

       

       진지하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으니까.

       

       살고자하는 본능이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를 꿇게 만들었다.

       

       

       “그리도 살고 싶습니까?”

       “절대. 내 절대 뭣도 바라지 않겠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 2월 혁명에서 눈치껏 니콜라이 2세를 배신하고 임시정부에 충성했던 것처럼. 아니,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이 상황에서 그냥 목숨줄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작위도 전부 거둘 것입니다. 핀란드에서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십쇼. 살아도 쥐죽은 듯이 살아야 할 겁니다. 블라디미르에게 안부 편지 외에는 보내지 마셔야 할 겁니다.”

       “그.그리하지요.”

       

       

       키릴 대공은 감히 전러시아의 차르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조차도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키릴 대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뿐이었다.

       

       

       “오흐라나가 감시할 겁니다. 허튼 짓 했다간 아시겠죠. 백군이 이기고 내가 차르인 이상 당신은 황실을 배신한 반역자로 몰아 죽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아.알겠습니다.”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은 아나스타샤의 권위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제 그는 다시 핀란드로 떠나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치머만은 그냥 별거 없습니다.

    동프로이센에 사람이 부족해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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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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